프랜차이즈 갓 577화
144장 양파가 죽었어 (1)
아부다비 왕가의 청담 스코프 공동구매 이후, 주문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각장애가 없는 갑부들이 청담 스코프가 갖는 고유의 월등한 성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체험자들의 리뷰는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알려졌고, 갑부들은 청담 스코프에 큰 매력을 느꼈다.
"이거 시력이 멀쩡해도 안경으로 사서 쓸 가치가 있겠는데?"
"주문이 너무 밀려서 시술비 명목으로 1억 달러는 내야 받아준다고 합니다."
"원가가 1.52억 달러인데 시술비로 1억 달러 정도야 낼 만하지."
청담 스코프를 기꺼이 살 만한 갑부들은 최소 개인 자산이 15억 달러 이상 가는 이들이었다.
원가와 시술비(로 잘못 알려진) 포함해서 2.52억 달러는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왕세경은 굳이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시술비 명목으로 재단에 추가로 돈을 내주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아부다비 왕실에서 15세트나 구매한 게 주효했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 돈 많은 왕족들이 집단구매를 한 게 아니겠냐는 인식이 최상류층 사이에 퍼진 모양이야."
"정말 잘 되었네요. 이제 우리 병원도 적자폭에서 벗어날 수 있겠죠?"
"지금 선주문 추가로 들어온 것만 해도 85세트라고 하던데."
"시술비 명목으로 최소 1억 달러는 내니까…… 흐익! 8조 5,000억 원이 네요?"
"세상에, 닥터헬기 시스템 도입하느라 들어간 돈이 한 방에 메워졌어요."
"그거 다 메워지고도 오히려 몇조원이 남은 거지."
"이러면 우리 병원 이제 흑자 아니에요?"
"완전 흑자지, 흑자."
"가만있어 봐. 계산을 해보자. 그러니까 총 99세트 제작해서 얻은 수익을 다 합치면…… 103억 1,000만 불?"
"10조 3,100억 원이네요. 원가 빼고 사례금으로 받은 수익만."
청담수영병원은 돈 잡아먹는 사업체에서 벗어나 흑자로 돌변했다.
물론 100% 병원 의료사업만 보면 형편없는 적자 수준이다.
하지만 의료진은 아무도 그걸 걱정하지 않았다.
하수영이 누누이 말한 것도 있고, 왕세경이 부이사장으로서 분위기 단속을 엄히 했기 때문이다.
"재단이 치료행위로 돈을 벌겠다는 것은 인술을 도외시한다는 나쁜 발상이오. 돈은 다른 곳에서 충당을 할 테니까, 여러분들은 세계 최고의 치료를 서비스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병원의 가치는 환자 치료해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남겼느냐가 아니오. 얼마나 뛰어난 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목숨을 구했느냐, 재단은 그걸로 병원의 가치를 봅니다."
다들 쉬쉬했지만, 연간 수백억에서 수천억 대의 적자가 쌓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돈 많은 재단 오너의 운영철학 덕분에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청담수영병원은 국내최고 수준의 병원에서 멈추지 않고, 최고의 흑자를 내는 병원으로 당당히 일어선 것이다.
"나중에 청담 스코프 양산까지 자리 잡으면…… 우리 병원 수익, 진짜 대박이겠는데?"
재단 수익은 외부로 반출할 수 없다.
재단 내 병원 사업에만 모조리 써야 한다.
하지만 하수영이나 왕세경은 그 점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애초에 병원사업으로 돈 벌어서 청담동 빌딩 산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적이 없으니.
"병원은 병원이죠. 그 자체로 잘돌아가게 놔두면 됩니다. 값비싼 컬렉션이라고 생각하면 손해는커녕 아주 이득이지요."
병원을 미술관이라고 치자.
미술관이 엄청난 돈이 들어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 번다.
그 돈으로는 미술품을 사거나, 미술관을 확장하는 목적 외에는 쓸 수 없다.
그러나 미술관이 어디 도망가거나,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미술관은 가치가 있으며, 자신의 소유물이다.
***
하수영은 청담동 이웃사촌인 최우석 강남구 부의장과 이야기 중이었다.
"지금 문제는 병원 수익을 못 꺼내 쓴다는 것 따위가 아닙니다. 채솟값이 너무 올랐어요! 당근과 양팟값이 완전히 미쳐서 날뛰고 있다고요."
"그랬나?"
"네, 코스트홈 최근에 가보셨습니까?"
"그 대형창고형 할인마트?"
"거기서 핫도그 사면 무료로 다진 양파를 제공했었는데, 양파 기계 자체를 아예 없애 버렸습니다. 지금 양팟값이 10배가 넘게 올랐다니까요?"
최우석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 정도라고?"
"네, 그래서 우리 청담수영마트도 어쩔 수 없이 무료 양파 제공 코너를 임시로 폐쇄했습니다. 점장 판단이지만 존중합니다."
최만식 수영마트 청담 본점장은 다진 양파 무료제공 서비스를 과감히 중지했다.
양팟값이 너무 올라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비용은 문제가 아니었다.
청담수영마트는 그 정도 지출은 전혀 끄떡없으니.
문제는 양팟값이 오르자 수영마트에도 무료 양파를 노린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지출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없앤 것이다.
"우리 수영마트에서도 이 정도인데, 다른 데는 말할 것도 없지요."
"양파가 그렇게나 올랐다니……. 응? 지금 기사 보니까 전월 대비 20배 넘게 올랐다고 하는데?"
"맙소사, 하룻밤 사이에 거기서 2배가 또 뛰었네요."
하수영은 놀라서 얼른 정보를 검색하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당근은 30 배 이상 폭등이라니……."
"근데 당근하고 양파가 폭등한다고 문제가 되나? 그거 없어도 사실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지 않나?"
최우석 노인이 이해가 안 간다는듯이 갸웃거리자, 하수영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부의장님, 삼겹살 드실 때 양파 안 드세요?"
"아, 없어선 안 되지."
"당근 슬라이스는요?"
"반드시 있어야 해!"
"우리가 고기 먹는 즐거움의 요소가 큰 타격을 입은 겁니다."
"저런."
그제야 최우석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잠시 생각하던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으음…… 확실히 고깃집들이 지금 문제가 크겠군."
"당근과 양파는 우리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채소들입니다. 아몬드 따위, 다이아몬드가 되든 말든 상관없지만, 당근야채는 안 돼요."
"다이아몬드?"
"아몬드도 지금 물량 줄어서 가격올랐거든요."
"근데 왜 다이아몬드인가?"
"아몬드가 Die했으니 다이아몬드……."
"기가 막히군. 내 다니는 노인정에서도 그런 농담 치는 할재는 없네."
***
한국 소비자들은 당근과 양파의 가격 폭등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고깃집에 가면 일단 확실하게 느낄수 있었다.
"아니, 양파를 이것밖에 안 주시나요? 구운 양파를 삼겹살 쌈에 넣어서 먹으면 얼마나 꿀맛인데."
"죄송합니다. 요즘 양파가 금파라 서요.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그렇지요."
"원래 시세의 20배 이상 올랐어요. 예전 같으면 20개는 살 돈으로 지금은 1개 겨우 삽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20배라고요? 그 정도나 올랐어요?"
고깃집 손님들은 깜짝 놀랐다.
그중에 믿지 못하고 폰으로 기사를 검색하는 이도 있었다.
(프리덤한테 물어도 되지만, 그럼 알바생도 옆에서 듣게 되므로)
"정말이네. 양팟값이 20배 넘게 폭등했대."
"당근값도 엄청 뛰었는데? 무슨 일이야?"
"아니, 그럼 우리 양파 어떻게 해? 양파 킬러 넷이 모여서 꼴랑 이거 겨우 먹으라고?"
"따로 추가금 내고 양파 더 먹을 순 없어요?"
그러자 알바생이 교육받은 대로 공손히 대답했다.
"추가 양파는 구해가 구매한 원가만 내시면 얼마든지 더 드릴 수 있습니다. 사장님이 바로 요 앞 마트에 가서 사오실 거라서요."
"그럼 크고 튼튼한 놈으로 3개만 갖다 주세요."
"저어, 손님. 그럼 양팟값만 6만 원이 되는데요."
"뭐라고요?"
"지금 양파가 큰 거 기준으로 개당 2만 원 정도 하거든요."
"……."
"……."
"……20배 올랐다고 해서 정말 많이 올랐다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숫자로 들으니까 타격이 크네."
일행 한 명이 멍하니 중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통양파 1개만 갖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알바생이 돌아가자 친구 하나가 얼른 타박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통양파 한 개를 2만 원이나 주고 먹어?"
"못 들었어? 양파가 아니라 금파라잖아, 금파. 감수하고 먹어야지."
"그냥 안 먹으면 되지."
"아, 됐어. 그럼 양팟값으로 내가 2만 원 따로 낼 테니까 니들은 손도 대지 마라. 알겠냐?"
"치사하게 그런 게 어딨냐!"
"그럼 다 같이 조금씩 먹고 제대로 n분의 1로 나누던가."
고깃집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배달음식에서도 양파들이 사라졌다.
배달드라이브 리뷰는 소비자들이 담합이라도 한 듯이 비슷한 내용의 항의들이 올라왔다.
-왜 양파를 이것밖에 안 줘요?
-닭도리탕에 당근이 없으면 대체 무슨 맛으로 먹으라는 거죠?
-배달 삼겹살 시켰는데 양파양 이거 실화임?
-주문한 샌드위치에 양파와 당근이 멸종했는데 사장님 개념은 아직 살아계신지?
배달음식뿐만이 아니었다.
주부들은 시중에서 양파와 당근을 들었다가 가격을 보고는 기겁해서 내려놓곤 했다.
어떤 주부들은 하소연 같은 항의를 하기도 했다.
"저기요. 여기 양파 가격에 0이 하나 더 붙어 있는데 확인 좀 해주세요."
"0이 하나 더 붙은 게 아니라 그 가격이 맞습니다. 지금 양파와 당근가격이 수십 배 넘게 올라서요. 죄송합니다."
"아니, 통양파 한 개에 2만 원이라는 게 말이 돼요? 그 돈이면 차라리 비싼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먹겠네."
"죄송합니다. 가격이 올라서요."
양파와 당근 사랑하면 한식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가격이 수십 배로 뛰어오르니, 한식 매장들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혹시 우리 나라 양파 당근 농가들이 올 한해 농사 망쳤어?"
"작년이랑 이번 해에 농사 안 망친 농가 찾는 게 더 힘들걸? 하우스재배 양파는 다 망했으니 밭양파 출하될 때까지는 답 없다."
밭양파는 아직 파종하기 직전이었다.
때문에 농사가 망했느니 안 망했느니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말도 안 되게 폭등한 가격에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미국이 아몬드에 이어 당근과 양파 농사까지 시원하게 말아 드셨다는 말이 있던데."
"미국이 얼마나 땅이 큰데, 아무렴북미 전체 농사가 다 망했을라고?"
"응, 폭삭 망함. 올해 북미 아몬드, 당근, 양파 생산량이 작년 10%도 채 안 될 거라는 예측이 나와 있음. 선물옵션 시장 지금 난리 났다."
"아니, 미국은 수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무슨 북미 전체가 농사가 망해?"
"다 망한 건 아니고 몇몇 특정 작물만, 벼와 밀, 콩은 여전히 풍년이라더라."
"그러니까 왜 당근양파만 콕 집어서 망했냐고?"
"F-22 랩터하고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더라. 혹시 당근양파 밭을 전부 갈아엎어서 F-22 착륙장이라도 만들었나?"
소비자들은 미국의 당근양파 농사가 왜 망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미국 당근양파 농사가 망했는데 왜 우리나라 당근양팟값이 폭등하는 거야? 미국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당근양파를 수입했다고?"
자기들 것을 수출하면 수출했지, 수입은 하지 않았을 품목 아닌가.
가격 폭등의 직접 원인이 마침내 밝혀졌다.
"범인을 알아냈다! 바로 맥날드와 KCF였어!"
"맥날드와 KCF가 왜?"
햄버거와 치킨 푸드를 주력으로 삼는 글로벌 패스트푸드 양대산맥.
그들이 범인이라는 말에, 처음에는 소비자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그놈들이 만드는 음식에 들어가는 채소가 뭐지?"
"당근, 양파…… 이런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