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38화
135장 체험 랩터 현장 (3)
헤슬라자동자는 굳이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 헤슬라자동차 측에서 알게 되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먹거리 관련 일이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겠지만, 자동차 등 첨단산업들은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싶다.
전사, 마법사, 기사 등의 캐릭터는 수도 없이 키워봤으니, 이제는 한번도 도전해 보지 않은 농부 캐릭터에 집중하고 싶은 게이머의 마음과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농사짓는 것만큼 보람차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게 없군. 진작에 농사좀 지을 걸 그랬어. 맨날 이리저리 싸우고 후들겨 패고 정복만 하고 다녔으니."
비프스 캘론과 헤어진 하수영은 이번에는 뉴욕으로 날아가서 주의회 청문회에 참석했다.
방청객으로 참관한 하수영은 이번에는 발머 스틴이 청문 대상자로 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의회와 달리, 뉴욕주의회는 발머 스틴을 소환해서 집중 질문을 퍼부었다.
대신 현직 CEO인 사티아 아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뉴욕 주의회는 좀 더 효율적으로 공략 대상을 잡는군."
발머 스틴은 꿋꿋하게 원의원들의 질문을 받아넘겼다.
"존경하는 의원님들, 의장님. 주의회가 원한다면 저희는 운영 시간 감축, 혹은 매장 축소를 통해 뉴욕주에서의 영향력을 줄이는 길을 기꺼이 택하겠습니다."
"지금 주의회를 상대로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압박을 하는 겁니까!"
"독과점이 문제가 된다면, 그로 인해 주변 요식상권 생태계가 교란된다면, 저희 스스로 점유율을 낮추는 방법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순간 방청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야유는 발머 스틴이 아닌, 주의회 하원의원들을 향하고 있었다.
"안 된다! 우리한테서 수영라면을 뺏지 말아라!"
"캘리포니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들 그새 까먹었단 말이냐! 많은 직장인들이 점심 메뉴 선택의 자유를 빼앗겨서 주린 배를 움켜주며 점심을 보내야만 했다!"
"하원놈들은 거들먹거린답시고 라면 같은 걸 한 번도 먹지 않아서 저래! 저놈들 입에 수영라면 면발을 한가득 처넣어줘야 정신을 차리지!"
본고장 레시피보다 몇 배는 진한 수영향신료 듬뿍 맛을 본 방청객들은 그렇게 야유를 퍼부어댔다.
캘리포니아 청문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하수영은 발머 스틴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확인하고 끄덕거렸다.
"청문회는 넘어갈 거 같고, 독과점 소송만 잘 준비하면 되겠네."
시일이 길게 걸리는 소송을 끝까지 지켜볼 수는 없는 법.
하수영은 마지막으로 아직 못 산 지인 선물을 마저 샀다.
그리고 귀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
사티아 아델은 모처럼 밝은 발머스틴의 표정을 보고 미소를 보였다.
"일이 잘 풀리고 있나 봅니다?"
"그럼, 아주 잘 풀리고 있지. 전혀 걱정할 건 없어."
"그럼 차세대 윈드밀 OS에 프리덤을 탑재할 수 있는 겁니까?"
"응? 뭐라고? 윈드밀에프리덤을?"
"……미스터 스틴, 설마 잊어버렸어요? 미스터 하가 이번에 체류하는 동안 반드시 설득을 해주기로 약속했었잖아요?"
"……아 그랬군. 난 또 반독점 소송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지."
발머 스틴은 어깨를 으쓱했다.
"레시피 이야기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까맣게 잊고 있었네. 미안하군."
"이럴 줄 알았으면 며칠 전 그를 만났을 때 제가 끝까지 설득을 할 걸 그랬습니다! 스틴만 믿고 있다가 이게 뭡니까?"
"에이, 윈드밀 그거 팔아봐야 얼마나 한다고, 내가 라면 부지런히 팔아서 그만큼 이익을 메워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
별거 아니라는 듯이 태연한 표정과 말투다.
사티아 아델은 답답해서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스틴! 우리는 IT회사란 말입니다!"
"IT회사라고 라면으로 돈 벌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라면도 팔고 향신료도 팔고 음료수도 팔고, 요즘다 그렇게 문어발식으로 사업해."
"스틴!"
"그리고 이번에 하수영 회장도 그랬잖아. 컴퓨팅 파워 모자라서 윈드밀 탑재는 당장 안 된다고, 데이터센터하고 중앙시스템 업그레이드하면 어련히 알아서 해줄까."
"그러니까 미리 확답이라도 받아둬야지 안심하고 준비할 거 아닙니까. 이렇게 기약 없이 기다리기만 해서야 불안해서 어디 살겠습니까."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뉴욕 말고 다른 주도 반독점소송을 제기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회사 차원에서 대응해야 해."
"……."
사티아 아델은 이마를 짚었다.
IT사업이 너무 커져서 반독점 소송을 당하는 거라면 기꺼이 웃으면서 싸울 수 있다.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회사를 위해서 얼마든지 법정에 나서리라.
그런데 라면으로 외식 시장을 독점한다고 반독점 소송이라니.
"저는 컵라면도 매번 시간 못 맞춰서 퉁퉁 불어서 먹거나, 딱딱하게 덜 익은 걸 먹는 사람입니다. 요식업 반독점 소송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렇다고 회사가 둘로 쪼개지는 걸 보고만 있을 건가!"
"……."
물론 사티아 아델도 그런 경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어쨌거나 하나로 뭉쳐서 전체 매출과 이익이 높아지는 게 좋으니까.
다만 IT 명문회사에서 신생 요식업부서가 가장 큰 성과를 낸다는 것에서, 설명하기 힘든 허탈함이 밀려올 뿐.
***
DIA 마커스 요원은 떠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돌렸다.
"그래, 잘 가라! 조국으로 잘 돌아가라! 그리고 웬만하면 자주 오지 마라!"
NSA 드한슨 요원도 긴장을 풀었다.
"설마 내 정체를 처음부터 눈치챘으면서 모른 척 기관 이름을 줄줄이 읊은 것은 아니겠지?"
CIA 핸리 요원도 마음을 놓았다.
원래 그는 후속 임무가 있었다.
이제 한국에서 짠 하고 하수영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다음, 위장 신분을 털어놓는 것이다.
-사실 저는 카길에서 고용한 비밀 용병입니다.
-불손한 세력이 귀하를 노린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래서 귀하가 미국에 발을 들인 이후부터 내내 경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수영 곁에 접근한다는 계획이지만, 상부에서 다행스럽게도 계획을 철회했다.
상부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수영 곁에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핸리는 괜한 안도감이 들었다.
"전혀 어렵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다시는 맡고 싶지 않은 임무였어."
첫 만남에서 CIA 요원이냐고 물었을 때 놀란 가슴이 아직도 종종 벌렁거리곤 한다.
***
"미국 농부들이 장수말벌 터 잡은 거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구나. 작년부터 이미 크게 난리가 났었네."
인간의 식량 중 70% 이상은 꿀벌의 수분 작용에 의지한다고 한다.
즉 꿀벌이 멸종하거나 수가 줄어들면 그 피해는 인간한테 직접적으로 온다는 이야기다.
"아메리칸 꿀벌들은 참 수난의 시대네. 전자파 때문에 생리적 이상 겪어, 농약 때문에 떼죽음 당해, 이제는 장수말벌까지."
하수영은 미국에서 보았던 장수말벌들 몇 마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놈들이 미국에 터를 잡아서 몸집이 그렇게 커진 건가? 하여튼 아메리카 대륙은 뭐든지 자리 잡기만 하면 커지는구나."
-제가 관리하는 무인농장은 꿀벌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 작물 위주라서 전혀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마스터.
버섯, 그리고 바람에 수분을 맡기는 곡류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미국 방문 내내 너무 조용해서 의외였다. CIA가 대응 계획을 못 세웠을까 봐 일부러 질질 끌면서 더 머물렀는데, 결국 얼굴도 못 보고 그냥 돌아왔네."
-마스터, 귀국이 늦어진 이유가 그것이었습니까?
"비즈니스도 있지만, CIA나 NSA 같은 애들한테 충분한 시간을 주려고 그랬던 것도 있지. 근데 나한테 관심이 없네. 농사나 짓고 있으니까 무시하는 건가?"
-마스터가 저의 창조주라는 것은 미 정보부도 알 텐데 말입니다.
"나노소프트나 윈텔, ADM하고 잘협조하고 있으니까 신경 안 쓰고 놔두려나 보네."
하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국에서 사온 장효주의 선물을 챙겼다.
공항 면세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장품이었다.
***
"진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산 거예요? 옥외광고만 발주한 게 아니고요?"
"네, 미국에 들어가니까 마침 딱 매물로 나와 있더라고요."
"대박이네요. 와, 정말 대단해요."
장효주는 자기 일처럼 발을 동동구르며 기뻐하고 좋아했다.
"그럼 수영레스토랑, 황비버섯라면, 수영향신료, 그리고 소, 돼지, 닭까지 모두 진출하는 거예요?"
"그렇죠."
"돈 정말 많이 버시겠어요. 진짜 신기해요. 농사로 그렇게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니."
그것은 탐욕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당장 장효주 본인만 해도 돈이라는 것에 초월한 지 오래였다.
그녀는 일정 이상 자산을 축적한 뒤부터는, 매년 수입의 상당 비율을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사용한다.
"원래 의식주는 인간의 기본 욕구입니다. 이 셋 중 하나만 제대로 잡고 있으면 돈을 못 벌 수가 없어요."
"농사지으시는 분들은 대부분 재정이 좋지 않으시던데."
"제대로 잡는다는 게 그만큼 힘들 죠. 정부가 반독점 소송을 걸어올 정도로 잡고 있어야 '제대로'잡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걸요."
"수영 씨한테 잘 보여야겠다. 나중에는 수영 씨 허락 없이는 쌀 한 톨, 치킨 한 조각도 못 먹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잖아요."
하수영은 그 뒤로도 차례차례 지인들을 만나며 선물을 돌렸다.
미리 원하는 품목을 확인하고 구매한 것이기에, 다들 크게 만족하면서 고마워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선물을 들고 정서진을 찾았다.
"이, 이게 정말 나노소프트 빌 고든 회장의 친필 싸인입니까?"
정서진은 빌 고든의 멋들어진 싸인 이 들어간 커다란 싸인지를 쥐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네, 제가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발머 스틴 회장님이 대신 받아다 줬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두고두고 제 가보로 보관할 겁니다."
"근데 ADM 이서스 회장 싸인을 더 원하실 줄 알았는데. 빌 고든 회장이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축구 선수라고 다 메시가 최고의 동경으로 꼽진 않습니다. 커쇼를 더 좋아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수영은 사장실 한쪽에 너저분하게 쌓여 있는 빈 도시락통을 흘끔 보고는 물었다.
"며칠째 집에 안 들어가셨나 보네요."
"지금이 회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때니까요. 시간을 아낄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 챙기시라고 엘릭서 드링크갖다 놨으니까 잊지 말고 하루에 한 병씩 꼭 챙겨 드세요."
지금 타이밍에 '반도체 노예'가 과로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매우 곤란하다.
***
배달드라이브.
배달앱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두말할 필요 없는 배달앱 1등이다.
수영치킨과 수영라면도 배달드라이브를 통해 배달을 하고 있다.
그 둘이 1등과 2등을 상시 쓸어 담고 있다 보니, 경쟁 배달앱 업체에서 줄기차게 구애가 들어온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프리덤 선에서 적절히 차단을 해왔다.
어차피 소비층은 고정돼 있으니, 굳이 여러 군데 넣어봤자 매출이 더 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100%의 매출을 여러 거래처가 나눠 가지게 되면 오히려 관리하기만 번거롭다.
배달드라이브도 수영치킨과 수영라 면이 매출의 효자라는 것을 알기에, 애지중지 여기며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준다.
플래폼이 오히려 입점업체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같이 식사를 하던 중에 전성렬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배달드라이브 매각한다는 말이 있던데?"
"그래요?"
"하 사장, 자네는 생각 없어? 이왕 매물로 나온 거 자네가 사도 괜찮을 거 같은데."
"그런 건 어떻게 운영하는 간에 업주한테서 좋은 소리 못 듣습니다. 저는 흥미 없어요. 근데 누가 산다고 해요?"
"배달택시가 산다고 하더라고, 그 일본계 회사 있잖아. 시장 점유율 2위 업체."
"배달택시면 수영치킨, 수영라면 제발 입주해 달라고 노래를 부르던 업체네요."
전성렬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설마 자기네 앱에 입주를 안 해주니까 입주한 앱을 사버리겠다, 뭐 그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