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10화
129장 카르텔이 별거냐? (1)
근래 서해그룹의 분위기는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신 공장 건설, 백두반도체 인수에 90조 원 넘는 돈이 날아갔고, 서해건설은 기껏 선정된 청담동 아파트 재건축 사업자에서 밀려났다.
서해전자에 물려 있는 20조 원의 공사대금을 떼일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마이크론이 서진파운드리에 50억달러어치 선주문을 하면서, 서해전자의 파운드리의 미래는 본격적인 암울함을 맞이했다.
그런 와중에 후속타가 터졌다.
[래플사, 랙북 옵테인 탑재 모델발표!]
[소비자에 자신 있게 고한다. 비약적인 퍼포먼스를 기대하시라!]
[윈텔, 옵테인 메모리 생산 10억달러어치 주문!]
마이크론이 50억 달러를 넣은 와중, 윈텔이 10억 달러어치 주문을 새로 넣었다.
금액을 보면 마이크론보다 훨씬 적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윈텔은 '옵테인 메모리'생산에만 10억 달러를 넣은 것이다.
여러 가지 제품을 포괄적으로 주문할 생각으로 50억 달러를 넣은 마이크론과는 달랐다.
[옵테인 메모리란 대체 무엇인가?]
[소비자의 하소연 : 옵테인이 뭔지 이해가 안 돼요. 그래서 램이라는 건가요, SSD라는 건가요?"]
[옵테인 메모리, SSD 킬러로 등극하나?]
[저장장치의 시대는 이제 대용량 HDD와, 초고속 처리 속도의 옵테인으로 나뉠 것.]
이 모든 게 랙북 옵테인 탑재 모델 덕분이었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옵테인 메모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해그룹과 친한 언론들은 그런 호들갑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옵테인에 대한 관심이 불붙은 듯이 치솟는 상황.
결국 언론은 하나둘씩 옵테인 메모리의 특징과 미래 전망을 설명하는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SSD에서 꺼낸 데이터는 D램에 잠시 저장한 채 작업처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SSD는 D램에 비해 엄청 느리죠. 전체적인 처리 속도가 덩달아 느려집니다."
"이게 바로 병목현상입니다. 물병을 거꾸로 뒤집었을 때, 병 두께에 비해 병목이 좁다 보니 물이 시원하게 빠져나가지 않는 걸 뜻하죠."
"그런데 윈텔의 옵테인은 SSD 처럼 전원 OFF에도 데이터 저장이 가능하면서, D램에 비해 속도가 크게 뒤지지 않습니다."
"즉 D램과 SSD 사이에 옵테인을 끼워 넣으면 병목현상을 줄이고 컴퓨팅 퍼포먼스 증가를 꾀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번 랙북은 아예 SSD를 없애고, 값비싼 옵테인만으로 1테라 바이트의 저장소를 구축했습니다."
"이러면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를 기대할 수 있죠. 병목현상이 비약적으로 줄어드니까요."
"윈텔과 래플은 컴퓨터가 나아갈 미래를 보여준 겁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완벽히 개념을 이해하진 못했다.
그래도 'D램-SSD' 사이에 옵테인을 끼워 넣거나, 아예 SSD를 옵테인만으로 대체하면, 컴퓨터 속도가 '매우' 빨라진다는 것은 이해했다.
"그럼 왜 여태껏 옵테인이 잘 알려지지 않은 거야? 뭐가 문제가 있어서?"
"엄청 비싸거든. 1테라 SSD를 20만 원이면 사는데 옵테인 1테라는 200만 원은 줘야 했어."
"시불, 욕 나오는 돈이잖아."
"그런데 아무래도 윈텔에서 옵테인가격을 낮출 길을 찾아낸 거 같다. 200만 원 하던 게 순식간에 140만 원까지 떨어졌네."
30%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가격 절감이었다.
게다가 윈텔은 서진파운드리로부터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공정과정을 계속 개선한다면, 5년 안에 기존 SSD만큼 가격을 떨어뜨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 덕분에 윈텔은 자신있게 손해를 보면서도 래플과 제휴를 한 것이다.
옵테인이라는 이름을 시장에 단단히 새기기 위해서 말이다.
전문가들은 옵테인 랙북을 시작으로, 향후 개인 컴퓨터 시장은 옵테인 저장장치가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간의 문제이지만, SSD는 결국 자연스럽게 퇴출될 겁니다."
"다만 HDD는 퇴출되지 않을 겁니다. 플래터 방식은 대용량의 자료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국내 증시 개미들은 서해전자를 주목했다.
"서해전자, 작년에 SSD 캐파 확장에 돈 많이 쓰지 않았나?"
"몇 조 이상 썼지, 아마?"
그리고 서해전자 주가는 다시 한번 추락했다.
옵테인의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도 많이 비싸다는 것은, 주가 추락을 그다지 막아주지 못했다.
***
이현덕 부회장은 사장단을 불러놓고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건설을 버립시다."
서해건설 사장 천웅철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선언이었다.
"부회장님!"
"그럼 방법이 있습니까?"
"……."
"다른 방법이 있으면 말을 해보세요, 말을."
살기까지 핀 이현덕 부회장의 눈이 노려본다.
천웅철 사장은 마른침만 꿀꺽 삼켰을 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다른 사장들도 건설 편을 들어줄 마음은 없어 보였다.
마치 오너 일가가 그런 결정을 내려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린 것처럼…….
"공장 기껏 다 올려놓고 놀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언제까지 놀리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이런 상황에서 20조 원을 물어주라? 전자 주가 폭락합니다."
서해전자는 100조 원이 넘는 현금을 갖고 있지만, 천웅철 사장은 지금 감히 그것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지금은 크게 보고 대승적인 인내를 감안해야 할 때입니다. 건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
"……."
"그룹의 미래를 위해서, 희생해 주십시오."
이현덕 부회장은 천웅철 사장을 향해 정중히 머리까지 숙여 보였다.
주인이 머슴에게 머리를 숙이는 경우는 없다.
있다면 단 하나뿐.
'책임지고 당신 선에서 정리하시오. 감옥에 가든 말든.'
허리를 숙인 것에는 그런 압박이 담겨 있었다.
천웅철 사장은 눈앞이 아찔했다.
사냥에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솥에 넣어 삶아지는 것.
결코 원하지 않던 미래가 결국 다가오고 말았다.
사냥감 자체가 사라져 버렸으니, 피할 수 없는 운명이리라.
결국 그는 힘없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해결을 해보겠습니다."
"최대한 탈이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다른 사장들도 힘을 합쳐서 도와주십시오."
"예, 부회장님!"
필요도 없는 값비싼 반도체 생산설비를 사느라고 수십조 원을 날렸다.
공장 건물에 들어간 20조 원만이라도 건져야 할 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설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죽어야 했다.
다음 날, 서해건설이 담당한 서해 전자 새 공장에서 탑크레인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탑크레인은 빈 공간으로 무너졌기에 건물에 손실은 없었다. 야간에 일어났다 보니 인명 피해도 전혀 없었다.
천운이었지만, 악재는 이제 시작이었다.
[검찰, 고발장 투서 접수!]
[서해건설, 부실공사 의혹?]
[수십조 원을 들여 지은 반도체 공장, 알고 보니 부실덩어리?]
[국토부, 긴급 안전진단점검에 나서!]
서해건설이 지은 반도체공장 건물이 부실공사라는 의혹이 여기저기 떠돌았다.
검찰이 급히 수사를 시작했고, 주요 임원 네 명을 체포했으며, 그중 두 명을 유죄 혐의로 기소에 붙였다.
모든 언론은 서해건설이 신 반도체 공장을 부실공사로 지었다고 떠들어 댔다.
[해외 경쟁 반도체제조사, 서해건설 임원들을 회유하다!]
[부실공사를 유도하여 서해전자에 타격을 입히려고 한 혐의가 보이다.]
[서해전자, 설마 동종 계열사가 그럴 줄 몰랐다며 경악]
[천웅철 사장, 이 모든 것은 돈에 넘어간 일부 임원들의 비리일 뿐, 회사의 입장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
[A임원과 B임원, 계좌 추적 중 소명 불가능한 거액을 확인.]
[전광석화처럼 불붙는 수사 속도!]
해외 경쟁반도체업체가 서해전자에 타격을 주기 위해 건설의 임원 둘을 매수했다.
그들로 하여금 공장이 부실공사가 되도록 했다.
지금 공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 진단 점검을 받아야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허물어야 할 수도 있다.
모든 언론들이 매일같이 이런 주장을 앵무새처럼 떠들어댔다.
그리고 마침내 서해전자가 공식입장을 표명했다.
[서해전자, 형제회사인 서해건설을 고소!]
부실공사를 했으니 공사대금 20조원을 당연히 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서해전자는 오히려 20조 원에 얹어서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건설의 시총이 10조 원이 채 되지 않는데, 수십조 원의 손실을 보게 생긴 것이다.
서해건설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서해전자는 공사대금 20조 원을 킵했다.
형제 계열사 간의 지루한 공방전은 그렇게 막을 올렸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짜여진 각본 대로 움직이는 싸움이었다.
***
"서해전자 요즘 주가 많이 빠졌지?"
"그래도 한창 신나게 빠지던 때에 비하면 어느 정도 회복됐어. 악재는 이제 다 반영된 거지."
"그래도 몇 달 전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빠져 있네."
"어쩔 수 없지. 백두반도체 인수, 그리고 새 공장에 넣을 설비 계약에 들어간 돈만 수십조 원인데."
"공사대금 20조 원 안 물어준 게 그나마 호재였지, 호재."
증권맨들은 요즘 입만 열었다 하면 반도체 이야기였다.
"옵테인 터졌을 땐 진짜 서해전자도 끝이다 싶었는데, 이렇게 또 회생을 하네."
"정말 서해건설이 부실공사를 했을까? 공사대금 물어주기 싫어서 일부러 쇼하는 거 아니야?"
"에이, 이 친구야.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지."
증권맨들은 언론에 속는 대중과 달리, 부실공사를 전혀 믿지 않았다.
"파운드리 확장은 물 건너갔고, SSD 시장도 위험하고, 서해전자도 참 난감하네."
"그래도 악재는 이제 다 반영됐으니까 서서히 올라갈 거야. 다른 메모리 반도체 제품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모바일용 비메모리 반도체도 꽤나 전망이 괜찮거든."
"옵테인이 아무리 잘났어도 D램을 배제할 순 없으니까. SSD하고는 다르지."
"법정관리 들어간 건설만 정리하고, 임원 몇 명 큰집 가는 것으로 끝나겠네. 공사대금은 안 물어줘도 될 테고."
"건설만 불쌍하게 됐지, 뭐."
주가를 확인하던 증권맨들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서해건설 주가가 왜 하한선이 아니야?"
"누가 사들이는 세력이 있는 건가?"
"혹시 서해그룹에서 저래놓고 뒤에서 몰래 사들이는 거 아니야?"
***
주희도.
그는 하수영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전반적으로 관리해 주는 일을 한다.
하수영은 그 덕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서도 수많은 가맹점주들을 다룬다.
그런 그가 지금 하수영 앞에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서해건설을 인수하신다고요?"
"네. 건설사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실례지만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서해건설은 좋은 매물이 아닌 거 같은데요."
곧 막대한 빚을 지고 파산할지도 모르는 회사 아닌가.
"언제까지 외부 회사에 공사를 맡길 수는 없잖아요. 이제 저도 저만의 건물을 지어주는 손발이 필요해요."
"그게 꼭 서해건설일 필요가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위험합니다."
"그래도 그만한 덩치 있는 매물은 없죠. 어쨌든 간에 5대 건설사 중에 하나잖습니까."
하수영은 별문제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인수하면 내부 비리 제대로 깔끔하게 청소하고, 임원들 전부 물갈이 해서 새 부대로 만들 겁니다. 그리고 새 술 담아서 쓰면 되죠."
"……."
"지금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는 폐급 매물이잖아요. 가장 쌀 때니까, 오히려 인수하기에는 적시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싸한 이야기였기에, 주희도는 저도 모르게 끄덕이며 수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