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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562화 (562/1,270)

프랜차이즈 갓 562화

140장 감사와 검사 듀오 (3)

하수영은 철저히 시효가 지난 것들만 따져 물었다.

그렇다고 추궁당한 이들이 모두 곧이곧대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법률에는 시효가 있지만, 민사에는 시효가 없으므로, 그들은 최대한 자신이 아는 것을 부정했다.

사실이어도 사실이 아니라고 끝까지 잡아떼었다.

하지만 그중에도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꼭 있는 법이다.

"11년 전 (주)호연스텔 3월 25일 4억 2,500만 원 지출내역에 관해서 방두연 이사님과 진술이 다르신데요?"

"예?"

빈민석 부장은 순간 당황해서 머뭇거렸다.

분명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니, 이사님! 대체 뭐라고 둘러대신 겁니까!'

사건 조작의 본질은 말맞추기다.

그게 성립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

미리 말을 맞춘 대로 발언을 해야 하는데, 너무 오래돼서 그 양반이 말을 잘못한 건가?

빈민석 부장은 순간 어떻게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할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하지만 하수영의 결정이 더 빨랐다.

"방두연 이사님 지금 들어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중앙회 본사 전체는 이미 비상 대기 중이었다.

하수영이 벌써 50시간 넘게 잠도안 자고 휴식도 없이 회계 내역을 털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 어느 때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지 모르는 판이다 보니, 임직원들은 퇴근도 하지 못한 채 반강제로 회사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었다.

퇴근을 제지한 것은 아니다.

평소처럼 일과를 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누가 마음편히 집으로 갈 수 있겠는가.

잠시 후 방두연 이사가 머뭇거리면서 사무실로 들어섰다.

하수영은 앉으라고 눈짓을 보낸 뒤, 둘을 향해 입을 열었다.

"11년 전 (주)호연스텔 법인, 3월 25일 4억 2,500만 원 집행자금 지출."

방두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대체 뭐가 잘못된 거냐고 빈민석 부장을 쏘아보았다.

빈민석 부장으로서는 억울하기 그지없을 따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사님 기억이 잘못된 게 틀림없는데. 난 그때 말맞춘 대로 똑바로 말을 했다고!'

"방두연 이사님은 오피스 사무소 매매대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빈민석 부장님은 식품연구시설 임대대금이라고 하시는군요. 어느 쪽이 맞는 겁니까?"

"그게……."

"일단 둘 중 한 분이 틀렸거나, 아니면 둘 다 틀렸거나, 겠군요."

"……."

하수영은 인터폰을 누르고 비서에게 지시했다.

"11년 전 3월 25일 자에 체결된 부동산 계약서류 모두 가져오세요."

그날 하루에 한정된 부동산 계약서류라고 해봐야 양이 한정되어 있다.

비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뭉치의 서류 더미를 갖고 올라왔다.

하수영이 서류를 훑어보는 것을, 이사와 부장은 가슴을 졸이며 지켜 봐야만 했다.

한 장 한 장 빠르게 넘기는 그 손짓이 어찌나 무섭게 느껴졌던지.

"오피스 매매거래가 맞군요. 빈민석 부장님은 왜 식품연구시설 임대대금이라고 말씀을 하셨던 겁니까?"

"그, 그게……."

이사는 거보라는 듯이 의기양양해서 부장을 째려봤고, 부장은 당황해서 머뭇거렸다.

자신의 기억이 잘못될 리가 없었다.

서류는 몰라도, 그날 나눴던 대화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으니까.

-……4억 2,500만 원. 이걸 식품연구시설 임대 쪽으로 한 번 돌릴 거야. 그중에 못해도 40%는 우리한테 떨어질 테니까…….

4억 2,500만 원.

식품연구시설 임대.

40%.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이렇게 생생한데,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거라고?

"어디 보자. 구매한 오피스가 서울 정희동 32번지…… 프리덤."

-예, 마스터.

"이 오피스에 11년 전 3월 25일 이후에 체결된 모든 거래를 추적해 봐. 매매고 임대고 다 포함해서."

-바로 다음 날 체결된 임대거래가 하나 있습니다. 임차인은 한상인, 44년생 남성입니다. 더 자세한 정보는 열람이 안 됩니다.

하수영은 고개를 들고 둘을 바라봤다.

이미 둘의 표정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한상인, 44년생, 남성. 혹시 이 사람을 아시는 분?"

"……."

"……"

"지금 두 분은 제 레이더에 걸려들었습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체한 정황이 확실해지면 집중표적 리스트에 올라가는데,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더욱 진창에 빠져들 거라는 뜻인건 알겠다.

빈민석 부장이 선수 치듯이 얼른 말했다.

"방두연 이사님 4촌 친척 되시는 분입니다."

"아니, 빈민석이! 자네가 어떻게!"

"방두연 이사님은 이만 퇴근하세요. 오늘은 더 회사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가, 감사님! 저는 결백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수영은 밝은 웃음을 머금고,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말했다.

방두연 이사는 온몸에서 힘이 쫙빠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서는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추한 모습을 보이길 주저하지 말라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마치 뱀 앞에 개구리가 된 듯이, 하수영 앞에서 혀끝이 얼어붙는다.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이지……."

"빈 부장, 문 앞까지 배웅해드리세요."

하수영은 냉정하게 말을 끊었고, 방두연 이사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빈민석 부장은 머뭇거리면서 문을 열고 복도까지 배웅했다.

잠시 문이 닫힌 사이, 방두연 이사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작게 말했다.

"다 불고도 너만 살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 내가 절대 혼자……."

"문 앞까지만 배웅하라고 했습니다. 얼른 안 들어오고 뭐합니까?"

하수영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어왔고, 방두연은 찔끔해서 입을 닫았다.

빈민석 부장은 얼른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창백했지만, 그래도 방금 선수 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파고들면 결국 내 이름도 나온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 게 나아.'

그런 이유 때문에 빈민석 부장은 순발력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하수영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주시했다.

"이제 제대로 이야기를 해볼 태도가 됐습니까?"

"……네, 감사님. 죄송합니다."

"식품연구시설 임대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뭐죠?"

"죄송합니다. 제 기억이 잘못되었나 봅……."

"그걸 묻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신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그 이유를 말씀하시라는 겁니다."

서늘한 눈빛이 훑어보자 등줄기에 오한이 든다.

마약 전담 검사 앞에서 취조를 받는다 해도 이보다 무섭지는 않을 것 같다.

"……그때, 방두연 이사님이 분명히 식품연구시설 임대로 활용될 거라고 말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말을 들었다는 기억 자체는 분명한 거 죠?"

"네, 그렇습니다."

"기억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다……. 흐음."

하수영이 다시금 노트북 자료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약 30초쯤 지난 후였다.

"아, 여기 4억 2,500만 원짜리 거래가 하나 더 있네요. 날짜는 6월 23일. 근데 이거 집행 출처가 정확하지 않은데, 혹시 보고 기억나는 게 있습니까?"

하수영이 자료를 보여주자 빈민석부장은 눈에 힘을 주고 화면을 살폈다.

10분 넘게 살피던 빈민석 부장이 아 하고 탄성을 냈다.

"아, 맞습니다. 이겁니다. 틀림없습니다."

"오피스 임차인인 방두연 이사 사촌이 낸 임대보증금 1억 7,000만 원을 식품연구시설 운영자금으로 돌렸군요."

"……네, 그렇습니다."

정확히 4억 2,500만 원의 40%가 되는 금액, 빈민석 부장은 우물쭈물하다가 힘들게 말했다.

"그중 절반은……."

"부장님이 챙기셨고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아니고, 이자 붙여서 토해내면 그만입니다."

"……."

"물론 감사조사에 성실히 협조하신다면 그 공적만큼 점수를 부과할 겁니다. 과를 상쇄할 수 있도록 공을 쌓아보시죠. 100%는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평범한 감사라면 빈민석 부장도 이렇게 쉽게 백기를 들지 않았다.

아니, 쉽게 백기를 든 것도 아니었다. 정말 힘들게 결정한 투항이었으니까.

'괴물…….'

어떻게 사람이 50시간 안 자고 한 자리에서 저렇게 취조를 이어나가면서, 숨소리 하나 흐트러짐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그 강철 체력만 해도 적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심어줄 진데.

심지어 상대는 개인으로서는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동산 부자 아니던가.

그런 사람을 적으로 삼으면, 얼마나 두고두고 힘들지 상상하기도 싫다.

"4억 2,500만 원으로 오피스를 사서 친척에게 저렴하게 임대를 줬군요. 당시 주변 시세보다 50% 이상 저렴한 월세네요."

"네, 그렇습니다."

"보증금 1억 7,000만 원으로 식품연구시설 운영을 하는 척하다가 흐지부지 접었네요. 실제 운영에 나간 돈은 10%도 안 됐을 거고."

'그걸 어떻게 알았지?'

빈민석 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임탁정 검사가 조사자료를 제공한 사실을 모르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보증금은 당연히 못 돌려줬으니, 방두연 이사의 친척이 경매를 신청해서 임차인 낙찰을 받았네요? 그것도 2억 9,500만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1억 3,000만 원의 차익은 당연히 방두연 이사 계좌로 들어갔겠죠?"

"……거기까지는 몰랐습니다."

세상에, 오피스를 일부러 경매 처리까지 했어?

빈민석 부장은 방두연 이사의 꼼꼼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 오피스를 5년 뒤, 6억 2,000만 원에 팔아서 정리했군요. 이럼 환수해야 할 부당이익이 대체 얼마가 되려나."

월권으로 절반 이상 깎아준 월세.

둘이 나눠먹은 보증금.

고의로 진행한 경매 낙찰에서 얻은 차익.

마지막으로 부동산을 정리하며 발생한 시세 차익.

"방 이사님, 간도 크시네. 감사고 뭐고 변변치 않다고 이렇게 회삿돈을 마음대로 꿀꺽하시다니."

"……."

"심지어는 당시에는 이사도 아니고 일개 부장이셨네. 부장이 이 정도 횡령배임을 대놓고 할 정도면, 그 윗대가리들은 대체 얼마나 해먹었을까요?"

하수영이 돌아보며 묻자 빈민석 부장은 당황해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또 있으면 털어놓으세요. 알고 있는 모든 것, 하나부터 백까지 전부."

"……네, 지금 생각 중입니다."

"저는 돈과 시간이 아주 많아요. 제가 만족할 때까지 얼마든지 물고 늘어질 수 있죠. 그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네."

빈민석 부장은 귀신이라도 본 듯이 섬뜩함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일이 거듭해서 벌어졌다.

하수영은 부장급 이하 인물들을 대상으로, 이사급 이상의 과거 비리들을 하나하나 파헤쳤다.

***

거의 대부분 시효가 지난 범죄들.

민사 시효도 이미 끝났기에, 회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때문에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패배하여 승복한 이들도, 부담 없이 불 수 있었다.

기껏해야 인사 보복 조치만 할 수 있을 뿐, 민형사상으로 물 수 있는 책임은 없기 때문이다.

"근데 저런 옛날 일까지 자세히 조사했을 정도면, 시효 남은 비위들도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런 우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행복회로를 돌리면서 외면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은폐에 철저하지 못했던 옛날 비위들만 간신히 알아낸 것이라고, 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하수영은 빈민석 부장을 다시 불렀다.

빈민석 부장뿐만 아니라 부장급 이하 투항자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빈민석 부장님, 들어오세요."

빈민석은 복도에서 대기 중인 동료들을 결연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먼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자리에 앉자 하수영이 깍지를 낀 손에 턱을 괴고는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부장님이 살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부장님이 사사로이 챙긴 총액은 1억 2,000만 원입니다. 이자까지 적용하면 1억 8,600만 원. 별도의 보복성 손해배상금은 책정하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부장님 덕분에 확실히 밝혀낸 고위급 비리 규모가 32억 원이 넘습니다. 그 공을 참작하여……."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손해배상금, 이자 없이 깔끔하게 원금만 토해내세요. 그리고 퇴직금포기하고 사직하십시오. 그게 제 권고안입니다."

"가, 감사님. 협조하면 참작을 해주신다고……."

"맥스치로 참착을 해준 겁니다. 반론은 받지 않습니다. 받으세요."

하수영은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권고안 받으셔야, 부장님이 사십니다. 안 그러면 삼대가 멸…… 아무튼 받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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