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71화
142장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 (3)
기재부는 하급 기관인 국세청을 동원해서 하수영의료재단 회계조사를 실시했다.
물론 당사자나 외부는 알지 못하게 조용히 진행한 것이다.
하지만 공개, 제출한 회계자료는 모두 완벽했다.
으레 숫자가 한두 개 정도는 틀릴 법도 하지만, 1의 단위까지 모두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더 확실하게 캐내려면 국세청이 정식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
남항순 경제부총리는 눈을 감았다.
세무조사팀을 재단과 병원에 보내서 자료 압수를 실시한다?
하지만 부하들의 주장대로 하면, 기재부가 칼을 빼 들었다는 걸 온 세상이 알게 된다.
지금처럼 '재정 문제로 진행불가'라는 보편적인 반대 입장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죄다 돈 쓸 궁리밖에 없어! 그게 전부 다 빚인데!'
6조 달러?
그런 빚을 진다는 것도 터무니없다. 대체 어디서 빌려오게??
국민들을 상대로 국채를 발행할까?
기업들한테서 강제로 삥을 뜯을까?
타국을 대상으로 차관을 들여올까?
그렇다고 세금을 올려?
'싹 다 동원해도 절대 6조 달러는 못 만들어!'
무리한 자금 조달이 아니다.
절대 만들 수 없는 돈이다.
그런데 여론은 지금 이 나라에 그만한 잠재력이 충분히 있는 줄 안다.
-당장 만들라는 것도 아니고, 10년 20년 천천히 조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나?
기재부 공무원들은 '경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생각임을 알 것'이라며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부총리님, 이제 출발하셔야 합니다."
"음, 다들 전투 준비 제대로 하도록, 각오 단단히 품어라."
"예!"
남항순과 차관 및 국장들은 비장한 각오를 품고 기재부를 나섰다.
오늘 국무총리와 미팅이 있었다.
안건은 바로 청담 스코프 투자지원건.
***
정우도 국무총리는 회의 내내 서글서글한 미소를 품고 있었다.
"지금 당장 6조 달러 만들어낼 곳이 없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미국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액수라는 거, 내가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잘 알고 있어요."
남항순 부총리는 속으로 열불이 터졌다.
그걸 알면서 지금 이러고 계십니까!
"내가 궁금한 건 청담 스코프를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서 정말 그 정도의 투자금이 필요한가입니다."
남항순은 잠시 생각한 뒤 무겁게 끄덕였다.
"예, 그 정도는 필요합니다."
"오…… 그럼 수영병원이 부풀려서 말한 것은 아니군요."
"청담 스코프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부속 반도체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일반인들은 구경도 못 하는 제품들입니다."
"그런가요?"
"예, 전투기, 군함, 인공위성, 로켓 등에 들어가는 첨단부품들이 대부분입니다. 혹은 입자물리학, 핵물리학대형 연구소에서 쓰는 초고가 장비에 들어가는 것들이지요."
"음, 그런 것들을 모아서 만들었으니 1,520억이라는 가격이 납득이 됩니다."
"그냥 안경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고 생각하시면 납득이 될 겁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6조 달러가 필요하다?"
"그 모든 부품들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 돈은 필요합니다."
"그 정도 돈은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데, 당장 그 돈은 없다, 결국 이거 아닙니까?"
남항순은 게거품을 물 뻔했다.
당장 없다는 게 아니라, 10년, 20년을 열심히 적금해도 안 된다니까!
'왜 청와대고 국무총리고 산자부고 과기부고 간에, 참고 모으면 되는 줄 아는 건데? 이게 무슨 원기옥인 줄 아나!'
원기옥도 기가 아주 충만한 별에서나 크게 모이지, 작고 초라한 별에서는 축구공 사이즈도 안 빚어진다.
"총리님, 청담 스코프 부품 양산사업은 우리나라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닙니다."
"계속해 보세요."
"중요한 건 예산입니다. 평범한 중 산층 가정이 월급을 모아서 강남 고층 빌딩을 매입하겠다는 정도의 난 이도입니다."
"그렇다고 안 할 수 있습니까?"
"아니, 총리님. 그게……."
"나라의 백년을 지탱해 줄 먹거리 산업입니다. 눈 뜨고 앉아서 다른 나라에 내줄 수 없지요. 돈이야 어떻게 만들어 봅시다."
남항순 부총리는 펄쩍 뛸 뻔했다.
아니, 그 '어떻게든'이 안 된다니까!
방금 한 예시는 대체 뭐로 들었어?
중산층 가정이 무슨 재주로 강남고층 빌딩을 매입한다고?
"일단 1차로 200조 원, 그러니까 2,000억 달러 정도만 조달을 해보세요. 그 정도는 가능할 거 아닙니까?"
천연덕스러운 말에 남항순은 기가 꺾이고 말았다.
200조 원을 누구 애 이름처럼 말하는 것도 우습다.
그런데 6조 달러에 비하니 '이 정도는 가능할지도?'이라는 생각이 얼핏 든 게 더 웃기다.
'큰일이다. 이러다가 비교 단위의 함정에 빠지겠어!'
너무 큰 단위를 자주 접하다 보니, 평소라면 어림도 없을 숫자가 오히려 작아 보이는 착각 효과.
지금 기재부 장관인 자신이 순간 그 함정에 빠질 뻔했다.
"정 무리라면 100조 원 정도만 일단 1차로 만들어 봅시다.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죠?"
***
왕세경은 누구보다 냉정하게 현 상황을 견적 내고 있었다.
6조 달러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현실적인 결론이다.
정부가 그럴 역량이 없다는 것 또한 현실적인 결론이다.
그는 청담 스코프가 10년 안에 양산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큰 투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해서 정부가 해외에 지분을 매각하는 게 오히려 현실성이 있을 것이다.
글로벌 다국적 기업과 자본가들이다 같이 달려들면, 6조 달러는 그때부터 현실성을 띤다.
정부를 끌어들인 것은 일종의 응징이다.
'어딜 마음대로 들어왔다가 마음대로 나가려고 그래?'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다.
청담 스코프 양산화를 놓고 되도 않는 개소리를 하며 툭툭 건드렸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차후에 또 쿡쿡 찔러 보는 놈들이 안 나타난다.
'우리 이사장이 역시 혜안이 있다니까. 어쩜 이런 생각을.'
구체적인 실행에 옮긴 것은 자신이지만, 이것을 기획한 것은 바로 하수영.
모두가 청담 스코프에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청담수영병원, 돈을 물 쓰듯이 쓰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닥터헬기 도입에 7조 원 지출이 웬 말인가?]
[청담 스코프 양산 6조 달러? 글쎄, 과연 정확한 액수일까?]
[기재부의 신중함 적극 칭찬해.]
왕세경 부이사장은 기사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고창식 전무를 돌아봤다.
"창식아, 중원일보 얘들 왜 이러냐? 얘들한테 돈 안 먹였어?"
"그럴 리가요. 얼마나 꾸준히 광고를 주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놈들이 갑자기 왜 이래?"
"이놈들이 우리한테만 돈 받는 건 아니라서 그런 거 같습니다."
"청와대는 청담 스코프 양산사업에 호의적인 거 같았는데……."
왕세경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뭐, 꼭 양산사업에 성공하는 게 목적은 아니니까 상관없다만."
충분한 돈을 투입할 수 있으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왕세경은 이 사업을 반드시 성공해야겠다는 동기는 없었다.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으니.
청담 스코프 양산 가지고 떠들어댄 정치인 놈들을 한 방 먹이면 그뿐.
겸사겸사 사업이 잘되어도 재단 입장에서는 이익이니 문제 될 게 없고,날려 먹어도 어차피 남의 돈이다.
물론 제대로만 한다면 절대 망할 리가 없는 사업이지만,
"청와대가 아니면, 혹시 기재부에서 난리를 피운 건가?"
"지금 기재부에서 국고 열쇠를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다고 합니다. 예산확보계획을 만들어서 제출하라고 해도 뭉개는 분위기입니다."
"그놈들 나랏돈이 자기들 돈인 줄 아는 건 여전하구만."
"좀 더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고창식 전무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난 뒤, 다시 찾아왔다.
"청와대에서 일단 투자금으로 집행할 100조 원이라도 만들어보라는 지시에 기재부에서도 발등이 떨어진 거 같습니다."
"기재부야 그렇다 치고, 중원일보가 그놈들 편 들어준 이유는?"
"그건 전경련에서 움직인 것 같습니다."
"전경련에서 왜?"
전국경제인연합.
쉽게 말하자면 경영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대기업들의 친목회.
"기업 관련해서 증세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움직인 모양입니다."
"국내에서 당장 큰돈 나올 곳이 기업밖에 없긴 하지만……."
"정부의 움직임을 미리 차단하는 측면에서 기재부 편을 들기로 한 것 같습니다."
기업들 입장에서 청담 스코프 양산사업이 잘되어 봤자 딱히 좋을 게 없다.
자기들이 지분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자금 확보 때문에 기업 증세 우려가 있다면, 미리 차단하는 게 그들 입장에서는 현명한 것이다.
"대놓고 나서지 못하니 뒤에서 부추기는군. 뭐, 상관은 없어."
왕세경은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청담 스코프 사업을 보고 있었다.
"이거 제대로 하려면 어차피 미국돈 받아야 돼."
아니면 30년, 40년 이상 잡고 가던가.
이 나라에서 10년 안에 성공한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대략적인 구도는 이랬다.
기재부, 재벌 VS 여론
정부와 국회는 양산사업 추진은 하고 싶은데, 또 욕은 먹고 싶지 않다는 회색 지대에 속했다.
재벌 기업들은 겉으로는 나서지 않고, 뒤에서 기재부와 언론사를 부추겨서 진흙탕 싸움에 임했다.
기본적으로 현 정부는 극히 친재벌이었다.
하지만 이런 희대의 경제 아이템을 놓치고 싶지 않은 터라, 재벌들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국가투자를 추진했다.
정부와 재계 간에 조용한 기 싸움이 오갔다.
"기업 증세 함부로 안 할게요.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들 맙시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증세안 하고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조달하려고?"
"일단 시작만 해보자고요. 원래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모릅니까?"
"이거 한 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는 거 모르십니까?"
정부는 1차로 일단 1,000억 달러부터 붓는다고 했다.
한 번 물리면 울며 겨자 먹기로 끝까지 갈 수밖에 없음을 아는 재계는 끝까지 버티려고 했다.
"그럼 지분이라도 우리한테 내주던가요!"
"아, 그건 좀…… 지금은 곤란하니까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뭐요!"
논쟁의 초점은 이제 1,000억 달러 (100조 원) 1차 집행을 하느냐 마느냐로 몰렸다.
정부는 '일단 시작하면 돈은 어떻게든 마련이 될 것이다. 물론 다음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태도로 일관했고, 기재부와 재계는 '이런 거 한 번 잘못 물리면 못 빠져나간다' 라는 태도로 반대했다.
국민들은 청담 스코프 산업에서 파생될 수많은 부가가치가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꿈에 젖어 있었다.
정작 하수영재단은 진행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이지만, 누구도 그 사실은 몰랐다.
***
국회는 서둘러 특별투자를 입법하라는 여론의 요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국회의원들도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일단 법안 통과해 놓으면 어떻게든 산업은 굴러가게 되어 있어. 그러니 법부터 만들자."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돈이 뭐 하늘에서 뚝 떨어진답니까? 기재부 주장이 백번 옳습니다."
"아, 그래서 이 좋은 걸 안 할 거야?"
"좋은 걸 누가 몰라서 그럽니까?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법부터 만들어놓으면 된다니까. 이미 1조 달러 먹고 시작하고 있잖아? 그럼 우리 정부는 5조 달러만 어디서 긁어오면 되는 거 아닌가?"
"5조 달러 긁어오려면 초대형 유전이 몇 개만 터지면 되겠네요. 아이고, 간단하네."
왕세경은 안살린의 1조 달러 투자와 상관없이, 정부에는 무조건 6조달러를 요구할 생각이었다.
현재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을 뿐.
그런 상황에서, 저울추가 급격히 기우는 이벤트가 발생했다.
[나노소프트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부, 청담 스코프 양산사업 참가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