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01화
126장 유통과 농사 사이(3)
하수영이 빼놓은 객실은 방 7개와 거실, 식당 및 회의실까지 딸린 스위트룸이었다.
아마 해운대 호텔 중에서 이보다 더 크고 좋은 객실은 없을 것이다.
특급호텔을 능가하는 고급 인테리 어와 값비싼 집기, 정갈하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가구 배치까지.
장효주와 주효정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와, 방이 너무 좋아요."
"전에 묵었던 객실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이런 객실도 있었어요?"
"이건 하나뿐인 객실입니다. 일반투숙객을 상대로 파는 상품도 아니 고요. 만약 귀빈을 모시게 될 경우를 생각해서 꾸며놓은 겁니다."
"그럼 우리가 귀빈인 거네요, 그쵸?"
"네, 귀빈이죠."
하수영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장효주는 가볍게 눈을 흘겼다.
"어쩜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거 봐. 수영 씨는 쑥스러움 같은 감정이 전혀 없어요?"
"그러게요. 우리 효주가 남자한테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 없어요, 수영 씨."
"귀빈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드린 건데, 제가 수줍어해야 합니까?"
하수영이 진지하게 눈을 맞추자 두여배우가 오히려 민망해서 시선을 피했다.
"저도 오늘은 펜션에 머무르면서 전반적인 서비스 상태를 체크할 겁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호출해 주십시오."
"언제든지요?"
그 말에 잡았다는 으로 장효주가 바라보자 하수영은 피식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예의 바르고 정중한 호텔리어처럼.
"그럼 편히 쉬십시오."
"이거 아무리 봐도 호텔인데, 왜 간판명은 펜션을 달고 있는 거야?"
주효정은 오늘 하루종일 감탄하는 게 일이었다.
웬만한 특급호텔 뺨치는 시설도 시설이거니와, 투숙객의 편의를 위해 갖춰놓은 부대시설들이 다른 호텔들은 흉내 낼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어느 호텔이 객실마다 최신형 PC, 게임기, 대형 TV 등을 설치해 놓겠는가.
식사나 룸서비스도 다른 특급 호텔들은 감히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수영농장산 볏짚을 먹고 자란 소고기, 통영 양식장에서 전문적으로 키우는 다양한 생선들이 끼니마다 식탁에 올라온다.
주효정이 가장 놀란 것은 투숙 금액이었다.
"정말? 그 정도밖에 안 한다고?"
"응, 전 객실이 다 그렇대."
"아니, 그럼 이 호텔은 대체 뭐가 남아? 손님을 받을수록 적자인 거 아니야?"
"적자는 맞대. 근데 애초에 돈 벌려고 지은 호텔이 아니래."
"돈 벌려고 지은 게 아니면, 그럼?"
"그냥 수영 씨 로망이었나 봐. 해운대에 뷰 좋고 근사한 펜션 하나 운영하는 거."
"우와, 대박."
"호텔에서 나오는 고기나 생선도 죄다 수영 씨가 직접 기른 것들이래. 그래서 위생이나 품질에서 절대로 믿을 수 있는 거야."
"너, 근데 왜 그렇게 으스대는 목소리니? 누가 들으면 네 호텔인 줄 알겠다?"
"좀 으스대면 어때서. 나하고 수영씨 그 정도 사이는 되거든?"
"잘났어."
저녁 무렵이 되자 동료 여배우 둘이 추가로 도착했다.
임강희와 이다래.
평소 친분이 있는 사이였고, 이번 해운대 예능에 같이 출연할 예정이기도 했다.
매니저 차량을 타고 펜션에 들어선 두 여배우는 객실을 확인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우리나라 바닷가에도 이렇게 멋진 호텔이 있었어?"
"놀랍다. 여기 객실은 얼마야? 이것도 협찬이니?"
주효정이 으스대듯이 나섰다.
"협찬은 아니고, 스폰서가 공짜로 내준 거."
"스폰서?"
둘의 안색이 변했다.
여배우에 붙는 스폰서는 종종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장효주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영화 투자자 말이야, 투자자."
"깜짝이야. 아, 놀랐잖아."
"영화 투자자면…… 혹시 그 청담동 건물주?"
"응, 그분이 여기 호텔 주인이래."
"우와, 엄청나네."
임강희와 이다래는 수영펜션을 잘 몰랐다.
하지만 하수영이란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부활의 이순신이 그렇게 거듭 신기록을 갱신하며 초대박을 쳤는데, 연예계 종사자치고 모를 수가 있을까.
주효정은 거듭 으스대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도 효주한테 잘 보여 둬. 혹시 알아? 나중에 효주가 그 투자자 안방마님 될지?"
"언니, 이제 깔끔하게 포기했나 보네."
"그러니까 두 번째 부인 자리는 나 줄래? 내가 아래로 군기는 확실히 잡을게."
"언니!"
장효주가 손톱을 세우며 달려들자 주효정은 깔깔거리며 도망을 쳤다.
하수영은 펜션을 전반적으로 둘러보며 건물 및 서비스 상태를 체크했다.
펜션 지배인 김호중은 바짝 긴장한 채 하수영을 에스코트하며 따라다녔다.
"지금 펜션은 만실인가요?"
"네, 만실입니다. 아니, 만실이 아니었던 적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김호중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야외에는 가족 단위로 온 손님들이 고기를 구워 먹거나, 생선 요리를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곳곳에서 통돼지 바비큐가 돌아가고, 경쾌한 음악이 적당한 크기로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밝은 분위기.
하수영은 잠시 뒷짐을 지고 푸근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펜션 운영은 잘되고 있군요. 알고는 있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더 확실합니다. 수고하십니다."
"영광입니다."
"직원들 근무 환경에는 문제없죠?"
"네, 물론입니다. 모두 회사가 제공하는 최상의 복지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주지를 구해주신 것에 다들 감사해합니다."
펜션 직원들은 회사에서 임대한 빌라나 원룸, 투룸에서 거주하며 출퇴근을 한다.
보증금과 월세, 관리비 등을 회사에서 부담하기에 다들 걱정이 없다.
"다른 호텔 직원들이 우리 직원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합니다. 특히 타지방에서 이사 온 직원들의 부러움이 가장 큽니다."
"사람이 편히 쉴 공간이 있어야 근로 효율도 올라가는 법이니까요. 당연한 겁니다."
김호중은 괜히 속으로 왈칵했다.
다시 생각해도 지금의 고용주를 만난 것은, 자신의 인생에서 큰 행운이었다.
"아참, 이번에 개시하신 직원 전용 복지몰 덕분에 전 직원들이 크게 감동했습니다. 회장님 덕분에 식비를 절감해서 저축액을 늘릴 수 있고, 맛있는 건강식을 자주 챙겨 먹을 수 있게 됐거든요."
"제가 그럴까 봐 일부러 포인트로 준 거예요. 솔직히 말해보세요. 수영몰 열기 전에 돈 아낀답시고 인스턴트로만 끼니 때우던 직원들 많았죠?"
"……없지는 않았습니다."
"한 푼이라도 더 아껴서 저축하려는 맘은 이해합니다. 그래도 젊었을 때 잘 먹어야 나중에 탈이 안 나요."
하수영은 가볍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20대에 뭘 먹었는지는 30대에 돌아옵니다. 30대에 뭘 먹었는지는 40대에 돌아오고요. 내가 먹은 것들, 시간 지나면 결국 돌려받습니다. 건강이라는 청구서로 말이죠."
"명심하겠습니다."
김호중은 다시 한번 울컥하는 감동을 느꼈다.
수영몰과 매달 50만 포인트.
그것은 강제로 직원들의 일상 식단을 업그레이드하는 결과를 낳았다.
돈 아끼려고 인스턴트 도시락만 먹던 직원들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되었다.
하다못해 정기적으로 좋은 고기라도 사서 구워 먹을 수 있으니.
괜찮은 급여, 회사가 제공하는 주거복지, 수영몰이 제공하는 식단 복지.
덕분에 펜션 직원들의 사기는 높았고, 투숙객들의 만족이 높아졌으며, 직원들이 더욱 친절해지는 긍정적 순환이 이어졌다.
"이제 해상공원만 오픈하면 딱인데, 저게 언제 다 지어지려나."
하수영은 바다에 떠 있는 커다란 해양공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해상에 부유하는 테마공원이라는 수영펜션 최강의 무기는, 아직도 한 창 짓고 있는 중이었다.
기본 골격은 거의 완성이 됐지만, 그 안에 넣을 내부 시설들이 건설중이었다.
"다음 여름까지는 꼭 완성이 됐으면 좋겠네요."
"직원들 모두가 기대하고 있습니다. 해상공원이 완성되면 우리 수영펜션은 진정한 해운대의 명소로 거듭나게 될 거라고 말입니다."
오직 투숙객만이 이용할 수 있는 해상공원.
그 안에는 각종 놀이시설, 문화시설, 체험시설 등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특히 수면 아래로 잠겨 있는 잠수유리관 통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닷속을 걷는 듯한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설계 변경이 크게 한 번 이뤄져서 준공이 늦어지는 건 어쩔 수 없죠."
대대적인 설계 변경 이후, 해상공원은 그저 떠 있기만 하는 공원에서 탈피했다.
추진기관을 달아서 바다로 나아갈 수 있게끔 한 것이다.
바다를 항해하는 유람선, 아니, 유람해상공원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회장님, 부산 시장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난처한 표정의 직원이 달려와서 보고했다.
김호중 지배인도 눈치를 살폈고, 하수영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으쓱했다.
"정보망 하나는 참 귀신같은 양반이군요."
"어떻게 하면……."
"만나야죠. 그래도 부산 시장인데. 초면도 아니고요."
최판섭 부산 시장은 수영펜션 개장식 파티 때 찾아와서 축하를 해준 적이 있다.
진짜 축하라기보다는 눈도장 한 번 찍으려고 발걸음을 한 것이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정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최 시장님, 안녕하세요. 하수영입니다."
"아이구, 회장님. 건강하셨습니까. 부산에 먼 발걸음 해주셨다는 이야기 듣고 냉큼 달려왔습니다."
"하 의원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래도 똑같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입장 아닙니까."
"아, 그렇게 불러드릴까요? 알겠습니다."
기초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은 넘을 수 없는 격차의 벽이 있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의 이야기.
'내가 반드시 하수영 계파에 들어가고 만다!'
최판섭 시장은 단단히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하수영 계파는 지금 서울의 정치판을 한창 뜨겁게 달구는 핫팩이다.
하수영 계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최판섭 시장은 당적을 바꿀 의향까지 있었다.
"박조휘 의원의 당선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늦게나마 계파원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계파라고 할만한 정도는……."
"제가 박조휘 의원에게 꽃도 보냈는데, 혹시 그 이야기는 들으셨는지요?"
"아, 들은 것 같습니다."
최판섭 시장은 마치 말단 보좌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굽실거렸다.
60 넘은 노인, 그것도 지자체장이 그러고 있으니 김호중 지배인은 왠지 웃음이 나올 거 같았다.
하수영이 앞장을 서고, 최판섭 시장이 반걸음 정도 뒤처진 채 따르고, 그리고 시장 수행원들이 몇 걸음 떨어져서 우르르 따랐다.
"그런데 다들 식사는 하셨나요?"
"아직입니다만, 조금 늦게 먹어도 됩니다."
"에이, 밥 타임은 제때 챙겨야죠. 지배인님?"
"네, 회장님."
김호중이 얼른 공손히 대답했고, 하수영은 수행원들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여기 이분들 식사하시게 준비 좀 해줘요. 야외로, 저도 같이 먹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최판섭 시장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불청객인데 이렇게 식사까지 주시고…… 정말 감사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 집 찾아오신 분들인데 그래도 식사는 챙겨야지요. 다들 이동하시죠."
펜션 직원들은 순식간에 야외 한쪽에 식사할 공간을 만들었다.
양복쟁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니 손님들이 힐끔거리긴 했지만, 크게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단체 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 도중 하수영은 가장 말석에 앉아 있는 40대 남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바로 맞은편에 앉은 최판섭 시장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얼른 물었다.
"의원님, 왜 그러십니까?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저기 앉아 계신, 빨간 뿔테안경쓰신 분, 직급이 어떻게 되죠? 아니 아니, 저분 누구죠?"
최판섭 시장은 그쪽으로 눈을 돌렸으나,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말단 수행원이다 보니 누구인지 잘 몰랐다.
보좌관이 얼른 대신 대답했다.
"이서환 도로계획과 계장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 올 예정은 없었습니다만, 하필……."
"그래 보이네요."
"죄, 죄송합니다. 야! 저 친구 지금 바로 시청으로 돌려보내!"
어디서 계장 따위를 데리고 왔냐는 질책이라고 받아들인 시장은 고개를 바로 숙였다.
하수영이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원회장을 그렇게 홀대해도 되는 겁니까?"
"네? 후원회장이라니요?"
"그,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일개계장일 뿐인데 이번 외부 수행을 위해서……."
"저분, 시장님 후원회장 아니었어요? 여기 계신 분들 다 합쳐도 제 분한테 재물이 안 되겠는데요?"
"예?"
최판섭 시장은 입을 크게 벌렸다.
전혀 이해 못 한 표정으로 그가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모두를 다 합쳐도 안 된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