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26화
132장 고기 카르텔(2)
근래 한우 가격은 폭등한 상태였다.
하수영이 전국의 소농가에서 한우를 닥치는 대로 사 모으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국의 한우를 다 합치면 300만 마리 정도인데, 축산농가 하나에만 5만 마리가 몰려 있는 상황이었으니.
심지어 목표치는 100만 마리였다.
그래서 한우의 가격이 금값이라고 할 정도로 껑충 뛰어 있었는데,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황태진 부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요즘 한우가 귀하다는 건 나도 아네. 그런데 이건 물량이 너무 하지 않은가?"
최근 3개월간 평균 매입치의 40%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마트에서 팔 수 있는 고기양이 절반 밑으로 뚝 떨어진 셈이다.
"설마 하우스플러스에서 한우 공급이 줄어든 것 때문에 선수를 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알아봤는데 하우스플러스도 지금 한우 매입량이 모자라서 발을 동동 구르는 중이라고 합니다."
"코스트홈은?"
대형 창고형 할인마트, 코스트홈.
거기 상황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코스트홈도 별다를 거 없습니다.
이번 달에 갑자기 매입량이 줄어들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양입니다."
"이런……."
"수영목장 한우 수집이 이제부터 제대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그간 유통량이 줄어서 가격이 올라가는 식으로 시장에 경고를 했었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물량 감소라는 점화에 불을 붙인 것이다.
"부회장님, 여간 큰일이 아닙니다. 알아봤는데 몇 달 전부터 이미 출하되는 암소의 50% 이상이 수영목장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본래 전무였다가 마트 사장으로 승진한 박태규.
그는 황태진의 오랜 심복으로, 마트 경영에 누구보다 성실했다.
"50%나 들어가고 있다고?"
"수영목장 입장에서는 50% 정도밖에 확보를 못 하는 겁니다. 100%전부 긁어모으고 싶지만, 시중 유통을 위해서 절반 정도는 억지로 도축해서 파는 것이니까요."
"억지로 도축해서 파는 거라고?"
"네, 농식품부의 중재 덕분입니다. 농식품부가 중간에 중재하지 않았으면 90% 이상의 암소들이 수영목장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수영목장은 머릿수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기에 도축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오로지 새끼를 치고 키우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얼마 전 비프스 캘론이 사간 800마리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시간 절약을 위한, 안타까움을 짜낸 투자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굳이 800마리나되는 암소를 도축하지 않았을 것이다.
3년 이상의 늙은 암소도 아니고, 새끼 때부터 수영농장산 볏짚을 먹여 키운 어린 암소들인데.
"그동안은 도매 쪽에 장기냉동보관하던 육류 물량이 있어서 가격이 높아졌지만 어찌어찌 버텨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물량 자체도 바닥이 난 모양입니다. 도매처에도 한우 물량자체가 없습니다."
가격 폭등이 1차 충격.
물량 부족이 2차 충격.
그럼 3차 충격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우리가 농식품부를 압박해서 도축유통물량을 더 늘릴 수도 없을 테고 말이야."
"절대 못 하는 일이지요."
뉴월드마트 51% 지분 보유자가 하는 일에 감히 훼방을 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 부분은 하우스플러스도 우리와 똑같은 처지일 테고, 그럼 코스트홈에서 움직이려나?"
박태규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말했다.
"이미 코스트홈에서 움직였다고 합니다."
"그래?"
"네, 수영목장에서 출하 암소를 독점하는 것은 시장 교란이니, 한우가격 안정을 위해서 정부에서 더 적극적으로 중재를 해야 한다고요."
하수영과 무관한 코스트홈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부에서 어떻게 나올 거 같나?"
"소비자들이 아우성이니만큼 아무 래도 수영목장에 불리한 식으로 중 재를 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정당한 가격을 주고 소를 사겠다는데 그걸 막을 수 있나?"
실제로 농가 입장에서는 수영목장에 암소를 파는 게 금전적으로 더 이득이었다.
농식품부는 중재 과정에서 그만큼의 차익을 더 보전해 주는 방법을 취하고 있었다.
즉 중재를 하면 할수록 농식품부도 손해를 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정부 입장에서 가장 신경쓰이는 건 소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된 소비자들의 비난이죠."
"우리 입장이 난감하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말이야."
"사실 아까 코스트홈에서 우리 측에 제안이 오긴 했습니다."
"제안? 설마……."
"네, 같이 농식품부를 설득해서 한우 유통량을 늘리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놈들, 우리 회사 지분 관계가 어떻게 돼 있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제안자가 아무래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우 물량 상황을 알아보겠다' 라는 말로만 적당히 끝냈습니다."
"그건 잘했네."
괜히 '검토해 보겠다'라고 둘러댔다가 그 말이 돌고 돌아서 하수영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둘러대면 얼마든지 면피를 할 수 있다.
코스트홈 담당자가 마음만 먹으면 지분관계를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기사 검색만 해도 뜨고, 다른 동료는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하지만 단 몇 시간, 며칠이라도 이익을 보기 위해 박태규 사장은 먼저 밝히지 않은 것이다.
"그럼 우리에게 있어 가장 베스트는 뭘까?"
"이참에 호주산 소고기를 제대로 밀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흐음, 호주산이라……."
"소비자들이 한우한우 거리는 분위기를 환기해 두면, 차후에 한우 물량이 안정되더라도 호주산 매출 증가로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박태규 사장은 열심히 설명했다.
"한우 먹는 사람들은 한우만 먹습니다. 웬만해서는 수입산은 안 먹습니다."
"그건 그렇지."
"근데 그런 사람들이 또 소고기는 많이 먹습니다. 애초에 소고기를 좋아하는 데다가 주머니 사정도 괜찮으니 한우를 그렇게 찾는 겁니다."
"그 사람들의 입맛을 바꿔 보자?"
"바꿀 필요까지는 없고, 한우 아니면 안 먹는다는 사람들한테 수입산의 좋은 맛도 알려주자는 거죠."
"좋아, 진행하게. 이참에 냉동고에 있는 호주산을 한 번 털어보자고."
황태진 부회장이 흔쾌히 승낙하자 박태규는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하우스플러스와 같이 진행을 했으면 합니다."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왜 굳이?"
"경쟁사이기 전에 같은 자회사, 함께 노력을 해보자고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라는 이미지를 위해서입니다."
황태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태규 사장의 말은 하수영한테 이 기회에 눈도장 한 번 더 찍어두자는 말이다.
"나쁠 건 없군. 그렇게 진행해."
"예, 부회장님."
***
박태규 사장은 하우스플러스 임형 필 사장을 만나서 미팅을 진행했다.
이참에 한우만 찾는 사람들한테 호주산, 미국산의 맛도 알려주자.
"한우가 아니면 차라리 돼지와 닭을 먹겠다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보자는 거군요."
"부끄럽지만, 당장 저만 해도 그랬었습니다."
"하하, 사실 저도 수입산 소고기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덕분인지 협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두 마트 간의 철저한 협조.
물론 서로 속에 칼을 감춘 '의붓형제'끼리의 협조였다.
'이건 협조하지만…….'
'라테마트만큼은 절대 협조하지 않는다.'
'라테마트는 반드시 우리가 먹는다.'
둘은 허허 웃는 눈빛을 통해 상대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비즈니스 협의를 마치고 바로 헤어 지기 뭐해서 둘은 간단한 근황을 나눴다.
"그러고 보니 회장님께서 조만간 무슨 기념회 하나를 여신다고 들었습니다."
"아, 저도 들었습니다. 구의원으로서 여는 행사라고 들은 거 같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하수영만큼 다양한 직위를 가진 사람도 드물다.
그냥 어디어디 단체에 이름만 잔뜩 올려둔 사람들하고는 다르다.
하나하나가 전부 무게감 있는, 또 본인이 직접 발로 뛰는 직위들이었으니.
식품업자, 구의원, 임대업자, 농장주, 농가후원자, 수산업자, 호텔숙박업자, 마트소매업자 등등.
어떤 지위로 여는 행사인지 여부에 따라서, 아랫사람들의 참여 여부가 갈린다.
'마음 같아서는 행사마다 족족 참가하고 싶지만…….'
'괜히 눈치 없다고 눈밖에 벗어나면 곤란하니 신중을 기할 수밖에…….'
"구의원 행사라면 우리도 반드시 참가해야겠군요."
"그렇지요. 정치인 활동에 기업인들이 찾아가서 어깨에 힘 좀 실어드리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물적 선물은 구설수를 낳을 수 있으니 화환 큰 거만 하나 보내는 걸로 합시다."
"그럽시다."
그렇게 둘은 의전을 어떻게 맞출지도 합의를 봤다.
다음 날.
뉴월드마트와 하우스플러스는 호주산 소고기 파격 할인 행사에 들어갔다.
80% 이상의 파격적인 가격 할인은, 평소 수입산 소고기는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들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잡아당겼다.
행사가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자, 박태규 사장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스마트폰이 진동하자 그는 힘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예, 뉴월드마트 박태규입…… 어억!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박태규는 하수영이 눈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이번에 호주산 미국산 소고기 프로모션 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예, 회장님. 요즘 한우의 유통량이 줄고 있어 그로 인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그렇죠.
"그걸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착륙시키기 위해 궁리를 하다 보니, 이와 같은 프로모션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참에 한우 아니면 안 먹는 사람들 입맛을 바꿔보려는 의도였다고 들었는데요.
아마 하우스플러스에서 들은 모양이다.
박태규 사장은 씩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추구했던 진짜 의도.
하우스플러스는 물론이고 황태진 부회장한테까지 감췄던 속마음.
"한우 부족으로 소비자들이 불만이 커지면 농식품부의 중재를 가장한 압박도 심해질 겁니다. 회장님의 목장 한우 머릿수 갖추는 작업도 지연이 될 테구요."
-그래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건가요?
"네, 그런 의도가 가장 컸습니다."
-덕분에 농식품부 잔소리가 줄어든 건 사실이에요. 흐음…….
하수영이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림을 흘리자 박태규 사장은 애가 탔다.
-레스토랑 본점 위치는 알죠?
"예, 알고 있습니다."
-와서 라면이나 먹고 가요.
"예, 회장님!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