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66화 (566/1,270)

프랜차이즈 갓 566화

141장 안과 킬러(2)

보건복지부 김수양 차관은 오늘도 힘들게 출근했다.

시각장애인 환우회에서 나온 시위대 때문이다.

그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했다가는 전국적으로 곤욕을 치를 수 있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적인 조리돌림을 당할 수 있었으니까.

"무슨 카메라를 저렇게 많이 설치했는지, 원."

그는 청사 밖을 내다보며 혀를 찼다.

지금 이 순간에도 300여 명이 넘어가는 이들이 진을 치고 앉은 채 확성기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도 눈을 뜨고 싶다!

-밝은 세상을 보고 싶다!!

-우리도 앞을 보게 해달라!

-보건복지부는 청담 스코프를 급여 항목으로 지정하라!

물론 300인 전부가 시각장애인인 것은 아니었다.

가족이나 지인, 친구, 또는 관련자가 시각장애인보다 많았다.

그들은 아예 청사 밖에 텐트와 막사까지 친 채 장기간 머무르는 중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청담 스코프, 완벽한 인공안구 장치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해 주는 것.

김수양 차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1,520억 원이나 하는 걸 무슨 재주로 급여 항목에 지정을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약이 무슨 근위축성 희귀병 치료제인가 그렇지요? 1회 투여 비용이 20억 원인가 넘는다는 그거 말입니다."

"그 정도면 청담 스코프 앞에서는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지."

"한 명을 위한 의료기기가 1,520억원이라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청담 스코프 덕분에 앞을 보게 된 시각장애인은 모두 9인.

그중 2인은 그 정도 돈을 쓸 만큼 어마어마한 부자였고, 나머지 7인은 그런 큰돈을 기꺼이 내줄 만한 어마어마한 부자가 옆에 있었다.

"대체 왜 매일 우리 청사 앞에서 시위하는 건지 모르겠어. 아니, 보통 이런 시위는 기술을 개발한 병원 앞에서 하지를 않나?"

"병원에서 하긴 했는데 첫날 바로 철수했다고 했습니다."

"뭐? 이유가 뭐지?"

"사정이 딱한 건 알지만 이런 억지 시위로 멀쩡한 병원 운영 방해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나중에 돈 가져오더라도 절대로 시술해 주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놨답니다."

"……."

"그리고 자기들은 돈 벌 생각 없으니 부품값만 알아서 가져오라고, 그건 보건복지부에 따져야 할 일이라고 재단 직원이 친절히 알려줬다네요."

"허참."

"지금은 전 국민이 다 압니다. 1,520억 원이 무척 비싸긴 한데 그게 전부 부품값이라는 것을요."

병원은 최소한의 시술비조차 받지 않는다.

병원 입장에서는 굳이 해줄 이유가 전혀 없는, 시간과 노력만 잡아먹는 사업.

하지만 부품값만 가져오면 얼마든지 해주겠다고 공표를 한 상태다.

"이거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도무지 해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완벽한 실명 치료 시술이니까요. 줄기세포 안구 재생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보다 더 좋은 치료 방법은 없을 겁니다."

***

"내가 젊었을 때 시력이 2.0이었네. 눈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았지."

사우디 국왕의 숙부, 호세 빈 부회장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그렇게 말했다.

의사들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눈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다고?'

'말씀에 어폐가 너무 심하신 거 같은데…….'

'눈 역시 남부럽지 않았다고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전 국왕의 동생.

사우디 아람코(왕실 석유회사)의 운영 실권자.

추정 '개인 자산' 40조 원 이상.

키 185m,

100세 이상.

이런 화려한 스펙을 가졌으면서, '눈 하나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다'니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이 청담 스코프는 내 전성기하고도 비교가 되지 않는 풍경을 보여주는군."

"광학적으로 인간의 안구보다 더 멀리, 더 넓게,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렌즈와 이미지 센서를 부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거 같소. 가까운 풍경과 먼 풍경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청담 스코프의 가장 큰 장점같구려."

호세 빈 부회장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아주 좋아. 진짜 눈보다 훨씬 더 뛰어나오. 마음 같아서는 내 친구들에게 원래 눈은 파버리고 이 청담스코프를 달라고 권하고 싶소만."

"하하, 아마 꺼려 할 겁니다. 원래 인간은 선천적 장기를 떼어버리는 것에 거부반응이 강합니다."

"그렇겠지. 나 역시 눈이 멀쩡했다면 아무리 성능이 좋다고 한들 내 멀쩡한 눈을 파내 버리는 것은 부담이 갔을 거요."

진짜 눈보다 훨씬 좋다는 걸 안다 해도, 그래도 역시 자기 몸을 가장 아끼는 법이다.

"그런데 이미지 녹화 기능은 정말 지원하지 않는 거요? 편할 거 같은데."

"예, 도촬을 원천차단하기 위해서 기술적으로 막혀 있습니다."

카메라가 뇌에 전송하는 이미지는 휘발성이다.

어디에도 저장되지 않고 실시간으로 소멸한다.

"아쉽군요. 이렇게 훌륭한 기술의 혜택을 받은 이가 아직까지 10명도 채 안 된다니."

"아무래도 부품값이 워낙 고가이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최윤석 병원장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사우디 국왕 숙부, 호세 빈 부회장은 청담 스코프 시술 대가로 2,000억 원이나 되는 치료비를 따로 지불했다.

물론 의료재단 기부로 처리했지만, 누구도 그것이 치료비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여기에 며칠 전부터는 하루 입원료가 2억 7,397만 2,603원인 VIP특실도 이용하고 있다.

"이 병원은 묘한 아늑한 느낌이 있습니다.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봅니다. 허허."

100세를 넘었으니 '나이 들긴 했다' 라고 웃어넘길 정도는 아니지만.

***

"아몬드 가격이 왜 이렇게 올랐어?"

"미국 아몬드 생산량이 작년에 비해서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생산량이 시원치 않다고 합니다. 부이사장님."

"땅콩 아몬드에 맥주 한 잔이면 시원한 저녁 마무리에 딱인데. 이렇게 비싸서야 어디 겁이 나서 사먹을 수가 있겠나?"

왕세경 부이사장이 혀를 차자 비서실 직원들이 작게 킬킬거렸다.

일 년 입원료가 1,000억 원인 VIP 병실을 이용하고 있으면서, 고작 아몬드 값 조금 올랐다고 저렇게 투덜거리다니.

그때 손님이 찾아왔다.

"부이사장님, 저 왔습니다."

"어, 준식이. 어서 오게."

청담 스코프 1호 수혜자, 서준식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 학교는 다닐 만하고?"

"예,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근데 왜 컴퓨터공학과를 갔나? 준식이 자네는 수학 공부를 해야 할 천운인데."

"수학 공부는 언제 어느 때든 할 수 있으니까요. 수학 자체만 파고드는 것도 좋겠지만, 부이사장님이 제 시술비를 턱 내어주신 걸 보고 제가 느낀 게 많았습니다."

"오, 역시 돈이 좋구나, 이런 거 말인가?"

"네, 그래서 저도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적어도 두 명 이상은 청담 스코프시술을 받게 해주는 게 제 꿈입니다."

"내가 사람 투자를 제대로 했다니까. 그 꿈, 절대로 잊지 말고 평생 간직하게. 내가 지켜볼 거야."

"지켜봐 주세요, 부이사장님."

"그런데 한국대 우리 이사장과 동문 아닌가? 학교에서 인사는 했지? 친하게 지내는가?"

그 말에 서준식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한 번 제가 찾아가서 인사를 하긴 했습니다만…… 밥도 같이 먹긴 했습니다만, 아니, 이건 같이 먹었다고는 할 수 없나?"

"무슨 말인가?"

"이 사장님과 직접 만난 게 아니라 이사장님이 제어하는 로봇을 통해서 인사하고 식사도 같이 했었거든요."

"로봇?"

"네, 이사장님은 요즘 학교에 직접 나오시진 않습니다. 대신 로봇을 학교에 두고 원격강의 수업을 듣고 계십니다. 교수님들도 출석을 인정해 주고 있고요."

"요즘에는 별 희한한 방법으로 수업을 듣는군. 나 때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야."

"이사장님이니까 가능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로봇, 적게 잡아도 수백억 원 이상은 나갈 거 같던데요. 그런 로봇을 도난 대비 없이 굴리시는 걸 보면, 역시 배포가……."

왕세경은 서준식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학업 등 일상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청담 스코프로 화제가 넘어왔다.

"세종시 보복부 청사에서 시각장애인 환우모임이 시위하는 건 아실 겁니다."

"잘 알지. 나도 지켜보고 있어. 언제 우리 쪽으로 불똥이 튈지 모르니까."

여기는 당신들이 시위할 장소가 아니다.

초반에 그렇게 기세를 잘 잡았지만, 언제 그들이 병원 앞에 진을 칠지 모를 일이다.

"환우 모임에서 저한테 청탁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럴 줄 알았네. 병원에 이야기 좀 잘해 달라, 이거지?"

"심지어 부이사장님께 말씀을 잘드려서 자기도 혜택을 받게 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요구도 있었습니다."

"내가 그럴 돈이 어딨어. 준식이 자네 눈 해줄 때도 부동산 몇 개 팔아서 해준 건데."

저승사자와 저승의 대왕을 본 이후, 재물에 대한 탐욕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바쳐야겠다는 호구로 바뀐 것은 아니다.

"절박한 사람들이니까요. 편을 드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 역시 그렇게 절박해 본 적이 있기에 그게 누르고 외면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번 크게 튈 모양이군그래."

"예, 아무래도 일을 더욱 크게 만들어서 시끄럽게 할 모양입니다. 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좋은 정보 고맙네. 나도 명심하지."

서준식 역시 한때 같은 처지였던 그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매우 안타까웠다.

자신이 매우 운이 좋았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청담수영병원이 일방적인 출혈을 부담하는 전개는 결코 바라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아예 이 기술 자체가 사장돼 버릴 수도 있어.'

돈은 안 되고, 손해만 보는 기술?

아무리 대단한 혁신이어도, 기업입장에서는 그냥 땅에 묻어버리는 게 낫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과격한 환우 가족들이 병원에서 시술비 지원금을 일정 부분 부담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단이 돈이 많으니까 그런 억지로 부리는 거겠지. 그런 절박함은 나 역시 이해하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왕세경은 별다른 감흥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우리 병원 곳간을 털어가려면, 먼저 나부터 넘어뜨려야 할 게야."

성주신은 집에 거주하는 사람의 목숨만 지키는 게 아니다.

***

대한의사협회장 사무실.

현 협회장 송현성은 안과전문의 출신이었다.

그는 현재 강남에서 가장 잘나가는 시력교정안과를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직접 고객을 본 것은 한참 되었다.

고객 시술은 병원에서 고용한 10명의 페이닥터들이 전담하고, 그는 협회 운영에만 집중한 지 오래였다.

병원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익 덕분에 협회 운영에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요즘 큰 고민을 앓고 있었다.

"청담 스코프, 이거 아주 위험한 기술이야. 잘못하다가는 우리 밥줄을 통째로 끊을 수 있어."

"청담 스코프가 아무리 뛰어나도 라식라섹 수술을 완전히 대체하진 못합니다. 시술 한 번에 1,520억 원인데 그걸 어떻게 상용화합니까.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해선 안 돼. 컴퓨터도 초기에는 연구소에서나 쓸만큼 비쌌어. 지금은? 전 국민 누구나 손바닥만 한 핸드폰에 넣어서 갖고 다니고 있지."

"그건……."

"청담 스코프가 언제까지 천억 원대일 거 같나? 가격이 수백만 원밑으로 다운되는 순간, 우리 시력교정업계는 다 끝나는 거야."

송현성은 두 아들이 안과를 전공하고 있는 만큼, 동기 부여가 남달랐다.

'내 대에서는 몰라도, 내 아들들 대에서는 반드시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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