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32화 (532/1,270)

프랜차이즈 갓 532화

133장 한미요식연합(4)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지금은 자리에서 물러난 지 오래지만, 한때 세계 최고 높이를 당당히 자랑하던 빌딩이자, 뉴욕의 자랑이다.

뉴욕 맨해튼 5번가, 세계 최대의 부자 동네에 우뚝 솟아 있는 명물.

영화 등 수많은 매체에서 배경으로 등장한, 초고층 빌딩의 상징이다.

"오, 그래요?"

하수영도 반짝 하고 관심이 생겼다.

미국 부동산에 큰 흥미는 없지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근데 엠파이어 스테이트라면 소유주가 한두 명이 아닐 텐데요."

"증시에 상장되긴 했습니다. 정확히는 빌딩을 소유한 신탁법인인 '엠파이어 트러스트'의 모회사 알드리아 투자회사가 상장되어 있습니다."

"그럼 그 투자회사가 엠파이어 트러스트를 시중에 매물로 내놓은 거군요."

"예, 엠파이어 스테이트를 상장하려고 했으나 IPO 승인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얼마에 내놨다고 하던가요?"

"상당한 헐값입니다. 크라이슬러 빌딩이 1.5억 달러에 매각되는 걸 보고 경각심을 느꼈나 봅니다."

"그래도 둘은 서로 사정이 다를 텐데……."

"알드리아 투자회사가 요즘 재정상황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공실률도 나날이 높아지는 편이고요. 현금 확보차원에서 파는 듯합니다."

"고맙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조금 더 알아볼까요? 저도 이 이상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알드리아 투자회사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조만간 부도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군요."

"원래는 이 가격에 나올 매물이 절대 아닌데, 모회사의 상황이 매우 급한 모양입니다."

7억 5,000만 달러.

알드리아 투자회사가 내놓은 가격이었다.

말도 안 되는 헐값이었다. 절대 이 가격에 나올 수 있는 매물이 아니다. 그 몇 배는 더 받아도 족한 물건이니.

대신 알드리아 투자회사는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다.

"매매계약 즉시 입금해 줄 구매자를 찾는군요."

"현금이 급해서 헐값에 내놓으니, 그 정도는 당연한 거죠."

"토지 가치까지 생각하면 절대 이 가격에 나올 수 없는 매물입니다."

"크라이슬러 빌딩도 그렇고, 뉴욕의 마천루들이 서서히 몰락을 하는 건가요. 나 때는 안 그랬었는데……."

"………? 마치 미국에서 오래 사신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그냥 잠시 감성에 젖었습니다."

발머 스틴은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가지고 열심히 브리핑했다.

"여기저기서 부동산투자회사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 중입니다."

"엄청 헐값인데 왜 다들 달려들지 않는 거죠?"

"그만큼 알드리아 사정이 안 좋으니까요. 알드리아가 쓰러진 후 나서면 더 낮은 가격으로 사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겁니다."

"역시 월가의 금융개들. 돈 앞에서는 참 무서운 하이에나군요."

하수영은 쓴웃음인지 실소인지 모를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알드리아 투자회사에 연락해 주세요. 쿨거래 하자고."

"얼마를 제시할까요?"

"빌딩 신탁회사 지분을 넘기는 거니까 금방 끝날 거 아닙니까. 7.5억에 올렸으니 저는 깔끔하게 2.5억 쿨거래 부르겠습니다."

"5억 달러…… 아무리 급하다지만 2.5억 달러나 한 번에 깎으면 알드리아 투자회사도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깎자는 게 아니고 더 올려주겠다는 건데요?"

발머 스틴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 2.5억 할인 제시가 아니라, 더 올려주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요. 깎자고 하면 그건 쿨거래가 아니죠."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발머 스틴은 어안이 벙벙했다.

7.5억을 바로 받기만 해도 알드리아 투자회사는 신이 나서 달려올 것이다. 오늘 안에 모든 거래를 처리 할 수도 있다.

돈만 놓고 봤을 때, 굳이 더 얹어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지금 온 사방에는 7.5억으로도 만족 못 하는 하이에나 같은 부동산투자회사들이 널려 있으니까.

"그래도 엠파이어잖아요."

"……."

"조 단위 미만 잡것들과 같은 클래스로 전락하도록 놔둘 순 없어서요.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후려치고 싶지 않아요."

10억 달러는 1조 원.

하수영은 유서 깊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10억 달러 미만에서 거래되는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빌딩에 인격이 있다면, 떨어진 자기 몸값 단위에 슬퍼하겠지.'

억대 연봉을 받던 국내 운동선수가 노화로 인한 기량 저하 때문에 연봉이 1억 미만으로 떨어질 때, 정신적 허탈함이 크다.

단순히 연봉이 줄어든 게 아니라 단위 자체가 달라진 것에서 오는 상실감이 있다.

"제값을 다 주고 사진 못해도, 최소한의 가치는 지켜주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어엿한 아메리카 1호기가 될 테니까요."

"무슨 감성이신지 이해했습니다."

발머 스틴은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미팅을 주선했고, 알드리아 투자회사 사장은 좋아서 허겁지겁 달려왔다.

나노소프트 전대 CEO 발머 스틴은 그 이름만으로도 강력한 보증이었으니.

알드리아 투자회사는 빌딩에 얽힌 채무관계 등을 낱낱이 밝혔다.

은닉한 불량채무 등이 있을 시에는 엄격한 배상책임조항도 넣었다.

발머 스틴과 몇 명의 변호사가 입회한 자리에서 하수영은 인수 서류에 서명을 했다.

"축하합니다. 뉴욕의 상징은 이제부터 미스터의 것입니다."

알드리아 사장이 웃으면서 축하를 건넸다.

그 미소 안에는 뼈아픈 아쉬움이 희미하게 깃들여 있었다.

당장 쓰러질 회사를 살리기 위해 값진 빌딩을 너무 헐값에 팔아버렸으니.

지분을 인수하는 자리에는 엠파이어 트러스트 회사 사장, 알렉사먼도와 있었다.

"알렉사먼 사장님, 이렇게 인연을 맺게 돼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새 주인을 맞이한 알렉사먼 사장은 빳빳하게 긴장이 들어가 있었다.

그는 이 젊은 동양인 청년을, 아주 큰 재벌 가문의 후계자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0억 달러를 즉시 내어줄 수 있겠냐고.'

"하하, 언제고 빌딩관리소 직원들 모두 초청해서 회식이나 할 생각인데, 알렉사먼 사장님도 그때 초청하겠습니다."

"영광입니다."

알렉사먼은 빌딩관리소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상대방이 영어 단어 선정에 실수를 한 것이라고…….

"그럼 첫 임무를 드리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탑층에 근사한 간판하나 걸어주세요."

"탑층 간판은 빌딩의 비주얼과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립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뉴욕 마천루의 상징입니다. 지나친 옥외광고판 같은 것은 역효과를……."

"꼭 외벽에 고정 간판을 달 필요는 없잖아요. 홀로그램 투사기면 됩니다."

"……네?"

"아니면 창 내부 불빛 조절을 통해 큰 간판처럼 써도 되고요. 엠파이어 스테이트, 이벤트 때마다 자주 그런 거 해왔잖아요."

알렉사먼 사장은 일단 새 빌딩주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감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레이저 조사 장치를 업그레이드해서 광학 옥외간판 기능을 설치하겠습니다."

건물 외벽이나 창가에 빛을 쏴서 형상을 만들게 하는 정도면 되겠지 싶었다.

이 정도면 주정부에서 철거 요구를 받지도 않을 것 같고…….

"그럼 앞으로 옥외 광고가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겁니까?"

알렉사먼 사장은 당연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빌딩의 재정 상태가 안 좋으니, 새오너가 여기저기서 광고를 물어오려는 것이라고,

"아닙니다. 외부 광고는 안 받습니다. 자체 광고만 합니다."

"아, 그런……."

"그래도 엄연히 별개 법인이니까 광고료는 내가 직접 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렇습니까."

그 말에 알렉사먼의 안색이 단번에 피었다.

그간 얼마나 빌딩 재정 상황이 안좋았으면, 하수영은 알렉사먼의 명함에 적힌 이메일로 이미지 파일을 보냈다.

"광고 내용입니다. 이대로 돌아가면서 광고를 해주시면 됩니다."

그 자리에서 서둘러 이메일을 확인한 알렉사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한국어입니까?"

"네, 맞습니다."

수영레스토랑. 수영레스토랑, 수영레스토랑.

……중략…….

다양한 글씨체로 만들어진 수많은 간판 이미지 나열을 보고 알렉사먼은 신음했다.

"보스, 실례지만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수영레스토랑이라고 혹시 아시나요? 그걸 한국어로 표기한 겁니다."

"아! 수영레스토랑! 잠깐, 설마 보스가?"

발머 스틴이 기다렸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미스터 알렉사먼, 여기 이분이 바로 수영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오너입니다. 우리 나노소프트도 이분한테 사업권을 받아서 운영하는 거지요."

"세상에! 영광입니다! 수영라면은 저도 무척 잘 먹고 있습니다!"

알렉사먼은 표정이 더없이 환해지며 하수영한테 악수를 청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보니,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 새로운 보스가 수영레스토랑 오너일 줄이야! 정말 행운입니다!"

"곧 출시하는 황비라면과 마법의 향신료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마법의 향신료라고요?"

"조만간 대대적으로 마케팅이 나갈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매입까지 마무리했다.

옥외 광고를 할 만한 번화가의 멋진 빌딩을 찾아본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

하수영은 그 뒤에도 수영레스토랑 매장 몇 군데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에는 워싱턴주에 있는 나노소프트 본사 캠퍼스도 방문했다.

그곳에서 현 CEO인 사티아 아델및 고급 엔지니어들도 처음으로 만나 인사했다.

특히 '프리덤 개발자'를 처음으로 만나는 사티아 아델의 눈빛은, 마치 하수영을 금방이라도 삼키고 싶어하는 듯이 이글거렸다.

물론 하수영이 프리덤 개발자라는 것을 아는 것은, 나노소프트 중에서도 극히 소수다.

"미스터, 우리는 귀하의 요구대로 수영레스토랑을 사내 매점부터 시작해서 북미 최고의 프랜차이즈 요식 업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사티아 아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이제 우리에게 프리덤 라이선스를 주십시오. 우리 나노소프트의 윈드밀 OS에 프리덤을 탑재하고 싶습니다."

"수영레스토랑 도입해서 오히려 다른 사업부들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들었는데요."

사티아 아델은 시작부터 말문이 막 혀 버렸다.

"그걸 명분으로 다른 대가를 달라고 하시면 균형의 여신상이 웃을 겁니다. 아, 자유의 여신상이었나?"

"미, 미스터! 프리덤을 제발……!"

"그러고 보니 어느새 주객이 전도 되긴 했구나."

수영레스토랑을 미끼로 삼아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프리덤 라이선스를 받아내겠다!

이것이 나노소프트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 수영레스토랑은 나노소프트 다른 어떤 사업부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남기는 중이었다.

"헤슬라에는 프리덤 자율주행 라이선스를 제공하시지 않았습니까?"

"겨우 자율주행 하나 했는데도 컴퓨팅 파워가 터무니없이 딸립니다.

윈드밀 같은 글로벌 OS에는 아직 감당할 정도가 안 돼요."

"그럼 어떻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한창 데이터센터 등 시스템 업그레이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공수표쯤은 얼마든지 날려줄 수 있었다.

***

하수영은 귀국 직전, 한 줄의 미국발 속보를 보고 탑승게이트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나노소프트를 반독점 행위로 고소!]

[주정부 : IT회사가 식당 상권 기웃거리는 게 웬 말인가?]

[현 CEO 사티아 아델, 주의회 청문회 출석 요구!]

하수영은 곧장 캘리포니아 주의회로 향했다.

"이런 구경거리를 놓치고 돌아갈순 없지. 아, 근데 팝콘을 안 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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