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73화
142장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 (5)
청담 스코프 체험자들의 경험이 매일같이 SNS에 올라왔다.
세경그룹에서 손을 쓴 언론사도 그런 경험담을 자세히 다루며, 청담스코프의 가치를 재주목했다.
"그냥 실명자가 정상인처럼 볼 수 있게 해주는 게 전부가 아니었네."
"잔인하긴 정말 잔인해. 그런 말도 안 되는 해상도 풍경을 보여줘 놓고는, 다시 예전처럼 잘 살아가라고?"
"내 친구 하나가 체험자였는데 지금 매일매일이 우울하대. 홍채에 먼지가 잔뜩 쌓인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던데."
"그거 한 번 겪고 나면 일상 적응하기가 힘들다더라."
그런 이슈를 널리 퍼뜨리는 게 왕세경의 목적이었지만, 그걸 눈치챈 이들은 별로 없었다.
청담 스코프가 안겨준 시각적 충격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체험자들이 매일 증가함에 따라, 청담 스코프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더욱 뜨거워졌다.
자세한 개인 경험글이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면서, 체험 응모 신청은 오히려 폭증했다.
-제발 체험하지 마! 그냥 지금 가진 눈이 최고인 줄 알고 살라고!
-이게 어느 세월에 보급될 줄 알고? 최소로 잡아도 10년이라잖아, 10년!
-3기 체험자 35호다. 내가 만약 지금 전 재산이 1,520억 정도 있었다면 두말않고 이거 산다. 1년이라도 더 많은 날을 이런 해상도로 세상을 보며 살고 싶다…….
-왜 다들 체험하지 말라고 하는 거지? 우리만 당할 순 없잖아?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런 박탈감을 느껴봐야 해!
-맞아. 그래야 하루라도 더 빨리 청담 스코프가 양산될 수 있는 거지.
-헛, 그러네?
체험자들의 추천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절대로 체험에 응모하지 말라거나, 아니면 꼭 응모를 하라거나.
어느 쪽이든 간에 청담 스코프가 주는 시각 풍경이 엄청나다는 것은 공통으로 깔고 들어갔다.
간혹 체험자임에도 청담 스코프를 까는 리뷰가 보이기도 했다.
-청담 스코프 체험자다. 나만 별로였나? 해상도가 높긴 한데 어지럽기만 하고, 뭔가 VR 고글 쓴 것처럼 위화감도 크고 해서 실망이었다.
ㄴ병신 바이럴 벌레 한 마리가 또 설쳐대네.
ㄴㅋㅋㅋ 체험자면 인증 코드 한번 까봐라.
-인증코드 여겠다. F8H263……
ㄴ지랄을 하시네. 3시간 전에 폐기 된 인증코드라고 하는데? 어디서 구라질이야? 앙?
ㄴ이 애절한 새끼야. 너 같은 주작러 걸러내려고 병원재단에서 체험자 들한테 실시간 인증코드 발급해 주는 거 모르냐?
ㄴ진짜 체험자가 3시간 전에 공개한 인증코드 복붙해서 본인 행세하는 거 봐라. 보나 마나 현실 인생도 주작투성일 듯.
ㄴ병원 실시간 인증코드 못 대면 뭐다?
ㄴ주작이다.
체험자들은 OTP 처럼 매번 갱신되는 1회성 인증코드를 개인 메신저로 받아볼 수 있었다.
그 인증코드를 첨가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이 진짜임을 증명했다.
또한 누구든지 인증코드를 조회해서 유효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에, 체험글이 진짜인지 주작인지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너, 이 새끼. 강남 라식라섹 신규개업자지? 자기 밥그릇 없어질까 봐지금 여론질하는 거지?
-내 생각에는 서해병원에서 푼 바이럴 알바들이 틀림없다.
-어디 서해병원뿐만이겠냐. 지금 안과산업 자체가 망하게 생겼는데.
-근데 청담 스코프가 묻히길 바라는 게 한둘이 아닐걸?
-기획재정부 애들도 그렇게 청담스코프가 묻히기를 바란다던데…….
-재벌 기업들도 그렇다더라. 지금 정부에서 투자자금 조달한다고 재벌기업들부터 뜯어내려고 한다잖아.
-온 사방이 적이로다.
-그러게. 그냥 좀 더 맑고 풍부한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인데, 세상이 호락호락하지가 않구나.
***
기획재정부, 재벌, 그리고 재벌의 돈을 받은 대형 언론사들.
그들은 힘을 합쳐서 청담 스코프를 묻히기 위한 여론 바이럴 작업에 매달렸다.
하지만 병원에서 실시간 발급하는 OTP 인증코드 때문에 주작들은 족족 묻히고 있었다.
주작글이 올라오기만 하면 귀신처럼 0.1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래서 인증코드는?'이라는 댓글들이 주르륵 달렸다.
"재단에서도 바이럴 팀을 동원한 게 틀림없습니다. 실시간 인증코드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댓글 작업 속도는 말이 안 돼요."
"속도전에서 너무 밀립니다. 저놈들은 정말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우리나라 모든 사이트를 모니터링이라도 하는지……."
"이건 몇백 명 정도로는 도저히 안되는 작업인데요? 속도, 물량 모든 면에서 우리 바이럴 팀은 상대가 안됩니다."
청담 스코프 투자 반대 진영은 수영재단에서 적어도 수천 명 이상을 총동원했으리라고 보고 있었다.
그들은 프리덤 혼자서 모든 안티바이럴 작업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
발머 스틴,
전(前) 나노소프트 CEO.
현(現) 나노소프트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부장.
그는 왕세경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900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향후 10년간 그 열 배 이상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안살린은 그에 맞먹는 돈을 1차 투자금으로 약속했다.
다만 안살린이 국가급 개인이라서 그런 것이지, 나노소프트가 절대 돈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현금 보유량으로는 언제나 전 세계 순위권에 꼽히는 초대형 기업이다.
왕세경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라면 장사가 잘되나 봅니다……."
"연간 매출이 800억 달러 이상입니다. 물론 라면 하나만 따져서 그렇습니다."
"그렇다 해도 900억 달러나 되는 현금을 동원하기에는 조금……."
"아, 물론 부족하지요. 그래서 본사가 쥐고 있던 현금까지 다 털어올 생각입니다."
"본사의 모든 현금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유동성을 위한 아주 최소한의 현금만 남기고 청담 스코프에 모두 쏟아붓기로 했습니다."
"음…….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우리 나노소프트는 수영 프랜차이 즈와 매우 각별한 관계입니다. 부디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나노소프트뿐만이 아니었다.
윈텔, 헤슬라, 래플, 록히드마틴 등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들이 돈을 싸짊어지고 청담수영병원 부이사장실을 찾았다.
거물들의 그런 방문 사실에 여론은 더욱 크게 호들갑을 떨어댔다.
다만 왕세경은 그런 묻지 마 투자 요청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이러면 판이 깨지는 건데……."
정부가 가급적 큰돈을 물리게 만들어야 한다.
보건복지부 등에서 청담 스코프 사업을 멋대로 추진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하지만 투자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부가 '그럼 우린 조금만 내도 되는 거 아냐?'라고 명분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6조 달러를 다 받아내진 못하더라도……. 장기간 6조 달러까지 지원하겠다는 법적 약속이라도 받아둬야 하는데……."
안 그래도 기재부 내의 분위기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투자 이야기가 쏟아지자, '어라? 우리도 해볼 만하겠는데?'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잘만 하면 우리는 한 1, 2조 달러 정도로 끝낼 수 있겠는데요?
-그럼 지분율이 줄어드는 거 아니야?
-애당초 6조 달러는 어림도 없는 돈이죠. 하지만 1조 달러 정도를 몇 십 년간 투자하는 거라면 어찌어찌 해볼 만합니다.
-지분율에 집착할 때가 아닙니다.
왕세경은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재부 고인물 공무원들이 헛된 희망을 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들었다.
"아, 의원님. 저 왕세경입니다. 허허, 그간 잘 지내셨는지……?"
상대는 여당의 현역 중진이자, 왕왕세경이 오래 후원한 인물이기도 했다.
[국회, 여론의 열화와 같은 요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기로 결정.]
[청담 스코프 국가투자지원법, 마침내 본회의 상정!]
[투자지원법, 압도적인 과반으로 본회의 통과!]
[국가, 이제 청담 스코프에 무조건 투자해야만 한다!]
[1차 투자금은 400억 불로 확정!]
마침내 국가투자지원법이 통과되었다.
이제 정부의 투자는 빼도 막도 못하게 진행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도 기재부는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1차로 40조 원이라…… 이 정도는 어찌어찌 만들어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원화가 아니라 달러화 투자로 강제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사업의 성격상 어쩔 수 없으니……."
양산화 사업을 위해서는 라이선스, 시설 등 99% 이상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하기에, 기축화폐인 달러화로 진행을 해야 했다.
환율 변동으로 인한 사업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6조 달러라는 확정 금액을 법안에서 빼버린 게 다행입니다."
1차로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을 뿐, 의무총금액은 삽입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이 기재부가 한숨을 돌리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래도 우리의 투쟁이 헛되지는 않았다. 모두 정말 수고했어."
"고생하셨습니다, 부총리님."
"이게 모두 부총리님이 불철주야 뛰어다니신 덕분입니다. 그동안 청와대며, 국회며, 재계며 뛰어다니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부총리님 덕분에 우리나라 국가재정 건정성을 지킬 수 있게 된 겁니다."
"정말 국민들이 부총리님의 이런 공적을 알아야 하는데……."
"기본 경제론 지식도 없는 대중이 뭘 알겠어요? 그냥 법안만 만들면 돈이 떡하니 튀어나오는 줄만 알지요."
남항순 부총리는 쏟아지는 칭찬과 응원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부총리님의 이런 공적 인정받으면, 정말 대통령까지 가시는거 아닙니까?"
"맞아요, 맞아. 정말 대통령까지 하셔야지요. 얼마나 필사적인 노력으로 국고를 사수하셨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부총리님이 출마하신다면 언제든지 선거캠프로 달려가서 백의종군하겠습니다."
"백의종군은 무슨, 자네가 뭔 죄라도 지었어? 허허……."
남항순 부총리는 소탈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마무리했다.
"자자, 어찌 되었든 간에 400억 달러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지금 우리 외환 보유고가 한 4,400억 달러 정도 되나?"
"네, 그 정도 됩니다."
"일단 국고채 발행 시작하고, 청담병원 외화관리는 산업은행이 위탁맡도록 하고, 자자, 이제부터 또 할게 엄청 많다고."
단일기업에 대한 1차 40조 원 국가투자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처음에 6조 달러라는 숫자에 한 번 뒤집어졌다 보니, 40조 원이라는 금액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원래라면…….
'40조 원? 그런 돈이 어딨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라고 발악을 했겠지만, 6조 달러에 한 번 털리고 난 지금은…….
'40조 원? 이 정도면 별거 아니지.'
라는 착각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
청담 스코프 양산 사업은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안살린은 1조 달러를 투자하고, 7.1428%의 지분(우선주)을 얻었다.
한국 정부는 400억 달러를 투자하고, 0.2857%의 지분을 얻었다.
그 외의 자본 투자는 일절 받지 않았다.
다만 회사채 같은 투자는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고, 투자희망기업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정부의 1차 투자금 집행 이후, 왕세경은 하수영과 축하의 건배를 나눴다.
"드디어 물렸네."
"이제 빠져나갈 수 없게 됐군요."
"요즘 존버라고 많이들 하지? 이제 그 신세가 된 거야."
왕세경은 어느 때보다도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우리 정부, 예산 듬뿍 아껴써야 될 거야. 매달 밀어 넣어야 할 돈구멍이 생겼으니."
현재로써 가시적인 성과를 보려면 최소 10년.
정부는 도중에 빠져나갈 수 없는 게임판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