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07화
127장 계장님이 돈을 숨김(3)
최판섭 시장 부부를 향해 이서환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오셨습니까."
"응, 자네도 퇴근하고 바로 온 거구만?"
"예. 그런데……."
보아하니까 주변에서 시장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다.
아마 최판섭 시장이 쓰고 있는 옅은 선글라스 덕분인 거 같다.
시장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적당히 부르게. 무슨 말인지 알지?"
"예, 대표님."
"거, 듣기 좋구먼. 자, 얼른 이리와."
"전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 자네는 벌써 먹고 있었나 보군. 난 그것도 모르고 줄 서자고 했으니."
"그게 아니라 제가 여기 사장입니다."
"응? 뭐라고?"
"제가 여기 사장입니다. 대표님께서 겸직허가 내주신 그 음식점이요."
"……."
"마음 같아서는 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싶지만, 형평성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대신 이따가 제가 직접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이서환은 정중히 머리를 숙이고 등을 돌렸다.
바로 그 순간 최판섭 시장이 정신을 차리고 당황해서 불렀다.
"서환이, 이서환이! 자네가 여기 사장이라고? 여기가 자네 가게라고?"
"네, 그렇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여기는 분명히 하수영 의원님이……."
최판섭은 당황해서 횡설수설만 반복했다.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날 수영펜션에서 하수영이 이서환에게 관심을 보이던 게 불발로 그친 게 아님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둘 사이에 어떤 끈끈한 인연이 만들어진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서환이 갑자기 수영레스토랑 점주로 나타날 리가 없을 테니까.
"일단 가게를 봐야 해서요. 나중에 인사드리겠습니다."
"어, 응. 그렇게 하시게."
저도 모르게 말에 반공대가 섞였다.
이서환은 그것을 느끼고 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사실 이서환이 할 것은 별로 없었다.
수영라면은 요리사의 실력빨이 그리 크지 않다. 위생에만 신경 쓰면 초보 요리사를 써도 된다.
어디까지나 재료빨로 승부하는 요리이니까.
게다가 뉴월드백화점 측에서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었기에, 장사가 처음인 이서환도 어렵지 않게 운영할 수 있었다.
"23번 테이블은 내가 나갈게요."
"사장님이 직접이요?"
"부산 시장님 부부입니다."
"아, 정말이요? 전혀 몰랐어요. 선글라스를 끼고 계시니 못 알아보겠네요."
이서환은 손수 카트를 이끌고 최판 섭 시장 부부 테이블로 향했다.
젓가락과 수저, 라면 그릇과 수영김치가 담긴 접시를 내놓고 허리를 폈다.
"맛있게 드십시오."
"이 계장……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설명해 줄 수 있겠어?"
"운이 좋아서 매장을 차릴 수 있게 됐습니다. 하수영 회장님이 절 좋게 보셨거든요."
"설마 그 전에 정말 안면식이 있던 것은 아니지?"
"아닙니다. 저도 그날 펜션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회장님도 마찬가지구요."
"대체 뭐 때문에 자네를 그렇게도 마음에 들어한 건가?"
"그건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가 조금."
"알았네. 미안해. 내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시장한테 마감 이후 회식에 참가할 거냐고 물어보진 않았다.
이서환 입장이야 시장과 친해지면 좋다. 앞으로 계획한 행보도 있으니.
하지만 회식에 오는 동료 직원들에게는 못 할 짓 아닌가.
그래서 일부러 회식은 철저히 언급을 숨겼다.
"응, 고마워. 잘 먹을게. 아, 혹시 가게 마감하고 시간 좀 있나?"
"제가 오늘은 마감하고 나서 약속이 있어서요."
"그렇군. 그럼 언제 시간 한 번 내 줘. 아, 당장 내일 저녁은 어때?"
"내일은 토요일입니다만."
"아. 그, 그렇지."
최판섭 시장이 당황해하자 이서환은 부드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시장님과의 저녁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오, 진심인가? 지금 억지로 시간내는 거 아니지?"
"그럴 거면 내일 토요일이라는 말도 쏙 뺐을 겁니다."
"진짜지? 그럼 나 눈치 안 보고 맘 편히 내일 저녁 약속 잡아도 되는 거지?"
"네, 물론입니다. 장소와 시간 잡아서 연락 주십시오."
"알았어."
무엇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하려는지는 뻔하다.
아마 하수영과의 관계를 좀 더 자세히 파고들고 싶은 거겠지.
부산 정치에 몸을 담그기로 한 이상, 이서환에게도 시장의 저녁 제안은 반가운 것이었다.
***
해운대 동백섬 수영펜션.
장효주, 주효정, 임강희, 이다래 등네 명의 여배우는 예능 촬영을 앞두고 수영펜션에서 뒹굴면서 신나게 놀았다.
객실 밖에서는 항상 짙고 큰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기에, 사람들의 접근을 방지할 수 있었다.
"연예인인가? 저 여자들 포스가 장난 아닌데?"
"아무리 봐도 연예인이 맞는 거 같은데? 저런 포스는 배우가 분명하다."
"얼굴 진짜 작다. 와, 선글라스가 저렇게 무식하게 크게 보이기는 처음이네."
펜션 투숙객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펜션 직원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함부로 다가가진 못했다.
펜션 부지는 투숙객이 아닌 이상 출입이 막혀 있기에, 네 여배우는 외부의 방해 없이 마음껏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여기 펜션 정말 좋다. 일 년 내내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어."
"진짜. 밥도 하나같이 맛있고 풍경도 멋지고, 너무 좋다."
"효주는 좋겠네. 언제든 말만 하면 지금 객실 마음껏 쓸 수 있다고?"
"정말 수영 씨가 효주 좋아하는 거지? 부럽다, 부러워."
"자산이 조 단위라던데, 생긴 것도 말끔하고, 나이도 젊고, 신랑감으로는 정말 최고 아니야?"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드디어 예능 촬영 일정이 잡혔다.
서울에서 예능 촬영을 위해 사람들이 속속들이 내려왔다.
펜션 측은 예능 일정에 겹치는 일반 투숙객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했다.
"이날부터 예능 촬영이 시작됩니다. 혹시 좋아하는 스타가 보이더라도 예능 촬영에 협조, 정중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예능 찍는데 사인 해달라고 다가가지 말아 달라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이었다.
드라마 부활의 이순신 시즌2 홍보를 위한 예능이기에, 드라마의 주연들도 속속들이 해운대로 내려왔다.
그러나 모두가 수영펜션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하수영이 제공한 스위트룸은 무척 넓었지만, 인원수는 그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주요 여배우만 넷이다 보니, 남자 스태프나 출연자들은 따로 방을 구해야 했다.
"아, 우리도 수영펜션에 미리 예약을 잡는 건데. 피디님은 왜 수영펜션에 예약을 안 잡으신 거지?"
"몇 달 치 예약이 잔뜩 밀려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잖아. 그래도 호텔로 예약 잡았으니까 그걸로 일단 만족해."
일부 여자 출연자, 스태프만 장효주에게 제공된 스위트룸 객실에 묵는 호사를 누렸다.
부활의 이순신 시즌2 홍보 예능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투숙객들은 어떻게든 사인 한 번 받아보려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펜션 측 눈치가 보여서 최대한 접근은 자제했다.
그래도 운 좋게 사인을 얻거나 악수를 나누는 행운을 누리는 이도 나왔다.
***
출연진들이 의자에 앉아 카메라 앞에서 토크에 한창이었다.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가 한창 질의응답을 하는 중이었다.
"드라마 제목명이 부활의 이순신인 것을 보면, 시즌1을 제작할 때부터 이미 노량해전 이후 이순신의 빙의가 예정돼 있던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이순신 장군님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까요?"
"일단 임진왜란을 더욱 빨리 종결시키고, 부산과 경남, 전남을 빠르게 안정화시킵니다. 그리고 응징을 위해 일본을 공격하게 되죠."
"그 다음은요?"
"그 이후는 직접 드라마를 통해서 감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즌1도 거의 3,000억 원에 가까운 엄청난 촬영비 덕분에 말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요. 영화계, 드라마계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주목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무후무한 역대급 제작비였지요.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제작진과 투자자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순신 배역의 배우가 머리를 숙이자 다른 출연자들도 웃으면서 따라 숙였다.
주효정이 이때라는 듯이 얼른 말했다.
"여기 이 호텔도 제작비를 대신 투자자님이 제공하신 호텔이에요. 정말 여러모로 드라마 성공을 위해 신경을 써주시는,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넉넉하신 투자자님이세요."
"어, 주효정 씨? 말씀에 너무 사심이 깃든 거 아니에요?"
"사심 있는데요. 투자자님, 다음에 제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드라마에도 신경 좀 써주세요."
주효정이 가볍게 윙크를 하자 여기저기서 작은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주효정 씨, 카메라를 보고 윙크해야지, 왜 엉뚱한 방향을 보고 윙크하시나요?"
"저기에 투자자분이 계시니까요."
이미 알고 있던 MC가 일부러 과장스럽게 놀라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 그게 정말입니까? 그 돈 많고 마음 넉넉한 투자자분이 지금 여기와 계신다고요?"
"네, 호텔 운영 점검을 위해서 잠시 내려오셨다고 하네요. 겸사겸사우리 예능이 잘 되어가고 있는지도 체크하신다고 하시고요."
"허허, 마음 같아서는 시청자분들께 얼굴 보여드리고 싶은데 연예인 이 아니시니, 이거 참 안타깝습니다."
장효주는 일부러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괜히 이런저런 구설수나 스캔들이 나올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안 그래도 이미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이고, 따로 자주 식사도 가지고 있으니.
팔짱을 끼고 예능 촬영을 지켜보던 하수영이 작게 투덜거렸다.
"호텔 아니라 펜션이래도 그러네. 아우, 펜션 간판 좀 한 번 크게 잡아주면 얼마나 좋아. 아, 그럼 PPL이 되나?"
어차피 예능이니까 대놓고 PPL을 해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어느덧 오늘 촬영이 끝났다.
하수영은 장비를 정리하는 촬영팀을 향해 느긋하게 다가갔다.
그의 접근을 알아본 주효정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어머, 투자자님. 저 오늘 어땠어요? 잘했나요?"
"잘하시던데요. 드라마 배역 이야기만 조금 더 집중했으면 좋았겠지만요."
"그럴까요? 내일부터는 그렇게 할 게요."
피디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면서 다가와서 굽실거렸다.
"이렇게 호텔도 촬영지로 제공해 주시고, 정말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펜션'간판이나 크게 잘 나오게 앵글 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자연스럽게 잘나오도록 편집에 신경 쓰겠습니다."
"다들 식사하셔야죠.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엇, 정말이십니까?"
피디는 물론이고 스태프들도 반색을 했다.
그들도 인스타 등을 통해 수영펜션에서 음식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 알고 있었다.
육류, 어류, 채소류 등 모든 면에서 중국 황제 식단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곧 호텔 직원들이 테이블이 부러질 듯한 기세로 요리를 쌓아 올렸다.
스태프들은 사진을 찍는다, 먹는다, 즐거워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장효주가 남들 눈치를 보면서 슬쩍 다가와 물었다.
"언제 올라가요?"
"내일 또 올라가야죠. 청담에서도 할 게 많습니다."
"드라마 촬영 들어가기 전에 고사에 올 거죠?"
"투자자인데 얼굴은 비쳐야지요. 이번에도 시청률 내기 하나요?"
"당연하지요. 이번에도 수영 씨가 맞출 거 같은데요. 첫방 시청률 얼마 보세요?"
"얼마를 원하시죠?""
"그렇게 말하니까 꼭 수영 씨가 말하는 숫자대로 시청률이 따라가는거 같네요."
"100% 달성하려면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현실성있게 한 80%로 찍어줄까요?"
"100% 찍으려면 진짜 첫방 때 동시간대 다른 채널들은 죄다 그 전부터 방송사고 나야 할 거 같은데요."
"경쟁 방송사가 전부 부도날 수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