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29화
133장 한미 요식연합(1)
전성렬은 비서실의 연락을 받았다.
"사장님, 오후에 나노소프트와 미팅이 있습니다. 준비해 주세요."
"아, 그래. 잊고 있었군. 어서 가지."
나노소프트라면 전성렬에게도 친근한 이름이다.
국민 OS인 윈드밀 때문은 아니다.
바로 수영레스토랑 북미 사업권을 가진 업체이기 때문이다.
통역을 끼고 대화를 시작했다.
"저는 나노소프트 요식프랜차이즈사업부 총책임자, 부사장 발머 스틴입니다."
"사장 전성렬입니다. 수영라면이 요즘 북미에서 아주 잘나간다면서요?"
"저번 분기 매출 200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맙소사! 분기 매출 200억 달러라고요? 그럼 연간 예상 매출이 800억 달러라는 게 아닙니까?"
"맞습니다. 머지않아 천억 달러도 달성할 겁니다."
"월 50억 달러…… 역시 미국은 시장 자체가 다르군요."
"귀사가 중국에 우회 수출하는 라면만 최소 월 15억 개라고 들었습니다. 3달러만 받아도 월 45억 달러인데요."
그게 전성렬이 놀라워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이유였다.
프라임컴퍼니의 국내 매출은 월 1.5조 원.
하지만 대중국 매출은 그 몇 배에 달한다.
생산력이 달리는 게 안타까워서, 우회수출을 담당하는 효원식품이 오히려 마진 없이 공장을 대신 지어주겠다고 나설 정도다.
하지만 이어지는 발머 스틴의 말에 미소가 싹 사라져 버렸다.
"황비버섯라면 북미 전역 유통권을 갖고 싶습니다."
"북미에 정식으로 유통하시겠단 말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비서실장도 놀란 눈으로 대화에 집중했다.
그냥 수영농장 방문 일정에 프라임컴퍼니 견학을 끼워 넣은 줄 알았는데.
황비라면 정식 유통을 제안할 줄이야.
"우리는 북미 전역에 5,000개 이상의 수영레스토랑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라면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마케팅을 펼치기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죠."
"……."
"우리 나노소프트 요식프랜차이즈사업부만큼 황비라면을 북미에서 잘유통할 수 있는 업체는 없을 겁니다."
정신을 차린 전성렬은 본격적인 협상 모드에 들어갔다.
"현재 황비라면은 중국으로 3달러, 5달러의 가격으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가격 차이는 황비버섯 함량의 차이겠군요."
"그렇습니다."
3달러, 5달러라고 해도 라면에서 버섯만 꺼내도 중국 현지 버섯 가격보다는 저렴하다.
베트남에서 중국 우회 수출을 맡은 효원식품은 정말 없어서 못 팔고 있었다.
"수출기업에 주는 공장 출고가는 각각 1.5달러, 3.5달러로 나가고 있습니다."
효원식품이 1차 비닐포장 제품을 베트남으로 가져가는 가격이다.
"그럼 저희는 1.5달러짜리 위주로 가져가겠습니다. 일단 1차 물량으로 100억 개를 발주하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100억 개를 무슨 점심 메뉴 고르듯이 가볍게 말한다.
"석 달…… 아니, 두 달 안에 납기를 마치겠습니다. 이거 신용장부터 개설해야겠군요."
프라임컴퍼니는 해외무역거래 경험이 없다.
지금까지 전부 해외에서 찾아와서 물건을 사갔으니까.
"번거롭게 신용장 개설까지 할 필요 있습니까? 오늘 계약서 작성하고 바로 대금부터 지불하겠습니다."
"허어, 그래도 되는 겁니까?"
"프라임컴퍼니 85% 대주주가 수영레스토랑 오너인데, 그보다 더 큰 신뢰가 있겠습니까?"
전성렬은 모발이 없는 눈앞의 백인 남자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하수영을 중심으로 끈끈하게 묶인 인연이라니.
뭔가 특별하다는 느낌이 든다.
***
"중국업체가 못 가져가서 사은품으로 풀어버린 19억 개가 새삼 아깝군."
"이미 지난 걸 아까워하진 마시구요. 아무래도 물량 배분을 조절해야겠는데요."
"일단 효원식품에 양해를 구하고 동남아 발주량을 줄여야지."
"그래도 100억 개를 채우려면 모자라요."
"어쩔 수 없지. 해외업체에 도매로 팔아치우던 것들도 죄다 중지해. 당분간 국내 소매 장사에만 집중한다."
전성렬과 정서희는 한창 논의 중이었다.
"한동안은 북미 시장에 물량을 밀어주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야지. 정리할 건 최대한 정리하고 몰빵해 줘야지."
"국내 물량으로 월 6억 개가 나간다지만, 그게 전부 라면 먹는 사람들이 아니죠."
"절반 이상은 요식업체들이 사가는 거지."
국내 물량 중 절반 이상은 요식업체들이 매장 요리에 쓸 황비버섯 습득을 위해 쓸어 담는다.
청담수영마트에서 황비버섯을 팔긴 하지만, 여전히 일반 가정이나 매장에서 구매하기에는 비싸다.
청담동 주민들이야 원래 그런 거 고려하지 않으니 싸졌다고 좋아라 하면서 사지만,
"안타깝지만 최대한 일반 소비자들 위주로 돌아가게 판매 정책을 바꿔야겠어."
"판매업체들에 협조를 구해야겠군요."
"뉴월드마트, 하우스플러스는 협조를 잘 해줄 테니 염려할 것 없고, 편의점 라인이 문제인데."
미국 외 해외업체들 공급 물량은 끊는다.
효원식품의 중국, 동남아 수출 물량도 줄인다.
국내 요식업체들에 들어가는 물량도 억제한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해결책을 논의했다.
-주인님.
그때 전성렬의 프리덤(pro버전)이 불렀다.
-저를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게끔하면 일반 소비자들 위주로 물량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뭐? 그게 가능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저입니다. 업자가 사려는 건지 자기가 먹으려고 사려는 건지는 쉽게 검증할 수 있죠.
"오, 그렇군!"
-그렇게 진행을 할까요?
"그런데 그러면 프리덤을 안 쓰는 소비자들은 어떻게 라면을 구하지?"
-소외지역 위주로, 소형마트에 물량을 지속적으로 소량씩 풀면 됩니다. 그 점은 제가 데이터를 분석해서 핀포인트로 물량 공급을 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다오."
정서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프로 버전이 편하고 좋네요. 업무 활용이 가능하니까 일이 편해요."
"그러게 말이야. 우리는 운이 좋았어. 하수영 사장이 실비아컴퍼니와 친분이 있어서 프로 버전을 공짜로 쓸 수 있으니."
***
"기어이 황비라면 북미 유통권을 가져가셨군."
프리덤을 통해 소식을 접한 하수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프리덤, 지금 공장으로 충분해?"
-장기적인 수요 증가를 고려하면 한시라도 빨리 공장을 증설해야 합니다. 적어도 지금보다 20배 이상은 증설을 해야 합니다.
"전성렬 사장님은 어떻게 하고 있지?"
-이미 공장증설을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고 계십니다. 수영농장에서 쓰는 무인로봇을 도입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은근히 있습니다.
"그건 안 되지. 라면 제조에 전자 노예들을 쓰는 것은 지나친 낭비야."
누군가 그 말을 들었다면, 곡물을 키우는 데 쓰는 것은 낭비가 아니냐고 입에 거품을 물지도.
"그리고 그런 속세의 공장은 사람을 최대한 많이 쓰는 게 좋아. 일자리 창출을 장려해야 하니까."
-마스터는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마음이 전혀 없으시지요.
"그런 거 없지. 하도 많이 해서 이제 질렸어. 이번 생은 여유를 즐기고 싶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수영은 우형신 중개사의 사무소에서 거래 상대방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매매는 아니고, 임차인을 받는 계약이었다.
잠시 후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들어섰다.
"여기 이분이 건물주 되십니다."
"어머, 정말 젊으시네요?"
새 임차인 여자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리저리 살폈다.
"임차인님도 무척 젊으신데요. 카페를 하실 거라고요?"
"네, 맞아요."
"들으셨겠지만 빈 매장이라서 권리금 문제가 없습니다. 차후에 가게를 넘기실 때에도 권리금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을 겁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렇게 하수영은 무난히 거래를 마쳤다.
임차인 여자는 여전히 그가 신기한 지 한참을 떠나지 않고 붙잡은 채 이것저것 물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수영은 전혀 귀찮은 기색 없이 새 임차인의 질의응답에 성심껏 응했다.
마침내 임차인이 떠났고, 우형신 중개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사장님한테 흑심이 있는 모양입니다. 젊고 훈훈한 건물주 청년이라서 마음이 끌리나 봅니다."
"오픈일에 한 번 어르신들 모시고 가서 크게 팔아줘야겠네요."
"아유, 오픈일에 매장 꽉 채우면 임차인도 크게 고마워할 겁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형신한테 전화가 왔다.
그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통화 내용이 그리 썩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몇 분 후 그가 미안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중개사협회인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
"거기 협회도 문제가 심한가 봅니다. 우리 임대인협회 정도 되나요?"
"아유, 임대인협회는 중개사협회에 비하면 아주 양반입니다. 천사죠, 천사."
"그 정도예요?"
"중개사협회 적폐가 정말 알아줍니다. 사이즈가 작아서 주목을 못 받을 뿐이죠. 중개사 오래한 친구들은 아주 협회장 일당이라면 학을 핍니다."
"고생하시네요. 저처럼 즐기시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사장님 정도 되면 협회가 폐단이 얼마나 심하든 충분히 즐길 수 있겠지요, 허허."
"그러고 보니 임대인 협회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언제 시간 내서 한번 참여하던가 해야겠어요."
"왕이 마실 나가는 거군요. 좋은 재미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참, 어쩌면 제가 미국에 건물 하나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에 건물을요?"
우형신의 표정이 갑자기 달라졌다.
부동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표정이 진지해지는 걸 보니, 천명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네, 미국에 쌓아둔 돈이 좀 있는데. 굳이 한국에 들여올 필요도 없고 해서요. 마냥 놀리기 뭐하니 건물이나 한 채 살까 생각 중이에요."
"봐두신 건물은 있으신 겁니까?"
"후보야 몇 개 있죠. 근데 미국이 청담동만큼 마음 있는 곳은 아니라. 그냥 트로피 겸해서 한두 채 사고 말 거 같긴 해요."
"그래도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터라. 그럼 조만간 미국을 방문하시겠군요."
"내일 출국합니다."
"역시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시군요. 좋은 매물 하나 업어오십시오."
"고맙습니다. 중개사님도 선물 받고 싶으신 거 있으면 오늘 자정까지 톡으로 보내주세요."
***
-갑자기 미국을 간다고요? 그걸 왜 이제야 말해요?
"티켓을 오늘 끊었으니까요."
-……아.
장효주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수영레스토랑이 지금 미국에서 잘되고 있잖습니까. 이번에 황비라면을 수출하기로 결정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사업장 살피러 가시는 건가요?
"그것도 있고, 건물 한 채 사서 수영레스토랑 미국 본점 멋지게 꾸며 볼까 해서요."
-수영레스토랑 미국 본점이요?
"네, 아무래도 상징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주요 번화가에 고층 빌딩하나 딱 사서 수영레스토랑 글자 박아 넣으면, 그 자체로 브랜드 홍보가 되죠."
-고작 홍보하자고 고층 빌딩을 사는 것은 조금 오버 아닌가요?
"원래 프랜차이즈 회사들 성공하면 땅값 비싼 곳에 본사 사옥부터 마련해서 간판 달아요. 모두의 공통점입니다."
-청담동에는 본사 없잖아요.
"본점 있는 3호기가 본사나 마찬가지입니다. 탑층에 간판 달았는데, 아직 못 보셨나 봐요."
-그건 또 언제 달았대…….
"아무튼 내일 미국 갑니다. 선물필요한 거 있으면 자정까지 빨리 보내요."
-어머, 저만 선물 사주시려고요?
"주변 지인들 거 다 사는데요."
-……칫.
하수영은 그 뒤로도 전성렬, 정서 희, 정서진 등 지인들한테 자신의 출국을 알렸다.
***
공항을 빠져나오자 검은 정장에 선 글라스를 낀 건장한 두 백인 남자가 다가왔다.
"헬로우, 미스터. 웰컴 투 아메리카……."
"CIA에서 나왔습니까?"
"왓?"
"아니면 ODNI? NSA? DIA? 카길? 로스차일드? 록펠러? 카네기?"
……중략…….
"아유, 숨차네. 자, 이 중 어디입니까?"
"……할틴 호텔에서 나왔습니다. 미스터를 픽업하기 위해서……."
멋들어진 호텔 리무진이 준비된 것을 보고 하수영은 작게 신음했다.
"분명 하나는 있을 텐데."
"……타시지요, 미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