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02화
126장 유통과 농사 사이(4)
'뭐지?'
하수영이 오히려 당황했다.
무수한 전생을 거듭하면서도 그의 재물운은 단 한 번도 힘을 잃은 적이 없었다.
비록 지금은 통찰안(주신의 지식창고 접근 권한)을 잠시 꺼둔 상황.
하지만 '통찰안'의 도움이 없어도, 사람이 지닌 재물운을 알아볼 순 있다.
다만 준재벌급 미만은 도토리 키재기, 그게 그거로 보여서 식별이 쉽지 않다.
이서환 계장이 눈에 띄었다는 것은, 그가 최소한 준재벌 이상의 재물운을 지녔다는 뜻인데.
"정 보좌관, 자네 의원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모르겠습니다. 이서환 계장은 평범합니다. 제가 집도 가봐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최판섭 시장이 의문을 품은 눈으로 다시 바라본다.
하수영은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금 식사에 열중하는 이서환 계장을 주시했다.
'아닌데? 맞는데?'
다시 봐도 틀림없다.
그가 지닌 재물운의 크기는, 이 자리의 다른 사람들을 다 합친 것보다 월등히 크다.
물론 자신은 제외하고 말이다.
'안 되겠다. 통찰안, 네가 나설 때구나.'
하수영은 정신을 집중하고 주신의지식보고 접근 권한을 활성화했다.
[이서환, 남자, 43세, 배우자 5년 전 사별.]
[아들 1, 딸 1 있음.]
[애주가. 비흡연자.]
[연애 경험 2회.]
[……중략……]
온갖 쓸데없는 정보들이 주르륵 나열되다가, 마침내 하수영이 알고 싶었던 정보가 나타났다.
[자산 : 2억 8,702만 3,913원 상당(주택 포함).]
'뭐야, 전 재산이 3억도 안 된다고?'
하수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통찰안이 보여주는 이서한의 자산은 평범했다.
'내 눈에 띌 정도의 재물운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된 거지?'
하수영은 일단 상황을 수습했다.
"아, 미안합니다. 제가 아는 사람하고 닮아서 착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돈 좀 있는 분인데 부산에 살거든요. 부산시청에서 언더커버보스라도 찍는 줄 알았죠."
"언더커버보스는 뭡니까?"
"기업 수장이 신입사원인 척하고 자기 회사에 잠입해서 동태를 파악하는 뭐 그런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최판섭 시장은 납득한 눈치였지만, 조금 아쉬웠는지 이서환을 힐끔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 것을 의식한 그는 그제야 식사를 잠시 멈추고 당황해서 바라봤다.
"자, 식사들 하시죠."
하수영은 그에게 몰린 시선을 흩뜨려놓고, 식사에 열중했다.
식사 후 티타임.
하수영은 일부러 앉지 않고 돌아다.
니면서 수행원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정 인물만 상대하는 게 아니기에, 시장 일행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쩌다 보니 하수영이 주도하는 정치인 후원회 파티 느낌이 묻어났다.
그리고 하수영은 마침내 원하던 대상, 이서환 계장 앞에 앉았다.
"도로계획과 이서환 계장님이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이서환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하수영을 보는 시선에는 동경, 긴장, 초조, 부러움 등 다양한 감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뜯어봐도 평범한 사람이다.
"아, 그럼 부산 토박이는 아니군요."
"네, 그렇습니다. 다만 부산에 눌러 앉은 지는 오래돼서 이제 토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이서환은 시청 업무에 만족하는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통찰안이 알려주는 자산 정보도 여전했다.
[자산 : 2억 8,702만 3,913원 상당.]
'이상해. 이상하단 말이야. 내 옆에 두고 한번 지켜볼까?'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순간, 하수영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르르 떨었다.
지금 이 순간, 통찰안이 알려주는 정보가 변했다.
[자산 : 8,250억 원 상당.]
"……!"
'푼돈'에 놀란 게 아니다.
갑자기 정보가 변한 것에 놀란 것이다.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던 하수영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물었다.
"혹시 주식해요? 뭐 사놨어요?"
"예?"
"아니아니, 주식이 이렇게 갑자기 크게 뛸 리가 없지. 선물? 아니야, 그것도 종잣돈이 꽤 필요해."
3억도 안 되는 주식이나 선물이 갑자기 8,000억 대의 수익을 낼 리가 없다.
"혹시 최근에 로또 샀어요? 한 수백 장… 아니야. 일주일에 1,000억도 안 팔리는데 무슨. 아! 혹시 가상화폐 같은 거 했어요?"
"네? 그, 그런 건 일절 모릅니다."
이서환 계장은 당황해서 쩔쩔맸다.
하수영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심각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염되었다.
어느덧 시장 등 수행원들도 숨을 죽인 채 하수영과 이서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허 같은 거 개발해서 해외 스타트업 같은 곳에 넣은 거 있나요?"
"특허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그런 재주는 없습니다."
"하, 대체 뭐지? 뭐야, 도대체……."
"저어, 의원님?"
하수영은 자신을 부르는 다른 목소리도 무시한 채 생각에 빠졌다.
통찰안에 주르륵 뜨는 정보를 다시 검토하려다가,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다.
"부모님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정보를 열람하면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시간도 아까워서 대뜸 질문부터 던졌다.
"아…… 저는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언제 돌아가셨나요? 아,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정말 중요해서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요."
바로 그때, 모든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정보가 딱 포착되었다.
하수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부모님이, 아니, 아버님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보고 싶지는 않나요?"
"……죄송하지만, 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서환의 표정에는 어느덧 언짢은 기색마저 떠올라 있었다.
아무리 하수영이 농민 재벌이라 해도 이서환과는 무관한 사람.
객관적으로 지금 태도는 지나친 무례였으니.
"조만간 아버지 측으로부터 연락이 올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언짢은 기색은 사라지고 대신 당황한 표정이 나타났다.
바로 그때, 여기저기서 놀란 경악성이 떠올랐다.
"이태호 회장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맙소사, 재계의 거목 하나가 쓰러졌어요!"
"중태라고는 들었지만, 결국 이렇게 돌아가실 줄은……!"
하수영은 눈을 껌뻑거리는 이서환을 뒤로한 채, 여유 있게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
'우리를 다 합쳐도 안 되는 재물운이라고?'
지난 며칠, 최판섭 시장은 하수영이 했던 말이 내내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닮은 사람과 착각했다는 식으로 넘어갔지만, 괜히 그 말이 가슴에 맴돌았다.
그래서인지 이서환 계장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어찌 되었든 하늘이 내린 거부가 잠시만이라도 눈여겨본 인물이 아닌가.
그는 운, 그리고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었다.
막대한 운을 지닌 거인은 자기 주변에 그 기운을 뿌리게 된다.
그가 큰사람 주변을 맴돌며 그 기운을 나눠 받으려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계장."
"예! 시장님!"
"그날 이후 하수영 의원님이 별 말씀은 없으셨나?"
"없었습니다. 저는 그분 연락처도 모릅니다."
"음…… 따로 연락을 한 줄 알았는데. 자네한테 관심이 있는 거 같았거든. 혹시 정치를 권하시진 않던가?"
강남구 초선 구의원 박조휘도 구의회 행정직원이었다가 하수영의 발탁을 받은 케이스였다.
이서환도 혹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아이고, 아닙니다. 전혀 그런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잘되면 날 잊어선 안 되네."
"전혀 그럴 일 없습니다. 시장님도 참."
그래도 괜히 찜찜한 기분을 떨칠수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정장을 입은 중년 남자 셋이 빠르게 걷고 있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그들은 이 서환 계장의 명패를 발견하고 주저없이 다가왔다.
"도로계획과 이서환 계장님 되십니까?"
"네, 제가 이서환입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중년 남자 한 명이 최판섭 시장을 빤히 바라봤다.
명백히 방해꾼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서환 계장님, 잠시 조용한 곳으로 가시죠.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시장님, 죄송합니다. 잠시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그, 그러게."
최판섭 시장은 몹시 궁금했지만,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 없는 조용한 곳으로 안내하자 비로소 방문자들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 태호그룹 이태호 회장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알고 계시죠?"
"아, 네. 뉴스에서 봤습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
이런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중심의 중년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태호 회장님께서 이서환 계장님께 작은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네? 그분이 저한테 왜요?"
"이서환 씨는 이태호 회장님의 사생아입니다. 여기에 회장님이 남기신 유훈 편지와 사진들이 들어 있습니다. 나중에 혼자 조용히 보시죠."
이서환은 충격에 빠진 채 부르르떨었다.
지금 자신이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부친이 얼마 전 죽은 재벌 회장이라고?
"회장님은 평소 이서환 계장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길 원치 않으셨죠. 그래도 소소하게나마 여러 가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순간 이서환은 퍼뜩 떠오른 게 있었다.
"혹시 옛날에 저희 집 앞에 두고 간 현금 가방이 그럼……?"
"네, 맞습니다. 회장님이 두신 겁니다. 설마 경찰에 가져가실 줄은 모르셨지만요."
결혼을 앞두고 돈 때문에 고민하던 때, 현관문 앞에서 1억 원이 넘는 현금이 든 가방을 주웠었다.
겁이 나서 일단 경찰에 갖다 줬는데, 소유주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당당히 이서환의 소유물로 돌아왔었다.
"빌딩 한 채를 남기셨습니다. 8,247억 상당의 가치를 지닌 빌딩으로, 원래 이서환 계장님 모친께 드리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당시 사모님의 위세가 대단 했거든요."
"……."
"우리 쪽에서 상속세도 따로 처리 할 테니, 이서환 계장님은 그냥 빌딩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이서환은 말을 잇지 못했다.
뭔가 꿈을 꾸는 듯, 모든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자신의 재벌 회장의 사생아라고?
어머니는 그럼 숨겨둔 여자, 뭐 그런 분이었나?
유훈 편지(재산집행 유언장이 아님)와 사진 등이 들어 있는 서류봉투를 쥔 채, 힘없이 돌아왔다.
최판섭 시장이 아직도 떠나지 않은 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뭐 하는 사람들인가? 무슨 일이래?"
"……집안일이라서 말씀드리기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 나쁜 일이라도 생긴 건가?"
아닌 게 아니라, 이서환의 표정은 흡사 다 죽어가는 사람 같았다.
캐묻기도 뭐해서 최판섭 시장은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고 떠났다.
상속 절차가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빌딩이 8천억이 넘나 했다.
알고 보니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빌딩이었다.
심지어 생부의 전체 자산에 비하면 별거 아닌 수준이라고 한다.
친자 확인 후 유류분 청구에서 승소하면 훨씬 더 많은 유산을 쥘 수도 있으리라.
변호사들은 그 부분을 단단히 경고했다.
"절대 이 이상 욕심을 부리시면 안됩니다. 회장님 가족분들은 아주 무서운 분들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분들이 왜 수천억짜리 빌딩을 순순히 넘겨주는 겁니까?"
"이서환 씨에게 빌딩이 가지 않으면 서울시에 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울시가 소송을 거는 상황을 원하지 않습니다."
"……."
"빌딩뿐만 아니라 1조 원 상당의 그룹 지분 역시 서울시에 기부합니다."
"서울시에 더 큰 유산을 뺏기느니, 그보다 작은 걸 포기하는 게 낫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서환 씨에게 호의로 주는 게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유언집행 변호사들이 자신에게 호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족들이 입을 씻을 것을 우려한 이태호 회장의 안전장치였다.
***
빌딩 최종 인수를 남겨두고 있을 무렵, 하수영이 이서환을 찾아왔다.
"계장님. 이번에 상속받으신 청담동 빌딩, 제게 파실래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