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54화
139장 협회는 즐거워 (1)
병원을 나온 하수영은 먼저 우형신 중개사 사무소를 들렀다.
사무소를 찾으니, 우형신도 평소보다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어, 사장님? 오늘 중요한 약속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네, 오늘 중개사협회 모임이 있어서요."
"아, 그래요? 저도 오늘 임대인협회 모임이 있는데."
"같은 장소입니다."
"그래요? 몰랐네요.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두 모임이 종종 같이 패키지로 열리기도 하거든요. 연관성이 깊다 보니 그렇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근데 임대인협회는 수영 사장님께서 참여할 만한 사이즈는 아닌 거 같습니다만."
우형신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갸웃거렸다.
온통 황금색으로 치장한 졸부 컨셉의 패션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왜요? 그래도 전국의 임대인들을 대표하는 그런 자리잖아요?"
"사이즈 나오는 강남 빌딩주들은 아마 찾아보실 수 없을 겁니다. 대표성을 가진다고 보기에는 어렵죠. 머릿수는 물론 많습니다만……."
"그래도 명색이 임대사업자니까 임대인협회라는 곳에 한 번쯤 발도 담가봐야지요. 그동안은 임대사업자로서 내세울 만한 게 별로 없어서 몸을 숙이고 있었습니다."
"수영 사장님이 고개 숙이시고 다니시면 대한민국에서 임대사업자들은 죄다 물구나무 짚고 다녀야 할 겁니다."
우형신이 알기로 하수영이 보유한 '넘버링 부동산'은 모두 62채.
'넘버링 부동산'은 63호기까지 있지만, 19호기는 아직 구매에 성공하지 못했으므로 62채다.
62채의 부동산을 구매하는 데 대략 7조 원을 썼다.
수수료, 취득세, 등기비 등 부수지출은 제외하고, 순수한 매매대금만 그렇다.
넘버링을 부여받지 못한, 직원 기숙사 용도의 부동산들은 아예 제외하고 따진 것이다.
'다 합치면 8, 9조는 거뜬하지. 나도 계산을 한번 해봐야겠는데.'
그런 사람이 '그동안은 제가 내세울 게 없어서'라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럼 같이 가실래요? 제가 태워드릴게요."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차 한 대로 같이 가면 편하잖아요. 부동산 이야기할 것도 많고요."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우형신은 들뜬 기분으로 하수영의 캠핑카 조수석에 탔다.
"저도 나중에 이런 근사한 캠핑카한 대 꼭 사고 싶습니다."
"좋아요. 일단 세단보다 교통사고에서 훨씬 안전하거든요. 화물차가 옆으로 지나가도 전혀 무섭지 않으니까요."
"부산에서 슈퍼카가 전속력으로 들이박았는데도 멀쩡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놀랍습니다. 그 가해자는 아직도 병원 신세인가요?"
"하반신 마비입니다.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할 겁니다."
"저런, 젊은 나이에……."
"있는 집 자식이라서 사는 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전에도 음주운전으로 애꿎은 사람 두 명 불구로 만는 친구예요. 평생 침대에 누워서 지내는 게 다른 사람 살리는 겁니다."
"하긴, 음주운전도 습관이라고 들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그러면 나중에 어땠을지는 볼 만하겠습니다."
***
어느덧 캠핑카는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우형신은 혀를 찼다.
"르주블랑 호텔 연회장이라니…… 중개사들이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 그거 회비 걷어서 이렇게 펑펑쓰는 게 말이 됩니까?"
"매달 회비가 어떻게 되시죠?"
"월 15입니다. 이건 기본이고, 그 외에도 특별회비나 회계지출이라고 해서 이것저것 많이 걷어갑니다."
우형신은 혀를 차며 화를 감추지 않았다.
"중개사 회원들의 피와 땀으로 협회 수뇌부가 사치를 부리고 있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거죠. 다 갈아엎어야 합니다."
"협회 비위가 심한가 보네요."
"말도 마십시오. 중개사협회가 사무쪽 협회 중에서 더럽기로는 적폐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덩치가 작아서 주목을 못 받을 뿐이죠."
"그 말은 전에도 얼핏 들었어요."
왜 협회를 나오지 않느냐,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개인 회원들로서는 협회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
우형신이 아무리 청담에서 잘나가는 중개사라 해도 개인이 조직을 거스를 순 없다.
"그래도 협회 타이틀이라도 있어야 정부 같은 외부에서 규제나 견제 들어올 때 맞설 수 있으니까요. 울며 겨자 먹기입니다."
"그렇군요."
연회장은 서로 다른 층이었다.
중개사협회가 임대인협회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 규모가 큰 연회장을 빌렸다.
"임대인협회는 돈이 없나 봐요?"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알짜배기는 거의 없다고요. 거긴 그냥 친목동호회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형신은 그렇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네, 중개사님도요."
그렇게 잠시 헤어진 하수영은 임대 인협회 연회실로 향했다.
세 자릿수에 달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에 앉아 있었다.
'뭐야? 원탁도 아니잖아?'
무슨 결혼식장 뷔페마냥 긴 직사각형 탁자가 여럿 놓여 있었다.
그래도 호텔 연회실인데 보통은 원탁을 놓지 않던가?
'머릿수가 많아서 어쩔 수 없었나?'
사람 수에 비해서 연회실 규모가 작다.
어떻게든 장소로 구색은 내고 싶어서, 호텔 연회실을 빌리고 빽빽하게 앉힌 모양이다.
하수영이 들어서자마자 일제히 연회장 내의 시선이 쏠렸다.
다들 하나같이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저 친구는 뭐야?'
'아니, 무슨 복장이 저래?'
'조폭 신입이라도 되나?'
'보아하니 선산이 개발돼서 보상금으로 대박 났나 보네. 쯧쯔……. 전형적인 졸부로군.'
'임대인협회라고 부리나케 달려온 거 보면 뻔하지.'
하수영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쏟아지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던 중년남 회원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회원님은 오늘이 모임 첫 참석이신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예, 그렇습니다. 처음입니다. 가입비도 이번에 처음 냈습니다."
"으음……. 보통 젊은 사람들은 우리 협회에 잘 안 들어오는데. 고리타분하다고 다들 싫어하거든. 근데 회원님은 의외네."
"혼자서 임대사업하다 보니 가끔 이것저것 부딪칠 때가 있어서요. 그럴 때 의지가 될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가입했습니다."
"열정이 꽤 있는 거 같은데, 지내다 보면 실망하게 될 거야. 우리 협회는 사실 이름만 거창하지, 그냥 친목 모임이나 마찬가지거든."
"그렇군요."
"난 배수홍이라고 하네. 자네는 이름이 뭔가?"
"하수영입니다."
신선한 젊은 피 수혈에 자극을 받았는지, 중년 남자는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다.
"저기 저 머리 벗겨진 노인 보이지? 검은 바지에 푸른색 상의 입은."
"네."
"김정주 어르신인데, 저분이 우리 협회원 중에서 제일 부자야. 토지건물 다 합쳐서 한 400억 된다고 하지, 아마?"
"그렇습니까?"
하수영이 깜짝 놀랐다는 듯이 반문하자 배수홍은 흐뭇해서 피식거렸다.
"그래, 엄청나지? 그래서 협회 주도권은 저 양반이 꽉 쥐고 좌지우지하고 있어."
"임대인협회에서 제일 잘나가는 회원이 400억대 자산가라니……."
하수영이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배수홍은 그것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이가 무척 젊은 거 같은데, 몇 살인가?"
"스물둘입니다."
"혹시 영업하러 여길 가입한 거라면 다른 곳을 찾아보게. 여긴 영업에는 적당하지 않아."
"영업이라니요?"
"역시 아닌가 보군. 긴가민가했는데 확실해."
하수영은 이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물려받은 자산이 상당한가 보네?"
"땅은 물려받은 게 없습니다. 대신 물려받은 것을 활용해서 돈을 벌어서 건물을 몇 채 샀죠."
"오, 건물. 그거 좋지. 어디에 있는 건물들인가?"
"청담에 몇 채 있습니다."
"오, 청담!"
배수홍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무리 작은 건물이라고 해도 청담에 건물이 몇 채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다.
"이거 어쩌면 자네가 김정주 어르신보다 더 자산가일 수도 있겠는데?"
하수영은 웃기만 할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 태연함에서 배수홍은 확신을 얻었다.
"자, 여기 내 명함이야. 필요하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시게."
"네, 감사합니다."
"비록 강남은 아니지만 내가 좋은 매물 많이 쥐고 있으니까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게."
"좋은 매물이요?"
"응, 나 부동산 중개도 겸업으로 하거든."
"……."
"모든 협회 회원들은 이 배수홍이로 통한다, 이런 말도 있을 정도일세. 다들 내 소개받아서 좋은 매물많이 건졌거든, 허허."
그제야 하수영은 '여긴 영업에 적당하지 않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중개사 겸 임대인이셨어요?"
"에이, 임대인 겸 중개사라고 해야지. 순서가 잘못됐잖은가."
그때 머리가 벗겨진 400억대 자산가 김정주 노인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타박했다.
"이봐, 배수홍이. 또 신참 붙잡고 영업하고 있나? 내가 한 번만 더 그러면 협회에서 쫓아낸다고 했어, 안 했어?"
"아이고, 어르신. 그게 아니라 협회에 관해서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신참한테 눈도장 찍었으면 이만 내려가 봐. 자네 본진 놔두고 여기에서 뭐하나?"
"에이, 여기도 본진이고 거기도 본진인 거지요."
김정주는 혀를 쯧쯔 차면서 하수영을 돌아보았다.
"신입 회원인가 봐?"
"네, 그렇습니다. 어르신."
하수영은 공손히 대답했고, 김정주는 못마땅한 듯이 배수홍을 흘끗 보고는 말했다.
"여기 이 친구는 임대인 껍질을 덮어쓴 중개사니까 자네도 그리 알고 조심하게."
"아이고, 어르신. 그렇게 매정하실 것까지야……."
"우리 협회는 이런 친구들이 절반 이상이야. 임대사업은 보조로 하고생계용 본업은 다 따로 있지."
"아, 그런가요?"
"옷차림 보아하니 최근에 돈벼락좀 맞은 모양인데 그렇게 입고 다니면 그런 놈팽이들 먹잇감이 되기 딱 좋아. 벌써 하나 달려들잖아?"
"괜찮습니다."
"수홍이 자네는 뭐 해? 얼른 안내려가고?"
"예. 다녀오겠습니다, 어르신."
배수홍은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고는 연회장을 나갔다.
"아래층 중개사협회 가는 거야. 저 친구, 중개사가 본업이거든."
"그렇군요."
"임대인협회하고 중개사협회하고 아무래도 연관성이 깊다 보니 대가리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편이지."
"사실 우리 협회는 별로 대단할 게 없어. 그냥 친목 모임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 말은 들었습니다."
"그래도 정책 방향이라던가 정보 교환은 알차게 이뤄지는 편이니까. 딱 그것만 생각하면 손해 봤다는 느낌은 없을 거야."
"네, 어르신."
"그래도 신입인데 내가 좋은 정보 하나 줘야겠군. 자네, 현금 좀 있나?"
"쓸 만큼은 있지요."
"그걸로 경기도 항성동 쪽에 땅 좀 사놓으면 나중에 좋을 거야."
항성동이라는 말에 하수영은 살짝 의아했다.
"거기는 서진파운드리 공장 근처 아닌가요?"
"자네도 알고 있군. 긴말 필요 없겠군. 그 반도체 공장을 중심으로 경기도에서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할 수도 있어."
"……."
"확실한 건 아니지만 나와 친구들 예측은 그렇다네. 그러니 항성동 쪽에 땅 좀 사놓으면 늦어도 10년 후에는 꽤 남길 수 있을 거야."
"조언 감사합니다, 어르신."
잠깐 말을 나눠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 듯하다.
김정주는 이리저리 테이블을 옮겨다니면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다지는데 한창이었다.
"김정주 어르신께서 내 욕 많이 하시던가?"
어느새 돌아온 배수홍이 슬그머니 앉으며 물었다.
"아니요. 항성동 쪽을 한번 눈여겨 보시라고 충고 주셨습니다."
"흐흐, 항성동. 핫 플레이스 중에 하나지. 서진파운드리 공장하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서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하면 반드시 이득을 볼 거란 말이지. 혹시 관심 있으면 내가 나대지 몇 평 소개시켜 줄까?"
"괜찮습니다."
"서진파운드리는 지금 공장 규모가 너무 작아. 앞으로 잔뜩 수주가 몰릴 텐데,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결국 공장을 증설할 텐데 그럼 항성 동도 언젠가는……."
"그쪽은 별로 관심 없어요."
그 뒤로도 이것저것 권유했지만 하수영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배수홍은 실망한 안색이었다.
그때 요리사와 호텔리어들이 음식 카트를 끌고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음식 세팅을 시작하자 회원들은 다들 눈을 비비며 놀라워했다.
배수홍도 놀라워했다.
"아니, 저게 다 뭐지? 오늘 식사없고 다과만 하는 거 아니었나? 연회장 빌리느라고 이번 달 치 비용 다 썼다고 들었는데……."
"제가 배고파서 혼자 먹기 뭐해서 메뉴 업그레이드해달라고 했습니다. 과자와 차만 먹으려니까 당이 쭉쭉떨어지네요."
"메뉴 업그레이드? 설마 자네 사비로?"
"그냥 서비스로 해주던데요."
"아니, 인당 10, 20은 넘을 텐데 그걸 서비스로 해준다고?"
"이 호텔이 제 거라서요."
배수홍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
"진짜야?"
"저도 마침 제 호텔에서 협회 모임한다니까 안 올 수가 없더라고요."
"진짜 이 호텔 자네 거야?"
"네, 85%만큼 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