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55화
139장 협회는 즐거워 (2)
85%만큼 주인.
호텔은 프라임컴퍼니 명의로 매입했으니, 하수영은 호텔 지분의 85%를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배수홍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놀란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이런 큰 호텔을 갖고 있는 신입이었을 줄이야.
"여기 호텔 못해도 7,000억 원은 할 텐데……."
"그런가요? 거래를 제가 한 게 아니라서 전 가격은 잘 몰랐습니다."
"자네, 아니, 젊은 사장님. 생각보다 엄청난 분이셨군요."
배수홍은 언제 말을 편하게 했느냐는 듯이 곧바로 머리를 숙였다.
다른 회원들은 풀코스 요리에 벌써부터 흥이 나서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 입맛에 맞는 한식 위주로 준비된 풀코스 요리였다.
"우리 임대인협회는 사장님처럼 귀하신 분께서 찾으시기에는 너무 누추한 단체입니다."
배수홍은 측근이라도 된 것처럼 깍듯한 저자세였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다.
"아닙니다. 우리 모두 다 같은 임대인인데, 귀하고 누추하고 말 게 뭐가 있습니까."
"다 같은 임대인이라뇨, 어떻게 저 같은 무지렁이가 사장님 같은 귀하신 분과……. 아이고, 아주 귀한 곳에 저희 같은 누추한 것들이 찾아들었군요."
"비밀로 해주세요. 다른 분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철통같이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비밀로 해달라.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극적으로 밝혀서 시선을 끌고 싶다.
그 둘이 같은 의미라는 것을 이해 하기에, 배수홍은 아직 하수영을 겪어보지 못했다.
"이거 괜히 밝혔나요? 배수홍 사장님께서 저를 너무 어려워하시는 거 같아서 제가 괜히 부담이 됩니다."
"아니, 아닙니다! 괜히라니요! 이게 다 제가 정신수양이 부족한 탓……!"
"그럼 아까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다른 분들이 이상하게 보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하겠네!"
언제 그랬냐는 뜻이 또 태도를 바꾼다.
상황 적응력이 상당한 사람이다.
자영업을 하기에 최적화되었다고 할까.
배수홍은 측근이라도 된 것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열심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털어놓았다.
"우리 협회가 중개사협회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네."
중개사협회가 본진일 텐데,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 말하고 있다.
"우리 협회는 친목 동호회에 가까워. 반면 중개사협회는 아유, 말도마. 거긴 정글 무법지대야, 정글!"
"그 정도인가요?"
"그 작은 협회에 파벌만 10개가 넘어가고, 일 년에도 몇 개씩 파벌이 새로 생겨났다가 없어지고, 아주 난리도 아닐세."
"흐음."
"그래서 젊은 중개사 중에는 기본 회비만 내고 얼굴도 안 비치는 친구들이 많아. 얽혀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배수홍은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임대인협회 참여하시다 보면 중개사협회에서 입질 들어올 텐데, 조심해."
"참여하시다 보면, 은 또 뭔가요?"
"아차차, 미안. 아무튼 돈 많은 건물주는 또 귀신같이 알아보고 물고 늘어지거든."
"절 위해서 일하시는 중개 전문가가 한 분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본인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지. 나는 언제나 젊은 사장님을 향해 몸과 마음을 열어두겠네."
하수영은 청담동 부동산 쪽에서는 유명하다. 모르면 간첩이다.
강남권으로 확장해도 웬만한 부동산 관계자들은 그의 이름을 안다.
하지만 배수홍은 잘 모르는 눈치였다. 새삼 왕세경 회장의 말이 생각났다.
-멸치들 노는데 범고래가 가서 뭐 하려고? 알아보지도 못할걸?
임대인협회가 르주블랑 호텔에서 모임을 갖지 않았다면, 하수영도 참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자신도 임대인이다 보니, 임대인협회는 어떤가 싶어서 온 것인데.
"이번 모임은 특히 많이 모인 거야. 보통 이렇게 많이 모이지 않아."
"그래요? 이게 많은 겁니까?"
세 자릿수.
적은 수는 아니지만, '전국임대인 협회'라는 이름치고는 조촐한 편 아닌가?
"지방에서 많이들 올라오셨지. 장소가 강남 특급호텔이라서 다들 이 참에 알차게 놀아보자 하고 올라온 모양이야."
"그런데 다과 메뉴를 준비한 거군요?"
"하하, 협회가 돈이 없어서. 그래도 원래 저녁에 김정주 어르신이 자기 식당에서 소고기 크게 쏘실 예정이라고 하셨어."
"오, 그런가요?"
"김정주 어르신이 그래도 협회를 위해 사비 털어서 이것저것 많이 하시지. 그래서 다들 어르신의 권위를 존중하는 거고."
하수영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다독이는 김정주를 새삼 다시 봤다.
회원들은 김정주 덕분에 좋은 음식을 공짜로 먹는다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김정주가 사비를 털어서 메뉴를 업그레이드한 줄 알고 있었다.
"내가 슬쩍 물어보니, 김정주 어르신은 그냥 풀코스 요리가 연회장 패키지에 당연히 포함된 걸로 오해하고 계시더군."
"놔두세요. 굳이 나서서 잘난 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철통같이 비밀 지키겠네."
"근데 협회장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저기 구석에 있는 저 존재감 없는 노인 보이나? 저분이 협회장님이야."
"외부인이 보면 김정주 어르신이 협회장인 줄 알겠습니다."
"신입들은 대부분 그렇게 오해해. 나중에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지. 뭐, 친목 동호회나 마찬가지인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는가."
"괜찮으시면 중개사협회도 한번 가볼 수 있을까요? 거기 분위기도 궁금한데."
"그러지. 내가 안내해 줄게."
배수홍이 하수영과 함께 일어나자 김정주가 언제 봤는지 바로 달려왔다.
"너, 배수홍이! 내가 우리 신입한테 괜히 헛바람 넣지 말라고 했지!"
"아이고, 어르신. 그런 거 아닙니다."
"그리고 신입, 자네도 조심해야 해. 일단 잘 모르는 곳에 왔으면 3개월정도는 조용히 분위기만 살피고 허허실실을 잘 구분하게. 그래야 나중에 뒤통수 맞지 않어."
"조언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거 음식들 보니까 아주 비싸고 좋아. 대관료가 비싼 이유가 있다니까. 자네들도 이럴 때 얼른 들어."
"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하수영은 자기 앞에 쌓인 빈 접시를 가리켰다.
일반 대식가의 몇 배는 될 듯한 빈접시를 보고 김정주는 끄덕였다.
"식성이 아주 좋구먼. 큰일을 할 친구일세."
"어르신, 그럼 저희는 다녀오겠습니다."
"수홍이 너, 내가 지켜볼 거야. 신입한테 이상한 바람 넣지 말라고, 알았어?"
"그럼요, 어르신. 제가 언제 누구사기치거나 손해 끼치는 거 보셨습니까?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그렇게 배수홍과 하수영은 연회장을 나섰다.
중개사협회는 바로 아래층이기에, 둘은 계단을 이용했다.
***
"오, 여긴 화려하게 잘해놨네요. 현수막도 저렇게 크게 걸어두고."
"동호회에서 큰마음 먹고 호텔 연회장 빌린 것과는 천지차이지. 그리고 주의할 게 있는데……."
배수홍은 목소리를 낮춰서 소곤소곤 말했다.
"여기 협회장을 조심하게."
"어떤 이유입니까?"
"욕심이 장난 아니야. 늙은이가 아주 돈이라면 환장을 해요. 우리 하사장님, 아니 자네가 여기 호텔 주인이라는 거 알면 눈빛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
"제가 돈만 보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그동안 얼마나 겪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차차, 그렇겠군. 내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법을 연설하고 있었구먼. 민망하네."
온통 황금색으로 치장한 하수영의 옷차림은 당연히 눈길을 끌었다.
몇몇 이들은 탐색하듯이 하수영의 위아래를 훑고 있었다.
'누구지?'
'중개사는 아닌 거 같은데?'
'위층에서 내려온 걸 보면 임대인 협회 회원인가? 신입?'
'미국에서 복권이라도 맞았나?'
다들 갖가지 상상과 추정을 품던 중, 50대의 중개사 한 명이 일어서서 다가왔다.
"배 사장, 여기 이분은 누구신가?"
"우리 협회 회원은 아니시고요, 임대인협회 신입 회원이신데 중개사협회 이야기 듣고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제가 모셨습니다."
배수홍은 하수영을 향해 중개사를 소개했다.
"사장님, 여기 이분은 장백철 사장님입니다. 인품 좋으신 분입니다."
하수영은 말뜻을 알아들었다.
'협회장하고는 무관하다는 뜻이구나.'
"안녕하세요. 하수영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오, 좋은 이름을 가지셨군요. 청담동 부동산 재벌하고 같은 이름이네요. 그러고 보니 나이도 비슷하시네."
강남 중개사들 사이에서 하수영의 이름은 유명한 편이다.
하지만 정작 얼굴은 잘 모른다.
하수영은 처음부터 줄곧 우형신하고만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그 청담동 재벌 청년이 임대인협회 같은 곳에 참가할 리가 없지. 구의회 일만 해도 바쁠 텐데.'
장백철 사장은 그저 우연히 이름이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워낙 흔한 이름이기도 했으니.
"그런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많이 뜨겁군요."
하수영은 테이블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곳곳에서 회원들이 붉어진 얼굴로 언성을 높이면서다투고 있었다.
평화롭던 임대인 동호회 분위기와는 180도 상반된 분위기였다.
장백철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번에 정부에서 중개수수료율 상한선 낮춘다고 했잖아요. 그거 때문에 회원들이 전체적으로 기분이 안좋습니다."
"오, 그랬습니까?"
"수수료율 문제는 임대업하시는 분입장에서도 관심이 많으실 텐데, 모르셨습니까?"
"수수료율 상한성을 따져본 적이 없어서요. 제 거래 관리해 주시는 분하고는 언제나 협의로 결정을 했습니다."
"오, 좋은 중개사분을 만나셨군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상한선으로 따졌으면 열 배는 넘게 드렸을 텐데, 덕분에 수수료를 많이 아낄 수 있었지요."
"열 배나요?"
장백철은 하수영이 누구인진 몰라도 순진한 호구 중개사를 물었다고 생각했다.
'젊은데도 제법인데?'
배수홍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장 사장님, 이왕 이리된 거 여기 하수영 사장님한테 그분 소개 좀 시켜드리시죠."
"그 양반은 근데 더 이상 다른 임대인 의뢰는 받지 않으시지 않나?"
"그거야 규모 작은 거래는 번거로워서 더 이상 취급하지 않으시는 거고요. 제가 장담합니다만, 여기 이분은 규모가 달라요. 달라."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
하수영의 질문에 장백철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형신 중개사라고, 우리 중개사협회에서 전설로 손꼽히는 입지전적인 분이 계십니다. 말도 안 되는 초대형 거래를 수십 번도 넘게 성사시키셨죠."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그분이 최근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성사시킨 거래 규모가 자그마치 10조 원 가까이 됩니다."
"그렇군요."
"마침 저기 오는군요. 우 사장! 여기 한 번 앉으시게!"
"장 사장? 나는 갑자기 왜……. 푸웁!"
무심코 고개를 돌린 우형신은 남들이 보지 못하게 작게 손을 흔드는 하수영을 보고 사레가 들렸다.
'아니, 왜 거기에 계십니까?'
'잠시 놀러왔어요.'
'…….'
눈빛으로 그런 대화를 나눈 후, 우형신은 어쩔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다가왔다.
"누군가 했더니 우형신 사장님 말씀하신 거였네요."
"뭐야? 둘이 아는 사이였습니까?"
"예전에 제가 집 구할 때 우형신 사장님 소개로 얻었습니다. 가게 낸다고 했을 때도 우 사장님이 많이 발품 뛰셨죠."
어디에도 거짓말은 손톱만큼도 없다.
"아, 그랬군요. 그런 줄도 모르고 실없는 사람 될 뻔했습니다."
원탁에는 우형신까지 끼어 앉았다.
넷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장백철과 배수홍은 중개수수료 감소로 줄어들 수입을 걱정했다.
"협회에서 뭔가 나서줘야 하는데, 회비만 걷어가고 하는 건 전혀 없으니."
"그러게 말입니다. 그 많은 공금다 어디에 썼는지 회계 내역 밝혀달라고 해도 달랑 PDF 파일 하나 공개하고 끝이니. 이러니 협회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있습니까?"
"협회장을 갈아야 한다니까. 우 사장, 제발 부탁일세. 다음 협회장 선거에 자네가 나서서 10년 넘게 해 처먹는 저 노인네 좀 시원하게 쫓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