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67화
141장 안과 킬러 (3)
청담 스코프는 1개의 본체(성인이 휴대 가능한 크기와 무게)와 2개의 안구카메라로 이뤄진다.
이 구성품의 가격이 1,520억 원.
시술비와 입원비까지 포함된 패키지이지만, 실제로 그건 병원 측에서 부담한다.
"병원이 남는 게 없다는 말은 사실 잘못됐지."
저 돈만 받으면 병원 입장에서는 엄연한 적자니까.
약제값, 인건비, 병실료 등등을 따졌을 때, 오히려 손해다.
"여기에 유지보수 비용까지 생각해야지."
서준식은 1,520억 원만 내고 시술을 받았고, 애던 스틴은 6인의 어린 팬 몫까지 따로 100억 원을 더 내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손해다.
청담 스코프가 흑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호세 빈 사우디 국왕 숙부가 따로 재단에 기부한 2,000억 원덕분이다.
여기에 호세 빈 부회장은 연간 1,000억 원의 VIP 병실까지 결제했다.
"원가 절감은 더 이상 무리다, 이거요. 이거 부품들을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니까?"
왕세경 부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차관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는 중이었다.
"이게 바로 부품들 리스트요. 이것들을 알아서 사오기만 하시오. 그럼 조립하고 세팅부터 시술까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
"우리 병원은 신념이 있소. 고용인들이 부자 되는 것은 장려하지만, 병원재단 자체는 의술 팔아서 돈 벌지 않겠다는 거요."
"아, 예. 그건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적자와 상관없이 무조건 환자를 치료하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두는 병원이라고……."
"이해가 됐다면 다행이오. 아무튼 여기 리스트에 있는 부품들, 나라에서 생산을 하든, 사오든, 우리에게 돈을 주든, 알아서 하시오."
수백 가지가 넘는 부품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개별 개량이 필요한 부품의 경우에는 따로 커스터마이징 설계도가 첨부돼 있었다.
차관 입장에서는 봐도 봐도 뭐가 뭔지 모르는 부품들이었다.
"그…… 시각장애인들의 고통을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고통을 헤아려?"
왕세경은 갑자기 팔짱을 끼고 피식 웃었다.
비서들도 자기들끼리 낮게 킥킥거렸다.
지금 누가 누구 앞에서 고통을 헤아리라고 말을 하는 건가?
"입원 전까지 나와 일면식도 없던 1호 수혜자, 내가 사비 털어서 눈알해준 거요."
"예?"
"앞 못 보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내 돈 1,520억 원탈탈 털어서 눈알 해줬다. 이 말이오."
"차관님은 그들에게 기부금 만 원이라도 낸 거 있소? 지금 맨땅에 앉아서 시위하는 그분들한테 음료수라도 배달 한 번 시켜봤소?"
차관은 바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병원이 이거 해줘서 남는 건 전혀 없소."
"하지만 사우디 왕실 인물이 2,000억 원의 치료비를 내지 않았습니까?"
"그건 별개요. 그분이 순수한 사의를 표하기 위해서 내놓으신 거지. 논점을 이탈하려고 하지 마시오."
"논점 이탈이 아니라……."
"지금 차관님은 우리가 청담 스코프 9개 팔아서 2,000억 원 수익 거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은근슬쩍 몰아가려고 하는 거 같은데, 멈추시오. 선을 넘으면 협의는 더 이상 없소."
"죄, 죄송합니다."
"애초에 협의랄 것도 없지. 우리 병원 입장은 언제나 한결같소."
왕세경은 딱딱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천천히 끊어 말했다.
"원가 1,520억 원. 이것만 부담하면, 그 뒤는 우리 병원이 알아서 다해줄 거요."
차관은 멘탈이 털린 표정으로 돌아갔고, 병원장 최윤석이 찾아왔다.
"오, 최 병원장. 어서 와요."
"부이사장님, 괜찮을까요?"
"괜찮지 않을 건 뭐가 있고?"
"보건복지부 이야기 들어보니까 조금 심상치 않은 듯해서 말입니다. 다른 죽을병과 달리 앞을 못 보는 것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다 보니……."
"우리 병원을 호구로 보는 경향은 있더만."
"호구요?"
"은근슬쩍 병원에도 원가 일부를 부담시키고 싶은 것 같소. 우리 병원이 그동안 환자 치료하면서 이런 저런 투자나 손해를 좀 감당했어야지?"
"닥터헬기 편대 구축하는 데 수조원의 돈을 썼으니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는 군침이 흐를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있는 한 어림없지."
왕세경은 가슴을 팡팡 치며 자신감을 보였다.
"병원이 자발적으로 환자들에게 곳간을 여는 것은 얼마든지 아깝지 않소. 하지만 자발적 봉사를 강요당하는 것은 단호히 거부하오. 상대가 누가 됐든 간에. 그게 재단의 뜻입니다."
***
대한의사협회는 세종시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진을 친 시각장애인 모임과 은밀히 접촉했다.
미리 수소문을 하여, 그중에서도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이와 접촉을 한 것이다.
접촉자는 서은석, 52세 남성.
그의 시력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장녀는 선천적인 실명자였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빛을 느껴본 적 없는.
첫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사랑이 수십 년 동안 숙성하면서, 그는 누구보다 맹렬한 시각장애운동가가 된 것이다.
"반갑습니다. 대한의사협회장 송현성입니다."
"서은석이라고 합니다. 그냥 작게 장사 하나를 하고 있습니다."
신변잡기 조사를 할 이유는 없다.
송현성 협회장은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국회에서 청담 스코프 관련 법안을 준비 중입니다."
"청담 스코프 관련법이라고요?"
서은석의 눈이 번쩍 뜨여지는 소리였다.
"아직 표면적인 움직임은 아닙니다. 그러나 뜻을 같이하는 몇몇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법안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혹시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습니까?"
"기본적으로는 가능한 많은 실명인들이 지원을 받게끔 해주자는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아아!"
서은석은 감격했다는 듯이 탄성을 내뱉었고, 송현성 협회장은 다정하고 배려 깊은 의사의 모습을 최대한 연기했다.
"문제는 돈입니다."
"돈…… 그렇죠. 언제나 돈이 문제고, 해결책이죠. 안 그런 적이 없습니다."
"사실 그 많은 암 환자들도 필요한 의료비 지원을 다 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실명인들에게만 집중적으로 지원을 몰아주는 것은 여론을 생각해서도 불가능하죠."
"……."
"그러나 이것은 의료제도 측면으로만 접근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다른 관점을 삽입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다른 관점이요?"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서은석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어떤 병원이나 의학 연구소에서도 해내지 못한 획기적인 치료법을 개발한 겁니다."
"아!"
"전 세계에 실명인들이 몇 명인지 아십니까? 백만 단위 이상입니다. 완전 실명이 아니더라도 중증 안과 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는 또 몇 명입니까?"
"셀 수도 없이 많겠지요."
서은석은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자신도 어렴풋이 아는 내용이지만, 의사협회장 말을 통해 들으니 힘이 난다.
자기와 딸이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게 된다.
"그 엄청난 시장을 단숨에 집어삼킬 수 있는 무기입니다, 무기! 이제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정부가 의료기술 투자 측면으로 접근하면 얼마든지 길이 열리겠군요."
"그렇지요!"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비 지원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의료신기술 투자자로 나서게 한다.
정부 입장에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청담 스코프는 이미 9건의 시술로 인해 그 효능이 완벽하게 입증되었으니까.
"단순 지원이 아닌, 시장 선점을 위한 투자라면……."
"얼마든지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하지요. 실명인들도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말 획기적인 방안입니다! 감사합니다, 협회장님! 이렇게 저희 실명인과 가족들에게 길을 열어주시다니요."
송현성은 한껏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안과 교수입니다. 평생 안과 외길만 걸어왔습니다."
"……아."
"특히 녹내장이나 백내장 등으로 인한 실명성 질환에 관심을 깊이 가지고 연구를 해왔습니다. 하늘도 제 그런 노력을 알아준 것 같군요. 제가 마침 의사협회장일 때 이런 놀라운 기술이 나왔으니 말입니다."
서은석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렸다.
송현성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뜨거운 진심으로 변환돼 그의 가슴에 와 닿았다.
"제가, 아니, 저희가 뭘 도우면 되겠습니까?"
"같이 국회를 압박해 주십시오. 더 이상 보건복지부 앞에서 시위해 봤자 무의미합니다."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바로 동료들을 설득해서 서울로 올라오겠습니다. 광화문 앞에 진을 치겠습니다."
서은석이 돌아갔다.
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강문기는 그제야 의아함을 드러냈다.
"협회장님, 정말 그런 법안이 준비중입니까?"
"확실한 정보야. 곧 의원들 서명을 받아서 발의가 될 거야. 그 시기를 앞당기고, 불씨도 더 크게 피워주는 거지."
"아니, 그럼 우리 안과의들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는 거 아닌가요?"
시력교정시술 및 그 많은 안과질환에서 나오는 수입이 증발해 버린다.
시장이 열린다면 그 모든 이익은 청담 스코프 권리자가 가져갈 테니.
"청담 스코프 때문에 시력교정 시장이 다 죽는다 소리 하실 땐 언제고, 지금 자기 목에 스스로 칼을 넣으려고 하십니까?"
"나한테 칼을 꽂으려는 게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반대라고요?"
"정부에서 통 큰 지원을 한다 치자고, 그럼 정부가 지분을 안 가져갈 것 같나?"
"……아."
"지분이 분산되면 어떻게든 파고들 틈이 생기기 마련이야. 잘 풀린다면 우리 협회도 의결권 챙길 수 있을 거고, 못 되더라도 청담수영병원이 독식하진 못하겠지."
소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반박했다.
"제가 청담 스코프 권리자라면 짜증 날 거 같은데요. 정부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더 좋은 거지. 정부도 괘씸하다는 생각을 품을 거 아닌가."
"그런……."
"청담 스코프 가격이 싸지려면 병원 힘으로는 안 돼. 결국 정부와 산업 전체의 보조가 있어야 단가를 내릴 수 있어."
송현성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병원과 정부가 서로 반목해 봐. 가격 인하는 허송세월, 이대로 정체될 거야. 우리 입장에서 나쁠 게 없지."
"투자와 대량생산으로 공급 가격이 낮춰지는 것을 미리 차단할 수 있겠군요."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상관없어. 그래도 기왕이면 둘이 크게 반목해서 지금 그대로 정체되면 좋겠군."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에게는 최악의 결과.
하지만 송현성은 상관없었다.
자기 뒤를 이을 아이들이 먹고 살 시장을 그대로 지킬 수만 있다면야.
***
실명환자 모임 시위대는 광화문 앞으로 옮겼다.
대한의사협회의 지원을 받아 전보다 더 요란하고 공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일주일은 광화문 앞에서, 다시 일주일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그렇게 번갈아 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담 스코프는 대한민국을 최고의 안과명의로 만들어줄 수 있는 혁신적인 의료기술이다!
-정부와 국회는 청담 스코프 투자 개발을 적극 지원하라!!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안과명의가 될 수 있는 길을 서둘러 걸어 가라!
구호 역시 변했다.
실명과 무관한 일반 대중이 듣기에도 전혀 거슬릴 게 없는 내용이었다.
예전에는 무조건 자기들 지원해 달라고 떼를 쓰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국가 발전을 위해 적극 움직이라는 내용이었으니까.
여론은 긍정적으로 변했고, 국회도 이에 화답했다.
첫 정부 투자로 1조 원.
향후 10년 동안 추가로 1조 원.
도합 2조 원.
청담 스코프 공급 현실화를 위한 정부투자법을 곧 발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
법안 준비 과정.
국회의원 보좌관 형원호는 사전협의를 위해 청담수영병원을 찾았다.
미팅은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시작했다.
왕세경 부이사장이 허허로운 웃음을 지으며 보좌관을 맞이했다.
"공급 현실화? 그 돈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적어도 6조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직접 생산라인 갖추고 가격도 낮추고 할 수 있어요."
"의원님께 전달하겠습니다. 3배로 늘어나긴 했지만 10년간 장기투자이니 불가능하지는 않을……."
"이게 왜 3배입니까? 3,000배지."
"예?"
"내가 말한 건 6조 원이 아니라 6조 달러를 말한 거요."
왕세경은 여전히 허허로운 웃음으로 덧붙였다.
"돈 마련되면 가져오시오. 그럼 1,520억 원을 15억 원으로 다운시킬 수 있을 거요."
"지금…… 6조 달러라고 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