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50화
138장 아무도 못 데려간다 (1)
왕세경은 죽은 우준형을 더 자세히 알아봤다.
그리고 탄식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까지 상황이 좋았는데도 죽었다니."
일단 우준형은 수술이 잘됐고 더 이상 문제가 없어서 퇴원했다.
하지만 퇴원하고 나흘 만에 급성심정지로 사망했다.
응급실까지의 거리는 불과 5분 남짓.
사고 장소는 의사 친척 집이었다.
친척 집에는 기까지 갖춰져 있었다.
심지어 의사 친척은 한국대 출신의 순환기내과 교수였다. 심장의 대가였던 말이다.
모든 응급처치가 즉시, 정확히 이 뤄졌으며 응급실에도 빠르게 도착했다.
그럼에도 우준형은 끝내 죽어버린 것이다.
"이건 마치…… 우리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으면 진작 죽어야 했을 운명이었던 것처럼……."
수영병원이 죽음 앞에서 우준형의 시간을 잠시 멈춰 놓았고, 퇴원으로 인해 얼어붙은 시간이 녹아버린 것인가?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왕세경 역시 수영병원의 그 징크스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겪었기에, 우준형의 죽음이 결코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안타까움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나도 준형이처럼 될 수 있었다.'
왜 병원을 벗어나지 않는 건데?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수영병원을 나갔다가 몇 번이고 죽을 뻔했던 위기를 겪었기 때문 아닌가?
자식들, 측근들은 미신이라고 일축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절실하고 신성한 것이다.
우준형 외에도 퇴원을 하고 5일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한 이들이 제법 있었다.
하나같이 원인불명의 심정지로 죽었다.
"차사들이 데려간 거구나. 병원을 벗어나니까 바로 준비해서 데려간거였어."
왕세경은 소름이 돋아서, 불현듯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병원 밖에는 지금도 얼마나 많은 저승차사들이 서성거리고 있을까?
자신이 데려갈 혼이 어서 빨리 퇴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중에는 그놈들도 있겠지. 윤정이 데려가려고 두 번이나 침투한 차사놈들……."
왕세경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죽은 이들이 퇴원하지 않고 계속 병원 내에 머물러 있었으면 살았을까?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왕세경은 분명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이 세상의 신비를 목격해 버린 몸이다.
지금까지 재벌 회장으로서 살아왔던 그 모든 삶들이 그저 하찮게만 보였다.
***
왕세경이 이런 고민을 같이 논의할 사람은 세상에서 한 명뿐이었다.
바로 하수영.
다른 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놔봤자 치매 환자 취급만 받을 뿐이다.
"죽은 사람들이 퇴원하지 않았다면 모두 살았겠느냐…… 어려운 질문이군요."
"이 병원은 매우 신비하네. 누구보다 내가 그걸 잘 알아."
"이미 여러 번 겪어 보셨으니까요."
"자네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여태 병원 내에서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자네가 이 병원을 인수하고부터 그랬지. 물론 자네가 영적인 힘이 있어서 이 병원을 그렇게 바꿨다는 뜻은 아닐세."
왕세경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자네는 땅을 보는 눈이 아주 좋아."
"따, 땅이요?"
태연하게 넘어갈 멘트를 준비했던 하수영은 전혀 다른 관점에 살짝 당황했다.
"국내에서 골든 트러플이 자랄 수 있는 토양, 금으로 된 유물이 잔뜩 묻혀 있던 설악산, 수백 톤의 금맥이 숨겨진 지금 농장…… 그것들이 바로 그 증거일세."
'이런 해석은 좀 신박하네?'
당연히 '네가 병원을 업그레이드한 거 아니야?' 라는 시선을 받을 줄 알았다.
"자네는 이 병원이 자리 잡은 터의 진가를 알아본 거야. 뭔가 보통 터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병원을 냉큼 인수한 거겠지."
"제가 인수하기 전에는 평범한 병원이었습니다."
"터의 기운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는 시기까지 알아본 거지. 안 그런가?"
"하하……."
멋쩍게 웃던 하수영은 작게 박수를 쳤다.
"대단하십니다. 사실 제가 땅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사물을 잘 알아봅니다."
"역시. 혹시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
"하, 원 자 석 자 쓰십니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잠깐만, 옛날에 용하다던 청담동 박수무당 이름이 하원석이었던 거 같은데?"
"맞습니다. 그분이 제 아버지세요."
"이럴 수가…… 자네의 그 신묘한 안목이 그저 우연은 아니었군."
"양아버지시고요. 피는 안 이어졌어요."
"……어쨌든! 이건 보통 인연이 아닌 거네."
왕세경은 잔뜩 흥분해서 이리저리왔다 갔다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사장, 나는 차사들을 막고 싶어."
"그럼 막으시면 되죠."
"그런데 마음에 걸려. 생명이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인데, 그것을 흐트러뜨리는 것이 괜찮은 걸까? 나중에 저승에서 가중처벌 받으면 어떡하나?"
지난 며칠간, 왕세경도 나름대로 번뇌를 많이 거듭한 표정이었다.
"나조차도 이 나이까지 죽지 않고 살아보겠다고 이렇게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이런 내 모습이 남들이 보기에는 추해 보이지 않을까?"
"생명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 자연스러운 질서가 맞습니다."
"……."
"그리고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발악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가 있어요."
"아등바등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
"초식동물이 포식자에 잡아먹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질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체 수가 조절 안 돼서 생태계가 파괴될 테죠."
왕세경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더러 초식동물을 가리켜 잡아먹히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버둥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에요."
"이사장……."
"부이사장님이 오래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김윤정 환자나 다른 사람을 살리고 싶어서 차사들을 막는 것도 절대 나쁜게 아니죠."
하수영은 씩 웃었다.
"저승의 대왕도 그걸 나쁘게 보지 않을 겁니다. 한 생명이 자기 본연의 일을 할 뿐이니까요. 그리고 차사들 역시 자기 본연의 일을 할 뿐입니다."
"그럼……."
"할 수 있는 한에서 마음껏 사시고, 마음껏 살리려고 노력해 보세요. 저는 삶의 진정성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왕세경은 묘한 감동이 가득한 눈으로 하수영을 바라보았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이 가늘게 경련했다.
"이사장 자네…… 생각이 깊구만. 놀랐네."
"어차피 언젠가는 순환의 흐름에 들어갑니다. 그것을 조금 늦추려고 아등바등 해봐야, 크게 보면 찰나 같은 시간입니다. 그 정도는 다 봐줍니다."
잠시 발동한 통찰안에 비친 왕세경의 정체성은 계속해서 뚜렷해지고 있었다.
[왕세경]
[청담수영병원 성주신]
[병원 안에서만 성주신으로 인정받는다.]
[병원을 벗어나면 인정받지 못한다.]
'요즘 가택신들이 깃들 데가 없으니까, 이제는 병원에 깃들어도 뭐라고 안 하는구나.'
하수영과 이야기를 나눈 후, 왕세경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더 이상 자신의 운명, 김윤정의 죽음, 저승차사의 방문이 두렵지 않았다.
'살아 있는 한, 나의 생명과 다른 이의 생명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확고해진 뒤, 병원을 보는 눈이 한결 달라졌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세한 것들도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석아, 너 이거 맞은 거 맞지? 누구한테 이렇게 맞았냐?"
"……아니에요. 계단에서 넘어졌어요."
"말만 하면 내가 너 때린 놈들 얼굴도 못 들고 살게 해주마. 나 재벌회장이야, 회장! 내가 말만 하면 킬러 보내서 전부 다 슥삭 해버릴 수도 있어!"
그 말에 폭력부상으로 입원한 어린 학생의 눈빛이 변했다.
"정말이에요?"
"인석아, 복수가 얼마나 짜릿한지 아직 경험 못 해봤지? 이 할애비가 그 달콤한 맛을 가르쳐주마. 걱정하지 말고 말해."
"사실은……."
왕세경은 부이사장이라는 직위를 한껏 남용했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남용이었다.
환자들의 투병, 입원만 챙긴 게 아니라 외적인 삶도 챙겼다.
"치료비 순수 부담액을 가처분 소득의 19%로 제한하는 정책…… 병원이 적자이기는 해도 환자들 얼굴이 좋으니 나도 기분이 좋구만."
이전에는 그저 살기 위해 들러붙으려고 했던 병원이다.
하지만 이제는 병원 그 자체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건물 밖으로 나와도 괜찮습니다. 저기 병원부지 외곽 담 보이시죠? 저것만 안 벗어나면 됩니다.'
원래 왕세경은 병원 건물을 잘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건물을 나오더라도 대광장 이상은 절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하수영이 그렇게 일러준 이후, 그는 병원 야외부지를 마음껏 바람을 쐬었다.
"스틱스강 경계선을 정확히 알게 되니 마음이 세상 편하네그려."
오늘도 그는 병원 측면 야외 벤치에 앉아서 부채질을 하며 거리 구경을 하고 있었다.
한가롭게 바람을 쐬는데, 갑자기 구급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병원을 들어섰다.
그는 흐뭇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떤 위급한 환자인지 몰라도, 스틱스강 넘었으니 이제 안심하시게."
구급차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어린 소녀가 들것에 실려 나와서 응급실로 바로 향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중해 보이지만, 병원 안으로 들어온 이상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분명히 멀쩡히 걸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다시 시선을 돌린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애야! 왜 그러느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어린 소녀가 멀찍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마치 구급차를 따라온 것처럼 보였다.
"어서 이리 들어 오너라, 어서!"
왕세경은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서둘러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얼른 소녀를 들쳐업고 응급실로 달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덕분에 그는 자신이 병원부지를 벗어났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막 병원부지를 벗어난 순간, 거짓말처럼 소녀의 모습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얘야? 얘야?"
분명히 코앞에 있었는데?
당황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녀가 바닥에 흘린 피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의아한 눈으로 환자복 차림의 그를 흘끗거릴 뿐이다.
"여기는 병원 밖……!"
그제야 병원 밖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서둘러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순간, 소스라 치게 놀랐다.
거짓말처럼 피투성이 소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얘야?"
서둘러 다가가려던 왕세경은 멈칫했다.
소녀의 옷차림이 어딘가 눈에 익었다.
'아까 그 구급차!'
감전된 것처럼 짜르르한 충격이 전해졌다.
혼란스러워하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왕세경은 구급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혹시 저 차를 타고 왔느냐?"
끄덕끄덕.
"중간에 갑자기 내려졌고?"
끄덕끄덕.
"허어…… 이걸 어찌할까."
깊은 탄식이 절로 나왔다.
세상의 신비를 엿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왕세경은 깨달았다.
소녀는 이송 중에 차 안에서 죽은 것이다.
그 혼은 아직 자신이 죽은 것을 모른 채, 방금까지 타고 왔던 차를 따라왔을 뿐.
'병원 안에서만 보이는 건가……. 병원을 벗어나면 보이지 않는 건가…….'
그렇다면 저승차사 역시 그럴까?
자신이 병원을 벗어나면 차사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일까?
순간 왕세경은 정수리가 오싹했다.
저 멀리서 온통 검은 문상복 차림을 한 건장한 남자 둘이 소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