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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549화 (549/1,270)

프랜차이즈 갓 549화

137장 병원지기 (4)

"큭……."

멱살이 잡힌 수석차사는 손아귀에서 전해지는 엄청난 힘에 놀랐다.

이게 어딜 봐서 팔순이 넘은 노인의 몸에서 나오는 힘이란 말인가.

그저 육체적인 강인함이 전부가 아니었다.

왕세경의 영혼 그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영력.

그것은 수석차사는 물론이고, 다른 두 월직차사까지 압도하고 있었다.

"수석차사님!"

"나서지 마라! 여기는 성주신의 영역, 노여움을 키워봤자 우리만 손해다!"

"하, 하지만!"

두 월직차사는 발만 동동 굴렀다.

언뜻 보기에도 왕세경의 온몸에서 느껴지는 기백은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 셋이 이기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보시오, 성주신."

"성주신? 그딴 거 모르고, 난 윤정이 큰할애비다! 네놈들이 데려가게 못 둔다!"

"오늘은, 오늘은 일단 돌아가겠소. 그러니 우리를 놔주시오."

"오늘은 일단? 그럼 나중에 또 와서 잡아가겠다는 소리 아니냐!"

왕세경은 눈을 부릅뜬 채 압박했다.

"약속해라!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윤정이가 지 신랑과 함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겠소! 놓아주시오!"

"못 놔준다! 절대 못 놔준다!"

"이익……."

수석차사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는 부하 월직차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너희들! 지금 바로 김윤정을 호명해라!"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여성차사가 허둥지둥 명패를 꺼내고는 VIP실 병실문을 통과하려고 했다.

하지만 문은 영체화된 문의 통과를 막아냈다.

병원 전체가 차사들의 영적인 힘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여성차사는 병실 밖에서 호명을 시작했다.

"김윤정."

"안 된다. 이것들아!"

"김윤정."

"안 된다고!"

"김윤…… 꺄아악!"

퍽!

왕세경은 멱살을 잡은 채 쥐고 있던 수석차사를 그대로 던져 버렸다.

수석차사와 함께 나동그라진 여성차사는 그만 명패를 놓치고 말았다.

"그게 윤정이 목숨줄이렷다?"

명패를 확인한 왕세경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수석차사가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명패를 잡아! 뺏기면 안 된다!"

"예, 수석차사님!"

키가 큰 남성차사가 얼른 달려들어서 명패를 쥐고는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어느덧 몸을 일으킨 수석차사는 여성차사를 들쳐 업고는 계단을 향해내달렸다.

"일단 철수한다! 질주해라!"

"예! 차사님!"

그렇게 세 저승차사들은 왕세경이 뒤쫓을 새도 없이 명패까지 챙겨서 후다닥 도망쳐 버렸다.

"이런…… 그 종이쪼가리를 뺏어서 찢어버렸어야 했는데."

"그거 함부로 찢으면 그 반작용은 회장님이 고스란히 받을 겁니다."

어느새 옆에 나타난 하수영이 그렇게 말했다.

왕세경은 살짝 놀라서 그를 돌아보고는 물었다.

"자네, 설마 다 본 건가?"

"아뇨. 회장님 혼자서 허공에 난리 피우는 모습만 봤죠. 제 눈에는 안보였습니다."

"허참…… 내가 괜한 쇼하는 거라고 오인하지 않을까 걱정이군."

"제가 회장님 믿는다고 했잖아요.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음산한 기운은 확실히 느꼈습니다."

"근데 무슨 말인가? 함부로 찢으면 반작용은 내 몫이라니? 자네는 보지도 못했다면서?"

"보진 못했지만 대충 상황은 그려지거든요. 차사의 혼령 퇴거 통지서를 함부로 훼손하면 저승의 무슨 주민등록 이전법 위반이라서, 아마 큰 피해를 입으실 거예요."

"응? 혼령 퇴거 통지서? 저승 주민등록 이전법?"

왕세경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하수영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혹시라도 다음에 오면 쫓아내기만 하세요. 그건 정당방위라서 해가 없지만, 서류를 훼손한다든가 하면 안됩니다. 공문서 훼손이에요."

"으응, 명심하겠네. 근데 이사장 자네는 그런 쪽도 잘 아는 것 같구먼."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제가 한때 저승의 독재자였거나, 저승파괴자였거나, 저승학살자였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아무튼 일단 그놈들이 갔으니 다행이야."

저승차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왕세경은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팔자 좋게 늘어져 있을 때가 아니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을 해야 한다.

왕세경은 데스크 간호사한테 슬쩍 부탁했다.

"이봐요, 간호사 선생. 내 부탁이 있는데……."

"알았어요. 윤정이 잘 있는지 슬쩍 확인하고 올게요."

"고맙소."

이미 몇 번 받아본 부탁이기에 간호사는 두 말 않고 일어났다.

불만은 없었다.

4교대로 돌아가는 청담수영병원은 하루 근무 시간이 6시간을 넘지 않는다.

심지어 점심시간도 포함돼서 그렇다.

원체 인력이 남아돌다 보니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편안하게 일을 하자는 게 재단의 취지.

더군다나 왕세경은 의사, 간호사, 직원, 환자 가리지 않고 크게 베푸는 사람이었기에, 모든 고용인들이 다 좋아했다.

물론 의료진에게 사사로이 금품, 물품을 제공하면 불법이기에 재단 전체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한다.

"윤정이 보고 왔어요. 아주 멀쩡해요. 아무 이상 없어요."

"오, 고마워요."

그제야 왕세경은 안심이 되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왕세경이 다시금 자기 자리에 앉아 눈을 부릅뜨며 복도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왕세경 환자분, 아까 정말 저승차사라도 보신 거야?"

"아까 정간쌤한테 뒤에 그 셋은 아는 사람이냐고 물으셨을 때, 내가 다 소름이 돋았다니까."

"방금 이사장님하고 무슨 말씀하신 걸까?"

"이사장님이 다독거려주신 거 아닐까? 설마 이사장님이 왕세경 환자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진 않으실 거 아니야."

"그렇겠지?"

간호사들은 몰랐다.

오히려 하수영이 누구보다 왕세경의 말을 신뢰하고 있음을.

그렇게 왕세경은 다음 날 아침, 김윤정이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복도를 빈 틈 없이 지켰다.

"할아버지!"

"어이구, 일어났어?"

"선물 고맙습니다!"

"선물? 아아, 그래. 뭘 샀니?"

왕세경은 김윤정이 갖고 싶은 거 다 사주라고 부모한테 돈을 준 것을 떠올렸다.

"금토끼 샀어요!"

"그, 금토끼?"

"네! 아주 예뻐요! 이거 보세요!"

그러면서 김윤정은 조그만 케이스를 두 손으로 열어서 보여 주었다.

그 안에는 정말로 순금으로 된 조그마한 금토끼 조각이 들어 있었다.

당연히 예쁜 옷이나 인형, 장난감같은 것을 생각했던 왕세경은 당황했다.

"이걸 산 이유가 있을까?"

"예쁘잖아요!"

"예, 예쁘긴 하다만……."

"그리고 금은 사두면 오른댔어요!"

"……우리 윤정이, 나중에 아주 큰 부자가 되겠어. 벌써부터 이렇게 싹이 예뻐서야."

당황함은 잠시, 왕세경은 어느새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간호사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지금 왕세경 환자분, 밤샜다고 하지 않았어요?"

"교대하면서 그렇게 전달받았어요."

"여기 교대 기록 보니까 지금 최소 18시간 이상 깨어 있으신 건데, 팔팔하시잖아?"

"그러게요. 전혀 안 졸리신가 봐요. 어쩜 저렇게……."

"우리 병원 입원하시고 날이 갈수록 정정해지시는 거 같은데?"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잘 보면 처음 입원하실 때에 비해서 얼굴 주름도 많이 줄어드셨어요."

"머리카락 숱도 늘어난 거 같고 말이야."

물론 왕세경은 탈모는 아니었다.

다만 나이가 많이 들었다 보니, 머리숱이 자연히 줄어들었을 뿐이다.

"뭔가 회춘하시는 거 같애."

"이거 왕세경 환자분 처음 입원하실 때 찍은 사진인데…… 어머머, 정말 그러네요? 완전히 딴사람이 되셨어요."

"이게 처음 입원하실 때 찍은 사진? 오히려 지금에서 한 10년은 지난 모습인데?"

"세상에."

***

오전, 하수영은 조용히 왕세경이 입원한 VIP병실을 찾았다.

"혹시 저희 재단 부이사장직을 맡아서 해볼 생각 없으세요?"

"부이사장직?"

말을 꺼내자마자 왕세경은 반색했다.

"하 이사장, 나한테 정말 부이사장 직을 주려고 하는 겐가?"

"회장님만큼 우리 병원을 사랑하는 사람이 또 없는 거 같습니다. 제가 재단 일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재단 일에만 열중할 수가 없잖아요."

"나야 병원에 늘 눌러앉아 있으니까 딱이지. 병원에 무슨 허점이 생기면 바로 캐치할 수 있고, 또 환자들과 직접 교류하고 있으니까."

"네, 그래서 회장님이 정말 적격이 신 거 같습니다."

"부이사장직이라……."

발음만 굴려도 기분이 좋은지 왕세경은 허허 웃었다.

"부이사장직을 맡으면 더욱 당당하게 차사들을 대할 수 있겠어. 감히 내가 일하는 재단 병원을 침투한 악적들이니 말이야."

"그럼요. 우리 병원 수호자이신데 부이사장직 당연히 맡으셔야죠."

"수호자라니, 남들이 마스코트라고 말하는 거 몇 번 들었지만 그건 너무 민망한 호칭이군."

"에이, '부이사장님'이면 우리 병원수호자 맞으십니다."

하수영이 은근슬쩍 호칭을 바꾸자 왕세경은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오늘부터 부이사장 하시는 겁니다?"

"좋아. 그럼 뭘 하면 되나?"

"제가 정한 병원의 큰 운영 틀을 추구하는 한에서 뭐든지 하셔도 됩니다."

"오, 전권을 주는 건가?"

"가끔씩 제가 필요한 것들을 이것 저것 도입하긴 할 겁니다. 하지만 서로 부딪칠 일은 없을 테니 부이사장님은 나름대로 하시면 됩니다. 놀고 싶으실 땐 그냥 노셔도 되고요."

"알았네. 안 그래도 환자들하고만 어울리기 적적했는데 말년에 좋은 일거리가 생겼어."

왕세경은 속세, 그러니까 병원에 들어오기 전의 모든 일에는 이미 흥미를 잃은 뒤였다.

회사도, 사업도, 유흥도, 권력도, 모두 다.

"이왕 병원으로 출가했으니 내 최선을 다해서 일해 보겠네."

"잘 부탁드립니다."

하수영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왕세경의 운명은 수영병원에 입원하기 전과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음을.

예전 그의 운명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지금과는 전혀 결이 달랐을 것이다.

"혹시 자네가 말할까 봐 내가 먼저 못 박는 건데, VIP실 입원료를 깎을 생각은 전혀 없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부이사장은 부이사장이고, VIP 병실 입원은 입원이니까.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부이사장님 마음이 넓고 여린 것은 알지만 그래도 너무 병원 밖 멀리까지 신경 쓰지는 마셨으면 합니다."

"알고 있네."

왕세경은 씁쓸히 웃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어떻게 모든 걸 다 끌어안을 수 있겠나. 그저 지금 나와 같은 병원에 있는 사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듬는 것도 벅찬 것을……."

***

왕세경이 부이사장이 되었다는 소식은 단숨에 병원 전체에 퍼져 나갔다.

하지만 크게 놀라는 의료진이나 직원은 없었다.

"언젠간 그렇게 될 줄 알았어. 그분이 우리 병원을 조금 좋아하시나?"

"죽을 때까지 우리 병원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하시는 분인데 말이야."

"병원 복지는 더 좋아지는 게 아닐까? 아, VIP병실 담당 쌤들은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 이제 VIP환자 겸 상사잖아."

"조금이 아닐걸?"

재단 부이사장이 된 왕세경은 병원내부통계에 접근할 권한을 얻었다.

환자의 개인의료정보는 열람하지 못하지만, 일정한 필터링을 거친 통계 자료 정도는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프리덤아.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환자들, 퇴원해서 잘 살고 있는지 한 번 알아봐다오. 법은 준수해야 한다."

-저는 법을 준수하는 한에서 사용자를 보조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근황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퇴원해서 건강히 잘 사는지 아닌지 정도만 알고 싶었으니까.

흐뭇해서 확인하던 왕세경의 얼굴이 별안간 굳어졌다.

"여기 준형이…… 이 녀석이 죽었다고? 그렇게 수술 잘 받고 멀쩡해져서 건강히 퇴원했는데?"

고교생 우준형 환자는 중증심부전증 환자로서, 같은 장기 문제 덕분에 왕세경이 한층 더 안쓰럽게 보던 친구였다.

-퇴원하고 나흘 후, 급성 심정지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게야?"

-바로 옆에 의사 친척과 제세동기까지 있었지만 결국 소생에 실패해서 사망했습니다.

"……."

심각한 중증이었지만 수술 잘 받고 완치 판정 받아서 웃으며 떠나간 아이였다.

그런데 그렇게 어이없게 죽었을 줄이야.

왕세경은 손으로 이마를 덮었다.

"수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병원 밖이 그만큼 위험한 것인가……."

그는 환한 미소로 퇴원하던 어린 병원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참 동안이나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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