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75화
143장 나는 미리 조언했다 (2)
양흥명 과장은 움찔했다.
"노,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부디하지 말아 주십시오. 농민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은 정말 현실이 될까봐 무섭단 말입니다."
"저주를 하는 게 아니라 미리 대비를 하자는 겁니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양흥명은 얼른 사과하며, 좋지 않은 낯빛으로 말을 이었다.
"농민회장님 같은 분은 무엇이든간에 말하는 대로 이뤄질 것 같아서 두려운 겁니다.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보통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손대는 것마다 크게 성공했다.
일반적인 성공을 넘어서는 수준이라, 재물의 신이 편애하는 게 아닐까 두려울 정도다.
농사지으려고 사놓은 땅에서 금이 조 단위로 톡톡 터져 나오는 사람이니.
저런 사람의 예측은 정말 현실로 일어날 것만 같아서, 그저 두렵다.
"수해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튼튼한 하우스재배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수해에서 크게 자유로운 지역은 아니잖아요?"
미국은 올해도 작년에도, 아시아처럼 농사 수해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번에도 일본을 상대로 곡물을 대대적으로 팔아서 한몫 챙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 아몬드 농사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미국 아몬드 생산량이 예전에 비해서 90% 이상 감소했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미국 아몬드는 죽었습니다."
"뭐 때문에 그렇대요?"
"글쎄요. 무슨 원인불명의 식물병이 돌았는지, 아몬드가 거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말도 있고…… 아무튼 그렇습니다."
"아몬드 못 먹는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죠. 하지만 벼는 달라요, 아시죠?"
"물론입니다."
"튼튼한 하우스 재배시설 보급,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 보세요.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요."
"장관님께 농민회장님의 깊은 뜻, 제대로 전달하겠습니다."
일단 쌀 수급 걱정은 덜었기에 양흥명 과장은 한숨 돌렸다.
이제는 농사를 망친 농민들에 대한 보상, 그리고 수해 재발 방지를 고심하면 될 것이다.
하수영은 양흥명 배웅을 위해 허리를 펴다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중국이 미세먼지 제거 때문에 기후 조작하다가 날씨가 이렇게 됐다는 음모론, 그거 근거가 있는 건가요?"
"글쎄요. 정부에서는 진지하게 그걸 받아들이는 분은 없는 듯합니다. 일단 너무 말이 안 되긴 하고요. 인간의 힘으로 기후를 조작하다니요, 너무 꿈같은 ……."
"기후 조작, 그거 별로 어렵진 않은데."
"예?"
"아닙니다. 들어가 보시구요, 나중에 또 뭐 새로운 거 있으면 알려주세요. 농업 관련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망설이지 마시고 연락 주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혼자가 된 하수영은 고개를 들어 먼 서쪽 하늘을 응시했다.
재작년부터 중국은 기후 조작을 시도하다 얻은 실패로 아시아에 이상 날씨를 불러왔다는 의심을 꾸준히 받고 있었다.
유례없던 대규모 태풍이 한반도를 덮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고,
"프리덤, 정말 중국이 그랬을까?"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럴듯한 설득력을 갖춘 음모론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아."
-중국을 경계하시는 거군요.
"아니, 그건 아니고."
-예? 그럼 무엇 때문이십니까?
"이번 생은 농사나 편히 지으며 쉬고 싶었는데, 왠지 그렇게 안 될까봐 걱정이 되는 거지."
-마스터,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농사만 열심히 지었는데 얼떨결에 세계패권을 쥐었어요, 라는 꼴이 날까 봐 괜히 혼자 설레발 치는 거다. 쯧쯧, 둔한 녀석 같으니."
-…….
하수영은 수영목장 수해 현황을 파악했다.
다행히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단단한 철근콘크리트로 축사 자체를 1.5미터 이상 높이, 그리고 매우 튼튼하게 지은 덕분이다.
물난리가 땅을 휩쓸고 지나갔지만, 소와 돼지, 닭들은 매우 안전했다.
물론 하수영 직영 축산 농가만 그러했을 뿐, 일반적인 농가들은 피해가 극심했다.
"이러면 고깃값이 진정되기는커녕 또 오르겠는데……."
***
하수영은 학교를 찾았다.
평소에는 (프리덤이 자율제어하는) 로봇 하수영을 대타로 내세우지만, 그래도 한 달에 2, 3회 정도는 학교를 방문한다.
학위 취득 목적으로 입학하긴 했지만, 그래도 323번째로 다니는 모교아닌가.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323번째나 맞나 모르겠네. 0 하나 빼먹었나?"
로봇 하수영이 대낮부터 갑자기 가동을 중지하고 충전 모드에 들어가 있자 걱정했던 이들은, 하수영이 직접 모습을 나타나자 환호했다.
"하수영 학우님. 오늘은 수업도 없는 것으로 아는데 학교에 직접 오셨네요?"
"뭐 꼭 수업이 있는 날만 학교에 오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하하."
"매일 모니터를 통해서만 얼굴을 보다가 이렇게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학우 여러분."
"저희도 그렇습니다. 자주 실물 얼굴 좀 비춰주세요. 물론 공사가 다 망해서 무척 바쁘신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인맥을 하나하나 확인한 뒤, 하수영은 학장실을 찾았다.
근황 및 국내 농업계 정세를 이야기하다가 하수영은 본론을 꺼냈다.
"하우스재배 시설 전면 도입이라고요?"
"네, 우리나라처럼 뻑하면 날씨 때문에 농사 망하는 지역은 결국 언젠가는 그 길로 가야만 합니다."
"하지만 총비용이 엄청날 겁니다. 농민들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국가도 감당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하긴 해야죠. 식량안보를 위해서라면 말입니다."
"식량안보라……."
학장의 낯빛이 흐려졌다.
하수영은 좀 더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일본이 모자란 쌀 채워 넣겠다고 여기저기 쌀 사러 돌아다니는 모습을 좀 보세요. 우리나라도 그와 다를 것 없습니다."
"그렇지요. 수영농장이 없었다면 정부 입장은 더욱 난감했을 겁니다."
수영농장 덕분에, 적어도 정부는 쌀이 부족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제가 넌지시 말을 꺼내봤는데, 식량정책과장님도 동의는 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로 난감해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렇겠지요. 비용이 어이구……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군요."
"그렇지 않아도 청담 스코프가 이 나라 여유 재정을 해마다 박박 긁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더 큰 문제입니다."
학장의 표정이 아리송해졌다.
지금 하수영은 청담 스코프를 비난 하듯이 목소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 수영재단 소유 아니었나?
'왜 마치 남의 물건 말하듯이 말씀을 하는 거지?'
"재정부족 문제는 끊이지 않을 거니까 지금부터 차근차근 대비해야 할 것 같네요. 우리 한국대 농업대학이 가장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요?"
"무,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농업 관련 최고전문 대학기관으로서 하우스재배 시설 보급화의 중요 성을 널리 홍보해야 합니다. 정부도 설득해야 하고요. 당장 시작하죠!"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을 만큼 중요하고 큰일이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
그런 하수영의 주장에 농대 학장은 군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수영 학생. 내가 학장으로서 궁금한 게 있는데 말입니다……."
"말씀하세요, 학장님."
"하수영 학생은 학업을 어느 정도까지 진행을 할 의향인지 내가 궁금해서요. 학사 학위까지만 일단 대학을 다닐 건지……."
"학사라니요?"
하수영은 눈을 크게 뜨고는 어조를 강하게 하고 대답했다.
"당연히 한국대에서 박사 학위까지 스트레이트로 취득할 생각입니다."
"오, 그, 그래요?"
그 말에 학장의 표정이 더할 나위없이 밝아졌다.
좋아, 이것으로 농대의 희망이 계속 불탈 수 있게 되었다.
"네, 그러니 나중에 교수 자리도 하나 준비해 주셔야 해요."
"교교수 자리요?"
"왜 그러세요? 제가 설마 박사 학위 못 딸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학장은 얼른 도리도리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우리 하수영 학생이라면 박사 학위까지 단숨에 따고도 남을 겁니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아요! 박사만 따면 교수 자리 하나 만드는 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당연히 해드려야죠."
"나중에 제가 교수 되면 학장님은 총장님이 되어 있겠네요."
자신이 총장?
학장은 불현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지금 하수영의 말을, 자신을 총장까지 밀어주겠다는 것으로 받아 들였다.
농업대학장으로서 총장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미래에, 가슴이 마구마구 부풀어 올랐다.
***
수영농장의 무인자동화 방식 농법에 관심을 갖는 농민들은 많았다.
하지만 예외 없이 무인농장 세팅가격을 듣고는 포기했다.
"하우스야 비닐로 대체하면 된다지만, 저 기계들은 우리가 어찌할 수가 없어."
"간단한 로봇 하나도 수십억이 넘어가는데, 우리가 그걸 무슨 재주로 도입해."
메인통제 슈퍼컴퓨터 구축에 수천억이 넘게 들었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할 것이다.
하수영은 수영농장 인근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이웃 농민을 찾았다.
"사장님, 이참에 콘크리트 하우스방식 한 번 해보시죠?"
"하지만 햇볕이 문제잖어. 자네 농가처럼 비싼 강화유리를 쓸 수도 없고."
"어차피 지금 비닐하우스 다 망가져서 새로 지어야 하잖아요. 콘크리트 하우스로 하시겠다면 강화유리는 제가 무상으로 제공해 드릴게요."
"정말?"
"네, 대신 콘크리트강화유리하우스 홍보 마케팅에 적극 동의해 주셔야 합니다."
"아, 그거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진짜 강화유리는 공짜로 주는 거지?"
"네, 그리고 제가 지금 수영농장 지어주신 분한테 맡기면 합리적인가격으로 꼼꼼하게 해주실 겁니다."
"나야 그럼 고맙지."
그렇게 하수영은 인근 농민들을 꼬셔서 콘크리트강화유리 하우스로 새로 짓게 했다.
안 그래도 두 해 연속 농사를 망친 그들은 수해라면 학을 떼고 있었다.
차라리 하수영처럼 튼튼한 하우스를 짓는 게 두고두고 속이 편할 거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사장님들이 이걸로 성공하셔야 전국적으로 도입을 주장할 명분이 생깁니다. 그러니 널리 홍보해 주세요."
"그래야겠어. 내년 수해는 이보다 더 심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래도 우리 지역은 물이 들어차지는 않아서 다행인데, 물 차는 지역은 어찌해야 하나? 벽만 세운다고 물이 안 차진 않을 텐데."
"하우스 지반을 높이거나, 외곽에 대형 수로 공사를 해야죠. 저는 하우스 지반을 높이는 방법으로 해결했습니다만."
그렇게 하수영은 총 10명의 이웃 농민들에게 콘크리트강화유리 하우스를 짓게 했다.
강화유리 무상 공여 외에, 건축비가 모자라면 따로 사비로 대주기도 했다.
"이거 거저 드리는 거 아닙니다.
나중에 농협 선거에서 제가 미는 사람 지지해 주셔야 합니다."
"아이구, 우리도 염치가 있는 사람 이에요. 절대 걱정하지 말어. 이 은혜 잊지 않고, 하 사장이 미는 사람이라면 발 벗고 나설게."
"그냥 하 사장이 농협회장 하면 안되나? 지금 김산 회장은 하는 게 영 시원치 않은데……."
그렇게 해서 하수영이 지원하는 콘크리트강화유리 하우스가 완성되었다.
현 테라리움 1.0 버전에 비하면 다 운그레이드 보급형 버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농민들은 상당히 감격했다.
하수영은 그들에게 다시 제안했다.
"혹시 우리 농장에서 쓰는 무인로봇 한 번 써보실래요?"
"너무 비싸! 내가 그럴 돈이 어디 있나."
"렌탈해 드립니다."
"렌탈? 빌려준다고?"
"네, 2기를 하루 3시간씩 렌탈해 드리려고 하는데 한 번 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