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64화
140장 감사와 검사 듀오 (5)
"사법거래 기회를 드립니다."
조용히 만난 임탁정 검사는 서늘한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녹화, 녹취는 당연히 꺼둔 상태였다.
심지어 근처에는 교도관 한 명도 얼씬거리지 않은 채였다.
완벽하게 검사와 박정빈 회장, 둘만 있는 자리였던 것이다.
"사법거래?"
박정빈은 순간 흠칫 했으나, 이내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이 스치고 지나가자 임탁정은 그럴 듯 알았다는 듯이 조소했다.
"착각하면 실망이 클 겁니다. 피고인이 생각하는 그런 거래는 아니니까."
"결국 거래라는 게 다 그런 거지요. 어디 말을 해보시오."
임탁정은 어이가 없었다.
그간 제주 구치소 구속생활에 수모를 겪은 기억은 다 날아간 것일까?
검사가 거래카드를 들고 찾아왔다고 바로 기고만장해 하는 꼴이라니.
"징역 25년에 벌금 20억을 구형했지만, 내가 모든 혐의를 적용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꺼내지 않은 범죄혐의가 널렸죠."
"……."
"법원이 형량 반의 반이라도 인정해줄 거라고는 생각 안 합니다. 경제사범에는 원래 관대한 게 이 나라 사법부니까. 그런데 난 아직 피고인을 공격할 카드가 수십 개는 됩니다."
임탁정은 차갑게 조소하며 말을 이었다.
"한 건당 공판 기한을 1년으로 잡아도, 수십 년 세월을 법정구속 상태로 구치소에서 보내게 될 겁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 그건……."
그제야 박정빈 회장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도 25년에 벌금 20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형량이 인정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횡령배임에 그런 선고를 내린다면, 차후 재벌 총수들을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데 크나큰 차질을 빚을 테니까.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구색 맞추기는 필요한 것이다.
"적어도 피고인이 늙어 죽기 전까지는 내가 검사 현역일 거 같습니다만?"
"……."
"그럼 본인 처지를 잘 이해하셨으리라 믿고, 이제부터 사법거래 조건을 제시하죠."
그러면서 임탁정은 작은 쪽지를 슬쩍 보여주었다.
거기에 적힌 숫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박정빈은 이내 그 의미를 깨닫고 안색이 경직되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되는 금액이오! 설마 이걸 검사님이 모두 꿀꺽하겠다고?"
"국고에 배상하라는 겁니다. 딱 이 금액만큼."
"터무니없는 금액이오!"
"터무니없지 않습니다. 피고인이 횡령한 금액, 배임으로 인해 중앙회가 입은 피해액, 그 총액에 기간만큼 연 39% 이율을 적용하고, 국가의 정신적 위자료를 더한 것이니까요."
박정빈은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금액이었다.
전 재산을 팔아도 만들 수 없는 금액이었으니.
"그래도 자식들에게 사전증여 안하셔서 얼마나 다행입니까. 역시 재산은 일찍 물려주는 게 아니고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한다니까요."
"이건, 너무한……."
"너무한 건, 수십 년 동안 그 작은 식약처 휘하 법인에서 혼자서만 100억 넘게 해 처드신 우리 피고인 님 재테크 실력이 너무하신 거고."
"……."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 이렇게 날카로워 보일 줄은 몰랐다.
박정빈은 사법거래라는 말뜻을 자신이 완전히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저 검사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꺼낸 단어가 아니었다.
"그렇잖아요? 사실 그래. 기껏해야 횡령배임이야. 누굴 팬 것도, 강간한 것도, 죽인 것도 아니고 돈만 슬쩍한 거지."
"……."
"그런 사람 감옥에 처넣어서 피해자인 나라가 뭐 얻을 게 있나? 징역 살게 하는 것보다 돈 토해내게 만드는 게 백배 낫지. 피해배상금과 이자까지 고스란히 붙여서 말이야."
임탁정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웃었다.
"감옥에 가둬두는 돈도 결국 다 세금이거든, 세금, 피해자 비용이란 말이지."
박정빈은 어느새 말이 짧아진 것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돈 범죄는 징역살이로 처리하는 게 아니야. 돈으로 처벌해야지. 100억 바짝 벌고 3년 감옥에 살겠다, 그것도 다 경제논리에서 나온 선택이거든."
임탁정은 쪽지에 적힌 숫자를 다시 한번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 금액이다. 잊지 마라.
눈에 똑똑히 박아두고 기억을 하라는 듯이.
"돈 범죄로 한몫 챙겨봤자 무조건 그 이상으로 뜯어가는구나, 이걸 미리에 박아줘야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단 말이지. 그래도 저지를 놈은 저지르지만."
임탁정은 쪽지를 접어서 자기 주머니에 챙겼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기 위함이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하는데, 피고인은 이제 60 조금 넘었지요?"
"……."
"그래도 앞으로 20년 이상은 너끈히 살 거 같은데, 남은 인생을 평생 구치소에서 재판만 받으면서 보낼 건지, 그래도 자식들 집에 얹혀살면서 자유롭게 살 건지는 본인이 결정 하십시오."
임탁정의 말투가 다시 정중하게 돌아왔다.
그제야 박정빈은 그의 말투가 조금 전에 하대하듯이 짧아져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마지막 기회…….'
박정빈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직감했다.
이것은 임탁정이 주는 마지막 기회다.
이것을 거부하면 그 뒤로는 이런 자리가 절대 없을 것이다.
저 미친 검사 놈은 정말 자신을 평생 재판만 받게 만들 작정인 것이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인생의 말년을 그런 비참한 경험으로 채우다가 세상을 하직하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
돈과 말년을 전부 뺏기는 것보단, 그래도 말년 하나만이라도 지키는 게 압도적으로 낫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국가에 지불해야 할 합의금이 너무 터무니없었던 것이다.
평생 그의 가슴을 채워온, 돈에 대한 탐욕이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주저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탐욕이 가진 무시무시함.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1차 선고 전까지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십시오."
시간은 주지만, 다시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이 행동으로 보여야만 한다.
임탁정의 억양과 태도는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긴 고뇌 끝에, 마침내 박정빈은 마음을 결정했다.
아니, 이미 결정은 나 있었지만 그대로 행동할 결심을 굳힌 것이다.
행동을 방해한 것은, 손에 쥔 것을 놓기 싫어하는 탐욕의 몸부림 때문이었다.
그 거친 반항을 억누르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박정빈은 곧바로 검찰과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 반성문은 일반적으로 범죄자들이 제출하는 반성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저의 죄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제가 가진 모든 재산을 남김없이 신고 하고 공정투명하게 처분하여 전액을 범죄배상금으로 내놓겠습니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라 박정빈은 재산 목록을 자세히 작성하여 추가로 제출했다.
그리고 변호인을 이용하여 가진 모든 재산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혈육, 지인, 제3자 우회 등을 이용해 싸게 처분하는 편법은 저지르지 않았다.
가능한 제값을 받았고, 급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싸게 팔 때는 공공기관 경매 시스템을 이용했다.
'아버지,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이 못난 장손이 돈에 욕심이 멀어 그만…… 크흑…….'
다른 큼지막한 재산을 처분할 땐 그저 가슴이 쓰리기만 했다.
하지만 3대를 살아온 종로의 본가 저택.
그것을 처분할 때에는 영혼의 뭉텅이가 뜯겨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저 다만 좋은 사람에게 팔려서 아낌을 듬뿍 받기를 바랄 뿐이었다.
***
박정빈은 전 재산을 모두 처분했다.
단 1만 원도 남기지 않았다.
이제 그는 출소하더라도 기초수급자로 살아야 했다. 아니면 자식들에게 얹혀살던가.
일찍이 아내의 명의로 넘겨준 부동산 몇 채도 전부 처분했기에, 이제 정말 부부가 알거지였다.
그리고 선거기일이 다가왔다.
"피고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국가에 합의금으로 지불…… 이에 반성의 기미가 매우 뚜렷하고, 고령인 점을 참작하여…… 집행유예에 사회봉사활동 150시간을 명한다."
전 재산을 주고 간신히 얻은 집행유예였다.
그간 횡령배임으로 챙긴 돈보다 훨씬 큰 액수를 바쳐서 얻어낸.
이에 임탁정 검사도 화답을 해주었다.
항소 포기.
1심 결과에 만족하고, 2심 항소를 포기한 것이다.
"돈 훔쳐간 도둑놈한테서 원금과이자, 배상금까지 받았으니 됐다."
그렇게 제주지검은 매우 만족해했다.
"임 차장, 수완이 아주 좋은데? 어떻게 그 능구렁이한테서 그렇게 쉽게 뜯어낸 거야? 보통 돈 범죄 저지른 놈은 죽는 한이 있어도 돈은 절대 안 내놓는데."
"반대입니다. 자기가 감옥에서 죽을 일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돈을 안 내놓는 거죠."
"그럴 수도 있겠군."
"돈을 내놓지 않으면 확실하게 감옥에서 평생 살다 죽는다는 것을 알게 해줬습니다. 그럼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죠."
임탁정은 쓰게 웃었다.
"애초에 돈 범죄 저지르는 놈들은…… 자기애가 정말 강한 자들입니다. 자기의 사치와 화려함, 행복한 삶을 위해서 돈을 훔치는 거죠."
그게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짧게 바짝 살고 나오면 돈다발 수영장이 맞아주는 미래 따위는 없음을 각인해 준 것이다.
***
장효주는 하수영이 노트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응? 경매?"
"오늘 매물 하나 뜨거든요. 그거 보고 있습니다. 놓치면 안 돼요."
"청담동 부동산인가 보네요. 그게 아니면 수영 씨가 그렇게 눈에 불을 켤 리가 없죠."
"잠시만요."
하수영은 뚫어져라 화면을 보고 있다가, 목록이 갱신되자 재빨리 입찰을 신청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싸! 득템이다!"
"아, 축하해요. 어떤 물건이에요?
상가 빌딩? 아파트? 고급 빌라? 아니면……."
"에이, 그 정도로 대단한 물건은 아니에요."
"설마 청담동 부동산이 아닌 거예요?"
"청담동 부동산이 맞긴 한데, 완전한 부동산은 또 아니죠."
"……?"
"아르미엔 빌딩입니다."
장효주는 아 하고 탄성을 냈다.
아르미엔 빌딩은 그녀도 이름을 알만큼 청담동에서 유명한 빌딩이었다. 명품브랜드 샵들이 줄줄이 입점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엄청 비쌀 텐데. 얼마에 샀어요? 거기 빌딩 못해도 4,000억원은 하지 않아요?"
"에이, 4,000억은 무슨, 박 회장 그 양반 전 재산 다 긁어모아도 300억이 안 되는데요. 어떻게 4,000억짜리가 경매에 나옵니까?"
"네?"
장효주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빌딩 지분이에요, 지분. 몇 퍼 안돼요. 그래서 25억에 낙찰받았습니다."
"아, 지분……."
그제야 장효주는 납득했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 정도면 10% 언저리이지 않을까?
"아르미엔 이놈이 빌딩 지분이 10개 이상으로 쪼개져 있어서 수집하기가 좀 까다로운 친구입니다. 첫째 지분자이자 건축주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안 팔겠다고 해서 경과만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지분 9%를 싸게 얻었네요."
"축하드려요. 경매 정보 놓치지 않고 용케 잘 얻으셨네요."
"그럼요. 제가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박 회장 이 양반을 가장 먼저 친 건데요."
하수영은 머리 뒤로 팔짱을 끼며 몸을 쭉 폈다.
느긋한 미소가 입가에 흘렀다.
"자, 그럼 주 목표물은 챙겼으니 이제 싸잡아서 한꺼번에 보내드리고 끝내면 되겠다."
이제 중앙회 수뇌부 물갈이를 속전속결로 정리하면 전부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