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13화
129장 카르텔이 별거냐? (4)
대만의 경제는 90% 이상이 하청산업으로 굴러간다.
세계 1위 IT 기업 래플의 제품도 상당량이 대만에서 생산된다.
PC의 메인보드 시장도 대만의 기업들이 꽉 잡고 있으며, TSMC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이다.
TSMC의 CEO 웨이 창은 대만 내 반도체 공장 확대를 누누이 반대해온 사람이었다.
"해외에 공장 진출을 해야 하오. 그래야만 우리 TSMC, 나아가서 대만이 살아남을 수 있소."
주변에서는 반대했다.
당장 큰 투자가 들어갈뿐더러, 해외 진출이 자국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냐는 논리였다.
그러나 웨이 창은 그들이 상상도 못 하는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중국의 반도체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시스템반도체, 메모리반도 체, 낸드플래시, 메인보드 등 국가 전반적으로 IT 산업을 키우고 있었다.
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보이며 점유율을 먹어치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반란 세력의 괴뢰국으로 본다.
언제고 반드시 대만을 병합하겠다는 야욕을 상시적으로 드러낸다.
그에 발맞춰서 대만도 군사력을 증강하는 등 중국의 무력적 침입을 대비하고 있고,
"중국은 반드시 우리를 친다. 그 중심에는 우리 TSMC가 있을 것이다."
대만 병합이라는 장기적인 목표 때문은 아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 하고 있다. 우리 TSMC는 중국 정부 입장에서 맛있는 먹잇감이다."
TSMC는 파운드리 시장의 과반을 점유하고 있고, 미사일을 쏘면 바로 닿는 범위 내에 있으며, 중국은 대만을 자기 거라고 주장하는 상황.
"우리는 대만을 벗어나서 중국이 건드릴 수 없는 안전한 지역에 공장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순위를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웨이 창의 그런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미세먼지와 이상기후, 중국의 기후 조작 시도 혐의로 인한 갈등이 벌어지고, 함대 간의 팽팽한 긴장 구도 속에서 기관총 사격이 이뤄졌고, 마침내 대만 본토를 향해서 중국의 미사일이 날아든 것이다.
미사일은 정확히 핀포인트로 TSMC의 반도체 주력 공장만을 노렸다.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TSMC에서 생산하던 모든 반도체 출하가 정지되었다.
윈텔, ADM, 마이크론, 래플, 심지어 서해전자를 포함한 수많은 고객들이 아우성을 일으켰다.
"웨이 사장님, 이러다가는 고객들이 중국 반도체 파운드리에 수주를 줄지도 모릅니다!"
"웨이 사장님의 혜안이 옳았습니다! 우리가 미국 공장을 2년만 더 일찍 진출했어도!"
웨이 창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미국 공장의 가동이 2년 남았기에 중국이 지금 이렇게 나오는 것이다."
"예? 그 말씀은 설마……."
"몇 년 더 일찍 진출했으면 중국의 도발 역시 몇 년 더 일찍 시행됐겠지."
"……."
"애초에 중국은 우리 TSMC의 주력 공장들을 노리고 있었다. 자국파운드리 업체를 키워주기 위해서 말이야."
중국의 신생업체들이 국제시장에 등극하기 위한 첫 단추는 끼워진 셈이다.
이제 반도체회사들은 한국과 대만 외에도 중국 업체도 선택지에 올려 둘 테니까.
그때 임원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웨이 사장님,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방법?"
그 말에 웨이 창이 반색하며 돌아봤고, 임원들의 시선도 덩달아 쏠렸다.
"서해전자가 이번에 새로 지었다는 파운드리 전용 공장 말입니다."
"그게 왜 방법이 되는 거지?"
"지금 서해전자 게 아니라고 합니다. 심지어 거의 다 지어놓고 멈춘상태랍니다."
"뭐? 자세히 설명을 해봐!"
임원은 서해전자 신 공장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했고, 웨이 창은 테이블을 탁 쳤다.
"하늘이 우리 TSMC를 돕는구나! 어서 빨리 프라임건설 대표와 통화해야겠다! 지금 당장!"
"네, 사장님!"
"시간이 없다! 서해전자 사장도 다시 공장을 되찾으려고 할 거다!"
거의 다 지어진 공장.
반도체 설비들을 새로 갖출 때까지는 공장이 완공이 될 것이다.
그럼 공장이 완공되자마자 곧바로 내부를 세팅하고, 다시 가동을 하면 된다.
심지어 한국, 중국의 미사일로부터 안전한 곳이다. 대만보다는.
"사장님, 다만 지금 프라임건설 오너가 우리 경쟁자라는 것은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프라임건설과 서진파운드리의 오너가 동일 인물입니다."
"음, 서진파운드리의 이름이 뼈아프긴 하지만 비즈니스에서는 어제의 적과도 웃으면서 거래를 하는 법."
그렇게 웨이 창은 프라임건설 이도 공 사장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300억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완공해서 우리에게 넘겨주십시오."
-……300억 달러라고요?
서해전자 반도체 신 공장은 크다.
정말 크다. 무식하리만치 크다.
서해전자가 기획부터 10년 뒤를 내다보고 확정한 규모였기 때문이다.
'일단 전 세계의 모든 파운드리 수주를 소화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춘다. 그 다음에 경쟁자들을 무너뜨려 시장을 흡수한다.'
괜히 공장 짓는 데 100조 원이라는 거액을(내부 설비 포함) 산정한 게 아니었다.
"자, 다들 모였지?"
이도공은 건축사무소 직원들을 불러놓고 회의에 들어갔다.
"지금 이거 껍데기 짓는 데 얼마나 들었지?"
"아마 22조 원이 조금 안 되게 들어갔을 겁니다. 물론 서해전자가 거의 다 떼먹었고요."
그리고 그 손해는 은행 등 채권자들이 짊어졌다.
하수영은 부채 없이 1조 원에 쿨매매했으니.
"다 지으려면 얼마나 들까?"
"이미 거의 다 지어놓은 거라…… 아무리 크게 잡아도 1,000억 원은 안 될 거 같은데요. 몇백억 정도 수준?"
"빡세게 하면 한 달이면 다 지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내부 세팅이야 뭐 건설회사가 건드릴 영역은 아니니."
"근데 대표님, 지금도 계속 전화가 오는데요?"
이도공은 손사래를 쳤다.
"놔둬, 놔둬. 서해전자에서 오는 전화일 거야."
"안 받아도 됩니까?"
"내가 서해전자 전화를 받을 의무는 없지. 그리고 걔들은 좀 애간장이 타도 돼."
중국의 공습으로 상황이 긴박하게 변해갔다.
전 세계 파운드리 산업 생산량의 52%가 한순간에 증발했으니.
그런데 그 공백을 채울 만한 업체가 별로 없다.
파운드리 산업도 고도의 과학기술 기반이 받쳐줘야 할 수 있는 것이니.
"서해전자는 황당하겠네요. 서진파 운드리 때문에 파운드리 캐파 안 될 거 같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다 지은 공장, 건설까지 묶어서 폐기했는데……."
"유통기한으로 폐기한 편의점 도시락에 알고 보니 페라리 증정권이 들어 있었다, 이 정도로 억울하겠어요."
"어떻게 공장과 건설이 딱 넘어오자마자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죠?"
"중국이 우리 회장님을 돕는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요. 중국 애들도 보니까 지네 반도체 산업 키우려면 대만 반도체 산업을 조지고 시작해야겠다고 판단한 것 같은데요."
"주체가 중국이고, 상대가 대만이니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군요. 만약 서해전자 공장에 미사일을 쐈다면 세계대전으로 발전했을 텐데."
중국이 대만에 재래식 미사일 한발 쐈다고 미국이나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도 애매했다.
"지금 중국은 완전히 철수한 거죠?"
"그렇다네. 당 대변인이 현장지휘관의 지나친 흥분이었다며 문책까지 약속했어. 대만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지."
"역시 처음부터……."
직원들은 묘한 탄성까지 흘리며, 돌아가는 형세에 감탄했다.
"진짜 우리 회장님은 재물운이 엄청난가 봐요. 농지로 쓰려고 사놓은 땅마다 안에서 금이야 은이야 튀어 나오질 않나, 쓸데도 없는 파운드리 공장 샀더니 파운드리 1위 업체 공장이 박살 나지 않나."
"이거 지어서 팔면 엄청나겠는데요."
"지금 아마 가장 속이 쓰린 것은 건설 처분 과정에서 수십조 원 떼인 은행들일 겁니다."
"은행들, 불쌍해서 어떡해요. 서해 그룹을 그렇다고 고소하기도 뭐하고."
"근데 서진파운드리 입장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거기에 회장님 돈이 10조 원이 들어갔는데."
"음……."
회의는 잠깐 적막에 부딪쳤다.
"서진파운드리 입장에서도 우리 공장이 필요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같은 범프라임그룹 계열이니, 이왕이면 서진파운드리를 도와주는 게 옳다.
"잠시 회장님하고 통화 좀 해야겠어. 다들 조용히."
"네."
이도공은 그 자리에서 하수영한테 전화를 걸어 현재의 입장을 설명했다.
-좋은 일감이 하나 생길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뜻밖이네요. 이도공 사장님이 알아서 잘해보세요.
"예?"
-서진파운드리는 엄연히 다른 회사죠. 이도공 사장님은 프라임건설사장이니, 프라임건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면 됩니다.
"그래도 서진파운드리에는 회장님 돈 10조 원이 들어가 있는데……."
-프라임건설에도 제 돈 1조 원이 들어가 있죠. 프라임건설이 잘되면 그게 바로 제가 잘 되는 겁니다.
대화 내용을 들은 직원들은 조금 감동한 표정이 되었다.
"우리 회장님, 경영 마인드가 아주……."
"나, 살짝 감동받았어."
"사장님, 일단 서진파운드리와 이야기 한 번 해보는 게 어때요? 거기서 더 높은 금액을 부를 수도 있잖아요."
"그래요, 거기 사장님하고 일단 통화는 해봐요."
서진파운드리 정서진 사장과 통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개된 전화번호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회사 메일로 정중히 상황을 설명해서 보내고 기다렸다.
-답장이 왔습니다.
"뭐, 벌써?"
아니, 3분도 되지 않았는데 이메일 답장이 벌써 온다고?
"설마 매크로 답장은 아니겠지? 요즘 서진파운드리 찾는 기업들이 너무 많아서 바쁘다고는 들었는데……."
다행히도 매크로 답장은 아니었다.
답장의 내용도 이도공의 상상 밖이었다.
[귀사의 제안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공장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급적 비싼 가격으로 빨리 처분하는 것이, 귀사 입장에서 가장 좋다고 사료됩니다. 같은 프라임그룹회사로서 드리는 조언입니다.]
[TSMC와 서해전자, 어느 쪽에 팔아도 우리는 상관없습니다. 어느 쪽에 매각하는 각각 장점이 서로 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쪽에 팔아도 상관없다고? 각각 장점이 다르다고?"
"이게 무슨 말이죠?"
이도공과 직원들은 의아해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궁금한 건 여기 번호로 전화하라고 하는군. 지금 해봐야겠다."
직원들이 숨을 죽인 가운데, 이도 공은 세기의 천재 반도체 과학자 정서진과 드디어 첫 통화를 했다.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 신변 담소를 나눈 후 이도공이 물었다.
"매각자에 따른 장점이 다르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지금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TSMC는 300억 달러를 불렀습니다. 서해전자는 아직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았고요. 지금도 전화통에 불나는 중입니다."
-사장님은 두 회사 중 어느 쪽이 더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무래도 서해전자겠죠? AS 문제로 여러 번 골탕 먹은 적 많아서요. 우리 회사는 지금도 모든 가전은 태호전자 거 씁니다. 제가 TSMC와 뭐 얽힐 만한 건 애초에 없고요."
-그럼 조금 적게 받더라도 서해전자에 파세요.
"예?"
이게 무슨 소린가.
더 마음에 안 드는 놈한테 공장을 넘기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