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506화 (506/1,270)

프랜차이즈 갓 506화

127장 계장님이 돈을 숨김(2)

회장. 사장. 대표, 대주주, 농민재벌, 부동산재벌, 청담동큰손. 농민회장. 어민회장. 예금주, 구의원, 집주인. 건물주, 단지주…….

하수영을 가리키는 여러 다양한 호칭이다.

지금은 참치 해체칼을 들었으니, 어민회장이라는 호칭이 적절하지 않을까?

직원들은 식사도 멈춘 채, 숨을 죽이고 하수영을 바라보았다.

다섯 마리나 되는 참치를 설마 혼자서 다 해체하려는 것인가?

"저런 칼로 참치 해체가 가능해?"

"몰랐어? 서해호텔에서 하수영 어민회장이 저 칼 하나로 참치들을 순식간에 해체해서 회까지 다 떴대잖아."

"전문 해체업자하고 숙련된 대요리 사를 다 합쳐놓은 듯한 칼솜씨였대."

"어디서 참치를 10만 마리 정도 잡아본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있던데."

"쉿, 움직인다."

바로 그 순간, 하수영의 눈빛이 번뜩였다.

커다란 서리한이 허공에서 쉴 새없이 움직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참치 한 마리가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수영은 거듭칼을 놀려서 참치회를 얇게 떴다.

조금 과장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

마치 마술쇼라도 본 것처럼 직원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눈을 떼지 못했다.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으셔서 일단 한 마리만 해체해도 충분할 거 같군요."

"남은 참치들은 그럼 어떻게 할까요?"

"두 마리는 해체해서 이따가 냉동포장을 해서 나눠드리고, 두 마리는 오픈 준비에 힘쓴 매장 직원분들을 위해 나눠주죠."

"좋은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서환은 하수영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도시계획실장은 그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설마 했는데, 이서환이 하수영과 저렇게 친해졌다니.

'그때 펜션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수영이 이서환한테 이상하다 싶을 만큼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지인을 닮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나타날 줄이야.

"맙소사. 로또가 아니었어. 로또는 비교도 안 되는 대박이었어."

로또 당첨으로 오인했던 동료, 전 봉한은 입을 쩍 벌린 채 바라봤다.

농민재벌 하수영과의 친분이라니.

로또 1등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박이다.

"몰랐어. 저분이 하수영 어민회장님이셨구나."

"계장님이 저분하고 저렇게 친했다니……."

"그래서 수영레스토랑을 뉴월드백화점에 차릴 수 있었던 거구나……."

"수영레스토랑 매장은 하나같이 죄다 대박이라던데."

"서울에서도 비강남 지역에서는 큰 백화점에나 가야 매장이 있대."

직원들은 부러운 눈으로 이서환을 바라봤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처지였던 동료다.

하지만 지금은 훌쩍 도약해서,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올라가 버렸다.

"배 아파서 입맛이 없어야 되는 상황이지? 근데 군침은 계속 흐르네."

"잘된 거지, 뭐. 계장님처럼 착하고 성실하신 분이 어디 있어?"

"복 받으신 거야. 하수영 어민회장님도 계장님 인품 알아보고 끌어안으신 걸 테고."

"두 분 세상 편안하고 친하신 거 봐. 나이 차이 전혀 안 느껴져. 오랜 친구 같아."

그 와중에도 젓가락질을 하면서 이런저런 부러움을 토로하다가, 불현듯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범 과장님 이제 어쩐다니?"

"그러게. 계장님이 눈엣가시라며 그렇게 두고두고 괴롭혔는데."

"계장님, 그냥 안 그만 두시면 좋겠다. 시청 일은 취미로 하시면 안되나?"

"나도 돈 많은 부자가 취미로 공무원 일하는 거 옆에서 보면서 대리만 족하고 싶어."

"계장님! 시청 안 그만두시면 안됩니까!"

남자 직원 한 명이 씩씩하게 외쳤다.

이서환은 그제야 뒤를 돌아보고 동료들의 눈빛을 확인했다.

동료 전봉한도 입에 손을 모아서 외쳤다.

"서환아! 가지 마라! 우리 부서 너 없으면 아무것도 안 돌아간다!"

"취미로 시청에 출근하는 숱 많은 만년계장이 되어주세요!"

"그만두지 말아요!"

난처하면서도 기분 좋은 웃음이 공존하던 이서환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도 부산시청을 여러분들처럼 사랑합니다. 부산시 일을 제가 그만둘 일은 없을 겁니다."

"우와아아! 계장님, 만세!"

"사랑해요!"

'계장'이 아니라 '부산시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는 말.

그 미묘한 차이를 모르는 직원들은 그저 사직을 않는다는 것으로 오인하고 기뻐했다.

어느새 슬쩍 다가온 황세라가 하수영 옆에 섰다.

"시청 만년계장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데요. 사람들을 다스리는 게 몸에 배어 있어요. 좋은 기업자 자질이 보여요."

"참치 치어를 옹달샘에 풀어놓고 키우니 제대로 클 리가 있겠습니까. 이제 치어가 바다로 돌아왔으니 자기 본모습을 찾아가는 거죠."

"제가 모르는 다른 게 있나요?"

황세라는 이서환을 평범한 시청 만년계장으로만 알고 있었다.

고 태호그룹 회장의 사생이라는 것은 외부에는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이니까.

"레스토랑 가맹점주라고 해서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제 선입견이었군요."

"이서환 계장님, 가진  현금만 8,000억 원이 넘습니다."

"네? 정말이에요?"

황세라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서 환을 다시 보았다.

만년계장이었던 사람한테 그만한 현금이 있다고?

그 정도면 10대 대기업들 앞에서도 얼마든지 떵떵거릴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 수영레스토랑을 인연으로 이것저것 잘 엮어 보세요. 부산에서 사업 벌이는 데 좋은 파트너가 될 겁니다."

"감사해요. 정말 좋은 정보를 알려 주셨군요."

황세라는 이서환이라는 이름을 뇌리에 깊이 새겨 넣었다.

"오빠는 요즘 어떤가요?"

황세라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하수영은 친오빠가 마트를 툭 떼어서 투항한 인물. 그룹 입장에서 마냥 달갑지는 않다.

동시에 뉴월드백화점 입장에서는 머쉬룸 서비스라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무기를 공급해 주는 갑이기도 하다.

원래 황세라는 하수영과 손을 잡아서 뉴월드마트를 차지하려 했기에, 더욱 입맛이 쓰다.

"마트 확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룹과는 이제 완전히 선을 그었다던데,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 전화번호도 바꿔 버렸어요. 아버지하고 일절 교류하지 않겠다나 봐요."

"시간이 지나면 한이 삭겠지요. 원래 세월 앞에 부스러지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백화점에서 마트를 철수하지는 않겠다고 하니 다행이에요."

"철수해야 할 이유가 없죠. 그게 다 비용이고 손해인데. 그런 분별은 하십니다."

"어떻게 저보다 제 친오빠를 더 잘 아시는 거 같아요."

"그냥 며칠 지켜보고 판단한 겁니다."

원래 황세라가 부산까지 내려온 것은 하수영 때문이었다.

수영레스토랑이 센텀시티점에 입점한다고 해서 황세라가 직접 챙길 이유는 없으니.

하지만 이서환의 그릇을 알게 된 지금, 하수영이 아니더라도 수영레스토랑 센텀시티점을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생겼다.

***

월요일.

시청에 출근하니 난리였다.

초청을 거절한 동료들이 이서환한데 황급히 달려와서 이것저것 물었다.

"계장님, 직원들 인스타 사진 봤습니다. 가게가 엄청 죽이던데요?"

"가게가 엄청 크던데. 이 계장, 진짜 로또 된 거 맞았구나. 그런 큰 가게 차리려면 1, 2억 가지고는 턱도 없을 텐데."

"이 계장아, 음식 사진들 보고 놀랐다. 아니, 그렇게 준비를 했으면 미리 귀띔이라도 좀 해주지……."

"고급 레스토랑 같던데, 그런 거 운영하려면 돈도 많이 들겠죠?"

"어디에 있는 가게예요? 센텀시티라는 것밖에 모르겠어요."

이서환은 오전은 그렇게 파티에 오지 못한 시청 직원들의 등쌀로 보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찻잔 속의 태풍이었다.

타부서 사람들은 질투와 시기 때문에 속이 불편했지만, 곧 나갈 사람이라는 생각에 선을 그었다.

금방 자신들과 무관해질 사람이라고,어차피 지금도 교류가 거의 없는 타부서인데.

범대협 과장은 부서에 내내 보이지 않았다.

'내 얼굴 보기가 껄끄러운가 보군.'

이서환은 그 이유를 능히 짐작했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데, 저 멀리에서 걷는 범대협과 눈이 마주쳤다.

범대협은 얼른 시선을 내리고 못본 체하며 방향을 틀었다.

그 위축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지난 시간들이 멀리 아련하게 변한다.

범대협 때문에 위경련이 오고, 스트레스를 받고, 머리까지 빠지던 시절들.

그게 마치 내가 당한 게 아니라 남의 일인 것처럼, 멀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나자 레스토랑에 관한 반응은 잠잠해졌다.

직원들은 다시 평소처럼 돌아갔다.

무슨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인지 관심을 보이는 이는 더 이상 없었다.

다만, 그날 파티에 왔던 이들 사이에서는 끈끈한 유대감 같은 게 생겼다.

특별한 경험과 시간을 공유한 그들은 자신들만의 추억으로 남겨두기를 원했다.

그래서 수영레스토랑 센텀시티점의 비밀을 사내에 퍼뜨리지 않았다.

이서환도 그런 분위기에 어울려 주었다.

"다음 달 마지막 금요일에 제 가게에서 회식할 건데 오실 거죠? 제가 사는 겁니다."

"우와, 정말이요? 몇 시예요?"

"백화점이 오후 8:30에 폐점하니까, 8:50부터 시작할 겁니다."

"근데 폐점하면 문 아예 닫지 않아요? 매장 하나만 따로 열어서 회식해도 되는 건가요?"

"원래 백화점 방침을 따라야 하는데, 제가 미리 양해는 구해놨습니다."

"오, 대박."

"역시 수영레스토랑이네요. 백화점이 오히려 을이야, 을."

"이 정도면 거의 샤넬이나 에르메스급으로 백화점이 눈치 보는 거 아니야?"

수영레스토랑 센텀시티점은 장사가 아주 잘되었다.

돈 많은 마린시티 부자들이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서 수영라면을 먹고 갔다.

쇼핑하러 오면 반드시 먹었고, 쇼핑이 아니더라도 점심이나 저녁 해결을 위해 들리곤 했다.

수영라면과 수영김치를 처음으로 먹어보는 돈 많은 노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인생 헛살았어. 세상에 이런 맛있는 면 음식이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

엘릭서 고춧가루가 첨가된 수영라면은 사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한 번도 안 먹어볼 순 있어도, 한번만 먹을 순 없다.

파티에 왔던 직원들도 매일매일 그 맛이 생각나서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다른 고급 음식들은 그 맛이 희미해져 가는데.

수영라면과 수영김치만 유독 날이 갈수록 혀끝에서 선명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영레스토랑은 오픈하고 마감 때까지 홀이 항상 만실이었다.

입구에는 늘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고, 하루 매출은 3,000만 원을 거뜬히 넘었다.

40석짜리 음식점 하나의 월 매출이 10억 가까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센텀시티 지점장은 수영레스토랑 좌석을 더 늘리기 위해 여러모로 혈안이 되어 있었다.

소문을 듣고 라면 한 번 먹어보겠다고 부산 다른 지역의 부자들, 포항과 울산, 경남에서도 좀 산다 싶은 사람들도 몰려오는 판국이었으니.

심지어 라면 맛 한 번 보겠다고 대구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료들과의 매장 회식이 예정된 날.

정시에 퇴근한 이서환은 곧바로 센텀시티 매장으로 향했다.

빈자리가 없는 홀과 줄을 선 손님들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서환이 줄 옆으로 안에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아니, 이 계장! 여기에 줄을 서야지, 그냥 들어가면 어떡하나? 우리 아직 줄 서고 있네."

최판섭 시장의 목소리에 그는 딱 멈추고 몸을 돌렸다.

와이프와 함께 줄을 선 시장이 태연하게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변비인가? 뭔 화장실에서 그렇게 오래 있어? 아직 더 기다려야 되니까 이리 오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같이 줄 서던 일행이 오랫동안 화장실을 다녀온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최판섭 시장이 눈을 찡긋했다.

그는 눈짓으로 마음을 전했다.

'자네도 이거 먹으려고 왔나 보군?'

'저 여기 사장입니다.'

'이렇게 줄이 길 줄은 몰랐지? 이해하네. 나도 보고 놀랐거든.'

'저 여기 사장인데요.'

'자, 나한테 말 맞추고 여기 끼어들어. 어색한 티 내지 말고, 근데 여기 라면이 그렇게 중독성이 심하다며?'

'제가 사장입니다.'

'그래도 더치는 해야 해. 알지?'

말이 없어도, 마음은 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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