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69화 (569/1,270)

프랜차이즈 갓 569화

142장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 (2)

형원호 보좌관을 보낸 직후.

'로봇 하수영'을 맞이한 왕세경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6조 달러라고 하니까 입이 떡 벌어져서 꼬리를 내리고 도망갔지 뭔가. 하하, 이사장도 그 꼴을 봤어야 하는 건데."

-정말 6조 달러가 필요한 게 맞습니까?

"프리덤한테 견적 내보니까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하더군."

-프리덤이 견적 냈다면 대충 맞겠군요.

"그리고 그렇게 해도 생산원가가 수천만 원대일 걸세."

-1,520억짜리를 수천만 원대로 낮춘 것만 해도 대단한 효율이지요. 5,000만 원으로 잡아도 대충 3,000배쯤 가격을 낮춘 셈이니까.

"아무튼 정치하는 인간들은 꼭 입만 털면 다 되는 줄 알아요. 경제고기업이고 간에 이해도가 전혀 없다니까. 세월이 지나도 바뀌는 게 없어, 바뀌는 게. 쯧쯧……."

왕세경은 지금쯤 놀라 자빠졌을 박달수 의원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펀치 한 번 세게 얻어맞았으니까 이제 다시는 쓸데없는 말로 귀찮게 굴지 않을 걸세."

-펀치? 언제 펀치 날리셨어요?

"아, 내가 오늘 근사하게 한 방 날렸잖은가. 6조 달러 가져오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말이야.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됐을 테니……."

-아니, 부이사장님. 그런 건 펀치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응?"

-전 또 조용히 무마해서 기분이 좋으신 줄 알았는데 한 방 먹였다고 흐뭇해하신 거였네. 안 되겠어요. 이건 우리 병원의 자존심이 걸렸습니다.

"갑자기 웬 자존심?"

-청담 스코프 탐이 나서 저쪽에서 마음대로 들어왔죠? 나가는 것은 그렇게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줘야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청담 스코프 양산화 사업, 이거 진행하죠.

"6조 달러가 필요한데? 우리 재단에 그만한 돈이 있나?"

하수영의 전 재산을 탈탈 털어도 그만한 돈은 안 될 텐데?

아무리 하수영이 알아주는 신흥농민재벌이라지만, 6조 달러는 국가 입장에서도 버거운 큰돈이다.

당장 세계에서 제일가는 IT회사, 래플사의 시가 총액도 이제 막 2조달러를 넘었는데…….

-왜 우리 돈으로 합니까? 정부 돈으로 해야죠.

"아니, 정부는 그럴 돈이 없……."

-돈도 없으면서 지금 청담 스코프양산을 하자니 말자니 하면서 찔러 본 거예요? 그리고 안 되겠다 싶어서 손 털고 물러나겠다고요? 국가라고 해서 그래도 됩니까??

"……."

-원래 생각 없었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이 사업 진행해야겠어요. 물론 정부 돈으로.

왕세경은 작게 전율했다.

하수영이 말한 펀치라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방 먹였다고 좋아했던 것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부 입장에서 손해는 아니죠. 아니, 오히려 큰 이익이죠. '언젠가' 양산에 성공하기만 하면 돈 쓸어 담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 위신도 크게 올라갈 테니까요.

언젠가, 라는 부분에 강한 억양이 실렸다.

하지만 왕세경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렇잖아요. 당장 6조 달러를 마련하라는 것도 아니고, 장투 하나 들어간다 생각하고 조금씩 적립하면 그만이죠.

"그래, 이사장 자네 말이 맞아. 정부는 이 사업을 꼭 해야만 해."

-실명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 많은 환자들도 구하고, 돈도 벌고, 국가 위신도 올라가고. 겨우 6조 달러만 쓰면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네 말이 옳아."

-그럼 부이사장님, 앞으로…….

왕세경은 보란 듯이 가슴을 팡팡쳤다.

"걱정하지 말게. 이 왕세경이가 책임지고 정부가 이 사업에 돈 쓰게 만들겠네."

-아시죠? 우리도 챙길 것은 챙겨야 합니다.

"걱정하지 말게. 안 그래도 이미 내가 말해놓은 조건들이 좋아서 그것만 고집해도 우리도 이익이니까."

-좋습니다. '언젠가'양산에 성공해서 돈 많이 벌면 그걸로 병원선하고 병원제트기도 몇 대 마련하지요.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군."

언젠가 성공하면.

잘 들어보면 '우리 언제 밥 한 번 꼭 먹자!'라는 느낌과 상당히 흡사하지만, 꿈에 부풀어 있는 왕세경은 그런 뉘앙스를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라고 해서 청담 스코프 양산화를 싫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이 기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드높았고, 그는 꿈을 꾸기도 전에 그 벽을 인지했을 뿐이다.

6조 달러라는 기초자금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아예 꿈을 꿀 생각을 접었고, 정부에도 호되게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정부가 우리로 하여금 꿈을 꾸게 만들었으니, 그 꿈을 이어갈 유지비를 지불하는 게 당연하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믿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맡겨주시게."

전화를 끊자마자 왕세경은 오랫동안 자신을 보필한 고창식 전무를 찾았다.

은퇴한 그는 더 이상 그룹 소속도 아니고, 재단 소속도 아니었다.

하지만 왕세경이 부르자마자 그는 만사를 제쳐두고 바로 달려왔다.

"창식아. 해야 할 일이 하나 생겼다."

"말씀만 하십시오, 회장님."

"그러니까 말이야……."

자세한 설명과 취지까지 듣고 난 고창식은 걱정 말라는 듯이 가슴을 팡팡 쳤다.

"알겠습니다. 일단 기사부터 바로 꽉 띄우겠습니다."

"그래, 여의도에서 말 나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빵 크게 치는 거다. 물리고 싶어도 물릴 수 없도록 말이야. 너 퇴직금 주식에 물렸지?"

"헉,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너처럼 만들어주란 말이야. 강제로 물려서 빼고 싶어도 못 빼게끔 말이야."

"저는 빼고 싶어도 못 빼는 게 아닙니다. 언젠가 떡상할 거란 확고한 계산하에 존버하는……."

"그래그래, 청담 스코프 코인도 반드시 떡상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부가 강제로 타게 만들란 말이야."

국회에서 추진 중인 청담 스코프특별투자법안.

국가가 청담 스코프 양산화에 6조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

이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하다시피 점령하게 된 배경이었다.

***

"이게 말이 돼?"

송현성 대한의사협회장은 기사를 보고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났다.

단숨에 냉수를 들이켰지만, 여전히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말이 되냐고! 나라에 돈이 어딨어서 6조 달러나 되는 돈을 쏟아붓는단 말이야!"

실명환자 환우회를 살살 구슬려서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시위하게 만든 것까지는 좋았다.

인당 1,520억이 필요한 지원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만든다.

큰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니만큼 지분율을 놓고 정부와 수영병원이 반목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계산하고 실행한 노림수였다.

"미쳤다, 미쳤어! 6조 달러나 투자 하기로 해놓고는 의결권 하나 없는 우선주로 받겠다고?"

배당 조금 더 받아서 뭐하겠는가.

이런 큰 사업은 결국 경영권 확보가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 의결권을 0으로 제한 한다고?

6조 달러나 되는 돈을 고스란히 쏟아붓고서?

"형님, 이거 어떡합니까? 정말 이 법안이 통과되기라도 한다면…… 청담 스코프는 10년 이내에 보급화에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좋은 인공 안구가 있어도, 사람은 본래 자기 눈을 파버리는 것을 꺼려 한다.

실명 환자가 아니고서는 자기 눈을 파내고 청담 스코프를 넣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과 시장의 위축은 피할 수 없다.

남들은 모르지만, 그 방아쇠를 자신이 당겨 버린 셈이 아닌가.

송현성 협회장은 이제 분노할 힘도 잃은 채, 얼이 빠져서 주저앉았다.

"말도 안 돼. 그럴 돈이 어딨다고……."

***

기획재정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나라의 금고를 관리하는 금고지기라고 할 수 있다.

가끔은 그 금고가 국민 게 아니라 자기들 것이라고 인지부조화를 자주 일으키기도 한다.

아무튼 기획재정부는 지금 그 어느 곳보다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다.

"6조 달러라니! 그런 돈이 어딨다고!"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 남항순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날뛰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법안이다! 지금 여당은 제정신이 맞긴 한 건가? 정말 이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부총리님, 제가 알아봤는데 여당내에서도 이 문제로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곤혹스러워한다고?"

그제야 남항순 부총리(장관)는 조금 진정이 돼서 부하를 돌아봤다.

"예, 아무래도 아직 당론으로 확실히 결정이 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럼 이 기사들은 대체 뭐야?"

"청담수영병원에서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이유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남항순 부총리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어떻게든 나랏돈 빼서 청담 스코프 사업을 하고 싶다, 이거로군."

"6조 달러를 달라고 하면서 겨우 의결권 없는 지분 50%만 내주겠다니요. 도둑놈 심보도 이런 도둑놈 심보가 없습니다."

기재부 직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이구동성이 되어 말했다.

"어떻게든 나랏돈을 타내고 싶어서 언론플레이를 하는 모양인데, 가만히 놔두면 안 됩니다.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회계 문제로 걸고넘어질 만한 게 있을까?"

"왜 없겠습니까? 찾아보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올 겁니다."

"청담수영병원이 굴리는 돈이 얼마 인데요. 우리나라 다른 병원들 다 합쳐도 상대가 안 될 정도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규모가 크면 아무리 돈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1,400억짜리 닥터헬기를 30기나 운용하는 게 애초에 말이 됩니까? 그 부분도 제대로 파보면 분명 뭔가 비리가 있을 겁니다."

기재부 직원들은 돈에 관해서는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1,400억짜리 닥터헬기?

응급구조 활동의 효율 극대화를 위해서 투입했다고?

물론 그런 의도도 있겠지만, 그 외에 무언가 다른 영리 목적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잘 감춰서 남들 눈에 드러나지 않을 뿐.

기재부 직원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동안은 건드릴 이유가 없었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요. 국세청과 협력해서 탈탈 털어 보겠습니다."

차관 및 국장들의 표정은 단호했다.

남항순 총리는 그렇게 부하들이 듬직할 수가 없었다.

"좋아, 신명나게 한 번 털어보자. 감히 나랏돈을 탐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예, 부총리님."

***

청담 스코프 6조 달러 국가투자특별법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 이때.

아부다비 왕실 초호화 전용기가 서울을 찾았다.

누군가의 노림수이기라도 한 듯, 언론들은 아부다비 왕실 일원들의 방한을 대서특필했다.

왕실 대변인이 밝힌 방한 목적은 온 나라에 또 한 번 충격을 주었다.

"왕실의 방문 목적은 바로 청담 스코프를 사기 위함입니다."

늙은 왕실 일원들은 분명 눈이 침침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닌데, 설마 청담 스코프를 눈대신 넣겠다고?

"삽입 시술을 받진 않을 겁니다. 대신 일반 안경처럼 필요할 때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문을 할 생각입니다."

아직 잘 기능하는 안구를 굳이 적출할 필요는 없다.

안경처럼 필요할 때 썼다 벗으면 그만.

그제야 대중은 청담 스코프의 수요 확장성을 깨달았다.

"이거 그럼 색맹 환자들도 굳이 안구 적출할 필요 없이 안경처럼 쓰고 다닐 수 있는 거 아니야?"

"시력 2.0이 우스울 정도로 모든 풍경이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는데, 그럼 안경 쓰는 사람들도 대신 이거 쓰면 좋은 거 아니야?"

"우리나라 안경 쓰는 사람들만 천만 명은 훌쩍 넘지 않나?"

"가격만 현실화되면…… 이거 쓰겠다는 사람들 엄청 많아지겠는데?"

안경 사용자들도 예비 수요에 포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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