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12화
129장 카르텔이 별거냐? (3)
회장님은 분명히 그랬다.
'작은 건설업체'를 인수했다고.
그래서 잠시 맡아주는 게 별로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건축 설계와 건설사 운영은 전혀 다른 영역이지만, 작은 업체라면 잠깐 맡아주는 것 정도야 못 할 건 아니었으니.
그런데…….
"……인수하신 게 서해건설이었습니까?"
"네, 엄청 싸게 샀습니다. 하하."
"그래도 몇조는 할 텐데요……."
"딱 1조 원 했어요. 얼마 안 하죠? 아무도 안 사가는 떨이라서 거의 거 저 줍다시피 했습니다."
"……."
"부채도 전부 탕감해서 채권단 신경 쓸 것도 없어요. 빌딩만 잘 지으면 됩니다. 당장 광진구 회사 직원들 기숙사부터 시작하죠!"
"……."
이도공 건축사는 눈앞이 아찔했다.
작은 건설업체라는 말만 믿고 덥석수락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저어, 회장님. 저는 이렇게 큰 건 설사를 잠깐이라고 해도 맡을 만한 능력이 안 됩니다."
"건축사무소 대표 오래 하셨잖습니까. 문제 될 게 있나요?"
"일단 건축 설계와 건설회사 운영은 다른 영역입니다."
"그래도 똑같이 철근콘크리트밥 먹고 사는 거니까 괜찮습니다."
"규모도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비슷하지 않나요?"
"……."
진심이냐는 반문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보니, 하수영은 지금 진심으로 비슷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대왕고래가 보기에는 병아리나 호랑이나 그게 그거처럼 보이겠지만…… 설마 그런 느낌인가?'
"정 그렇게 어려우시면 당분간만 맡아주세요. 어차피 임원진만 잘랐지, 부장 이하 실무진들은 대부분 남아 있습니다."
이도공은 젊다.
부장은커녕, 차장도 자신보다는 더 나이가 많지 않을까?
"그래도 저는……."
"부탁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당장 없어요. 그렇다고 경영진을 아예 비워 둘 수도 없잖아요."
간곡한 말투에 이도공은 결심을 굳혔다.
'그래, 회장님 덕분에 내가 이렇게 먹고사는데 당연히 이 정도야 해드려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맡겠습니다."
"네, 부탁합니다. 아, 월급은 사장급으로 맞춰서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제가 건설사 인수했으니까 어디서 건설 일감 하나가 툭 하고 떨어질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런 운이 좀 있거든요."
하수영이 농담조로 말하자 이도공도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회장님 재물운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건설수주를 받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회사가 사이즈도 줄고 해서 혼란스러우니, 받을 만한 사이즈가 아니다 싶으면 받지 마세요."
"네,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이도공은 '프라임건설'로 사명 변경 예정인 건설회사를 맡게 되었다.
***
건설 소속이 바뀌면서, 임원들에 대한 형사조치도 흐지부지되었다.
검찰은 일단 기소를 했지만, 구속은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탑크레인 붕괴도 그냥 감독 소홀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분위기였다.
이미 서해그룹은 목적을 달성했고, 서해건설은 소유자가 바뀌었으며, 가장 큰 손해를 본 은행도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았으니.
임시 사장 타이틀을 단 이도공은 가장 먼저 짓다 만 반도체공장 현장철수를 지시했다.
"돈 한 푼 나올 일도 없는데 뭐하러 붙어 있습니까. 당장 철수하세요."
"예, 사장님."
"아무도 접근 못 하게 바리케이드치는 거 잊지 마시고요. 어쨌든 이제 부지는 우리 거니까요."
"알겠습니다."
공사 자체는 이미 일시중지 된 지 꽤 되었다.
하지만 장비나 현장 인력 등은 아직 완전히 철수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해건설 당시, 반도체공장은 짓다만 시설과 부지를 포함해서 서해건설로 소유권을 넘긴 상태였다.
20조 원의 미납대금 대신 이거나 먹고 꺼지라고 서해그룹이 땡처리한 것이다.
하수영이 인수하기 전에 이미 기존임원들이 총대 메고 집행한 내용이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부채도 완전 탕감받았으니, 하수영이 손해 본 것은 없다.
***
"저거 다 철거하려면 그것도 돈인데."
"그래도 부지 위치는 좋으니까 땅이라도 쥐고 있으면 언젠가는 활용을 할 수 있겠네요."
"그게 10년 후가 될지, 30년 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현장철수 지휘를 위해 공장으로 외근을 나간 김돌진 부장은 안타까운 한숨을 뱉었다.
"조금만 더 올리면 이제 다 지었을 텐데…… 중간에 뚝 끊겨서 어떡하냐."
"저도 그걸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아시아 최대 반도체 공장으로 당당히 출생신고를 할 녀석이었는데요."
반도체공장은 겉껍질은 거의 다 지어진 상태였다.
달리 말하면 아직 완성품은 아니다.
"크레인 붕괴 사고만 안 일어났어도 지금쯤 거의 다 지어졌을 텐데 말입니다."
"야, 그거 사고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사고는 무슨."
옆에서 동료가 코웃음을 쳤다.
실무진들은 대체로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룹에서 서해건설을 희생시킨 것을 모르는 직원은 없었다.
회사가 고의 부도 날 상황이라는 소문에 전 직원이 얼마나 불안에 떨었던가.
짬이 되는 직원들은 물산의 건설부문으로 흡수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덩치가 줄어들고,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래도 때마침 구매자가 나타나서 살았지. 고용도 그대로 승계하고 말이야."
"청담수영병원 직원들 말 들어보면, 하수영 회장님이 그렇게나 인심이 좋으시답니다. 직원들에게 엄청 잘해주신다고."
"우리 입장에선 더 잘된 일인 거 같아요."
당장 급여나 대우가 나아진 것은 없다.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중.
하지만 직원들은 이제 불안에 떨지 않았다.
"인수하시자마자 임원들 싹 날리시는 거 보고 정말 과감하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그 썩은물들 안날렸으면 서해그룹에 계속 이리저리 빨대 꼽힌 채로 굴러갔을 텐데."
"구 임원들 라인 타던 부장, 차장들도 다 날아가서 회사가 아주 깨끗해졌어요."
"그쪽 라인을 어떻게 다 찾아냈는지 신기할 지경이에요. 이미 옛날부터 우리 회사를 노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설마. 애초에 우리 회사가 매물로 나온 게 반도체 파운드리가 망해서인데."
"근본적으로는 서진파운드리 때문이잖아요? 근데 서진파운드리도 하수영 회장님 건데요?"
"어, 그게 그렇게 되나?"
"그렇게 되네요."
"……."
"……."
외근을 나온 김돌진 부장 팀원들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이윽고 김돌진 부장이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우리 쓸데없는 음모론에 매몰되지 말자고, 회장님이 우리 건설 인수를 노리고 일부러 움직였다느니 하는거 말이야."
"아무도 그런 말 안 했습니다. 부장님이 하셨어요."
"아무튼!"
작은 호통으로 분위기를 정리한 뒤, 김돌진은 현장 철수를 준비했다.
인부들이 장비 철거를 시작했고, 김돌진 부장 팀은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꼼꼼하게 점검했다.
바로 그때, 직원 한 명이 스마트폰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부장님! 중국과 대만이 바다에서 한판 붙었다는데요!"
"뭐? 둘이 한판 붙었다고?"
"네! 그래서 지금 미군 항모부대도 근처에서 대기하고 긴장감이 장난 아니랍니다!"
"저번의 그거 때문인가? 중국이 대기권에 무슨 짓 하다가 태풍 일으켰다고 대만이 꾸준히 비난해 왔었잖아?"
"우리나라도 그거 때문에 고생 많이 했죠."
지난해, 한국을 강타한 우박을 동반한 겨울 태풍.
프리덤이 아니었으면 엄청난 인명피해가 나왔을 거라고 두고두고 회자되던 재해.
중국이 미세먼지 제거를 위해 대기권에 무슨 짓을 해서 생긴 부작용이라는 음모론은, 인터넷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정말 중국이 대기에 무슨 짓을 했을까요? 미국이 좀 시원하게 밝혀주면 좋겠는데."
"아무튼 그거 때문에 대만과 기어이 충돌했다. 이거지?"
"네, 군함끼리 서로 기관총 한 번씩 주고받은 거 같습니다."
"당분간은 중국대만 갈등으로 뉴스들이 도배가 되겠네. 아무튼 일합시다."
잠시 놀라긴 했지만, 직원들은 다시 업무로 돌아갔다.
중국과 대만의 갈등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었으니까.
교전이 크게 확장된다면 모를까, 그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원치 않을 것이다.
'대만이 좀 손해 보는 선에서 끝나려나?'
'아니면 미국이 나서서 중국이 이를 갈면서 물러나는 선에서 끝나려나?'
그렇게 대충 생각하면서 장비 철수작업에 매진하다가 그날 하루가 끝났다.
"다 같이 저녁 먹고 현장에서 바로 퇴근하자고, 회식 아니고 그냥 법인 카드로 밥만 먹자는 거야."
"네, 부장님."
"진짜 배고픕니다. 근데 주변에 뭐 맛있는 거 있을까요?"
다들 현장소장을 바라봤고,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워낙 외진 데라 사먹을 만한 데는 없고, 함바 배달시키는 게 낫습니다. 근데 현장 멈춘 지 오래돼서 배달을 오려고 하려나……."
"그럼 서울 올라가서 먹지요."
"그렇게 하자고."
김돌진 부장팀이 경기도에서 복귀하던 중 강남을 경유하던 때였다.
조수석에 앉은 직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부장님, 저희 수영라면 한 번 먹어볼까요?"
"수영라면?"
"네, 오리지널 수영라면 한 번 먹어봅시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어볼 수 있겠어요?"
"야, 그래도 두당 35,000원이나 하는 걸…… 그래! 까짓거 먹어보자!"
"우와, 부장님 최고!"
"법인카드로 회사 오너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팍팍 쓰겠다는데 뭐 문제 있어? 안 그래?"
"오히려 매출 올려주러 다른 데 안가고 여기 왔다고 기특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아, 그럼 가맹점 말고 본점으로 가야겠네요."
"그래, 설마 회장님을 마주칠 일이야 있겠어?"
"하하, 마주쳐도 못 알아볼 겁니다. 사진 한 번 본 게 전부라서요."
그렇게 김돌진 부장팀은 청담동 수영레스토랑 본점으로 향했다.
다들 수영라면 오리지널은 처음이었기에, 중독성 강한 맛에 감동하면서 식사를 했다.
"이게 바로 그 수영김치라죠? 와, 듣던 것 이상으로 대박 맛있네요."
"어떡해. 이제 다른 김치는 절대 못 먹겠어."
후다닥 식사를 마친 직원들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중국과 대만 충돌 사건을 가장 처음 접했던 직원이 스마트폰을 보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미쳤다. 미쳤어! 부장님! 과장님! 중국이 대만 본토에 미사일 날렸답니다!"
"뭐야? 미사일을 날려?"
"네! 지금 대만은 뒤집어졌고 중국정부는 오폭이라며 절대 고의공격인정 안 하고 있습니다."
"아니, 미사일 공격이 오폭이라는 게 말이 돼?"
"중국 정부 말로는 현장지휘관이 자기 재량으로 위협하려던 게 오폭이 난 거라고, 그래서 지금 현장지휘관 소환해서 경질하겠다네요."
"오폭일 리가 없지. 그렇게 밀어붙이는 거야. 야, 이거 난리 났다. 진짜 3차대전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다른 직원들도 놀라서 허둥지둥 스마트폰을 꺼내어 관련 기사들을 점검했다.
SNS에는 이미 전쟁 관련 게시물들이 쉴 새 없이 도배되는 중이었다.
폭발 현장에서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중 해상도가 높은 사진들만 골라 보던 어느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장님, 여기 이거…… TSMC 같은데요?"
"응? 대만의 그 반도체 회사?"
"네, 거기 주력 공장 같은데요? 제가 여기 직접 가본 적이 있어서 경치가 눈에 익은데……."
"헐, 지금 TSMC 주력 공장들 죄다 박살 났답니다! 반도체 업체 발칵 뒤집혔대요!"
파운드리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TSMC의 주력 공장들이 박살 났다?
당장 주문한 반도체 출하를 기다리는 반도체업체들은 발등에 백린탄이 떨어진 심정일 것이다.
"잠깐만, 그럼 우리 짓다 만 저 반도체공장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
'임시 사장' 이도공.
서해전자에서 온 부재중 전화가 미친 듯이 쌓여 있지만, 대만에서 온 연락을 받느라 전혀 몰랐다.
-그 공장, 끝까지 지어서 우리에게 파셨으면 합니다.
TSMC CEO의 직통 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