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61화
140장 감사와 검사 듀오 (2)
요양이라도 온 것처럼 설렁설렁 지내던 임탁정 차장검사가 갑자기 눈에 불을 켜고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제주지검으로 부임하면서 차장으로 승진되었다.
남보다 차장을 일찍 단 편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전이 아니라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검찰 수뇌부의 결정이었다.
'옛다, 차장 달아줄 테니까 다시는 제주도 밖 벗어날 생각도 하지 말아라.'
이런 의미의 조기 승진이었던 것이다.
라테그룹 오너일가 마약 수사에 대한 보복 인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이기도 했고, 한동안 조용히 한량처럼 지내던 그가 전성기 때처럼 몸을 불태우며 수사에 매달리자, 제주지검장도 놀라서 불렀다.
"자네, 요즘 수사에 그렇게 열심이라면서?"
"네, 범죄를 인지한 게 있어서요."
"그렇다고 차장씩이나 달고 일선 수사에 직접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안 좋은 거 같네만."
"총장도 아닌데 일선 수사에 나선다고 문제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저 관행으로 그렇게 해왔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도 관행으로 그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제가 직접 나서야 끝까지 제대로 갈 수 있는 사이즈다 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자네가 일선 수사에 나섰다는 걸 서울에서 알게 되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이 많을 거야."
그 말에 임탁정이 갑자기 소리 없이 웃어젖혔다.
엄연히 지검장 앞에서 저질러선 안되는 무례였다.
"지검장님, 저 5대 재벌 가족도 정면에서 들이박은 사람입니다."
"……."
"저 때문에 라테그룹은 2,000억 넘게 손해 봤고, 회장 딸은 전국에서 마약쟁이로 소문나서 이제 얼굴도 못 들고 다닙니다."
진세주는 부친이 금지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창피해서 어디 외출도 못 하고 있는 지경이었다.
쇼핑이라도 할라치면 '마약쟁이래, 마약쟁이'라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것을 여실히 느꼈으니.
이미 그녀의 이름과 얼굴, 마약범죄는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지방으로 쫓겨날 거 각오하고 시작한 일입니다. 제가 서울 반응을 무서워할 거 같습니까?"
지검장은 임탁정의 뒤에 하수영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것은 검찰 내에서도 조성만 정도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다만 지검장은 이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252억…….'
임탁정 검사가 현금만 250억이 넘고, 총자산이 280억이 넘는 부자라는 것을.
자신이 퇴임하고 전관우대를 받아 수임료를 긁어모은다고 해도, 그 반의 반도 모으기 힘들 것이다.
임탁정은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다.
이미 5대가 부유할 수 있는 기반을 굳혔으니,
"무슨 건수인데 자네가 직접 나서는 건가?"
"대한외식업중앙회 비리입니다. 검찰하고는 상관없습니다."
"그런 협회도 있었나?"
"식약처 산하의 작은 사단법인 중 하나라 모르셨을 겁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요."
"……."
"그 작은 단체에서 백억 넘게 해처먹었다는데, 마침 제주도 소재 법인을 이용한 정황이 있더군요. 그래서 기분전환 할 겸 때려잡아 보려고 합니다."
"자네가 아니면 끝까지 갈 수 없는 사이즈라고 해서 걱정했었는데, 전혀 반대였군."
상대가 워낙 거물이라 다른 검사들은 끝까지 못 간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듣고 보니 반대로 검사들이 의욕이 나지 않아서 끝까지 못 갈사이즈 아닌가.
"알았네. 나도 그 이야기는 더 안하기로 하지. 그리고 자네 현금 252억은…… 내부감사 결과 문제없다고 소명이 났네."
같은 번호 10개를 수동으로 찍어서 당첨금 252억 원(실수령)을 얻었다.
비리로 보려고 할 만한 건덕지가 없었다.
만약 이게 비리라면 아예 로또사업전체를 샅샅이 털어야 할 판이다.
로또사업 운영 관계자들이 임탁정에게 특혜를 베풀어줄 이유도, 능력도, 정황도 전혀 없으니.
"네,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출발전에 샀던 로또가 당첨이 됐더라고요. 저도 제주공항 도착해서 조회하고 알았습니다."
"가슴이 벌렁벌렁했겠어."
"그래서 공항 떠나지 않고 바로 새벽 항공기 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당첨금 곧장 수령하려고 말입니다."
임탁정은 하수영이 보낸 닥터헬기를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재벌 권력도 무서워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우니까 하늘이 알아주시고 그런 복을 내려주시더군요."
"……그래도 이제부터는 조심하게."
지검장은 부디 자기 밑에 있는 동안, 이놈이 큰 사고를 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총장의 외압도 무시한 채 자기 길을 걷는 부하.
지검장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부담스러웠으니.
***
임탁정은 제주에 남은 대한외식업중앙회의 비리 흔적을 샅샅이 조사했다.
어느 정도 밑그림과 가닥이 잡히자 그는 출장을 신청하고 서울을 찾았다.
간판이 바뀐 (구)핀익스 클럽을 먼저 찾은 그는 하수영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젊은이들의 열기를 감상했다.
"좋을 때군."
하수영이 인수한 뒤, 가게는 정통클럽 느낌 분위기가 상당히 섞였다.
일탈과 유흥이 목적이 아닌, 음악과 여흥 그 자체를 더 중시하는 쪽으로, 문외한인 그의 눈에도 조명과 사운드, DJ에 특히 많은 신경을 쓴 티가 났다.
"서울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헬기라도 보내드렸을 텐데요."
"아닙니다. 출장길에 닥터헬기를 이용하면 괜한 오해를 살까 봐 그랬습니다."
짙은 단색의 캐주얼 복장을 입고 나타난 하수영은 금방이라도 저 젊은이들 사이에 끼어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 차림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덩치가 큽니다."
대한외식업중앙회의 비리 규모가 크다는 이야기.
하수영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요? 어떤데요?"
흥미가 잔뜩 담긴 눈빛이다.
"제주시에 설립된 법인들은 정부 지원금을 가로채기 위한 유령 법인들이었습니다. 10년간 그쪽으로 180억 넘게 흘러들어 갔고요."
"제주시만 그런 건 아니겠네요."
"네, 부산, 전라도, 강원도까지 합치면 250억 원은 족히 넘습니다."
"시효가 이미 지난 것도 상당하겠는데요."
"그중 150억 원 정도는 영영 돌려받을 수 없는 돈이 됐지요. 시효가 이미 지났습니다."
재벌 기업도 건드려본 임탁정 눈에 이 정도면 소소하고 귀여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닌, 하수영의 고발이었기에 그는 진심을 다해 열심히 조사했다.
"밑조사에서만 이 정도면, 제대로 털어보면 넝쿨째로 탈탈 털려 나올 겁니다. 한 번에 일망타진을 생각하신다면……."
"아뇨아뇨, 일망타진은 안 됩니다."
"예?"
"한꺼번에 다 끝나면 속이 시원하긴 하겠지만, 우리나라 법원이 경제범죄에는 원래 무척 관대한 거 아시잖아요. 기껏해야 집행유예 뜨고 벌금 몇백, 몇천이나 내고 끝이겠죠."
맞는 말이긴 한데, 임탁정은 갑자기 혀끝이 썼다.
"이런 건 형사가 아니라 민사로 해결을 해야죠. 일단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를 공유해 주세요."
"중앙회 감사 자격으로 자료 공유요청하시면 정식으로 응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런 건 정석대로 가야 패는 손맛, 아니, 나중에 뒷말이 안나오거든요."
분명히 패는 손맛이 좋다, 라고 말을 하려다가 만 것 같은데?
***
합법적으로 조사 자료를 공유받은 하수영은 대대적인 작업을 실시했다.
그는 가장 먼저 중앙회에서 15년 넘게 일한 호윤천 부장을 호출했다.
감사실로 불려온 그는 다소 주눅이든 채 하수영의 눈치를 살폈다.
저번 행사에서 박정빈 회장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면서 감사를 맡겠다고 공언한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과연 첫 질문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호윤천 부장님, 박정빈 회장을 오래 보필했지요?"
심지어 인사도 생략한 채 대뜸 질문부터 들어간다.
호윤천 부장은 이 자리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분이 중앙회장직을 연임하면서 꽤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긴 했습니다. 저 역시 직장생활의 상당수를 박정빈 회장 체제에 있었고요."
"돌려 말하지 않습니다. 우회 화법실시하지 않습니다. 간접화법 사용하지 않습니다."
"……."
덤덤한 말투였지만, 호윤천은 순간 정수리가 짜릿해졌다.
"질문에는 명확하고 직관적인 대답만 하거나, 그게 아니면 침묵합니다. 원치 않으시면 언제든지 일어나셔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가, 감사님."
"그러나 지금 이 자리가 정식 감사회부에 앞서는 사전소명 자리임을 주지하십시오. 일어나는 것은 언제 든 자유이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인지하시고요."
차분히 주시하는 눈빛에서 숨이 턱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박정빈 회장이 호통을 치며 화를 낼 때의 긴장감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12년 전, 제주시의 (유)호연스텔법인에서 8억 원이라는 미심쩍은 자금 흐름이 있는데, 실무집행자 이름으로 당시 호윤천 과장님이 되어 있군요."
"저는 아무것도 모릅……."
"아직 질문 안 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회계상으로는 정부보조금을 외부 법인 대금지출로 집행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정작 (유)호연스텔은 그 돈을 엉뚱한 업체들 인테리어 비용으로 지급했군요."
그 말에 호윤천 부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인테리어들을 전부 주관한 시공업체 사장이 공교롭게도 박정빈회장의 처남이네요?"
"그, 그게……."
"인테리어 정말 하긴 한 겁니까? 아니지, 그렇게 허투루 했을 린 없을 테고, 정말 8억 원어치를 한 게 맞습니까? 한 800만 원짜리 하고 거래 내역서에는 8억 원이라고 쓴건 아니고요?"
그 뒤로도 줄줄이 취조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호윤천은 어떤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들춰내는 비리 하나하나가 전부 정확하게 사실에 들어맞는다는 것에 그저 얼어 있었을 뿐.
정확한 대답을 못 하겠으면 차라리 침묵해라, 그 말이 호윤천에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아, 그리고 침묵도 일종의 대답입니다. 물론 제가 어떤 대답으로 해석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요."
"……."
"잊으셨을까 봐 말씀드리지만, 취조나 심문이 아닙니다. 정식회부에 앞서는 임시소명의 기회입니다. 강제권은 없으므로 언제든지 일어나셔도 좋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어찌 쉬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호윤천은 무려 3시간을 꼬박 자리에 앉은 채 날카로운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저, 감사님, 화장실 좀……."
"예, 얼마든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소명은 이제 끝입니다."
"예? 잠시 다녀오는 것도 안 되는 겁니까?"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당연히 박정빈 회장 측근들에게 보고하고 의논할 거 아닙니까? 그럼 더 소명기회를 줄 의미가 사라지는 겁니다. 그만 돌아가세요."
"아, 아닙니다! 계속 앉아 있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은……."
자리를 비운 틈에 다른 이들과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 말에 놀란 호윤천은 끝끝내 참아가면서 하수영의 질문을 받아냈다.
그리고 방광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됐을 무렵, 양해를 구하고 도망치듯이 화장실로 뛰었다.
욕구를 해소하자 나자 허탈함과 다급함이 섞인 채 밀려들었다.
"이대로 나가면 정말 내가 화장실가는 척하면서 회장님한테 몰래 보고한 게 돼버려."
화장실을 나온 호윤천 부장은 급히 뛰어서 감사실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감사실 유리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리고 유리문 안쪽에는 하수영이 다른 사람을 앉혀놓고 질의하는 광경이 보였다.
"……망했다."
호윤천을 시작으로, 하수영은 무려 52명이나 되는 인원을 상대로 질의 시간을 가졌다.
신임 감사의 호출을 감히 거부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감사실을 빠져나온 이들은 한결같이 등이 땀에 흠뻑 젖었다.
"와씨…… 지금 36시간째 한숨도 안 주무시고 계속 추궁하는 거 맞지?"
"맞습니다. 37시간이 넘었습니다."
"표정 변화, 자세 하나 흐트러짐없는 거 봐. 어떻게 저게 한숨도 못자고 추궁하는 사람 태도라고 할 수 있어?"
"정말 강철 체력입니다."
저런 왕성한 체력을 품은 사람이 칼을 뽑아 들었으니.
이제 얼마나 무시무시한 대숙청이 대한외식업중앙회를 훑고 지나갈까.
"하나같이 소름 돋게 정확한 질문만 하던데, 그 짧은 사이에 벌써 그 많은 내역들을 조사한 건가?"
"근데 부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말을 맞춰보니 추궁한 내용이 전부 다 옛날 일들입니다."
"옛날 일들?"
"예, 어차피 시효가 지나서 뭘 할 수도 없는 그런 것들만 콕 집어서 추궁하고 있습니다."
"나한테도 그런 것들만 묻던데. 그래도 다행 아닌가? 누가 허튼소리 하더라도 어차피 시효 지난 거니까 아무 상관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