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31화 (531/1,270)

프랜차이즈 갓 531화

133장 한미요식연합(3)

다음 날 점심.

하수영과 발머 스틴은 수영레스토랑 매장을 돌아다녔다.

"이곳이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LA 매장입니다. 무려 800석의 좌석을 갖추고 있지요."

"와, 정말 크네요. 우리 3호기 본점은 뭐 그냥 비벼보지도 못하겠네."

"원래 종합마트가 들어선 곳이었는데 영업을 정리하면서 우리가 사들였습니다. 개조해서 지금은 수영레스토랑이 되었죠."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정말 많군요. 빈자리가 전혀 보이질 않네요."

"자, 우리도 줄을 설까요."

발머 스틴과 하수영은 나란히 줄을 섰다.

둘은 거의 20분 넘게 기다려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한 그릇 시킨 사람은 거의 안 보이네요?"

"디폴트가 두 그릇입니다. 세 그릇이상 드시는 고객이 가장 많습니다."

"아, 그래서 매출이 그렇게 가파르게 증가했던 거군요."

북미 연 매출 800억 달러라는 예상치에는 미국인들의 왕성한 식욕도 제대로 한몫을 한 것 같다.

발머 스틴도 가볍게 두 그릇을 주문했다.

"저는 한 그릇만 먹겠습니다."

"입맛이 별로 없으신 모양입니다."

"한국에서 매일 먹다 보니 물려서요."

"허어, 수영라면은 아무리 먹고 또 먹어도 중독되기만 할 뿐, 물린다는 사람은 없는데요. 역시 창시자라서 다른가 봅니다."

레스토랑에서는 피망, 단무지, 김치 등의 반찬을 보조로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소량이지만 돈을 내고 먹어야 하며, 무료 리필은 되지 않는다.

수영라면을 반찬 없이 먹고 있는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발머 스틴 역시 보조 반찬을 주문하려 할 때, 하수영이 제지했다.

"제가 가져온 김치가 있는데, 이걸로 한 번 드셔보시죠."

"아, 그럼 콜키지 접시 두 개 부탁드립니다."

발머 스틴은 직원한테 그렇게 주문했고, 접수를 받은 직원이 떠났다.

얼마 후 주문한 라면과 빈 접시 두 개가 나왔다.

일반 반찬값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값을 치르고 사용하는 접시다.

하수영은 김치통을 꺼내서 그 안에 담긴 김치를 빈 접시 위에 덜어 담았다.

"수영김치라는 건데,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한국 매장에서만 내놓고 있습니다. 한 번 드셔보시죠."

"이게 바로 오리지널 사이드 메뉴로군요."

"덤으로 여기 수영향신료를 뿌려주면……."

하수영은 수영향신료(엘릭서 고춧가루)를 라면 세 그릇 위에 살살 뿌렸다.

붉은 가루를 직시하는 발머 스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향신료입니까?"

"가문의 비법으로 만든 향신료입니다. 음식의 맛을 좋게 만들어주죠."

"그러고 보니 식재료 패키지 중 비슷한 걸 봤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 양은 아니었죠?"

하수영은 씩 웃었다.

"원래 이 정도는 팍팍 뿌려줘야 오리지널의 맛이 납니다."

"그럼 그동안 공급된 물량은 그 향신료 비중이 적었다는 뜻입니까?"

"물량이 부족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매장을 너무 급격히 늘리셨잖아요. 하지만 이제는 해결됐으니 안심하세요."

나노소프트 사내 매점으로 들어올 때부터, (수영향신료)엘릭서 고춧가루 양을 몇 배로 줄여서 사용했었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쓸 물량도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수영향신료는 음식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탕, 찌개, 찜, 구이, 심지어는 샌드위치와 햄버거, 맨밥은 물론이다.

술에 타먹으면 술맛을 더 좋게 느끼게 하는 작용까지 한다.

수영김치와 마찬가지로 청담수영마트 본점에서만 매일 소량 판매한다.

마트 오픈하자마자 바로 진열대가 텅 비어버리는 품목이다.

그리고 수영레스토랑에서도 35,000짜리 수영라면에만 뿌린다.

10,000짜리 배달용에는 조금도 뿌리지 않는다.

발머 스틴은 기대에 차서 포크를 들었다.

"이게 오리지널 비중이라니. 과연 맛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여기서 맛이 더 좋아질 여지가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에 면발을 입에 넣고 한 입 씹은 순간, 발머 스틴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하수영이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으면서 눈을 마주치고 웃어 보였다.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라는 듯한 표정이다.

그러나 발머 스틴은 하수영의 그런 눈빛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포크는 손의 의지를 벗어난 듯 신들린 듯이 움직이고, 치아는 쉴 새없이 면발을 씹어 삼킨다.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순식간에 비워버린 발머 스틴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온몸을 강타한, 엘릭서의 권능으로 빚어낸 신비로운 미각의 향연에 부르르 떨기만 했을 뿐.

이윽고 그가 더듬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한국의 수영레스토랑은 모두 이 마법의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버전입니까?"

"네. 미국에 충분한 물량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번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번 먹어볼 것을 그랬다고, 발머 스틴은 속으로 몇 번이고 후회했다.

발머 스틴은 몇 번이고 탄식하며, 매장 안을 꽉 채운 손님들을 둘러보았다.

"저 가여운 손님들에게…… 한 번이라도 이 맛을 보여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한 번만 보여주고 끊으면 그게 더 잔인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지금까지 1인분당 향신료 투입량을 더 늘리지 않았던 거군요."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쓸 양도 부족했습니다. 제가 가진 마트 1개 지점에서만 매일 소량 판매합니다."

가칭 수영향신료(엘릭서 고춧가루)는 수영김치를 담그는 데에도 들어가고, 수영라면에도 들어간다.

생산량이 충분해진 지 꽤 되었음에도, 미국 수영라면의 향신료 비중을 유지해 왔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슬슬 수영향신료를 미국에서부터 풀어보면 되겠군.'

"수영향신료를 미국에서 정식으로 유통을 해보려고 생각 중입니다."

"정식 유통이요?"

발머 스틴은 순식간에 사업가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네, 수영레스토랑에서 먼저 인지도를 쌓으면 좋을 거 같은데요."

"음, 수영라면을 고객 앞에 놓은 뒤 곧바로 수영향신료를 뿌려주면 고객들이 이게 뭔가 하고 호기심을 보이겠군요."

"그리고 한 입 맛을 보고는 향신료를 어디서 구할 수 있냐고 문의하겠지요."

"과연, 그런 식으로 하면 수영향신 료를 고객들 뇌리에 강렬한 이미지로 남길 수 있겠어요. 적절한 마케팅을 병행하면 단숨에 최고의 인지도를 쌓을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미국 시장의 수요를 감당할 만한 생산력을 갖췄습니다."

"혹시 유통처가 구해졌습니까?"

"프랜차이즈 요식업이라서 향신료유통은 조금 곤란할까요? 전 당분간은 일반 마트가 아니라 수영레스토랑에서만 구할 수 있게 하고 싶은데요."

"전혀 문제없습니다."

원래라면 프랜차이즈 레시피는 다 동일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발머 스틴은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레시피 정상화가 아니라, 아예 향신료 유통 자체를 맡겨주는 게 어디냐.'

상대가 훨씬 큰 것으로 보상을 해줬으니.

발머 스틴은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안 그래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 행보하는 수영레스토랑의 매출을 더욱 끌어올릴 획기적인 한 수가 될 것이다.

황비버섯라면과 수영향신료, 오로지 수영레스토랑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것들.

수영라면을 먹어보지 않은 이들, 그리 자주 먹지 않는 이들의 발걸음까지도 끌어모을 수 있으리라.

***

발머 스틴은 하수영의 체류기간 내내 함께하며 에스코트를 할 예정이었다.

여러 매장을 둘러보고 난 후 다시 새로운 호텔을 잡았다.

호텔 버틀러들이 상냥한 미소를 머금은 채 두 사람의 짐을 들고 뒤를 따랐다.

로비를 걷던 중 하수영이 멈칫했다.

"응? 뭐지?"

"무슨 일입니까?"

"어제 묵었던 할틴 호텔에서 봤던 사람을 여기서도 본 거 같아서요."

"그럴 리가요. 같은 계열 호텔이니 유니폼이 같아서 착각했을 겁니다."

"그런가. 아닌데. 뭔가 이상한데."

하수영은 갸웃거리다가 이내 의아함을 거두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발머 스틴은 버틀러에게 룸서비스를 주문했다.

"여기 파인 다이닝 메뉴를 2개씩 전부 갖다 주시오."

"전부 말입니까?"

버틀러는 살짝 놀라서 반문을 하고 말았다.

두 사람이서 그 많은 음식을 다 먹겠다고?

"맛을 한 번씩 보려는 것이니 개의치 말고 갖다 주시오. 코스로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주류는 여기 내가 체크해 둔 것들을 순차적으로 갖다 주면 됩니다."

발머 스틴은 술도 글래스로 100잔이상 주문했다.

버틀러들이 물러가고, 하수영과 발머 스틴은 각자 샤워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넓은 거실과 서재, 개별 샤워실이 딸린 방이 6개나 있는 프레지덴셜스위트룸이다 보니 불편한 것은 없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유통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니, 이윽고 룸서비스들이 차례차례 들어왔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맛들이다. 하지만 수영향신료를 뿌리면 과연…….'

발머 스틴은 신을 영접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양송이스프 위에 수영향신료를 뿌렸다.

그리고 한 수저를 떠서 입에 넣은 순간.

'……!'

그는 눈을 부릅떴다.

맛이 확실히 달라졌다.

'아니, 기본 맛 자체는 그대로인데…… 이건 혀를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달라졌다고 봐야 하는 건가? 아,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

발머 스틴은 정신없이 스프를 입에 떠 넣었다.

아직도 5종류의 다른 스프를 더 먹어야 하고, 이후로도 수십 가지가 넘는 음식들이 나온다.

'하나하나 맛을 보려면 시작부터 이렇게 달려서는 안 되는데…….'

하지만 수저를 멈출 수가 없었다.

엘릭서 고춧가루의 권능에 이제 막 노출된 혀의 저항력은 형편없을 만큼 무기력했다.

"술에도 한 번 뿌려보시죠."

하수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권했고, 발머 스틴은 취한 듯이 글래스에 수영향신료를 뿌리고는 입에 털어 넣었다.

뱃속을 짜르르 울리는 위스키의 강렬한 맛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충격을 남긴다.

이제껏 한 번도 발을 내디뎌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 그 암막이 그를 향해 활짝 열렸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제가…… 정말 이 많은 음식을 다 먹었단 말입니까?"

"수영향신료는 소화 기능 촉진을 도와주는 효능도 있습니다. 평소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분들이 음식에 곁들여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뱃속도 편안해지지요."

"이건…… 정말 반칙입니다. 말도 안 되는 신의 향신료 아닙니까."

발머 스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20개가 넘어가는 텅 빈 접시들.

아무리 파인 다이닝 메뉴들이 양이 적다고 하지만, 이 많은 음식을 순식간에 해치우다니.

"룸서비스입니다."

버틀러가 요리 카트를 끌고 다시 들어왔다.

아직 나와야 할 룸서비스 메뉴는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신기한 것은 배가 부른데도, 새 음식들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스테이 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발머 스틴은 수영향신료를 그 위에 뿌렸다.

천천히 레드와인 글래스를 쥐어 들면서 말했다.

"수영라면과 황비라면에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일단 한 번 먹게 되면 자꾸자꾸 생각나고 입맛을 잡아당기지요."

와인으로 입안을 가볍게 적시는 그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이 수영향신료의 구속력은 차원이 다르군요."

"진짜 중독당한다는 감각이 뭔지 알려주지요."

"맞습니다. 담배는 비교도 안 되는 놀라운 중독성이 있습니다."

요리를 연달아서 거듭 먹다 보니, 발머 스틴은 서서히 그 중독성에 적응하고 있었다.

맛이 좋아졌다는 것은 여전히 인지 하지만, 초반의 취기에 가까운 홀림은 덜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익숙해짐의 진정한 무서움을, 발머 스틴은 꿰뚫고 있었다.

"저는 이제부터 이 향신료 없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 맛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겠지요."

"그것도 언젠가는 적응할 겁니다."

"예, 몸은 적응하겠지요. 하지만 기억은 적응하지 못한 채, 언제까지고 과거의 이 맛을 그리워하며 몸부림을 칠 겁니다."

이상향과의 사랑.

그것의 진정한 소중함은 사랑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헤어졌을 때에 또렷이 밀려온다.

수영향신료가 그것과 같았다.

"두렵기까지 합니다. 과연 이 신의 향신료를 풀어도 괜찮을지, 오히려 우리 미국인 소비자들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게 나을지……."

"그렇다고 다른 회사에 유통을 양보하실 건 아니잖아요."

"물론이지요. 절대 양보할 수 없습니다."

발머 스틴은 자신의 흔들림을 부숴버리겠다는 듯이,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어서 한 입으로 와구와구 씹어 먹었다.

"지금 바로 계약합시다."

***

발머 스틴은 수영향신료(엘릭서 고춧가루) 북미 유통 계약을 맺었다.

그는 황비버섯과 수영향신료를 절대 다른 마트를 통해 유통할 마음이 없었다.

수영레스토랑의 매출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한동안 매장 판매만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날도 둘은 수영레스토랑 매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매출 하위권 매장도 항상 손님이 붐비고 있었다.

매출이 낮게 나오는 것은 가게 규모 자체가 작아서이지, 인기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미국을 방문한 지 나흘이 지나갔다.

"괜찮은 빌딩 매물이 오늘 시중에 나왔는데 미스터 의향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어디에 있죠?"

"뉴욕입니다. 캘리포니아가 아니라서 조금 망설였는데 말씀은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캘리포니아와 대륙을 가로질러 완전히 반대쪽.

"큰가요?"

"당연히 큽니다."

"얼마나 크죠?"

"그래도 한때 세계 최고층 빌딩 1위에 이름을 올린 녀석이니까요."

"오, 설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새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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