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14화
129장 카르텔이 별 거냐? (5)
-주변을 물려주십시오.
정서진의 요청에 이도공은 두 번 생각 않고 바로 사장실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밖에서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서진파운드리 본공장이 모두 완성되면, TSMC와 서해전자의 생산량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
-그래서 더 타격을 주고 싶은 쪽으로 공장을 넘기라는 겁니다.
"이거……."
이도공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반도체 주가가 또 한 번 크게 요동을 칠 게 눈에 보인다.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파운드리업체가 되는 게 우리 회사의 목표입니다.
"생산 능력만 해결된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도공도 서진파운드리가 얼마나 효율이 좋은지는 기사를 봐서 알고 있었다.
그 깐깐한 윈텔, ADM, 마이크론이 앞을 다투어 선금을 밀어 넣고 있을 정도니.
"알겠습니다. 정 사장님의 말씀을 깊이 참고하겠습니다."
-그래도 굳이 추천을 하자면 저 역시 서해전자입니다. 건설로 당한 게 있잖아요?
"네, 그렇죠."
전화를 끊은 이도공은 어느덧 백여 개가 넘어가는 부재중전화를 확인했다.
수십 개 넘게 쌓여 있는 문자 내 역도 확인했다.
심지어 한두 명이 보낸 게 아니었다.
서해전자 이문석 반도체사업부 사장.
문자에서 그 이름을 확인한 이도공은 통화 버튼을 눌렀고, 신호음이 3번이 울리기 전에 상대는 전화를 받았다.
"프라임건설 사장 이도공입니다."
-서해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 이 문석입니다. 긴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지금 미팅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러시죠."
30분도 채 되지 않아 이문석 사장이 이도공을 찾아왔다.
다수의 변호사를 대동한 그는 이미 매매 및 건축발주 계약서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서해전자가 공장 인수에 얼마나 몸이 달아 있는지 여실히 알려주는 태도였다.
"사실 TSMC와 이미 한창 협상중이었습니다. 그쪽에서도 지금 공장이 급하거든요. 물론 사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모를 리가 없었다.
공장을 다시 되찾으려는 것도, 허공에 날아간 TSMC의 점유율을 치고 들어가려는 것이니까.
"TSMC가 얼마를 불렀든 간에, 거기보다 더 좋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50조 원."
"……!"
"그 돈에 완공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서 소유권 넘겨드리겠습니다."
실제 공장에 들어간 돈보다 무려 30조 원 가까이 많은 금액이다.
이문석 사장의 안색이 변했다.
"그래도 50조 원은……."
"전 세계 반도체 생산력 과반이 날아갔습니다. 우리 공장은 세계 최고 파운드리 규모를 갖고 있고, 한두달이면 완공이 됩니다. 이런 매물을 구하려면 그 정도 프리미엄은 내셔야죠."
"허허…… 순수한 프리미엄이 아니라 괘씸죄도 포함된 거 아닙니까?"
"괘씸죄라니요?"
"공사대금 20조 원 넘게 날아간 것 때문에 위약금 성격으로 30조원이나 더 얹은 거 아닌가요?"
"반도체 사업부셔서 그런지, 우리 사정을 잘 모르시는군요. 공사대금 못 받아서 우리가 손해 본 것은 없습니다. 손해는 은행들이 봤지요."
"……."
"우리는 오히려 1조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건설사를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괘씸하다는 생각을 왜 품습니까?"
이도공은 삼촌뻘 되는 이문석 사장을 향해 친근한 미소까지 보이면서 밀어붙였다.
"TSMC는 40조 원 이상도 낼 기세입니다. 그래도 같은 한국 기업이고 하니, 서해전자에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그렇군요.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지금은 한시가 급하다.
어서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어서 빈 점유율을 먹어치워야 한다.
'회사 통장을 탈탈 털어야겠군.'
지금 서해전자는 갖고 있는 현금만 100조 원이 넘는다.
50조 원의 공장대금, 까짓 거 일시 불로 얼마든지 낼 수 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액 선불입니다. 잔금까지 모두 치러주셔야 공사 재개합니다."
"……."
"전례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양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대신 입금이 끝나는 대로 온힘을 다해 공사를 빠르게 안전하게 끝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계약합시다."
이도공은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마쳤다.
서명날인을 확인한 이문석 사장은 잠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웠다.
"50조 원, 전액 틀림없이 들어갔습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벌써요?"
이도공은 살짝 놀라서 얼른 법인계 좌를 확인했다.
[입금 : (주)서해전자 50,000,000,000,000]
과연 방금 서해전자에서 50조 원이 들어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내가 살아생전 이런 통장 내역을 보게 되다니…… 대체 0이 몇 개인 거야?'
넘쳐나는 숫자의 향연에 이도공은 아찔한 마음까지 들었지만, 억지로 태연함을 유지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아니, 오늘부터 바로 공사 재개하겠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어라 일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잠시 전화 좀 하겠습니다."
이도공은 곧바로 프라임건설에 전화를 걸어서 즉시 공사재개를 지시했다.
뿐만 아니라 JS건설에도 연락해서 공사협조를 구했다.
JS그룹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하수영과 손을 잡고 있기에, 갑작스러운 공사협조 요청에도 쿨하게 승낙했다.
이문석 사장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상대가 어설픈 수작질 없이 진지하게 공사 재개에 매달리고 있음을 확인했으니.
***
김돌진 부장은 돌아가는 회사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룹에서 팽하려고 했고, 인수자가 나타나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6조 원짜리 회사가 겨우 1조 원에 팔렸고, 하루아침에 모든 일감을 잃었다.
두바이공사, 국내 아파트 등 그전에 진행하던 모든 일감은 서해물산건설사업부가 인수했기 때문이다.
프라임건설은 이제 바닥부터 다시 차근차근 수주하면서 커나가야 했다.
"그래도 오너가 부동산 재벌이니까, 자기 건물 이런 거 저런 거 지어야 하니 일감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겠네."
"그나마 다행이죠. 보니까 수천억짜리 빌딩도 갖고 계시던데, 이런저런 쩌리빌딩이나 짓지는 않을 거 같네요."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중국이 TSMC를 침공했고, 말도 안 되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대박! 들었어요? 서해전자 반도체 공장 짓다 만 거, 그가 다시 짓는답니다!"
"뭐야?"
"TSMC하고 서해전자에서 그거 공장 제발 팔아달라고 해서 경매 붙였더니, 글쎄 50조 원에 낙찰되었다지 뭐예요?"
"뭐? 50조 원이라고? 그럴 수가!"
경매 이야기는 진실과 조금 달랐지만, 50조 원이라는 금액이 중요했다.
"진짜 우리 회사 오너는 뭐 있는거 아니야? 아니, 자기 빌딩이나 지으려고 1조 원에 산 회사가 하루아침에 50조 원을 벌어오다니."
"정말 하늘이 내린 재물운이라는 게 있긴 있나 봐요. 우리 회장님 일대기 보면 진짜 말도 안 나오는 정도예요."
"오늘부터 낮밤 안 가리고 공사재개 한답니다. 50조 원도 전부 선금으로 받았대요."
"그래야지. 이미 한 번 떼먹은 전적이 있는 상대하고 거래하는 건데, 당연히 돈은 다 받고 시작해야지."
"JS건설도 도와준답니다. 살았어요."
다행이다. 안 그래도 임원진 죄다 날아가서 눈앞이 캄캄했는데……."
신기하게도 임원들이 없는데도 회사가 문제없이 굴러갔다.
이도공 사장은 혼자서 수십 명의 임원들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김돌진 부장은 자신보다 젊은 건축사가 어떻게 저런 경영 능력을 갖고 있는지 놀라워했다.
물론 이도공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임원들이 한 명도 없는데, 회사가 별 문제 없이 잘 굴러가네? 우리 회사 부장들 한 명 한 명이 임원급인가 보네."
프리덤이 중간에서 임원들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도공이나 실무진이나 서로 상대가 잘해서 문제가 없는 거라고 착각했다.
***
그렇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건설에 집중한 결과, 한 달 만에 완공을 마칠 수 있었다.
이문석 사장은 공장까지 찾아와서 이도공과 함께 완공된 공장을 둘러보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시설을 갖춘 대공장을 보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지난 시간 동안 마음고생을 한 것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다.
"서진파운드리에 공장을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에게 다시 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진파운드리가 50조 원 이상을 제시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겁니다."
"같은 계열사인데도 비즈니스는 칼같이 하시는군요."
"오너가 같을 뿐이지, 엄연히 서로 상관없는 독립된 회사입니다."
이도공은 서진파운드리의 생산 능력에 관해서는 설명을 삼갔다.
"그럼 여기 문제없다는 인수확인서에 서명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공장 인도까지 마친 이도공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완전히 철수했다.
서해전자는 애물단지가 될 뻔했던 값비싼 반도체 공정설비들을 내부에 들이며, 빠르게 공정라인을 세팅해 나갔다.
공사라고 해봐야 마무리 단계였기 때문에, 막상 공사 비용은 얼마 안나갔다.
통장에 쌓인 50조 원의 돈을 보며, 이도공은 마음이 흔들렸다.
'이 돈으로 뭘 하면 좋을까?'
건축사로서 일하면서 항상 꿈에만 그렸던 화려하고 멋진 빌딩들…….
임시이지만, 자신이 대표이사로 운영하는 건설사가 생겼다.
부채도 전혀 없고, 심지어 통장에는 50조 원이나 쌓아두고 있는 건 설사, 꿈을 현실로 이룰 멋진 도구가 주어진 셈이다.
그 전에 하수영의 의사를 확인해야 했다.
"회장님, 이번에 공장을 되팔아서 50조 원의 현금이 생겼습니다. 혹시 이 자금의 운용에 관해서 계획이 있으십니까?"
부동산 투자를 하는 양반이니, 아마 배당이나 대여, 양도 등의 형태로 돈을 빼가지 않을까 싶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 건설이 번 돈이니 건설이 알아서 운용하는 게 낫겠죠.
"예? 그 말씀은……."
-저는 그 돈을 따로 인출하거나 하지 않을 테니, 건설사 운용에 잘써주세요. 나중에 제 땅에 빌딩들 지어 올리려면 프라임건설도 지금보다는 더 성장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PM 경험은 거의 없죠?
PM, 건설프로젝트의 기획, 설계, 시공, 감리, 분양, 유지관리 등 초기 단계부터 최종 단계까지 모든 것을 지휘하는 것.
초고층 빌딩 같은 것들은 국내 건 설사들은 PM 경험이 없다.
서울에 있는 초고층 빌딩들은 대부 분 해외건설사들이 PM을 맡고, 국내건설사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짓기만 한다.
국내 건설사들이 야구선수라면, PM 주관사는 단장쯤 된다.
"네, 천억 대 이상 프로젝트는 PM 경험이 전무할 겁니다. 능력이 안됩니다."
-차근차근 회사 역량을 키워주세요. 나중에 재건축할 때 제가 구상한 빌딩들을 지으시려면…… 열심히 역량을 키우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한 10년쯤 후에는 청담동에 궤도 엘리베이터 같은 거 하나 올릴 수 있겠죠?
"하하, 10년은 무리입니다. 40년 정도만 더 쓰십시오."
이도공은 웃으면서 하수영의 '농담'을 받아 넘겼다.
***
중국은 발 빠른 사과로 대만 간의 갈등을 종식시켰다.
미 함대까지 출동한 대만 해협의 긴장감은 그렇게 해소되는 듯했다.
하지만 중국은 배상금 지급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뤘다.
TSMC는 미국 보험사로부터 막대한 보험금을 탈 수 있었다.
기존의 공장을 최신식으로 다시 짓는 것은 물론, 가동중지로 입는 손해까지 모두 상쇄할 수 있을 만큼의 액수였다.
원래 전쟁은 보험사의 지급책임이 면책된다.
하지만 면책 조건의 '전쟁'을 국지전이 아닌 국가총력전으로 해석한다.
는 예외조항이 있었고, 미 정부의 중재 덕분에 빠르게 보험금을 탈 수 있었다.
미국 입장에서도 대만을 달래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TSMC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서해전자가 경기도 신 반도체 공장을 50조 원에 샀다고 하오."
"300억 불이 아니라 600억 불을 불렀어야 했소! 두 배, 세 배를 주더라도 반드시 그 공장을 우리가 먹었어야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프라임건설이 우리와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서해전자에 팔아버렸으니까요. 서해 전자가 50조 원을 불렀으니 가격을 더 높이자는 제안조차도 안 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이건가. 어쩌면 한국 정부가 물밑에서 압박을 했을지도. 대만업체가 아니라 국내 업체에 넘기라고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