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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544화 (544/1,270)

프랜차이즈 갓 544화

136장 의원님은 중고신입생 (1)

아침이 밝았다.

남들보다 의회에 일찍 출근해서 할 일을 마친 뒤, 하수영은 곧바로 한국대학교로 향했다.

"처음은 뭐든지 설레는군."

대학교 등교하는 게 이번이 진짜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생에서는 처음이잖아. 농대 입학은 모든 생을 통틀어서 처음이고."

허구한 날 첨단산업, 군수산업, 패권사업만 죽어라 했으니.

이렇게 소소한 일상만 누리는 것은, 길고 긴 전생을 통틀어서 진짜 처음이다.

다행히 하수영은 혼자가 아니었다.

"오, 편입생이 두 명이나 있군. 학식을 처량하게 혼자 먹지 않아도 되겠어."

-마스터,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드시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장이나 야전에서 혼자 먹는 경우가 많아서 익숙해진 거지, 혼자 먹는 거 쓸쓸해서 누가 좋아하겠냐."

-그런 것치고는 거의 매일 혼자 드시는 게 일상이십니다.

"바쁜 현대인의 비애인 걸 어떡하겠니."

하수영은 먼저 학장실을 찾았다.

학장실에는 하수영뿐만이 아니라, 이번 학기 편입생 2명도 함께 있었다.

"아, 어서 와요. 하수영 학생."

이미 연을 쌓은 학장은 편입생들을 의식해서 자연스럽게 하수영을 대했다.

"여기 이분…… 아니아니, 여기 이 학생은 이번에 후기입학으로 들어온 신입생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는 달리 1학년이에요."

"아, 네!"

"알겠습니다!"

학장 앞이라 그런지 편입생들은 바짝 굳어 있었다.

"정규 입학이 아니다 보니 따로 입학환영식 같은 게 없어서 미안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학장 재량으로 오늘 세 학생의 입학 환영 자리를……."

"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 그래요? 그럼 환영 자리는 없던 걸로 하죠."

두 편입생들은 학장이 하수영 앞에서 쩔쩔맨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가보세요. 학생들. 우리 한국대 농대에 입학한 걸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학장님."

그렇게 셋은 학장실을 나섰다.

하수영은 어색해하는 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전 하수영입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배정태입니다."

"갈형오입니다."

수업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서, 셋은 야외 벤치에서 커피타임을 갖기로 했다.

"아, 그럼 두 분 다 가업을 이으려고 농대에 뒤늦게 편입을 하신 거군요."

"네, 1년 정도 전 학교 다니다 보니 이 전공으로 나중에 먹고살기 마땅치 않겠다 싶어서요."

"더 늦기 전에 농업 전문지식이라도 쌓아두는 게 낫겠어서요. 공부도 타이밍이 있잖아요."

우연하게도 둘 다 농가의 자식이었다.

배정태는 배나무 과수원, 갈형호는 벼농가의 아들이었다.

"두 분, 농업계 일이나 농사일은 아무것도 전혀 모르시죠?"

"네, 맞아요. 하나도 모릅니다. 이제부터 좀 배워보려고요."

"그럴 거 같았어요."

"……?"

"……?"

둘은 의아했지만,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하수영이 저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 이름을 듣고도 반응이 전혀 없군.'

농업계 사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하수영 이름을 듣고 무반응일 수가 없다.

그리고 시작된 첫 수업.

빳빳하게 긴장한 채 들어선 교수는 공을 들여 준비한 강의 자료를 바탕으로 밀도 높은 강의를 빽빽하게 진행했다.

첫날부터 진도 폭격을 맞은 편입생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따라갔지만, 힘에 부쳤다.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아니, 농대 수업인데 화학공식이 도대체 왜 나오는 거야?"

"비료 화학구조식까지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거야?"

"어허, 전문 농사꾼이 되려면 그 정도는 아주 기초 상식입니다, 상식.

21세기는 농부들도 사이언스에 논문 기재하는 세상이에요."

첫날은 별다른 이벤트 없이 지나갔다.

여전히 대다수 학생들은 하수영을 알아보지 못했고, 예전에 반도체공학부에 은근히 소문을 냈지만, 찾아오는 반도체 교수들도 없었다.

"내가 기여입학으로 들어왔다는 거 진짜 타과들은 거의 모르나 보다.

우리 농대 보안유지 정말 철저하네."

***

첫날 학교 수업을 듣는 틈틈이 의회 업무, 프랜차이즈 업무 등도 봤다.

웬만한 건 프리덤 자동화가 되어 있기에 최고관리자로서 체크 정도만 해주면 그만이었다.

"내일모레 의정회의는 내가 직접 참가해야 하니까…… 교수님한테 연차, 아니 출결 인정을 받아야겠네.

아, 그러고 보니 슬슬 예비군이구나."

학생 일정이 끼어드니, 하루가 평소보다 순식간에 지나갔다.

새벽까지 일을 마치고 자려는 중, 하수영은 자기 소유의 클럽에서 연락을 받았다.

-웬 재벌 3세가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근데 돈 많은 집안은 맞는거 같습니다.

"바로 갈게요."

핀익스 클럽을 인수해서 차린 클럽은 건전감성을 지닌 정통 클럽을 지향했다.

운영은 정서희가 소개시켜 준 와트니 사장이 맡고 있었는데,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진상이 나타나자 오너한테 SOS를 친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연락하라고 하수영이 미리 당부해 두기도 했고, 하수영이 도착했을 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만취자가 가드들을 마구 때리고 있었다.

건장한 가드들은 함부로 반격도 못한 채 최대한 안 다치게 제압하려 하고 있었다.

"야야! 어딜 잡아! 이 시계 1억짜리야, 1억! 니들은 평생 구경도 못할 명품이라고!"

"제 199만 원짜리 겔드폰 시계가 시간 표시는 훨씬 더 정확합니다.

고객님."

하수영이 나서자 만취자는 눈을 게 슴츠레하게 뜬 채 바라봤다.

"넌 누구야? 미쳤어?"

"지금이라도 순순히 시계와 차를 내놓고 떠나시면 충분한 합의로 간주, 법적 절차는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이 새끼가!"

그 순간 만취자가 빈 양주병을 들어 하수영을 향해 내리쳤다.

하수영은 한 손으로 손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양주병을 뺏었다.

복싱 세계 챔피언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물 흐르듯이 일어난 움직임이었다.

"어? 어? 어? 죽고 싶어, 너!"

"로프 가져와요."

하수영은 만취자를 강제로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두 손목을 뒤로 돌려서 꽉 붙들었다.

가드들이 얼른 뛰어가서 로프를 가져왔고, 하수영은 태연히 두 손목을 묶었다.

"그래도 영업시간 다 끝나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손님들 기분 잡칠 뻔했네요."

와트니가 안절부절 못 해하다가 물었다.

"사장님, 괜찮겠습니까? 이 친구, 알고 보니 동우그룹 회장 손주라고 합니다. MD 한 명이 누군지 잘 알더라고요."

동우그룹이면 재계 서열 30위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하수영은 태연했다.

"그럼 곧 누구라도 달려오겠네요."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와 건장한 경호원 둘이 서둘러 클럽에 들어섰다.

중년 남자는 자다가 깬 듯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밧줄에 묶인 채 술에 취해 잠이 든 도련님을 발견했고, 그의 얼굴이 낭패로 물들었다.

그는 위압적인 표정을 지으며 하수영 앞에 섰다.

"여기 직원인가 본데, 이분이 누구인지 알고 이런 짓인가? 당장 풀어주시게."

"나 여기 사장인데. 자네는 누군가? 변호사? 실장?"

새파랗게 어린놈이 하게체를 쓰자 중년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경호원들은 당장에라도 손을 쓸 기세였지만, 가드들의 숫자에서 밀리다 보니 움직이진 않았다.

"자네가 먼저 하게체를 썼으니 나도 하게체를 썼을 뿐일세. 뭐가 잘못되었나?"

하수영이 태연히 반문하자, 가드들 사이에서 작게 킥킥거리는 소리가 흘렀다.

"자네가 여기 바지사장이라도 되나 본데, 그분이 누구인지 알면……."

"나 강남구 하수영 구의원인데, 자네 이름은 뭔가?"

"……하수영 구의원?"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에 잠시 혼란에 빠졌던 중년 남자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 하수영 의원님? 수영농장 오, 오너이신……! 정말 하수영 의원이십니까?"

"여기 내 빌딩이고, 이 클럽도 내 겁니다. 자, 당신 이름과 직함, 소속을 말해요."

하수영의 말투도 따라서 바뀌었다.

중년 남자는 사색이 돼서 고개를 숙였다.

"저, 저는 동우그룹……."

"아니다. 됐고, 여기 이 친구 보호자죠? 변호사? 아니면 개인비서?"

"그룹 비, 비서실 소속입니다."

"저거 어떻게 물어낼 겁니까?"

하수영은 손가락을 들어 박살 난 탁자와 집기, 양주병 조각 등을 가리켰다.

"이 친구가 1시간 넘게 행패 부리는 바람에 손님들이 다 나갔어요. 지금 텅 빈 거 보이죠? 그리고 우리 가드들이 이 친구한테 백 대도 넘게 얻어맞고 발길질 당하고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거 어떻게 물어낼 겁니까?"

"제, 제가 회장님께 보고를 드린 후……."

"그럼 합의는 뭐든 나중에 하고, 일단 이 친구 경찰서부터 집어넣읍시다."

하수영이 경찰을 부를 듯이 스마트폰을 꺼내자 중년 남자는 펄쩍 뛰었다.

"아, 안 됩니다! 경찰만큼은 안 됩니다!"

"지금 바로 합의할 거 아니면 일단 유치장에 집어넣어야죠. 그게 기본 아닌가요?"

중년 남자는 깨달았다.

상대는 정말로 지금 경찰서에 일단 넣고 천천히 생각하려 하고 있음을.

"합의, 합의하겠습니다! 원하시는 걸 말씀해 주십시오!"

중년 남자는 부디 자기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이기를 빌었다.

하수영은 가드들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이 친구한테 한 대라도 맞았다. 거수."

척. 척. 척, 척. 척.

다섯 명의 가드가 손을 들었고, 하수영은 중년 남자를 돌아보며 무심한 듯 말했다.

"일단 두당 치료비 포함해서 합의금 5,000만 원."

"알겠습니다!"

가드 당사자들에게는 높은 금액이지만, 동우그룹 입장에서는 별것 아니다.

"이 친구 시계가 1억짜리라고 그렇게 협박을 하면서 우리 가드들을 패던데요. 이거 망가지면 물어줄 거냐고."

"드, 드리겠습니다."

하수영은 듣자마자 태연히 잠든 진상 만취자의 손에서 시계를 끌렀다.

"비싼 에르메스 신발을 신고 있군요. 가만, 이거 감히 우리 가드들을 발길질한 나쁜 신발 아닌가?"

"드리겠습니다!"

"와트니 CEO, 이 친구가 클럽에 뭐 타고 왔나요?"

눈치 보던 와트니 사장이 얼른 일러바쳤다.

"맥라렌 720s 입니다."

"김유신 장군의 말 같은 못된 놈이군요. 술 취한 주인을 여기로 데려와서 행패를 부리게 방치하여 이름에 먹칠을 하게 만들었으니. 그런 못된 애마를 계속 키울 건가요?"

"가, 가져가십시오!"

"좋아요. 위트니 CEO, A4 용지 하나만 가져와요."

빈 A4 용지를 가져오자 하수영은 그 자리에서 휘리릭 합의서 초안을 작성했다.

"자, 이것으로 우리는 합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는 도련님이 이곳에 얼씬도 하지 않도록……."

"아니아니, 또 오셔도 됩니다. 얼마든지 격하게 환영합니다. 그렇죠, 여러분?"

하수영이 클럽 직원들을 돌아보며 묻자, 다들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면서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럼요! 얼마든지 또 오셔도 됩니다!"

"와, 나도 가볍게 한 대 맞을걸. 괜히 무섭다고 초장에 바로 피했잖아. 부럽다."

합의서에 서명을 한 중년 남자는 경호원들을 시켜서 얼른 만취한 도련님을 챙겼다.

구두가 벗겨져 양말 신세인 도련님을 등에 업고, 그들은 후다닥 사라졌다. 물론 차 키도 이미 내놓은 상태였다.

"와트니 사장님, 강화유리 보안 상자 하나 마련해서 구두하고 시계 넣어서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요. 맥라렌도 클럽 입구 잘 보이는 곳에 세워놓고."

"경고입니까?"

와트니는 바로 하수영의 뜻을 알아차렸다.

"재벌 3세 하나가 술 처먹고 직원패다가 시계, 구두, 차 합의금으로 내놓고 도망쳤다고 은근히 소문내요. 그럼 다시는 저런 놈들 안 나타나겠죠."

"알겠습니다. 역시 사장님이 오시니까 한 번에 정리가 되네요. 저희는 경찰도 못 부르고 쩔쩔매기만 했는데요."

"그럼 전 이만 가볼 테니 다들 정리하고 퇴근해요. 아, 합의금은 지금 들어왔으니 바로 계좌 확인해 봐요."

"네? 벌써요?"

가드들은 어리둥절했다.

중년 남자가 입금을 하는 것은 전혀 못 봤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는데?

"일단 내 돈으로 넣었고, 내가 나중에 받아낼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들 병원 가서 정밀 검진은 받아 봐요."

그리고 하수영은 유유히 클럽을 나섰다.

"시간 많이 잡아먹었네. 오늘 수업들을 거 많은데. 안 되겠다. 특단의 수를 써야겠어."

-특단의 수는 어떤 걸 말씀하십니까?

"원격 강의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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