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47화
137장 병원지기 (2)
왕세경 회장은 진노했다.
너무 심하게 화가 났기에, 처음 보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 거칠게 나왔다.
"누구 부정 타라고 그딴 복장으로 병문안을 와! 그것도 오늘내일하던 어린아이한테! 네놈들이 예의장머리가 아주 국 말아먹었구나!"
왕세경이 성큼성큼 다가오며 거리를 좁혔다.
두 저승차사는 서로의 눈빛을 확인했다.
"차사님, 어떻게 산 자가 우리를 볼 수 있죠?"
"산 자가 아니라 망자일 것이다. 여기는 병원, 자기가 죽었는지도 모르는 망혼들이 있어도 전혀 이상할게 없지."
"그럼……?"
"명부를 확인해라."
어느덧 두 저승차사 앞에 선 왕세경은 노여움을 가득 담아 비난을 퍼부었다.
손가락질과 몸짓을 듬뿍 곁들여서.
그러나 두 저승차사는 신경도 쓰지 않고 명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층 데스크에서 대기 중이던 간호진들이 그것을 보고 당황했다.
"왕세경 환자분, 갑자기 왜 저러시지?"
"허공에 대고 혼자 욕하고 손가락질하고…… 어머, 뭐야?"
"아무래도 환각을 보시는 거 같은데, 빨리 주치의 선생님 호출해!"
"네!"
저승차사가 보이지 않는 간호사들 눈에는, 왕세경이 혼자 허공을 향해 떠들어 대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기타누락자 명단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뭐라고? 그럴 리가 없다! 분명 망자이거늘!"
"망자? 뭐라고? 이것들이 지금 누구더러 죽었다고 하는 거냐? 우리 윤정이 아직 쌩쌩하게 잘 살아 있다고!"
두 저승차사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기타누락자 명단에 이름이 없다면, 죽은 자가 아니라는 뜻입니까?"
진짜 산 자라고?
하지만 선임 저승차사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산 자가 어찌 우리를 볼 수 있단 말이더냐. 그럴 수는 없다."
"전체 명부를 뒤져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찾은 이름은…….
"왕세경? 이미 몇 달 전에 죽었어야 하는 것으로 나오는 사람입니다!"
"선임 차사들이 혼을 데려오려 했으나 몇 번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군."
"밀언 차사께서 거듭 실패하시고 결국에는 행방마저 놓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밀언 차사께서?"
"예, 차사님, 동방삭 이후로 이렇게 저승의 눈을 교묘하게 피해 다닌 이는 오랜만입니다."
혼을 데려오는 데 거듭 실패했을 뿐 아니라, 종래에는 행적마저 놓치다니.
있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저승 전체가 발칵 뒤집어질 일입니다."
"아무튼 잘되었다. 이참에 이자도 데려가자."
"명패를 꺼내겠습니다."
왕세경은 자신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들은 체도 않고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는 것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것들이 신성한 청담수영병원에서 무슨 말을 떠드는 거냐!"
심지어 그 내용도 기가 찼다.
무슨 역할극도 아니고, 저승이 어쩌고 망자가 어쩌고 하고 있으니.
'둘이 단체로 미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기괴한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근거도 없는 의구심이었다.
'이것들, 설마 진짜로…….'
여자가 검은 책을 펼쳐서 내밀었다.
빽빽한 글씨가 적힌 책장 위로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어떤 형상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왕세경은 그것을 보고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이, 이게 무슨……?"
지금 자신이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이놈들이 뭔가 대단한 마술트릭이라도 쓰는 것인가?
붉은 안개는 마침내 긴 직사각형 형태의 종이의 모습을 갖췄다.
"왕세경."
"내,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아니, 이놈들! 지금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 지금 감히 웃어른을 그런 식으로 부른 거냐!"
"환자분! 진정하세요! 지금 바로 약을 놔드리겠습니다!"
그때 주치의와 간호사가 헐레벌떡 달려와서 왕세경을 붙들었다.
"의사 선생, 여기 이 친구들 빨리 썩 내보내요. 신성한 병원에서 저게 뭐 하는 짓이랍니까?"
"환자분, 여기는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환자분은 환각을 보고 계신 거예요!"
"뭐? 아무것도 없다고?"
왕세경은 화들짝 놀라서 두 낯선 이와 의료진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낯선 이들은 의료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료진은 바로 옆에 낯선 이들이 있음에도 아무도 없다고 한다.
낯선 이들이 다시금 자신을 호명했다.
"왕세경."
왕세경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이게 무슨……."
저승차사…….
그 단어가 비로소 왕세경의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아까 불현듯 느꼈던 불길함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던가?
'저승차사가 이름을 세 번 부르면, 혼이 육신에서 빠져나와 수명이 다하고…….'
지금 이름을 두 번 불렀지?
두 차사의 차가운 눈빛이 자신을 바라본다.
명패를 든 여성 차사의 입술이 마지막으로 열렸다.
"왕세경."
바로 그 순간, 병원의 모든 실내등이 요란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파지직 스파크가 요란하게 튀고, 명암이 쉴 새 없이 반전을 거듭했다.
"꺄아악!"
"어머, 이거 갑자기 왜 이래?"
"무, 무슨 일이야? 중앙전력설비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 아니야?"
아마 10초 남짓 된 시간이었으리라.
하지만 왕세경에게는 억겁처럼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실내등이 진정되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눈앞에 있던 차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왕세경은 빈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귀신이 곡할, 아니, 저승차사가 곡할 노릇일세."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왕세경의 표정이 다급하게 변했다.
서둘러 전화기를 꺼낸 그는 비서한테 연락했다.
-네, 회장님. 김비서입니다.
"지금 내 사설 구급차 끌고! 바로 윤정이네 집으로 가! 어서!"
-예?
"가서 윤정이 납치를 해서라도 병원으로 데려와! 윤정이가 위험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두 저승차사는 병원 밖으로 나와 있음을 깨달았다.
"망자의 혼은 어떻게 됐지?"
"모, 모르겠습니다! 아, 저기 보입니다!"
그때 여성 차사가 병원 빌딩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외쳤다.
과연 복도창을 통해 왕세경이 의료진의 부축을 받아 멀쩡히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럴 리가 없다. 분명 이름을 세번 불렀거늘, 혼이 빠져나오지 않다.
니……."
혼이 빠져나오기는커녕 자신들이 병원 밖으로 내동댕이쳐졌으니.
"이 병원, 뭔가 이상합니다."
"대왕님께 보고해야겠다. 저승으로 돌아가자. 그 전에 김윤정의 혼을 회수해야 한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 두 차사는 김윤정이 입원한 병실을 찾았다.
이번에는 실수 없도록 병실 안까지 확인했지만, 김윤정은 없었다.
"아까 그자의 말이 사실이었군요. 퇴원한 것 같습니다."
"김윤정의 집으로 가자."
"예."
명부 내용에 따르면 김윤정은 아까 그 시각에 죽었어야 한다.
죽을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운명이 뒤틀어진 상태.
김윤정의 집으로 향하던 두 차사는, 김윤정과 가족을 태운 구급차가 요란하게 달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지병이 발작해서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리라.
"잘되었다. 지금 데려가자."
"예, 차사님."
두 차사는 구급차에 올랐다.
구급요원과 김윤정, 그리고 부모들은 당연히 차사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여성 차사가 명패를 꺼냈다.
"김윤정."
어느덧 청담수영병원의 모습이 운전요원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김윤정."
구급차의 앞바퀴가 병원 주차장 입구턱을 막 통과했다.
"김윤정."
세 번째 호명이 끝나기 직전, 구급차는 이미 주차장 안쪽으로 완전히 들어선 뒤였다.
김윤정이 멀쩡히 움직이자 두 차사는 한층 당황했다.
"차사님? 이게 어떻게……."
"왜 혼이 빠져나오지 않는 거지?"
문득 두 차사는 병원 로비에서 서 성거리는 왕세경을 발견했다.
정문으로 김윤정이 들어가자 왕세경은 뛸 듯이 기뻐하며 반겼다.
김윤정을 번쩍 안아 드는 모습은 마치 친손녀를 대하는 듯이 각별했다.
"왕세경, 저자…… 뭔가 이상합니다."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왕님께 보고해야겠다."
두 차사는 미련 없이 이승을 떠났다.
다음 날.
왕세경은 병원 내에 마련된 이사장 실을 찾았다.
하지만 하수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응? 오늘 하 이사장이 분명히 출근했을 거라고 했는데?"
-저 여기 있습니다, 왕세경 회장님.
"아이쿠야! 뭐야, 놀랐잖는가!"
느닷없이 웬 로봇이 나타났고, 머리 대신 단 모니터에 하수영의 얼굴이 있었다.
"이사장, 지금 이게 뭔가?"
-로봇원격 제어로 병원 업무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무슨 일이신지 말씀해주세요.
"거참, 신기하군."
이리저리 훑어보며 자리에 앉은 왕세경은 숨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간밤에 이상한 것을 봤는데……."
진지하게 듣고 있던 하수영이 별안간 입을 열었다.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군요.
"자네도 역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약 20초 동안 로봇 하수영은 말이 없었다. 모니터도 꺼진 상태였다.
다시 모니터가 켜졌을 때, 하수영의 표정은 뭔가 달랐다.
-아, 회장님.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제가 잠시 뭐 좀 하느라고요.
"으, 응. 괜찮으이."
아까보다 목소리가 좀 더 신이 난 것 같다는 것은, 착각일까?
-처음부터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하수영은 아까와는 다르게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상하단 말이지. 내가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겨서 저 승차사 환각을 보는 것인지, 아닌지하고 말이야."
-일단 김윤정 환자를 데려오신 건 잘하신 겁니다.
"그, 그래?"
-네, 근데 왜 그렇게 하신 거죠? 회장님 판단을 듣고 싶습니다.
"왠지 그 차사들이 윤정이 집으로 찾아갈 것 같았는데, 이 병원에 있으면 안전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
-기다리세요. 일단 제가 병원으로 가는 중입니다.
병원으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하수영은 로봇 2호기를 통해 대화를 계속했다.
-저는 회장님이 헛것을 봤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헛것이라기에는 모든 게 너무 선명했어. 내 정신도 내내 멀쩡했고."
-저승차사…… 얼마든지 있을 수 있죠. 세계는 인간만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니까요. 신도 존재하는 걸요.
"자네는 신을 믿나?"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저만 아는 신을 믿습니다. 일반적인 종교와는 전혀 다르죠.
양아버지가 주신인데.
갑자기 아바타도 끄고 잠수를 타서 궁금증 남기고 있지만.
"정말 저승차사일까?"
-글쎄요, 아무튼 회장님이 헛것을 봤다고는 생각되지 않네요.
"믿어주니 고맙군, 의사들은 내가 정신이 나갔었다고 간주하고 있어서 영……."
-상식적으로 판단을 했을 뿐이니 그거 가지고 너무 미워하진 마십시오.
"미워하는 건 아니고, 자네가 믿어주니 고맙다는 것일세."
어느덧 하수영은 병원에 도착했다.
VIP병실의 김윤정 환자 가족을 찾은 하수영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왕세경이 사이에서 하수영을 소개했다.
"여기 이 젊은 친구가 이 병원 오너이자 이사장. 인사들 하시구려."
"어머, 세상에. 이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꼭 한 번 뵙고 싶었어요!"
말기 암 완치뿐만 아니라 치료비, 생활비 등등 온갖 지원을 받은 것 덕분에, 김윤정의 부모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고마워했다.
하수영은 김윤정을 한참 가만히 바라보다가 왕세경을 돌아보며 작게 말했다.
"병원에 계속 입원하는 게 좋겠습니다."
"설마…… 우리 윤정이도 나처럼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 정도는 아니니 안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