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74화
143장 나는 미리 조언했다 (1)
하수영은 술을 단숨에 마신 후 입을 열었다.
"겉으로는 모두가 해피엔딩이군요."
"재벌 기업들만 빼고 말이지. 법인세 상승은 일단 피할 수 없어보여."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요."
"재벌 총수들이 그 말을 들었다가는 게거품을 물고 일어설 걸세."
"귀엽겠네요. 한번 보고 싶습니다."
조금의 농담기도 느껴지지 않는 진지한 표정에, 왕세경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번 보고 싶다는 것도, 귀엽겠다는 것도, 둘 모두.
"개인은 45%까지 세금을 내는데 법인은 25%밖에 안 되는 건 말이 안 되죠. 법인세도 좀 올려야 됩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종합소득세나 법인세나 둘 다 최고 적용 대상이구먼."
하수영은 개인으로 내는 세금 외에, 자기 명의로 된 법인도 있으니.
프라임컴퍼니의 과세대상 수익이 3,000억은 당연히 넘지 않을까?
"수영농장에서 나가는 종소세가 꽤 크겠어. 그거 순이익이 조 단위였지, 아마?"
"아, 그건 세금 안 내는데요. 농산물은 완전 면세거든요."
"뭐야? 알고 보니 이 나라 농사짓기 참 좋은 나라였네."
"농사로 돈 버는 게 힘드니까 세금을 전혀 안 물린 거였는데요. 잘 아시면서."
정부는 400억 달러나 되는 큰돈을 붓고도, 0.3%도 채 못 되는 지분을 얻었다.
당연히 시끄러운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하지만 안살린 왕자가 1조 달러를 내고도 7.1428%의 지분을 받았다.
애초에 6조 달러 정도는 쏟아부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에는 타당성을 인정받았고, 그래서 지분율 자체는 기재부도, 정부도, 국회도, 여론도, 모두 군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 돈을 부을 때마다 지분량이 늘어날 테니까.
"기재부 녀석들은 대충 10년간 2,000억 불에서 끊을 모양 같던데, 그럴 일은 절대 없네."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들어왔으니 끝까지 가야죠."
"그렇지. 우리 스코프 열차는 경유지 따위는 없이 종착까지 달릴 테니까."
왕세경은 한껏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우리 정부는 청담 스코프 양산에 성공할 때까지, 허리띠를 졸라매서 돈을 쏟아 부어야만 할 걸세."
"나노소프트하고 다른 외국 기업들이 참여한다는 건 어떻게 하기로 하셨습니까?"
"채권 형식으로 받기로 했네. 만기 상환은 20년, 양산 성공 전까지는 무이자, 그 이후에는 연 5%를 쳐주기로 했지."
파격적인 수준의 조건이었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이자를 한 푼도 안 받고, 성공이 확정된 이후부터 받겠다는 것이었으니,
"그런 조건을 군말 없이 받았군요. 그 회사들도 돈이 썩어나나 보네요."
"주식 전환을 기대하는 거지. 절대 망할 일은 없으니까 말이야.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왕세경은 다시금 술을 따르며 피식거렸다.
"이번에 체험 이벤트로 보인 퍼포먼스가 아주 주효했어. 그리고 체험이 끝난 저녁 이후에는 투자의향 회사들 경영진들을 따로 초청해서 일일이 체험을 시켜줬거든."
잠시나마 신의 눈을 체험하게 된 그들은 이 사업이 절대로 실패할 수 없음을 확신했다.
그저 부품 양산만 성공하면 된다.
"평생 25인치 티비로만 영화를 보다가 3D 아이맥스 상영을 체험했으니 말이야. 군소리 없이 다들 동의 했네."
"뭐, 수고하셨습니다."
"그나저나 10년이라…… 갑자기 너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군."
"10년 금방 갑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야 그렇겠지만요."
"근데 정말 스코프 사업을 전적으로 재단 밑으로 놔둘 건가?"
"그게 순리에 맞겠지요. 어쨌든 의료목적으로 뒤져서 찾아낸, 아니 개발한 기술이니까요."
"사업 수익은 병원 운영 외에는 이용하지 못할 텐데."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10년 정도 지나면 영리병원이 아마 보편화돼있겠네요. 그때는 병원도 일반 주식 회사처럼 운영하게 될 테고요."
"그럴까?"
"의료산업에 출자한 재벌 기업들이 그렇게 만들 겁니다. 무조건요."
"하긴, 서해그룹 소원 중 하나가 영리병원 전면화이니까. 번번이 쓴 고배를 마시긴 했어도 포기하진 않을 테지."
어차피 당장 스코프 산업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은 무조건 돈을 잡아먹기만 할 테니까.
하지만 양산에 성공한 이후에는?
"이사장 자네…… 전 세계 제일가는 부자 자리가 이미 예약돼 있구먼."
"의미가 있을까요?"
"예전 같았으면 호들갑을 떨며 축하해줬겠지만, 지금은 글쎄……."
왕세경은 흐릿하게 웃었다.
그는 병원 성주신으로서의 곳간 수호 역할에 충실했을 뿐, 물질에 대한 개인적인 탐욕은 없다.
***
청담 스코프 양산 사업이 본격적인 스타트에 들어갔다.
먼저 재단은 관련기술을 보유한 수많은 기업들과 라이선스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라이선스 협상 과정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답답해진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뻔질나게 재단을 드나들며 연유를 물었다.
"이놈들이 라이선스에서 단단히 한 몫을 챙기려고 뻗데고 있어요."
"부이사장님, 그래도 온 국민들이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속도에 조금만 신경을 써주시면……."
"이 양산사업 의의 자체가 모든 국민들이 스마트폰처럼 편하게 살 수 있는 가격으로 떨어뜨리려는 거 몰라요? 그런데 시작부터 라이선스 비용으로 호구 잡히면, 나중에 그 가격 상승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럽니까?"
"그, 그럼 공장 건설은 언제부터……."
"아니, 라이선스도 아직 확보 못했는데 무슨 공장 지을 생각부터 합니까? 아직 땅도 안 알아봤으니 그리 알고 가세요."
"그럼 적어도 부지만이라도 동시에 알아보심이…… 정부에서도 발 벗고 나서서 돕겠습니다."
"허참, 알았어요. 그럼 땅만이라도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당장 사겠다는 것은 아니오."
청담 스코프 생산공장은 자동차공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로 거듭날 것이다.
그저 그런 큰 공장 규모가 아니라, 하나의 초거대산업단지가 형성되는 셈이다.
덕분에 지자체에서는 공단을 유치하기 위해서 발을 벗고 나섰다.
또한 공단이 들어설 만한 후보지에는 벌써부터 땅투기 자금이 몰린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왕세경은 이 모든 것을 느긋하게 진행했다.
"급히 먹는 밥에 체하는 법이야. 서두른답시고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써대면, 그게 다 단가인하 실패로 되돌아온다고."
그리고 기재부는 400억 불을 지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청구서를 받았다.
"20억 불이라고?"
"네, 1차적으로 협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라이선스 부품 생산 유치에 필요한 비용이 늘어났다며……."
"아니, 외국 회사들이 제발 가져가라고 쏟아붓고 간 돈들은 다 어쩌고?"
"그건 채권자들한테 갚아야 할 빚이라서 최우선적으로는 못 쓴다고 합니다만."
"……."
"정부 입장에서도 추가금 납입하고 지분율 우선 확보하는 게 급한 거 아니냐고, 여론도 그렇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일단 돈 나올 구멍을 찾아보자."
여기저기서 끌어모아 400억 불을 만들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기재부는 또 20억 불의 쌈짓돈을 찾아 국고를 샅샅이 뒤져야 했다.
청담 스코프 단가 인하를 위한 '아주 긴' 여정은, 이렇게 서막에 올랐다.
***
강력한 비구름을 동반한 태풍이 또다시 동아시아에 들이닥쳤다.
본래 일본 동부 지역을 집중 타격하고 우회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일본은 물론이고 한반도 전역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덕분에 한국은 일주일 내내 호우주의보가 끊이지 않는 지역이 없었다.
엄청난 비구름과 강풍이 들이닥쳤음에도, 한국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일본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놀라운 결과였다.
"이번에도 프리덤이 살렸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하루빨리 프리덤을 정식 재난보조시스템으로 도입해야만 합니다."
재난관리본부는 그렇게 극찬했지만, 실비아컴퍼니가 부른 가격은 여전히 비쌌다.
인명피해가 없었다지만, 농가의 재산피해는 작년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수영농장에서 사들인 비축미 피해가 10% 이내로 그친 점이었다.
사람들의 인식 역시 진지해지고 있었다.
"이상기후 문제가 정말 심각하긴한 모양이야. 대체 역대급 천재지변이 몇 번이나 갱신되고 있는 거냐?"
"프리덤 없었으면 진짜 몇천 명은 이미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수영병원 닥터헬기 덕분에 살아난 사람도 수백 명은 될걸? 강풍에도 끄떡없이 고립된 사람들 구조하러 다녔으니까."
"근데 진짜 중국이 날씨 조절 실험한 것 때문에 동아시아 기후가 이렇게 널뛰기를 뛰고 있는 걸까?"
"중국이 미세먼지 제거 목적으로 대기권에 뭘 살포한 것 때문에 날씨가 이 모양이 된 거라는 말이 있던데…… 그게 정말일까?"
"근데 미세먼지는 여전하지 않아?"
이번 태풍이 남긴 피해는 작년보다 컸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도 한 해 농사를 크게 망친 것이다.
일본에서는 다시 쌀을 사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아닌, 수영농장을 직접 찾아왔다.
"우리 농장도 여유는 없습니다. 먼 길 오셨는데 안타깝게 됐네요."
"수영농장이 엄청난 양의 쌀을 비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부디 쌀을 팔아주십시오."
수영농장은 침수에서 안전한 크고 넓은 대단지 창고를 짓고, 거기에 엄청난 양의 쌀을 보관하는 중이었다.
가축 사료용 볏짚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쌓아놓은 것이다.
"그건 파는 게 아니에요. 배합사료원료와 우리 목장에서 키우는 소돼지들 먹이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겁니다."
"값은 충분히 쳐드리겠습니다."
"지금 가축 먹이려고 쌓아놓은 쌀을 사가지고 가서 국민들 식탁에 올리려는 거예요?"
"그건 아무런 상관이……."
"국민들이 알면 참 좋아하겠네요. 정 원하시면 팔 수는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먼 길 오셨는데 두고두고 욕먹을까 봐 진심 걱정돼서 그래요."
일본 관료들은 움찔했다.
도정을 하지 않은 지금은 다 똑같은 쌀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 기분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소돼지 먹이려고 준비한 쌀을 사람들 먹이려고 사왔다!
라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정부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결국 일본에서 온 관료들은 한국에서의 쌀 구매를 포기했다.
물론 중국과 남미, 미국에도 쌀을 사러 보낸 이들이 있으니, 진짜 쌀부족 사태가 그들을 덮치지는 않을 것이다.
농식품부에서 하수영한테 다시금 요청했다.
"올 한 해 농사도 망친 바람에 확보해야 할 비축미가 늘어났습니다. 쌀 재배를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수확하는 볏짚에서 나온 쌀들을 따로 추려놓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축 먹이로 쓰려고 이미 쌓아놓은 쌀이 아니라, 이제 곧 수확할 햅쌀이다.
사람 먹으려고 수확한 쌀에서 남은 볏짚을 가축 먹이로 돌린 것.
쌀 자체는 달라진 게 없는데,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 진다.
"그나저나 2년 연속 농사 망해서 농식품부도 걱정이 참 많겠습니다."
하수영의 말에 몇 번 인연을 맺은 농식품부 양흥명 식량정책과장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날씨가 왜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농민들 보상은 준비하고 있나요?"
"일단 예산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만, 정부가 지금 여유 재정이 궁핍한 상황이다 보니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음……. 이거 단기성 보상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될 거 같은데."
곰곰이 생각하던 하수영은 고개를 들었다.
"이참에 우리나라도 100% 하우스재배 체제로 전환하는 게 어때요?"
"100% 하우스재배요?"
"모든 농가가 안전하고 단단한 하우스 재배를 할 수 있게끔 시설을 갖춰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렇지 않다는 보장이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