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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553화 (553/1,270)

프랜차이즈 갓 553화

138장 아무도 못 데려간다 (4)

분명히 말했다.

'저승을 다스리는'이라고, 그 순간 왕세경은 불같이 머릿속을 치는 단어가 있었다.

"염라대왕?"

"이승에서는 그렇게들 부르더군. 하지만 보통 저승의 대왕이라고 부른다네. 성주신, 자네가 편하신 대로 부르시게."

노인은 태연히 옆에 앉았다.

왕세경은 처음으로 몸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마음까지 굳어 있지는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는 끝없는 불길이 마구잡이로 솟구치고 있었다.

"염라대왕, 우리 병원 환자들은 아무도 못 데려가오."

"사람이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흐름일세. 성주신 자네는 왜 그것을 거스르려고 하는가?"

"나는…… 그저 가여운 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듬어주려 했을 뿐이 오."

"그래서 이승을 떠나야 할 이들을 그렇게나 많이 강제로 붙들어놓은 건가?"

"……"

"자네는 너무 많은 운명을 강제로 바꿔놓았네. 그 바람에 이승과 저승의 법도가 지나치게 흐트러졌지."

"그들도 살고 싶어 했을 것이오. 그 꽃다운 나이에 죽고 싶지 않았을 것이오."

"그것이 그들의 운명일세. 저승의 법도이기도 하지."

"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소!"

"그 또한 자네의 운명인 게지. 살아서 성주신이 된 업보이려나."

노인의 말은 깊은 울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지나치고 있으나, 왕세경은 그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서 단둘만이 분리된 듯한 느낌이다.

"자네의 터전을 하나 더 늘리려고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구로에 본원급 병원을 하나 더 짓는 것을 뜻하는 것인가.

"자네는 너무 큰 월권을 저질렀네. 이대로는 자네를 두고 볼 수가 없어. 그러니 적당히 하시게."

"무얼 적당히 하라는 거요?"

"사람을 살려서 내보내는 것까진 괜찮네. 하지만 억지로 '자네 집'에 붙들어두어 운명까지 교체하진 마시게나."

환자의 얼굴에 보이는 흉조가 바뀔때까지 퇴원을 지연시킨 것을 말하는 것인가.

"운명을 바꾸는 것은 옳지 않으이. 저승에서도 용납할 수 없고."

"……."

"죽음은 끝이 아니라네. 오히려 그들의 환생만 지연시킬 따름이지. 이제 왜 법도를 어겼다는 것인지 알겠나?"

노인은 인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이 모든 것의 반복과 순환이야말로 진정한 법도라네. 그것을 너무 거스르지 마시게나."

오늘은 설득을 하러 온 것이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그게 아닐 것이다.

왕세경은 노인의 온몸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현듯 궁금해졌다.

저승의 대왕은 대체 얼마나 긴 세월 동안 망자들을 심판했던 것일까.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거요?"

"자네를 소멸시킬 수밖에 없네."

"……."

"그러려면 이 병원 자체를 없애야 할 터, 그러나 그것은 운이 다하지 않은 많은 이들을 강제로 저승으로 인도하게 될 테지. 때문에 그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고 싶네."

"최후의 수단이라 하면, 언제까지……?"

"이 병원의 매몰로 인해 일찍 죽어야 할 이들. 자네의 개입으로 운명이 바뀌는 이들. 그 균형의 저울이 뒤집힐 때가 되겠지."

"내가 죽어야 할 환자들의 운명을 바꾸면 바꿀수록, 저울추는 점점 기울어지게 된다……."

"그렇다네. 그것이 법도이고, 오늘은 그걸 알려주러 온 걸세."

"……."

"잘 생각해 보시게나."

노인은 왕세경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일어났다.

그는 환자들을 구하지 말라고 한 게 아니었다.

얼마든지 구해도 괜찮다. 다만 남은 운명까지 완전히 바꾸지는 말아라.

그것이 노인의 요구였고, 논리적으로는 전혀 부당함이 없었다.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가 맞습니다.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발악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가 있어요.

-생명이 자기 본연의 일을 할 뿐이니까요.

어째서일까.

하수영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던 것들이 지금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 아니, 우리가 한 것은……. 생명이 자기 본연의 일을 한 것뿐이 오."

순간 노인이 멈칫했다.

"그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의미가 있는 일이오.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발악하는 것,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살려고 버둥거리는 것."

"성주신, 자네……."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라고? 그게 조금 늦어지면 어떻소? 한 많은 이 세상에서 원 없이 살다가 간다 해도 고작 백 년도 안 되오."

노인은 우두커니 선 채 왕세경의 얼굴을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그 잠시의 축복마저 용납해 줄 수 없는 거요? 고작해야 이 작디작은 병원 한 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인데?"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조금 더 살기 위해 발악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자네, 그 말을 누구한테서 들었는가?"

"우리 병원 이사장이 한 말이오만. 참 어린 친구지만 생각이 아주 깊소."

"……어린 친구?"

"마침 저기 들어오는군."

왕세경이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막 지상주차장에 정지한 캠핑카에서 하수영이 내리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썹이 부르르 경련했다.

두 주먹이 파르르 진동하며, 허공을 꽉 움켜쥔다.

"……그랬군. 그랬어. 이제야 알겠어. 어떻게 이런 거대한 성주단지를 지닌 성주신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

"……무슨 말이오?"

"알았네. 자네 원대로 하시게. 환자의 운명을 바꾸든 말든. 그래, 까짓거 어차피 백 년도 안 되는 세월이니까."

노인은 어딘지 허탈해 보이기까지하는 웃음을 머금고 왕세경을 돌아보았다.

"단, 여기 이 병원까지만일세."

"……."

"이 이상 자네의 영역을 늘리는 것은 저승의 대왕으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네. 새로 얻은 그 병원은, 그저 평범한 병원으로 남겨두시게."

다른 병원에서까지 망자의 운명을 바꾸는 짓은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왕세경은 그 뜻을 분명히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 몹시 궁금한 것은…….

"우리 이사장을 알고 있소? 이사장을 보고 갑자기 말을 바꾼 것을 보면……."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없기를 기원하지."

그 순간 허공에 녹아들듯이 노인의 몸이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당황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왕세경을 향해, 하수영이 알아보고 다가왔다.

"부이사장님, 여기서 휴식 중이십니까?"

"으, 응. 이사장. 그보다 내가 방금 뭔가 대단한 것을 봤는데. 자기가 저승의 대왕이라고 하는 노인이 왔더라고."

"아, 그래요? 한판 제대로 붙어보자 이건가요? 아, 나 이거. 좀 착하게 살려고 했더니 이렇게 영역 침공을 하려고 하시네. 걱정 마세요. 제가 아버지한테 이르기만 하면…… 아, 맞다. 근데 아버지 요즘 연락이 도통 안 되지."

"그런 건 아니고, 이 병원까지만 용납하고 그 이상은 안 된다고 엄포를 놓고 갔다네."

"……오, 그래요? 의외네. 염라가 언제 그리 착해졌……. 아니면 여기 차원은 내가 알던 염라가 아닌가?"

하수영의 작은 중얼거림은 왕세경의 의식에 와닿지 않았다.

노인은 분명히 하수영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하수영은 무수히 스쳐 지나간 작은 인연 중 하나를 기억하듯이 떠올리기 어려워한다.

둘 사이가 범상치 않은 것은 확실하다.

하수영의 정체 또한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도…….

"나더러 성주신이라고 하더군."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맨날 병원을 지키면서 차사들이 사람들 못 데려가고 막게 있잖아요. 그럼 그게 성주신인 거죠, 뭐."

"병원을 벗어나면 망자도, 차사들도 안 보여."

"살아 있는 성주신이라서 그럴 겁니다. 병원을 벗어나면 힘을 못 쓰고 평범한 인간이 되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쉽지 않나요?"

왕세경은 풀썩 웃고 말았다.

"이사장은 참……. 뭐든지 쉽고 간단하게 생각해 버리는군."

"쉽게 사는 게 편한 겁니다. 그것도 나름 재능인 거 아시죠?"

"이사장과 이야기하면 세상 그 어떤 고민이나 근심도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거 같아."

"그게 좋지 않나요?"

"좋은 거 같네."

왕세경은 풀어진 얼굴로 허허 웃으며, 다시 벤치에 앉았다.

그는 훨씬 편안해진 마음으로 병원입구를 지킬 수 있었다.

***

"저 성주신은 간섭하지 마라. 무얼 하든 간에 없는 듯이 내버려 두어라."

저승의 대왕이 돌아와서 저승 전체에 내린 명령이었다.

차사들은 혼란에 빠졌고, 수석차사가 용기를 내어 나섰다.

"대왕님, 명을 거역하고자 함은 아니나 어찌하여 그 성주신에게 접어 주시는지 연유를 알고 싶습니다."

수석차사를 빤히 바라보던 대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300만 년 전, 명부를 뒤집어놓았던 그 일을 알고 있는가?"

수석차사는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차사직을 맡은 때보다 까마득한 옛날이라 직접 보고 겪지는 못했지만, 선배 차사들로부터 들어 알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오래 차사직을 수행한 수석차사의 연륜이라고 해봐야 불과 수천 년 정도다.

300만 년 전의 일을 들먹이는 데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 일을 어찌 기억하고 있는가?"

"성주황상제라 불렸던 초대 성주신이 저승을 쳐들어와 모든 질서를 무너뜨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그럼 그자가 어떻게 초대 성주신이 되었는지 알고 있는가?"

"거기까지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다시 이승으로 데려간다고 쳐들어왔지."

"……."

"본래 평범한 인간이었네. 아니, 그런 줄 알고 있었지. 그래서 모든 차사들, 당시 저승의 대왕까지도 속으셨다네."

과거를 상기하는 대왕은 눈을 꾹감은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의 나는 임관한 지 얼마 안된 애송이 차사였었지. 그날의 참사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네."

"……."

"그자는 저승을 짓밟기 위해 스스로 성주신으로 각성, 모든 것을 무너뜨렸지. 그리고 자기 여자의 혼을 다시 데려갔다네. 자네, 귀암성의 폐허를 가본 적 있겠지?"

"물론입니다. 헉, 설마……?"

"귀암성의 폐허는 그때의 전쟁이 저승에 남긴 흔적일세."

"저승에서 제일 거대한 그 폐허가 말입니까……?"

대왕은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그 후로 그자는 줄줄이 성주신이라는 것들을 만들어 세상에 뿌려 인간들을 보호하기 시작했지. 그때부터 저승의 그자와의 힘들고 오랜 싸움을 겪어야 했네."

"지금 그 성주신황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오래전에 스스로 소멸했네. 알 수 없는 말을 남겼지. 이제 지겹도록 놀았으니 됐다고 말이야. 그 후로 어디에서도 그 성주신황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지."

"지금의 성주신이 그 힘을 이어받았다는 뜻입니까?"

"그 성주신과 타협을 봤다. 병원만큼은 건드리지 않기로, 그러니 모든 차사들은 앞으로 절대 그 병원은 근처도 가지 말라."

"명을 받듭니다."

대왕은 손짓으로 물러가라 지시를 내리고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옛날의 대전쟁.

이승과 저승이 갈 때까지 가보자고 한바탕 서로 으르렁거렸던 시절.

그때를 회상하듯이, 손가락이 가늘게 떨린다.

'왜 하필……. 우리 저승이 관할하는 이승에 환생한 것인가.'

***

"요즘엔 차사들이 얼씬도 안 해. 그래도 옛날에는 하루에 몇 명씩은 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보였는데 말이야."

"우리 병원 수호신, 아니, 성주신 왕세경 부이사장님의 위엄이 저승까지 퍼지고 있군요. 이사장으로서 아주 흐뭇합니다."

"근데 오늘 어디 가나? 옷차림에 평소보다 힘을 주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하수영은 온통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금색 셔츠, 금색 재킷, 금색 바지, 금색 구두.

심지어 황금색으로 반짝거리는 큼지막한 롤렉스 시계에 굵은 황금알이 줄줄이 달린 목걸이까지 찼다.

영락없는 '졸부 그 자체'패션이다.

"너무 힘을 과하게 준 거 아닌가……?"

왕세경은 애써 돌려서 말했고, 하수영은 여유롭게 웃었다.

"일부러 이렇게 콘셉트 잡았어요. 오늘 협회 모임이 있거든요."

"협회?"

"네, 전국임대인협회입니다."

"멸치들 노는데 범고래가 뭐 볼 일있다고 거길 가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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