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76화 (576/1,270)

프랜차이즈 갓 576화

143장 나는 미리 조언했다 (3)

"농사 로봇을 렌탈해 준다고?"

이범준은 귀가 솔깃해졌다.

그는 평소에도 수영농장의 농사 로봇에 관심이 많았다.

구축 비용을 듣고는 자신과는 관련없다고 일찌감치 포기했을 뿐이지.

그런데 그걸 렌탈해 준다니.

"정말인가? 렌탈비는 얼마나 되고?"

"아시죠? 우리 사이에 뭐 그런 걸 주고받니 하는 말은 제가……."

"알지. 그런 거 싫어하잖나. 뒤끝에 계속 지저분함만 남긴다고."

"어차피 여유분을 빌려드리는 거라서 저도 최소한만 받겠습니다. 2기를 하루 3시간씩 주 7일로 해서 월 10만 원, 어떠세요?"

"완전히 거저네. 그래도 괜찮은가?"

"우리 사이에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러세요."

"허허, 그런 거 질색하면서."

"저도 노는 거 빌려드리는 거라서 큰돈은 못 받겠네요."

이범준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무척 고마워했다.

"알았어. 고맙네.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나?"

"하우스 스페어 열쇠나 공유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제 로봇들이 알아서 다닐 거예요."

"따로 밥 같은 건 안 챙겨줘도 되고?"

"충전 방식이 달라서요. 그런 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일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수영은 생각난 김에 프리덤한테 바로 지시를 내렸다.

"필요한 지시 사항이 있을 땐 로봇한테 대고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마이크가 있어서 말을 다 알아듣거든요."

"알겠네. 정말 신기하군."

"핸드폰으로 링크 하나 보내드렸으니 거기서 앱 다운받아서 설치하세요. 그럼 집에서도 로봇들한테 지시를 내리고 보고를 받을 수 있어요."

"오, 정말? 그거 진짜 좋은데?"

그리하여 이범준은 처음으로 수영농장 로봇 사용 체험을 하게 되었다.

스페어 키를 맡기고 다음 날, 하우스에 출근한 그는 눈을 비비며 놀랐다.

"오전에 할 거 다 했네?"

놀랍게도 농장 로봇 2기가 오전 내내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쳐 놓은 것이다.

원래라면 자신과 아내가 둘이서 오전 내내 꼬박 해야 할 일이었는데, 출근을 해놓으니 싹 마쳐 놓은 상태였다.

"이럼 오전에 할 게 없겠어."

앱을 통해서 확인을 해보니 로봇 2기가 새벽에 일을 다 끝마쳐 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럼 아예 하우스를 하나 더 시작할까?"

껍데기만 갖추고, 농작물을 전혀 세팅하지 않은 빈 하우스가 세 개 더 있었다.

일손이 모자라서 그냥 껍데기만 남겨놓은 것이다.

사람을 고용하면 좋겠지만, 그가 재배하는 특수작물은 일정 이상의지식과 숙련도가 가진 일꾼이 필요했다.

"그럼 오전에는 빈 하우스나 새로 꾸며야겠군."

로봇 2기가 도와준다면 하우스 한 두 개 정도는 더 운영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범준 사장님, 저는 수영농장 AI관리자입니다.

"응? 프리덤하고 목소리가 똑같은데?"

-뿌리가 같아서 그렇습니다. 하우스를 추가로 가동하십니까???

"어, 그러려고, 로봇들이 일손을 덜어주니까 괜찮을 듯싶구나."

-알겠습니다. 재배 플랜에 추가하겠습니다.

이범준은 시간 차를 두고 출근한 아내와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빈 하우스 가꾸기에 나섰다.

안에 쌓여 있던 큰 직사각형 화분들.

흙 포대를 뜯어서 빈 화분에 차곡차곡 흙을 담는데, 갑자기 농장 로봇 2기가 나타났다.

-이범준 사장님, 저희도 돕겠습니다.

딱딱한 기계음.

3개의 다리와 6개의 팔을 가진 로봇 2기는 신장이 약 150㎝에 달했다.

굵은 몸통에 얇은 팔다리 관절이 달려 있고, 머리 부위에는 온통 은색으로 빛나는 구체가 달려 있다.

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아 신기한 마음에 물어봤다.

"이봐, 로봇 친구. 자네는 눈이 어느 방향에 달려 있나?"

-헤드 구체에 360도 능동탐지 방식의 광학 센서 모듈이 들어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모든 방향을 실시간으로 관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약 2만 개의 눈이 구체 모든 표면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범준과 아내는 입을 쩍 벌렸다.

기계는 잘 모르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뭔가 대단한 것 같았다.

-그럼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2기의 로봇은 곧바로 일손을 거들었다.

아니, 그것은 거든다는 표현과는 맞지 않았다.

일감을 아예 빼앗고, 독점해 버렸다고 봐야 맞는 표현이다.

3쌍의 로봇 팔이 각각 합을 이뤄서 빈 화분에 흙을 차곡차곡 담는다.

포대에 담긴 흙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양과 속도를 지키며 화분에 담긴다.

일정 이상 화분이 쌓이면 다른 한기가 곧바로 화분을 하우스 안에 반듯하게 정렬해서 오와 열을 맞춘다.

"……여보, 우리는 방해만 되는 거 같은데요."

-방해됩니다. 저쪽으로 비켜서 작업을 해주시지요.

"아, 알았어."

이범준과 아내 둘이라면 몇날 며칠이 꼬박 걸릴 작업이었다.

하지만 2기의 농장 로봇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것을 끝내버렸다.

비어 있던 하우스 3개가 흙이 담긴 화분으로 가득 찬 것이다.

이범준은 방직기가 처음 나왔을 때, 노동자들이 얼마나 절망했을지 느낄 수 있었다.

"이러다가 우리나라 농가들 다 망하는 거 아니야?"

-천만에요. 오히려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어 수확의 과실만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며칠 동안 이범준과 아내는 편안한 일상을 보냈다.

농장 로봇 2기는 일일 3시간이라는 제한에 얽매이지 않고 일했다.

농사일을 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일감이 전혀 쌓이지 않았다.

로봇들은 단지 흙을 채우고, 물과 비료를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싹들이 잘 자라나는지, 해충은 없는지 정기적으로 모든 작물들을 순찰했다.

로봇 1기가 숙련된 농사꾼 100명보다 월등히 나았던 것이다.

"진짜 편하네요. 여보, 우리도 저 로봇들 사면 안 돼요?"

"저거 한 기가 수십억이 넘는대, 수십억."

"헉, 진짜요?"

"그래도 렌탈비 월 10만 원으로 쓸 수 있는 게 어디야. 하수영 농민회장한테 신세 크게 졌어. 다음에 뭐 맛있는 거라도 해서 갖다 주자고."

"농민회장 그 친구야 맛있는 음식이면 정말 사족을 못 쓰죠. 알았어요."

"한창 젊어서 그래. 쇠도 씹어 먹을 나이 아니겠느냐고."

농장 로봇 덕을 톡톡히 본 이범준은 이웃 농민들에게 크게 자랑했다.

"정말이야? 로봇으로 농사짓는 게 그렇게 편해?"

"그렇다니까. 내가 하는 것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낫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로봇이 수십 년 동안 농사 외길에만 정진한 일꾼을 이길 수 있나?"

"아이구. 전문성은 말할 것도 없고 속도와 효율 자체가 안 돼. 내가 100명 있어도 그 로봇 1기 못 이길걸?"

"그 정도야?"

"게다가 쉬지도 않아. 밥을 먹지도 않고 담배 피우러 농땡이 치지도 않고, 일할 땐 한눈 안 팔고 죽어라 일만 해."

"렌탈비 월 10만 원 정도면 우리 농가에서도 써봄직한데 말이야."

"안 그래도 농가 일손 부족한데, 하수영 농민회장이 렌탈 서비스 팍팍 늘려줄 예정은 없으시다나?"

"힘들 걸? 듣자니까 테라리움 큰 빌딩형으로 새로 짓는 거 완공되면 전부 거기에 들어갈 거라고 하더라고."

"그래? 그럼 지금 농장은 어쩌고?"

"그거야 금광 때문에 폐기해야지. 지금 JS중공업이 수영농장 때문에 금 캐는 속도를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잖어."

테라리움 1.0과 2.0은 농사 면적 자체가 다르다.

거대한 원통형 빌딩으로 된 2.0은 더욱 많은 작물을 한꺼번에 키울 수 있고, 당연히 필요한 농사 로봇 양도 늘어난다.

하수영은 당장 현재 테라리움에 투입할 필요가 없는 로봇들을 이웃 농민들에게 렌탈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

하수영은 농협, 농식품부, 농업연구소 등에 적극적으로 콘크리트 하우스의 도입을 주장했다.

"심심하면 물난리 나고 태풍, 강풍에 농작물 다 망치는 환경입니다. 비용 효율이라면 몰라도 식량안보를 생각한다면, 전면 하우스 재배시설과 치수시설의 대대적인 개량이 필요합니다."

농민들은 그런 주장에 적극 공감했다.

수해가 났다 하면 큰 피해를 입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보상금을 받아도 충분하지 않고, 또 땀 흘려 지은 농작물이 쓸려 나가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이 찾아온다.

하지만 늘 그렇듯 부족한 것은 예산이었다.

농식품부는 전국 농민 간담회까지 열어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

농민들은 곧 좋은 소식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기재부가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나라에 그럴 돈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농지 전체에 콘크리트 하우스를 씌우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해외에서 식량을 사오는 게 훨씬 싸게 먹힐 겁니다."

"가끔 수해를 입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식량 보급률은 아무 문제없습니다."

농식품부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랬지요. 하지만 최근 2, 3년 동안 동아시아 날씨가 어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2년 연속 농사를 전부 말아먹었어요."

"미국하고 남미가 현재 건재해서 어렵지 않게 식량을 사오긴 하지만, 만약 외교적으로 식량을 무기화한다면 그땐 어떨 겁니까?"

"언제나 최악의 경우에도 우리 먹을 식량은 우리 땅에서 우리 손으로 직접 재배할 수 있을 환경을 마련해 둬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식량안보라고요!"

물론 기재부는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았다.

청담 스코프 양산사업에 400억 불과 20억 불을 뜯긴 기재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국고 사수에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아! 그 잘난 수영농장이 우리나라 전체가 먹을 쌀도 턱턱 생산하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물난리 아무리 심하게 나도 수영농장은 전혀 해가 없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닙니까?"

청와대는 고심 끝에 기재부 손을 들어 주었다.

"나라에 당장 돈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훗날을 기약합시다."

그렇게 해서 전국의 모든 농지에 튼튼한 지붕을 씌워주자는 주장은 힘을 잃었다.

***

하수영은 기재부의 돈 없다는 결사반대로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어쨌든 간에 나는 분명히 경고했어."

"사장님, 정말로 모든 농지에 뚜껑을 씌워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2년 연속으로 말아먹었어요. 수영농장 아니었으면 쌀 없어서 난리가 났을 겁니다. 지금 일본이 발 동동구르면서 여기저기 쌀 사러 다니는거 못 들으셨어요?"

"외신 보면 일본의 쌀 수급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만 나와서……."

"원래 일본 정부는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덮는 게 DNA에 각인돼서 그래요. 그런 건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수영은 농장에 들어섰다.

수십 개가 넘는 벌통에서 나온 꿀벌들이 농장을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있다.

꿀벌들은 아카시아 꽃 사이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꿀을 채집했다.

옆동 테라리움에서는 꿀벌들이 유채꿀을 따러 다니고 있을 것이다.

흐뭇하게 구경하던 하수영은 사업장 현황을 차근차근 확인했다.

수영레스토랑 회계 내역을 검토하던 중 눈썹이 작게 찡그려졌다.

"뭐야, 이익률이 조금 줄었네?"

-재료비가 상승했습니다. 특히 당근과 양파의 가격이 열 배 이상 폭등했습니다.

"당근과 양파가 올랐다고?"

-미국에서 당근과 양파의 수입 수요가 폭증한 게 원인입니다.

"걔네 아몬드 농사만 망친 게 아니었구나."

-보통 이런 걸 불길한 전조라고…….

"어허, 복선 깔지 마라. 어설프다. 어설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