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46화 (546/1,270)

프랜차이즈 갓 546화

137장 병원지기 (1)

"오늘은 학교를 가 볼 수 있겠구나. 사흘 동안 내 행세 문제없이 잘했겠지, 프리덤?"

-물론입니다, 마스터. 특히 원활한 학내정치인맥 형성에 집중해서 공을 들였습니다.

"잘했다. 원래 빨대, 아니, 인재들은 평소에 잘 다독거려둬야 하는 거야."

-그간 학내 활동 내역을 요약해서 출력해드리겠습니다.

긴 보고는 듣는 것보다는 직접 눈으로 읽는 게 가장 빠르다.

하수영은 태블릿에 떠오른 문서 스크롤 바의 길이를 보고 미간을 작게 찌푸렸다.

"뭐가 이렇게 길어?"

-최대한 압축해서 요약한 겁니다. 특히 신경 써서 기억해야 할 인맥들만을 정리했습니다.

"너, 대체 사흘 동안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거냐?"

이제 바통 터치를 해야 하니, 프리 덤이 형성한 인맥 관계를 대략적으로라도 숙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내용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며칠도 안 되는 사이에, 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고?

"야, 좀 적당히 활동했어야지, 이건 무슨 아이돌이 팬미팅한 것도 아니고 뭐냐?"

-그럼 여기서 인맥 활동을 더 늘 리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내 말은, 사흘 동안 너무 부지런을 떨었다는 거야. 좀 잠은 자고 활동을 해야지, 이러면 사람들이 로봇한테 대리등교 시켰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그렇게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가 완벽하게 마스터 역할을 구현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너 하고 다닌 거 보니까 아무리 봐도 이건 내가 아닌데?"

-저는 평소 마스터를 관찰하여 얻은 딥러닝의 분석에 충실해서 구현했을 뿐입니다.

"에이, 내가 이런 관종은 아니지. 조금 더 신경 써서 내 대행 모듈을 보완해 봐."

-Yes, my lord.

하수영은 일단 학교에 출발했다.

동시에 한국대 관악캠퍼스에 있는'로봇 하수영'은 충전을 시작하며 가동을 중지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긴 채.

-지금 제가 직접 오고 있습니다. 운전을 해야 하므로 카메라는 잠시 끄겠습니다.

그렇게 로봇 하수영은 일시정지 모드에 들어간 것이다.

캠퍼스에 도착한 하수영은 학장실을 찾았다.

농대학장은 두 팔을 크게 벌리며 하수영을 반가이 맞이했다.

"오, 어서 와요. 하수영 학생."

"원격수업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별말씀을. 우리 단대를 빛내줄 훌륭한 동문인데 학교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해줘야지요."

학장은 일단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그런데 오늘은 강의가 없습니까?"

"오전에 하나 있었는데 원격으로 마쳤습니다. 지금은 강의가 없어요."

"그래, 강의 내용은 들을 만합니까?"

"네, 매우 양질의 강의라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교수님들이 강의 내용을 구성하는 데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다행이에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거 아닌가 하고 사실 다들 걱정 많이 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하수영 학생은 우리나라 최고의 농부 아닙니까?"

"뭐, 농장 규모가 가장 큰 건 사실이죠."

농작물 판매로만 올리는 수입이 연 1조 원이 훌쩍 넘으니.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제가 이번에 하우스 양봉을 해보려고 합니다."

"하우스 양봉이요?"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학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큰 밀폐공간 하우스에 꽃이 피는 작물을 심어서 꿀벌들을 가둬 꿀을 모으려고 합니다."

"음, 그렇게 해서 충분한 꿀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꿀벌들이 얼마나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꿀을 모으는 걸 생각해 보면……."

"가문의 비법인 특제비료가 있어서 생산성은 괜찮습니다. 문제는 꽃 작물로 쓸 만한 종자네요. 일단 아카시아와 유채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카시아와 유채라…… 우리 학교 종자연구소에 쓸 만한 종자가 있는지 알아보죠."

곧바로 남상진 교수가 호출을 받고 학장실로 들어왔다.

설명을 들은 남상진은 조금 자신 없어하며 말했다.

"종자가 있긴 합니다만, 특별히 개량을 한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보관용으로만 둔 것이라……."

"괜찮습니다. 그거라도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건 특별히 무상으로 제공을 해드리죠."

"아닙니다. 물건이 오고 가면 적절한 대가가 뒤따라야죠. 제값은 치르겠습니다."

그렇게 하수영은 제값을 치르고 아카시아와 유채 종자를 받기로 했다.

종자는 농대에서 경기도 수영농장으로 직접 배송을 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양봉을 하려면 꿀벌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분양해 주시겠다는 분은 있는데, 좀 더 좋은 꿀벌집을 찾아보려고요."

"설마 자연에서 직접 꿀벌을……?"

"평범한 양산형 꿀벌들은 뭔가 크게 마음에 차지 않아서요. 꿀벌은 조금 더 천천히 찾아보려고 합니다."

학장실을 나온 하수영은 프리덤이 작성한 인맥 요약도를 따라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로봇 하수영일 때 나눴던 대화, 관계의 흐름을 고스란히 기억한 덕분에, 사람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날 하수영은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프리덤이 형성한 인맥을 검토하고 다녔다.

그 왕성한 활동력을 본 교수와 학생들은 거 보라는 듯이 말했다.

"저거 봐. 로봇이 혼자 말하고 움직인게 아니라 하수영 학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한 게 맞잖아."

그동안 캠퍼스에서는 로봇 하수영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로봇이 아닌 게 확실한가?

본인이 직접 제어하는 게 정말 확실한가?

하지만 오늘 하수영의 활동을 보고 그런 의구심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런데 일이 바빠서 원격수업으로 로봇을 대신 보낸 분이 어떻게 하루종일 로봇 조종에 매달릴 수 있어요?"

"움직임 같은 거야 자율 시스템에 맡기면 되고, 본인은 통화 되는 이 어폰만 귀에 꽂은 채 말만 하면 되잖아."

"그럼 얼굴이 모니터에 나온 것은 대체……."

"어깨에 카메라 거치대 같은 거 달았겠지."

"그래도 뭔가……."

"아, 의문은 이제 그만, 출석부정아니냐 뭐냐 하는 논쟁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막말로 기여입학자고 학점 상관없이 학업만 파고들면 그만인데, 누구 뭐 피해 보는 사람 있어?"

"……."

"그리고 봐봐라. 껍질만 다르지, 돌아다니는 거나 말하는 거나 전부 로봇 하수영 학생하고 완전히 똑같아."

그리고 다음 날.

로봇 하수영은 오전 강의를 시작으로 왕성하게 학교 활동을 시작했다.

전날 하수영 본인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대화나 관계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 다른 말 할 것 없이 하수영 본인이 직접 로봇을 제어하고 있는 게 확실해졌다.

"그럼 하수영 학생은 잠을 하루에 3시간도 안 자는 거 아니야?"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멀티플레이하면서도 잠은 그렇게밖에 안 잔다니, 성공하는 사람은 역시 다 이유가 있구나."

***

청담수영병원.

VIP실 병실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8세 여자아이가 퇴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환자가 퇴원을 한다는 소식에 제법 많은 의료진이 송별을 위해 몰려왔다.

윤정아, 축하한다."

"평생 아플 거 그동안 다 아팠으니, 이제 앞으로는 아플 일이 없을 거야. 축하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알았지?"

입원한 지 얼마 안 된 환자 한 명이 간호사를 슬쩍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인데 저렇게 선생님들이 많이 몰려들어서 축하해 주고 있어요?"

"아, 윤정이 저 아이 정말 크게 아팠었거든요. 병원이 난리가 났었는 데, 이제 다 나아서 퇴원해요. 그래서 다들 저렇게 축하해 주는 거예요."

"아, 그래요?"

환자 개인 의료 정보이기에 간호사는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환아는 본래 다른 병원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을 정도로, 더는 손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환아 부모들은 마지막 희망으로 수영병원 입원을 위해 매달렸다.

부모는 병상이 모두 꽉 찬 데다가 대기순번이 많이 쌓여 있어서 처음에는 절망했었다.

하지만 VIP 병실은 대기순번과 상관없이 '재단 측에서 임의로 결정하는 터라, 환아는 VIP실에 입원할 수 있었다.

물론 요금은 다른 환자들과 같다.

VIP병실만 사용할 뿐, 진짜 VIP 환자는 아니기에.

수영병원에서 유일한 VIP 환자인 왕세경 회장은 흐뭇한 얼굴로 김윤정 환아를 축하해 주고 있었다.

"우리 윤정이. 그동안 고생 많았다."

"할아버지 보고 싶으면 찾아와도 돼요?"

"그럼. 언제든지 찾아와도 된단다."

옆 병실이다 보니 왕세경은 김윤정환아 측과도 많이 친해진 상태였다.

사실 이 병원 입원 환자와 가족중 왕세경을 모르는 이는 없다.

병원 내 마당발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니.

"할아버지도 우리 집 놀러 오세요."

"아유, 그건 안 돼요. 이 할애비는 병실이 내 집이라서 다른 곳에는 못간단다."

"그래도 놀러 오세요."

"안 돼요, 안 돼. 대신 윤정이가 많이 놀러 오거라. 알았지?"

그러면서 왕세경은 김윤정 모친에게 흰 봉투 한 장을 내밀었다.

"윤정이 그동안 투병하면서 갖고 싶었던 것 다 사주시구려. 얼마 안되오."

"아이, 제가 이걸 어떻게……."

"내가 윤정이 큰할애비 같은 마음으로 주는 거니까 받아주시면 나도 감사하겠소. 꼭 윤정이 선물에만 써주시오."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게 김윤정은 큰 축하를 받으며 퇴원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김윤정 가족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말 대단해. 윤정이가 저렇게 완치될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

"아직 진짜 완치는 아니지. 앞으로 몇 년은 추적 관찰해야 하잖아요."

"글쎄, 제 느낌으로는 왠지 재발할 거 같지 않은데요?"

"엘릭서 드링크가 확실히 건강증진 효능이 있는 거 같아. 언제 한 번 비교대차 분석해서 케이스 논문 하나 써봐야겠는데."

"우리 병원 신기록…… 아직 안 깨졌죠?"

"안 깨졌지. 앞으로도 영영 안 깨질 거 같은데?"

병원 입구는 스틱스강.

병원 밖은 위험하지만, 병원 내부는 산자를 위한 천국.

사실 미신이지만, 이제 병원 내의 모든 사람들이 빅뱅이론처럼 믿는 미신이었다.

"틀림없이. 이사장님이 우리 병원에 무슨 결계 같은 거라도 쳐두신 거야. 저승사자들이 감히 얼씬도 못하는 그런 결계 말이야."

"내가 사후세계는 안 믿는데 그 말은 왠지 부정할 수가 없겠더라."

뒷짐을 진 채 흐뭇하게 바라보던 왕세경 회장은 다시금 병원을 '순찰'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오늘 입원을 한 환자들을 찾아가서 인사하고 위무하는 것.

사정이 딱한 경우에는 사비를 털어서 금전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회장님이 병원 환자들한테 지출하시는 사비가 매달 수십억은 된다더라."

"우리 병원에서 죽을 고비 넘기신 이후에는 완전히 우리 병원 수호신 됐다니까."

"오늘도 신입 입원 환자들 보러 가시는 거지? 어떻게 저렇게 하루도안 빼먹고 부지런하실 수가 있을까?"

"근데 우리 병원에서 새로 만날 사람이라고는 환자들밖에 없지 않아?

오죽 심심하고 적적하시면 그런 걸로 시간을 때우시겠어?"

***

낮에 김윤정이 퇴원했던 병실.

빈 병실 문 앞 복도에 갑자기 스산한 그림자가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점점 사람의 형체를 갖추고 있지만, 지나가던 사람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마침내 그림자는 두 명의 사람 모습을 갖추었다.

젊고 키가 큰 남자와 하이힐을 신은 늘씬한 여자.

상갓집이라도 다녀온 듯이 온통 검은 정장으로 맞춘 두 사람의 표정은 얼음으로 빚은 듯이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곳인가?"

"예, XX년 YY월 ZZ일 23:32. 명부에 적힌 장소와 시간입니다."

"호명해라."

"김윤정."

여자는 김윤정이라는 이름이 적힌 '명패지'를 꺼내 들고는 이름을 읽었다.

명패지에 적힌 자기 이름이 '세번' 불린 이는 그 혼이 빠져나오고 삶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망자의 혼을 저승으로 인계하기만 하면…….

"김윤정. 김윤……."

"윤정이? 오늘 퇴원했어. 자네들은 누구신가?"

창백했던 두 저승차사의 표정이 와장창 깨졌다.

"그대는 누구인가? 지금 우리가 보인단 말인가?"

"어, 어떻게 산 자가 우리를……."

"잠깐? 아니, 네놈들! 지금 상갓집문상 차림으로 병문안을 온 게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