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500화
126장 유통과 농사 사이 (2)
"라테마트?"
황세라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정서희는 재미있다는 미소를 짓고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하는 듯한 표정이다.
"라테마트 인수까지 노리고 있어?"
"저는 관심 없지만, 언니는 어떠신가 해서요."
"……."
"원래 언니는 소매유통과는 무관했잖아요. 시도 정도는 괜찮을 거 같은데요?"
친오빠의 뉴월드마트 강탈이 실패했지만, 황세라가 실제로 손해 본것은 없었다.
애초에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언니가 원한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
"끌리긴 하는데…… 나중에 또 등에 칼 꽂는 건 아니겠지?"
"이번에는 그럴 일 없어요. 안심하세요."
"하수영 회장님이 생각을 바꾸면네 마음하고는 상관없는 거잖아."
"그건 당연하죠. 언니는 뭐 다른가요?"
"……."
"황희철 회장님이 언니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하면, 언니도 따를 수밖에 없잖아요?"
할 말이 없어지는 반론이었다.
"하우스플러스와 뉴월드마트가 한 지붕 아래 들어갔어요. 라테마트가 과연 언제까지 힘을 쓸 수 있을까요?"
라면과 국내산 육류 공급만 끊어도 라테마트는 휘청휘청할 것이다.
황세라는 차분히 말했다.
"나더러 라테마트를 인수해서 수영마트 아래로 들어오라는 거구나."
"진정한 한 식구가 되자는 거죠."
"그리고 수영마트는 우리나라 소매매유통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는 거고."
"굳이 라테마트가 없어도 상관은 없지만, 라테마트가 가진 전국의 그 많은 지점은 탐나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잖아요."
"탐을 내는 게 하수영 회장님이니, 아니면 너니?"
"아직 수영 씨 생각은 못 들었어요."
황세라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천천히 끄덕였다.
"지금부터 긴축 재정 들어갈게. 충분한 현금을 준비해 두겠어."
"열심히 도울게요. 우리 잘 해봐요."
정서희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황세라는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
하우스플러스와 뉴월드마트는 지분 51%를 넘기고 수영마트 자회사로 들어왔다.
하지만 똑같은 자회사라고 해도 형님과 아우는 극명하게 갈리는 법.
뉴월드마트는 내심 하우스플러스처럼 라면 증정 이벤트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의 라면 이벤트는 오롯이 하우스플러스만의 몫이었다.
"우대 구분은 당연한 거지. 자기 세력을 받아달라고 자진해서 끌어온 군대와, 싸움이 불리해지니까 투항한 군대. 어느 쪽이 더 중요하겠어?"
뭉뚱그려서 동등한 대우를 하면 하우스플러스의 불만만 커질 뿐이다.
동시에 주인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게 된다.
"신뢰야말로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내가 이만큼 했으니 그에 맞는 대가를 받을 거란 신뢰.
저놈은 나보다 못했으니 나보다는 적은 대가를 받을 거란 신뢰.
그런 공정함이 지켜지지 않으면 관계는 위태로워진다.
"하우스플러스와 뉴월드라는 브랜드를 굳이 바꿀 필요는 없겠어."
내부적으로는 같은 회사나 마찬가지이지만, 운영은 계속 독립한 채로 놔두기로 했다.
괜히 하나로 섞어봤자 고이기만 할 뿐이다.
지금처럼 분리해 놓고 선의의 경쟁을 붙이는 게 낫다.
***
"부회장님, 최태운 전무가 마트 부사장으로 들어온다고 합니다."
하우스플러스는 지금도 기존의 경영진이 모든 것을 알아서 경영한다.
하수영도 거의 참견하지 않는다.
그러나 뉴월드마트는 달랐다.
"최태운 전무? 그 친구는 세라 파벌 아니야?"
"맞습니다."
황태진은 어떻게 된 건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감시책을 세우겠다는 거군. 우리 오너께서 말이야."
"아무래도……."
"그 정도는 받아들여야지. 전투 중에 투항한 장수가 별수 있겠나."
하우스플러스와 달리, 황태진한테는 뉴월드마트를 온전히 맡기지 않는다.
이제 평생 앙숙이라고 할 수 있는 여동생, 황세라.
그녀의 측근을 부사장으로 맡겨서 서로 상호 견제를 하도록 만든 것이다.
"백화점 입주 가지고 장난을 좀 치려고 했더니, 이래서야 힘들어지겠어."
그렇게 뉴월드마트는 그룹과는 완전히 떨어진, 스스로의 길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
라면 사은품 이벤트는 소비자들로부터 극도의 호평을 얻었다.
80% 할인이라는 파격적인 가격덕분에 소비자들은 라면을 집에 한가득 쌓아둘 수 있었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자취생들한테 아주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이제 사은품 재고가 3억 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재고가 줄어든 게 알려지자 매출이 더욱 무섭게 뛰어오르고 있습니다."
"사은품이 얼마 안 남았으니 마지막으로 화려하게 영끌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음……."
임형필 경영진은 여기서 고민에 빠졌다.
"이벤트를 연장해야 할까?"
지금 회사의 매출은 어느 때보다도 독보적이었다.
창사 이래 이렇게 폭발적인 매출을 기록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행사 연장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이번에 얻은 영업이익을 이벤트연장에 재투자해야 합니다. 이 기세를 몰아서 더욱 불태워야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하수영 회장님께서는 이벤트 연장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추가적으로 라면 상품을 무상 제공한다고 하셨습니다."
"헛, 그게 정말입니까?"
임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면 망설일 게 뭐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이벤트 연장 해야죠!"
"모회사에 바로 요청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지금 서둘러 주문해야 지연 없이 이벤트 연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임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연장을 외쳤다.
그러나 한참을 고민 끝에, 임형필사장은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끝자락에 1,000만 개 할인율을 95%로 해서 털어내고, 이벤트는 종료하는 것으로 합시다."
"네?"
"사장님?"
"소비자도 피로도라는 게 있어요.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도 다음 날 점심까지 앵콜을 하면 지치고 질리기 마련입니다. 적당할 때 끊어야 그 다음 이벤트 때 좋은 반응을 얻게 마련입니다."
"……."
일리가 있는 말인지라 임원들은 반박을 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수긍이 간다는 듯이 끄덕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 최후의 1,000만 개, 할인 율 95%로 화끈하게 마지막을 불태우고 끝냅시다. 그래야 다음 이벤트를 더욱 기대할 수 있지 않겠어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우스플러스는 최후의 1,000만 개를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화끈하게 털어버렸다.
1,800원짜리 라면을 90원에 판 것이다.
배송비용까지 생각하면 손실이 크지만, 그 대신 전체적인 매출이 껑충 뛰었다.
소비자들도 애프터버너까지 확실하게 불태운 이벤트에 대만족했다.
이벤트가 끝난 이후에도 하우스플러스를 찾는 소비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19억 개의 라면.
소비자 가격으로 3.4조 원이 넘어가는 대행사는 소매유통 시장의 질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하우스플러스는 시장 점유율 45%를 차지하며, 1위의 소매유통기업으로 등극했다.
***
캠핑카 퍼포먼스가 부산행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에는 하수영 외에 장효주와 주효정도 타고 있었다.
퍼포먼스를 처음 타보는 주효정은 탑승하는 순간부터 감탄하고 있었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럭셔리 캠핑카라는 거구나. 차가 진짜 조용해요. 승차감 완전 대박."
"차체가 무거워서 그래요. 무거우니까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이 높아지는 거죠."
"이런 건 얼마나 해요?"
"25억 주고 샀습니다."
"우와, 진짜 대박. 웬만한 슈퍼카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왜 이렇게 비싸요?"
"원래는 15억 정도인데 차체를 통짜 티타늄 합금으로 해달라고 주문해서 그렇습니다."
"티타늄 합금이요? 그 막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엄청나게 비싸고 귀한 그 금속이요?"
"네, 그래서 대형 화물차가 와서 박아도 안전해요. 유리도 전부 방탄이고요."
"와, 진짜 대박."
주효정이 연신 우와우와 거리자, 장효주가 으스대듯이 입을 열었다.
"언니, 이 차 아래에 스포츠카 격납고가 따로 있는 거 알아?"
"어머, 정말이야? 진짜 대박."
"캠핑지에서 차 펼치면 이동수단이 없잖아. 그럴 때 쓰라고 격납고를 만든 거야."
"수영 씨, 격납고에는 무슨 차가 있어요? 그건 얼마짜리예요?"
"99억짜리이긴 한데 제 돈 주고 산 건 아니고 선물 받은 거예요."
"네? 99억이요?"
순간 주효정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도 나름 준재벌가인 효원그룹 자식이라 돈 감각이 사뭇 남다른 편이다.
하지만 차 한 대에 99억이라고?
"람보르기니인데 아부다비 왕가에서 주문 제작한 거라 전 세계에 한대 있는 거라네요. LA다저스 구단 주님한테 선물 받았습니다."
"아부다비? 다저스 구단주?"
"아, 다저스 구단주가 아부다비 왕족이거든요. 지금 제 부동산에 세들어 살고 계십니다."
"……나 미쳐 버릴 것만 같아, 효주야."
주효정은 어깨를 부르르 떨며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하수영은 별거 아니라는 어조로 화제를 돌렸다.
"효원식품은 요즘 어때요? 황비버섯 중국 수출이 막혀서 매출이 줄지 않았나요?"
예전에 태양심에서 효원식품을 결혼 지참금으로 탐낸 적이 있다. 결혼 대상은 바로 주효정.
하수영은 태양심을 빡치게 하기 위해 그 결혼을 깼고, 대가로 주효정한테 황비버섯 수출권(중국, 동남아)을 주었다.
주효정은 효원식품을 지참금으로 시집이나 갈 운명에서 어엿한 독립된 오너가 될 수 있어 만족했고,
"중국 수출은 전부 막혔죠. 도대체 중국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근데 제가 경영은 전문 사장한테 맡겨두고 있어서 자세한 건 몰라요."
주효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동남아에서 잘 팔리고 있으니까요. 뭐, 잘 되겠죠."
"언니는 태평한 그 성격이 가장 큰 장점이야."
"뭐라니. 이 예쁜 얼굴이 가장 큰 무기거든?"
셋은 지금 해운대 수영펜션으로 가는 중이었다.
장효주와 주효정은 예능 촬영 전에 미리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그래서 하수영이 출장을 가는 김에 태워준다고 했다.
덤으로 펜션 오너로서 소중한 고객을 에스코트도 해주기로 했다.
조건은 있었다.
"SNS에 리뷰 좀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사람들이 가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어드릴게요. 제 팔로워가 몇 명인지 아세요?"
"내 1/4 정도 되지 않아?"
"야! 장효주!"
"그보다 더 적었던가? 말 나온 김에 한 번 봐야지."
장효주가 스마트폰을 꺼내자 주효정은 그것을 뺏기 위해 티격태격했다.
어느덧 캠핑카가 해운대에 도착했다.
"수영 씨, 제니스 아파트 좀 잠시 들리면 안 돼요?"
"왜요?"
"저기 제 아파트에서 여행용 짐 좀 가져오려고요."
"아하, 그래서 짐이 거의 없으셨던 거군요."
하수영은 흔쾌히 해운대 명소인 제 니스 아파트를 들렀다.
캠핑카는 높은 차고로 출입이 안돼서 주차장 밖에 잠시 세워두었다.
"별장으로 쓰는 거예요. 남쪽에서 장기 촬영 있을 때 유용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아파트에는 주효정의 짐까지 있었다.
대충 이번 여행에 사용할 옷가지 등 짐을 챙긴 뒤 다시 나섰다.
펜션에 도착하자 주효정이 입을 가리고 연신 우와 우와 감탄을 터뜨렸다.
"진짜 대박. 펜션이 아니라 특급호텔 같아요."
하수영의 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졌다.
[수영펜션]
진중한 궁서체로 쓰인 간판을 가리키며 주효정이 다시 말했다.
"근데 간판이 혼자 너무 엄중한 거 같은데. 궁서체가 뭐예요? 너무 따로 논다."
"언니는 참. 그게 바로 갭매력이라는 거야. 그렇죠, 수영 씨?"
"그런데 우리가 묵을 방은 어떤 거예요?"
"가장 큰 방으로 제가 빼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