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60화 (560/1,270)

프랜차이즈 갓 560화

140장 감사와 검사 듀오(1)

제주지검 차장검사 임탁정.

라테그룹 딸 진세주를 마약중독자로 전국에 개망신을 준 대가로 제주지검으로 발령 난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졸지에 기러기 아빠 신세였지만 외롭진 않았다.

아내와의 사이도 오히려 예전보다 돈독해졌다.

왜, 맨날 붙어사는 부부보다 주말부부가 더 애틋하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마냥 검찰 내부에서 밀려나 좌천된 것이었다면 가정불화가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지검으로 내려가던 날, 김포공항에서 샀던 로또가 당첨된 덕분에 그럴 일은 없었다.

"굳이 더러운 꼴 봐가면서 계속 검찰에 붙어 있어야 해? 그냥 그만두고 다른 거 하면 안 돼?"

"내가 출세하려고 사법고시 본 게 아니라 범죄자들 합법적으로 때려잡으려고 된 거야. 어떻게든 붙어 있어야지."

"전관예우 검사 부럽지 않게 이제 돈도 많은데 그만 뒀으면 해서……."

아내가 저런 말을 할 때마다 그는 속이 찔리곤 했다.

'진짜 다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건가? 내가 언제 말하나 한번 지켜보겠다는 거 아냐?'

원래 그는 1등 10게임에 당첨되었다.

다 합치면 실수령액 280억 원.

아내한테는 1게임만 당첨된 것처럼 둘러댔고, 28억 원을 아내 마음대로 활용하라고 주었다.

그런데 이따금씩 아내가 하는 말을 보면, 다 알면서도 보란 듯이 모르는 체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빨리 이실직고해, 빨리! 나 다 알고 있어!'

이런 기분이 든다고 할까?

"우리 그럼 갈게. 얘들아,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아빠, 몸 건강히 잘 계세요!"

"다음 주에 또 올게요!"

서울에서 제주도를 매주 왕복한다는 것은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임탁정의 가족들은 편안하게 서울 제주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언제 봐도 대단하군. 역시 1,400억의 포스는 장난 아니야."

청담수영병원 닥터헬기, 퀸 스텔리온.

그 위풍당당한 헬기 동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임탁정은 새삼 혀를 내둘렀다.

아이들은 또 헬기를 탄다고 벌써부터 좋아라 하며 난리도 아니었다.

옆에서 아내가 대견하다는 듯이 말했다.

"평생 스폰서 같은 거 거들떠도 안보더니, 우리나라 최고 개인 부자를 등에 업을 줄 누가 알았겠어."

"아, 그런 거 아니래도. 그냥 좀 친밀하게 지내는 사이야. 저번 수사에서 이것저것 제보도 많이 받았었고."

"그러세요. 알았어요. 그런데 남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을 해줄까?"

"아, 됐어. 그만하고, 설마 의원님 이야기 어디 가서 자랑한 건 아니지?"

"내가 바본가? 그 정도 사리분별은 할 줄 알아. 친정에서도 입 한 번 벙긋 안 했어."

아내는 불만스럽게 입을 삐죽였다.

"청백리 검사 아내로 산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 줄 알아? 뭐 하나 잘못 받았다가 큰일 날까 조심조심, 뭐 하나 잘못 말했다가 일 날까봐 또 조심조심."

"알았어, 미안해. 그래서 로또 당첨금 당신한테 다 줬잖아."

"그래, 다 줬지.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왜 음절마다 갑자기 힘이 들어가는거 같지?

특히 '다'와 '항상'이라는 부분에서…….

"의원님께서 헬기 지원해 주시니까 너무 편하고 좋아. 공항 갈 필요 없이 바로 집 앞에서 헬기 타면 끝이니까."

집 바로 앞에는 옥상에 헬기 이착륙장이 있는 고층 빌딩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매주 그곳에서 헬기를 타고 제주도 수영병원 임시분원 착륙장까지 직행한다.

이동 시간이라고 해봐야, 현관문을 나서서 임탁정을 만나기까지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만약 하수영의 헬기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매주 편안하게 얼굴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왜 부자들이 개인 제트기, 개인 헬기 같은 거 사는지 이해했어. 진짜 너무 편해. 우리는 언제 개인 헬기 사?"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럴 돈이 어딨어."

그의 통장 잔고에는 252억이 잠들어 있다.

엄청난 돈이긴 한데, 개인 헬기를 쉽게 거느릴 정도까지는 아니다.

"다음 주에 또 봐."

"알았어."

"술 많이 마시지 말고, 요새 제주지검 동료들하고 너무 어울리는 거 아냐? 룸싸롱 같은 데 다니는 거 아니지?"

"내가 언제 그런 데 다니는 거 봤어? 걱정 말고 어서 들어가기나 해."

"딴 년 생기면 내 손에 죽어."

그렇게 아침 일찍 가족들을 배웅한 임탁정은 산뜻한 기분으로 출근했다.

사무실에 출근하자 사무관 등 직원들이 얼른 일어나서 인사했다.

"출근하십니까, 검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검사님."

"그래요, 다들 좋은 아침. 거, 일어나서 인사하지 말라니까. 꼭 무슨 군기 잡는 조폭 같잖습니까."

"이게 습관이 돼서 그만……."

50대의 사무관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어설프게 웃었다.

임탁정은 그렇게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소소한 나날이었다.

형사사건이라고 해봐야 웃음이 나올 만한 자질구레한 것들뿐이었다.

임탁정은 오랜만에 휴식을 취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제주지검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인망도 많이 얻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흑우 한번 구워보고, 싶은데, 혹시 같이 갈 직원들 있습니까? 내가 삽니다."

"아유, 흑우 구우신다는데 당연히 참석해야죠. 늘 감사합니다, 검사님."

1인분에 7만 원이 넘어가는 소고기를 거리낌 없이 사주는 중앙 발령검사.

그는 거느린 직원들 사이에서 밥잘 사주는 성격 좋은 검사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다른 검사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무척 부러워하고 있었다.

"와, 그게 정말이야? 라테그룹 딸진세주 마약수사로 전국에서 개망신 시킨 게 임탁정 검사님이라고?"

"그렇다니까. 칼 제대로 빼 들고 끝까지 라테그룹을 난도질했잖아. 그 마약 스캔들 덕분에 라테그룹이 잠정적으로 본 손해가 2,000억 원이 넘는대."

"항상 부처님처럼 웃고 다니셔서 저런 검사도 있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야차 중의 야차였네. 재벌을 상대로 눈 한 번 깜짝 않고 그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지다니."

"원래 힘 있는 사람 앞에서나 야차였대. 잡범이나 소시민 앞에서는 그렇게 부처라고 하더라고."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하고, 좋네. 이상적이야."

"비싼 밥도 잘 사주시지. 원래 집안에 돈이 많았나 봐."

"어쩐지 사모님도 되게 미인이시더라."

"매주 아이들 데리고 얼굴 보러 오는 거 보면 알지. 주말마다 가족들끼리 좋은 데만 골라서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닌대."

"부럽다."

임탁정은 제주지검에서 그런 평판을 얻었다.

원래 집안이 매우 부유했고, 재벌이라고 해서 범죄를 절대 봐주지 않으며, 정의감에 불타지만 가족 사랑도 끔찍한 다정다감한 남자라고,

"임탁정 검사님, 지검장님 호출입니다."

"알았어, 지금 바로 올라가지."

호출을 받은 임탁정은 잠시 일을 멈추고 지검장실로 향했다.

"오, 임검. 어서 오게. 그래, 가족들은 잘 배웅했고?"

"네, 아침에 반차 써서 배웅하고 바로 출근했습니다."

"외기러기 생활 하느라고 고생이 많네. 그런데 말이야……."

지검장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치였다.

"감사실에서 보고가 들어왔는데, 자네가 현금으로 250억 넘게 들고 있다고……."

"아, 네. 사실입니다. 공직자 재산목록에도 등록을 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라는 듯이 태연히 반문하는 모습에 지검장은 묘하게 압도되었다.

"아, 듣자니 원래 자네 재산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하던데. 이번에 갑자기 확 뛰어오른 거라고……."

"로또에 당첨된 겁니다."

"……로또?"

"네, 이미 세금까지 원천징수 다된, 1원 한 푼도 틀림없이 깨끗하게 신고 된 당당한 돈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검장 앞에서는 이렇게 쉽게 술술 말이 나오는데, 아내 앞에서는 왜 벙어리가 될까.

역시 처음에 숨기지 말고 바로 말을 했어야 했나?

"로또 당첨금이라고? 250억 원이 넘는 금액이 전부? 그게 말이 되나?"

"같은 번호로 여러 장을 샀습니다. 얼마든지 소명할 수 있습니다."

"그, 그런가."

지검장은 당첨금이라는 말에 황당했지만, 상대가 전혀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나오니 더는 문제를 삼을 수 없었다.

"내가 혹시나 해서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건데, 스폰서한테 받은 그런 거 아니지? 지금 중앙에서 공직자윤리로 한창 시끄러워서 말이야. 다들 몸 사리는 분위기라고."

"네, 전혀 문제 될 거 없습니다.

이거 잠시 보시겠습니까?"

임탁정은 스마트폰을 찍어둔, 당첨금 수령증서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제야 지검장은 안도한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야. 근데 자네 정말 행운이군. 어떻게 280억이라는 큰돈에 당첨이 되나?"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재벌 아들 딸로 당첨되는데, 280억 당첨이 대한민국에 뭐 그리 대수입니까."

"하긴, 그렇기도 하군."

"비밀 부탁드립니다."

"그건 걱정 말게. 아, 혹 나중에 소명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 염두에 두고는 있어."

"네, 지검장님."

"자네는 다른 검사들처럼 퇴임 후를 걱정할 필요도 없어서 좋겠군."

"저도 그 걱정은 합니다. 돈이 주제에 들어 있지 않을 뿐입니다."

지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왜 그가 서울에서 밀려났는지 진면 목을 조금 엿본 기분이었다.

지검장실을 나온 임탁정은 폰에 하수영의 번호가 발신인으로 뜨자 급히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의원님. 임탁정입니다."

-가족들 배웅은 잘하셨나요?

"덕분에 잘 배웅했습니다. 항상 고맙고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검사님 덕분에 화이트 스카치 마약을 근절할 수 있었는데요. 우리 클럽에 큰 도움을 주셨죠. 그 정도야 별거 아닙니다.

"이번에 대학 들어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과는 아예 다르지만 이제 우리는 동문이네요. 그렇지 않나요?

"그렇게 되는군요. 부끄럽지 않은 동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 제가 이번에 대한외식업중앙회 감사로 선임이 됐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축하드립니다."

임탁정은 그게 뭐하는 곳인지는 몰랐다.

이름을 들어보니 외식사업 관련된 협회구나 싶었던 게 전부였다.

-그간 회계 비리 내역을 열심히 뒤져보고 있는데요. 어휴, 눈먼 돈 해먹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금액도 백억 단위가 넘어가고요.

"대한민국의 흔한 협회의 모습이군요. 놀랍지도 않습니다."

-이거 제주지검에 고발하려고 하는데, 검사님이 맡아주실 수 있나요?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저희 지검 관할이 아닌 거 같습니다."

-돈 빼먹은 내역 들여다보니 제주도 소재지로 한 법인이 여럿 나오더라고요.

그 순간 임탁정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제주시의 세제지원을 노린 우회소재지 등록이군요. 그런 연관성이 있다면 제가 건드릴 명분이 충분히 되겠습니다."

-정리한 자료를 보내드릴 테니, 수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정식으로 고발하는 겁니다.

"물론입니다. 고발 서류는 제가 작성해서 보내드릴 테니 확인하시고 사인만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참, 조성만 검사님은 혹시라도 끌어들이지 말아 주세요.

"설마 그 녀석이 여기에 관련이라도……."

-여자 생긴 거 같더라고요. 한창 좋을 때 같은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임탁정은 속으로 감동했다.

이 얼마나 다정함 넘치는 배려란 말인가.

'성만이 너 이 녀석, 정말 좋은 후원자 만난 줄 알아야 한다.'

-저승까지 곡소리 들릴 정도로 시원하게 털어주실 수 있죠?

"염라대왕이 무슨 일인가 놀라서 이승까지 내려올 정도로 탈탈 털어 보이겠습니다. 그간 너무 오래 쉬었겠다, 칼날 정비도 한번 할 때 됐습니다."

사람 좋아 보이던 눈동자 속에서, 야차의 기운이 한순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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