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17화 (517/1,270)

프랜차이즈 갓 517화

129장 카르텔이 별거냐? (8)

서진파운드리와 TSMC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맺었다.

-반도체 생산까지는 서진파운드리.

-그 다음, 원스톱 완제품 가공 과정은 TSMC.

TSMC가 서진파운드리의 직속 하청업체가 되는 셈이다.

모든 일감을 서진파운드리에서 내려주는 것이니.

임원들은 TSMC의 이런 처지를 슬퍼했으나, 웨이 창이 잘 달랬다.

"파운드리를 접는 것은 결국 시간 문제였어. 오히려 가장 안정적으로 접고, 다른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시게."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이거 중국에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중국에 고마워해야 하다니?"

"중국이 공장을 박살 내준 덕분에 납품이 중지돼도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막대한 보험금도 받았고요. 만약 중국이 공장을 박살 내주지 않았다면……."

"헛!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진짜 중국이 우리 TSMC의 은인이 되었군?"

물론 중국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예전처럼 공장을 계속 돌렸다면 서서히 삶아지는 개구리처럼 막대한 피해를 입고 사업에서 철수해야 했을 것이다.

'쓸모도 없는 300억짜리 공장도 살뻔했고 말이야.'

경영진은 비로소 자신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위기를 벗어났는지를 인식했다.

파운드리 시장을 서진파운드리가다 잡아먹는 것은 시간문제.

TSMC는 오히려 베스트 루트로 배드엔딩을 회피한 것이다.

그렇게 인지하자 '원청업체'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자, 우리는 이제 마음가짐을 처음부터 완전히 다잡아야 하네. 예전처럼 우리가 슈퍼 을이라는 자만심을 버려야 해."

"네, 사장님."

TSMC는 최고의 반도체 하청업체였다.

생산을 맡기고 싶은 갑 업체들이 줄을 서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을질'도 많이 했다.

납기가 지연되고, 생산이 답답해도, 팹리스 업체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주문을 소화해 줄 만한 곳은 결국 돌고 돌아 TSMC밖에 없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었으니.

TSMC가 안 되는 것은, 다른 데서는 당연히 안 된다.

"서진파운드리는 그게 아닐세. 완제품 원스톱 서비스? 그냥 안 해도 상관없네. 우리하고는 처지가 다르지."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웨이 창 사장 일행은 한국땅을 밟자마자 업무를 시작했다.

일단 ADM이 발송한 컨테이너를 모두 대만으로 방향을 틀었다.

공장 주변에 산처럼 쌓여 있는 컨테이너도 대만으로 날렸다. 물론 화물기로,

"다행히 원스톱 서비스 전용 공장들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주력 공장이 아니라서 중국놈들이 건드리지 않은 게 천운이었어."

중국은 정확히 반도체 생산공장 위주로만 타격을 가했던 것이다.

완제품 제조공장들을 돌리면서, 다른 보드업체에도 협력을 요청했다.

ADM에도 연락을 취해서, 더 이상의 컨테이너 발송은 그만하라고 요구했다.

"기판부터 포장 박스까지 우리가 알아서 만들 테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헛, TSMC가 서진파운드리와 손을 잡은 겁니까?"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ADM의 경영진은 최강 드림팀의 탄생이 아닌가 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겉으로 말하면 아무래도 TSMC 입장에서 입맛이 쓸쓸할 수 있으니.

"그런데 대만공장에서 계속 생산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ADM이 서진파운드리에 카드 제조를 맡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기존처럼 대만에서 카드를 만들다가 또 폭격이라도 당하면 큰일이니.

"우리 대만 정부도 바보는 아닙니다. 예전보다 철저한 태도로 방공망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산거점은 이제 해외로 옮길 겁니다."

미국도 대만을 거들어주었다.

래플, ADM 등 자국 기업의 항의를 받은 미 정부는 중국에 강력한 경고를 날렸다.

한 번 더 대만의 IT 제조기업 공장을 공격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성 경고였다.

속을 썩이던 컨테이너들이 한 번에 쫙 빠져나가자 정서진은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진짜 이제는 반도체만 잘 만들면 되겠다."

***

웨이 창은 한국에 온 김에 하수영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꼭 한번 뵙고 싶었던 분입니다."

웨이 창이 하수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서진파운드리의 약진 이후부터였다.

정서진이라는 불세출의 천재를 알아보고 100억 달러를 흔쾌히 던진 젊은 거부.

심지어 주업이 농업이라고 하니, 더욱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하수영 회장님이 웨이 창 사장님 일행을 초대하셨습니다."

그렇게 웨이 창 사장 일행은 수영오세안 본점에서 하수영을 처음 만났다.

겉보기에는 유쾌한 느낌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이런 사람이 그렇게 큰 성공을 했다고?

라는 의구심이 잠깐이나마 들 정도였으니.

"멀리서 잘 오셨습니다. 마침 싱싱한 참치 한 마리가 들어와서 제가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곧이어 꺼낸, 게임 아이템 같은 거대한 칼을 보고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칼을 능숙하게 다루며 통참치를 순식간에 해체하는 모습에서, 하마터면 물개박수를 칠 뻔했다.

데코레이션까지 순식간에 끝난 참치회 접시가 웨이 창 사장 일행 앞에 놓였다.

"신선할 때 드셔 보시죠. 아, 중금속은 전혀 없으니 얼마든지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참치는 맛있었다.

그리고 그 밖에 함께 나온 다양한 요리도 맛이 있었다.

모든 식재료가 하수영이 직접 기른 것이라는 설명에 웨이 창은 놀라워했다.

"헛, 나노소프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매장이 바로 회장님 것이었군요!"

"네. 사내매장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전미에 쫙 깔렸네요. 덕분에 흐뭇합니다."

정서진이 맞장구를 치듯이 끼어들었다.

"나노소프트 연간 최고 매출이 1,100억 달러였는데, 거기에 수영레스토랑 600억 달러가 추가되었습니다. 라면 하나가 다른 어떤 아이템보다 높은 매출을 내고 있죠."

"……."

그 정도였던 줄 몰랐던 웨이 창일행은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IT 회사인지 요식업 회사인지 정체 성 고민을 겪을 만한 실적이다.

그 뒤로 이어진 설명은 더욱 가관이었다.

수영농장이 작물 팔아서 올리는 순소득만 7,000억 원 이상.

미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소 100만 마리 확보를 진행 중이라는 수영목장.

연간 생닭 13억 마리를 소모한다는 수영치킨.

"반도체 투자는 그냥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그 바닥은 잘 알지도 못해요. 우리 정서진 사장님, 요새 잘나가고 있나요?"

"사장님, 제가 이번에 마이크론과 윈텔, ADM에서 수주받은 물량만 자그마치 100억 달러 가까이 되는……."

"파운드리 매출로 100억 달러면 이익으로 뭐 한 50억 달러나 떨어 지나요?"

"그 정도는 떨어질 겁니다."

"가만있자, 저번에 중국이 무역 제 재한 것 때문에 중국유통업체에서 돈만 내고 못 가져간 라면이 대충 95억 달러어치 정도 됐던가?"

"……."

"그거 이번에 하우스플러스 인수하면서 기념으로 사은품으로 쫙 풀었잖아요, 하하."

하수영은 독한 술을 물처럼 마시며 정말 즐겁게 웃었다.

웨이 창 일행은 조금 전 하수영이 말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메아리를 쳤다.

-반도체 투자는 그냥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투자는 그냥 취미로 하고…….

-반도체 투자는 그냥…….

저 사람 눈에는 정말 반도체 산업으로 으스대던 자신들이 얼마나 작아 보일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똑같이 땅 파서 장사한다는 것은 똑같네요. 실리콘도 결국 모래 파서 건지는 거 아닙니까?"

"그,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공통분모가 있었군요!"

"이야, 이거 누가 보면 카르텔 타령 나올 수도 있겠네요. TSMC와 서진파운드리 카르텔, 수영농장까지 콜라보해서 '흙 카르텔', 우리 다 함께 악덕 카르텔 소리 안 듣도록 노력합시다."

"노력하겠습니다."

웨이 창 일행은 저렇게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오늘 처음 봤다.

다음 날, 호텔에서 깨어난 웨이 창은 숙취로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한국인은 정도껏을 모르나……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거 같아……."

거실에 널브러져 있던 상무가 갑자기 술에 찌든 얼굴로 헛웃음을 지었다.

"카르텔 말입니다, 카르텔. 어제 회장님이 말씀하신."

"아, 기억나네. 왜 그러나?"

"어떻게 보면 우리가 더 확고한 파운드리 카르텔로 들어온 거 아닙니까?"

"그럼 뭐하나. 회장님 눈에 반도체 투자는 그냥 취미로만 보이는 거 같은데."

***

"서진파운드리는 고객, 그리고 협력업체와 경쟁하지 않습니다."

정서진은 반도체 생산 자체에만 집중하겠다고 분명히 약속을 했다.

설계도 하지 않을 것이며, TSMC에 맡긴 완제품 제조 영역도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TSMC는 실리콘 웨이퍼 생산에서, 종합컴퓨터 전자부품 생산으로 업종전환을 차근차근 밟았다.

향후 그래픽카드, 메모리카드, 종합프로세서 모듈, 서버, 네트워크 장비부품 등 다양한 전자부품 생산에 치중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폭스콘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었군."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도 살아남아야지요."

어쩌다 보니 '전자기기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업체'인 폭스콘과 사업영역이 겹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대만의 메인보드 제조업체도 긴장을 한 채 TSMC를 대하게 되었다.

한때는 한국, 중국 등 외국업체에 함께 맞섰던 든든한 맏형이었던 회사.

그 맏형이 이제는 한국업체의 하수인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

대만의 전자업 시장은 그렇게 강제로 큰 개편을 맞이했다.

***

한편 서해전자는 신이 나서 새로운 공장을 열심히 돌렸다.

공장 세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러 업체에서 위탁생산 문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TSMC에 물량을 맡겼던 업체들이 앞을 다투어 서해전자 파운드리의 문을 두드렸다.

"파운드리 덩치가 매우 커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존 종합반도체사업부와 파운드리사업부를 이제 별개로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서해전자는 덩치가 매우 크다.

그래서 사업부의 장을 부장이 아니라 사장이 맡아서 운영한다.

반도체사업부, 모바일사업부, TV사업부, 가전제품사업부 등등.

이현덕 부회장은 파운드리 사업부를 반도체에서 분리해서 독립 사업부로 추진한다는 결재안에 서명을 했다.

"서진파운드리의 수율이 좋고, 다수가 상등품일 만큼 공정이 안정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노하우와 인력, 연구개발 경험, 결정적으로 유통망이 있다."

막말로 서해전자는 자사가 생산한 반도체를 사줄 고객이 자체적으로 존재한다.

소위 말하는 '내수 시장'.

정 안 팔리면 그룹 다른 사업부에서 사서 쓰면 된다는 환경.

모바일, TV, 완제품 컴퓨터 등등 자사 제품에 들어갈 부품을 구매해줄 수도 있으니.

그것은 '내수시장'이 없는 서진파운드리가 결코 따라잡지 못할 강점이라고 여겼다.

"파운드리 시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TSMC가 무너진 지금, 서진 파운드리가 아직 여러모로 미숙할 때 재빠르게 치고 들어간다."

"그런데 아무리 50조 원을 불렀다 해도, 같은 계열사가 피해 보는 매각을 왜 진행했을까요? 서진파운드리는 10조 원이나 들어간 회사인데……."

"그거야 우리가 50조 원이나 불렀으니 그렇지. 같은 계열사라고 해도 그만한 돈이면 형제고 뭐고 없는 거야."

"하지만 오너 입장에서는……."

서해전자 내부의 그런 우려는 곧 쏙 들어갔다.

스마트폰의 창조주 래플사가 서해 전자에 대대적인 파운드리 주문을 넣은 것이다.

기존 TSMC에 맡겼던 물량이었다.

당장 서진파운드리의 생산력을 넘어서는 물량이기에, 돌고 돌아 서해 전자로 온 것이다.

빅딜을 체결한 서해전자는 모든 직원들을 상대로 기분 좋은 성과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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