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15화 (515/1,270)

프랜차이즈 갓 515화

129장 카르텔이 별거냐?(6)

중국은 핀포인트로 TSMC의 주력 공장들만 정확히 파괴했다.

정황을 보면 누가 봐도 대만의 파운드리 산업을 죽이려고 침공을 한 것이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유유히 철수하고, 지휘관을 처벌하는 시늉만 하고, TSMC는 일부 공장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90% 이상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상실했다.

"미국 공장이 가동되기까지 앞으로 2년…… 과연 그 동안 우리 TSMC가 살아남아 있을지 관건이군."

"……."

분위기는 어두웠다.

경기도 공장을 손에 넣었으면 보험금을 합쳐서 오히려 더 발전을 했을 수도 있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공장을 놓친 게 천추의 한이었다.

하지만 물건 주인이 후다닥 팔아버린 상황이니, 더 어쩌겠는가.

퀄컴, 래플, ADM, 심지어 서해전자 등의 갑들이 위탁생산을 맡기기 위해 줄을 섰던 슈퍼 을.

이제는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근심의 나날을 보내던 중, 한국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서진파운드리였다.

-같이 일해 볼 생각 없습니까?

***

윈텔, ADM, 마이크론에서 수주를 받고 정서진은 신이 나 있었다.

"이 정도 물량이야 지금 라인만으로도 충분히 해내고도 남지."

그는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본 공장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공장만 다 올라가봐라. 전 세계 반도체는 전부 다 쓸어 담는다."

팹리스(공장이 없고 설계만 하는) 회사들의 발주는 전부 긁어모을 수 있으리라.

자체 공장이 있는 종합반도체제조업체의 물량을 전부 받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시간문제일 뿐, 결국에는 전 세계의 모든 반도체는 서진파운 드리에서 생산될 것이다.

"지금 공정설비의 규모나 속도로 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수요……."

그 생각에 살짝 흠집이 났다.

생각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고, 말 그대로 살짝 흠집만.

엉뚱하게도 ADM에서 넣은 주문이었다.

TSMC 공장이 터지기 전.

원래 ADM은 그래픽카드에서 GPU와 그래픽 램을 제외한 다른 반도체 부품들의 생산을 의뢰했었다.

"GPU는 TSMC에 위탁을 한 상황이라서요. 그러고 보니 우리 제품에 들어가는 그래픽 램은 마이크론의 것이군요."

"하하, 그 마이크론의 그래픽 램도 전부 우리 서진파운드리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래픽카드에서 GPU를 제외한 모든 반도체 칩셋이 귀사에서 생산되고 있는 거군요."

"그런 셈이지요."

GPU와 그래픽 램 이외의, 그래픽카드 완제품에 들어가는 다양한 반도체 부품들.

서진파운드리는 ADM이 다른 업체에서 사오는 것들을 제외한, 프로세서 등 나머지 반도체 위탁생산을 수주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TSMC 공장이 터졌고, ADM 생산부 이사가 급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TSMC가 터졌습니다."

"들었습니다."

정서진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최대한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GPU 생산을 귀사에 발주하고 싶습니다. 최대한 샘플을 빨리 받아보고 싶은데, 언제 가능합니까?"

"설계도를 주시면 지금 바로 만들어드리죠."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이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설계도를 보내 주었다.

프리덤은 설계도를 받아 시범공장의 무인로봇들에 지시를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네모반듯하게 잘린 GPU 샘플 1,000개가 진공포장돼서 돌아왔다.

생산이사는 경악해서 정서진을 바라봤다.

"귀사의 반도체 공정능력은…… 정말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군요! 꼭 한 번 생산 과정을 보고 싶습니다!"

"회사 기밀이라서 곤란합니다."

원래 생산을 맡기려면 공장탐사 등의 과정을 밟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서진파운드리는 발주사에 절대 공정라인을 오픈하지 않았다.

안전검사를 위한 행정점검에서도 입자집합명령장치의 자세한 원리는 감췄으니.

***

ADM 이사는 곧바로 한국의 DB 반도체로 달려가서 품질 테스트를 검사했다.

단 한 개의 예외도 없이 모두 합격.

정상 작동 여부만 확인했기에 오버클럭 극한 여부는 모르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생산을 의뢰할 만했다.

"GPU 생산을 귀사에 맡기겠습니다."

"TSMC가 정상화되면 다시 그쪽에 물량을 돌리시겠지요?"

"아무래도 저희가 선금을 넣은 물량만큼은 다시 받아야 될 테니까요."

"돈을 돌려받고 해지할 수는 없는 모양이군요."

"예,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 납품이 일시중단 될 뿐입니다."

ADM 이사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다.

"솔직히 본사에서는 TSMC의 정상화를 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음……."

"미국 공장이 2년 후에 돌아가고 기계약한 물량을 다시 생산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때 되면 이제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구형제품인데 말이죠."

"ADM도 여러모로 손해를 봤군요."

"차라리 관리소홀로 화재가 난 것이라면 우리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데, 불가항력적인 국지전이었으니까요."

발주사에 대한 TSMC의 책임이 완전히 면책되는 상황이었다.

TSMC가 압도적인 슈퍼 을이 아니었으면, 이런 조건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GPU 생산을 수주했다.

아직 본공장 가동 전이지만, 시범공장만으로도 생산 능력은 충분했다.

-생산 속도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TSMC 망가져서 다른 데서도 의뢰가 들어올 거 같은데, 괜찮을까?"

-다만 래플의 의뢰는 보류하십시오. 본공장이 가동되기 전에는 무리입니다.

"래플이 한 번 발주했다 하면 물량이 엄청나긴 하지. AP 발주만 다 받아도 그게 얼마야?"

ADM의 그래픽카드에 들어가는 GPU 및 다양한 반도체 칩들.

마이크론의 그래픽 램.

윈텔의 옵테인 메모리.

현재 서진파운드리가 생산하고 있는 반도체들이었다.

-현재 출하 속도가 생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 추가 발주를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기분 좋은 소식이구나."

무인반도체공장의 로봇들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만드는 속도를 출하 속도가 못 따라가고 있었다.

반도체를 싣기 위해 가득가득 쌓여 있는 컨테이너를 보면서, 정서진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ADM 이사가 다시 찾아왔다.

"혹시 그래픽카드 완제품 생산이 가능하겠습니까?"

"완제품으로 만들어달라고요?"

"네, 카드에 들어가는 GPU와 다양한 반도체 칩들을 귀사가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쓰는 마이크론의 그래픽 램도 귀사가 만들고 있고요."

ADM은 마이크론의 그래픽 램을 사서 카드에 장착한다. 그리고 그 그래픽 램은 서진파운드리에서 만든다.

"만약 귀사가 수락하신다면, 다른 업체에서 사오는 반도체 부품들을 여기로 발송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우리가 완제품까지 책임지고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역시 생산공장의 로망은 원스톱 서비스 아닌가?

갑은 설계도만 주고, 을은 포장까지 예쁘게 마친 완제품을 납품하는것!

이것이 바로 착각의 시작이었다.

***

"…… 프리덤. 저 컨테이너들은 다 뭐냐? 왜 안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어?"

-ADM에서 보내온 부품들입니다.

"ADM이?"

-네, 그래픽카드에 들어갈,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지 않는 다른 업체 부품들이 들어 있습니다.

"뭐, 반도체 부품 종류가 수십 수백 가지고 우리가 전부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반도체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나무 기판도 들어 있습니다.

"아, 그렇지. 나무 기판에 반도체들을 붙여야지."

정서진은 그렇게 납득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야! 저 컨테이너들은 또 뭐야? 아니, 하룻밤 새 왜 저렇게 불어났어?"

-그래픽카드 구성에 필요한 보드연결장치, 전선, 그리고 카드외장골격 플라스틱 부품들이 들어 있는 컨테이너들입니다.

컨테이너가 순식간에 늘어났다?

로봇들은 부지런히 컨테이너에 실린, 그래픽카드 제조에 필요한 부수부품들을 꺼내고 있었다.

다음 날.

"……이번엔 또 뭐냐?"

-완제품을 포장할 비닐과 담을 종이박스, 내부에 들어갈 완충재입니다.

"…그래, 소비자한테 팔려면 박스포장을 해야지."

종이박스는 이미 외부 프린팅 인쇄까지 다 끝난 상태였다.

표면에는 RX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그래픽카드의 멋진 모습까지 인쇄가 다 끝나 있었다.

"근데 ADM은 원래 주요 부품만 제공하고, 카드 완제품 자체는 보드회사들이 만드는 거 아니었어?"

-TSMC가 습격당한 상황입니다. ADM은 대만업체에 카드 완제품제조를 의뢰할 수 없지요.

"……그래, 불안해서 못 맡기지. 내가 그 생각을 잠시 못 했다."

원래 카드완제품은 ASUS 등 업체들이 만들고, ADM은 주요 반도체 부품만 제공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ADM이 완제품제조까지 직접 통제하는 경우였다.

"카드 완제품 제조하고 포장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네. 그리고……."

정서진은 그득하니 쌓인 컨테이너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공간도 많이 잡아먹고."

그때, 정서진은 컨테이너를 실은 트레일러들이 줄을 지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기겁을 한 정서진이 외쳤다.

"저것들은 또 뭐야?"

-카드에 들어갈 쿨러 부품입니다. 최신형일수록 카드 부피에서 쿨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마음 같아서는 쿨러까지 전부 다 직접 제작을 하고 싶다.

하지만 입자집합명령 장치는 일정부피 이상의 제품은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극히 미세한 구조를 지닌, 작은 크기의 초정밀 제품은 쉽게 만들 수 있지만(예 : 반도체).

오히려 간단한 구조를 지닌 큰 제 품은 못 만드는 것이다.

무인 로봇들은 정말 부지런히 그래픽카드 완제품을 제조했다.

애초에 카드 완제품 공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반도체 생산에만 특화된 공정라인이다.

카드완제품 공정까지는 설계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로봇들이 사람처럼 일일이 기판에 붙이고 회로를 깔고 쿨러를 조립하고 플라스틱으로 외부를 포장하고 나사를 조이고…….

입자집합명령 장치는 반도체 프로 세서들을 쉴 새 없이 찍어내고 있었다.

ADM이 보낸, 카드 완제품 제작에 필요한 기판, 쿨러, 심지어 포장박스등을 실은 컨테이너도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

로봇들은 부지런히 카드 완제품을 제조하고 있지만, 양쪽에서 찍어내거나 배달하는 속도를 못 따라잡고 있었다.

-이게 바로 병목 현상이군요. 녹화해두었다가 PC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대번에 이해할 겁니다. 윈텔에 옵테인 메모리 홍보용으로 활용하면 좋을 거 같군요.

이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CPU와 저장장치는 모두 최신형인데, 그 안에 낀 램은 10년 전 느려 터진 구형인 PC?

어찌어찌 1차 완제품 물량을 만들어서 출하한 날, 정서진은 조금 줄어든 컨테이너를 보고 마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제 1% 마쳤습니다.

"뭐? 이제 1%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ADM의 카드 발주 물량의 1%를 이제 마쳤습니다. 그리고 컨테이너는 아직 10%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저게 10%도 안 된다고?"

정서진은 기절할 듯이 입만 뻐끔거렸다.

저렇게 산처럼 쌓여 있는데?

아직도 더 와야 할 컨테이너들이 더 많다고?

수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경기도청에서 행정명령이 왔습니다. 컨테이너를 적절히 쌓아둘 공간을 확보하든가, 아니면 토지를 침투한 컨테이너들을 치우라는 내용입니다.

"아니, 우리가 경기도에 내는 세금이 얼마인데 컨테이너 좀 쌓아뒀다고 그렇게 야박하게 굴어?"

-침투한 부지가 경기도청이 아닌, 민간인의 사유지라서 민원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

"사장님, 저게 이번에 새로 지었다는 그 서해전자 반도체 공장입니까?"

"맞네. 그리고 반대쪽에 서진파운 드리 반도체 무인공장이 있…… 응? 공장은 안 보이고 웬 컨테이너 산이 있지?"

"컨테이너 신고 나가는 트레일러보다, 싣고 들어오는 트레일러가 훨씬 많은데요? 열 배는 넘어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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