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97화
125장 3타자가 될 순 없지 (3)
백화점 하루 영업이 마감하자, VVIP를 위한 진정한 오픈 타임이 시작되었다.
대낮 영업처럼 백화점 전체에 불이 들어왔고, 출입문마다 가드가 배치 되었다.
일반 손님이 엉뚱하게 영업 중인 줄 알고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오늘의 손님은 단 한 팀, 바로 황세라와 정서희였다.
"언니, 오늘은 나밖에 없어요?"
"응, 너 생각나서 한 번 열어봤어. 너무 부담 갖진 말고."
"우리가 이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어떻게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있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표정은 전혀 부담 없어 보인다, 너?"
나이 차이가 좀 있다 보니 황세라는 정서희를 편안하게 대했다.
"오늘 할인 잔뜩 하니까 마음껏 사도 돼."
"명품은 원래 할인 안 해주시면서?"
"오늘은 예외야. 걱정하지 마."
정확히는 백화점 측에서 할인만큼 부담하는 것이지만, 이 정도 투자는 해줘야 말을 꺼낼 수 있으리라.
즐겁게 쇼핑을 마치고, 정서희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에르메스 백도 황세라가 큰마음 먹고 사주었다.
교류야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본격적인 친밀도를 쌓은 것은 아트락 부지를 넘기면서부터다.
때문에 황세라는 정서희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쇼핑을 다 끝낸 뒤에는 VVIP라운지에서 골든 트러플 요리를 즐기며 늦은 식사를 했다.
"서희야. 아니, 정 부사장, 혹시 하우스플러스 인수에 관해서 뭐 좀 아는 거 있니?"
"별로 없어요. 저도 뉴스에서 본게 전부예요."
"그래도 내부적으로는 아는 게 꽤 있을 거 아냐. 이번에 증정행사로 라면을 19억 개나 푼 것도 그렇고."
"아, 그건 수영 씨가 집들이 선물로 준 거라고 들었어요."
"집들이?"
황세라의 눈빛이 살짝 진지해졌다.
'역시 수영마트 밑으로 들어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돈을 푼 거구나.'
진실은 청담 빌라를 처분하고 삼성동으로 이사를 간 임형필 사장을 위한 진짜 집들이 선물.
하지만 황세라는 회사 지분 매각에 대한 보상 선물이라고 해석했다.
소매가로 3조 원이 넘는 물량을 이벤트로 지원받았으니, 하우스플러스 내부에서도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회사 지분을 넘겼지만 단숨에 업계의 압도적인 1위로 올라설 길이 열렸으니.
"실은 내가 좋은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서 오늘 이 자리 만들었어."
"알고 있어요. 하우스플러스 건 때문이죠?"
"역시, 짐작하고 있었구나."
"언니가 왜 불렀을까 내내 생각했거든요. 하우스플러스 인수 물어보니까 딱 알겠더라고요."
정서희는 양손으로 턱을 괸 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언니, 혹시 뉴월드마트 노리고 있으세요?"
정서희.
그녀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영 욕심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지 1009 낸 자자라서 부사장 자리를 꿰찬 게 아니라는 것도 느꼈다.
황세라는 정서희 앞에서 솔직한 자신의 욕망을 털어놓으며 지원을 구했다.
"언니, 지금 마트 지분 현황이 어떻게 되죠?"
"뉴월드유통이 49%, 오빠가 40%, 아버지가 11%를 쥐고 있어."
"흐응."
"유통의 18%는 다시 아버지가 쥐고 있고, 71%는 증시에 풀려 있지."
"그럼 언니는 모회사 유통을 가져도 마트를 건드리지는 못하겠군요."
황희철과 황태진의 마트 지분이 합쳐서 51%.
"그렇지. 유통보다 오히려 마트가 더 중요한 회사거든. 결국 아버지를 움직여야 해."
"그런데 승계 작업이 생각보다 더딘 편이네요? 황태진 부회장님은 유통 지분은 전혀 없는 거죠?"
"아버지가 엄격하셔서, 일찍 다 물려주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하셔."
"유산을 미리 다 주면 말을 안 들을 것을 걱정하시나 봐요."
"그런 게 크지."
현재의 지분 구조로는 황희철 회장이 언제든지 장남을 끌어낼 수 있다.
방아쇠는 아직 황희철 회장한테 있으니.
마트는 주주가 3명밖에 안 되는 비상장 기업이기에, 결국 유통을 먼저 공략해야 한다.
"일단 수영농장에서 오케이하면 유통 지분을 바로 모집하기 시작할 거야. 지금 주가는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유통만으로는 안돼."
"황 회장님을 움직여야 하는 거네요. 결국."
"맞아."
"수영농장이 지원하면 정말 마트를 가져올 자신 있으세요?"
"수영농장과 계속 거리를 두면 마트는 희망이 없어. 아버지를 설득해야지. 모르시진 않을 거야."
라면, 황비버섯, 국내산 육류가 없는 마트는 독립된 대형마트로 존재할 수 없다.
"당장 우리 백화점 매출도 줄었어. 손님들이 지하 마트를 찾지 않거든."
"수영 씨가 경영권을 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잘할 만한 사람을 골라서 맡겨두는 게 그분 스타일이거든요."
"알고 있어."
"거기에는 언니도 포함되는데. 언니, 마트 운영 잘할 자신 있으세요?"
황세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난 백화점을 운영해야지. 마트까지 운영할 순 없어. 그쪽으로는 내 사람을 꽂아 넣을 거야."
"유능한가요?"
"걱정 마. 마음에 들 거야."
"수영마트가 주주 일원이 되면 오너 일가가 사적으로 지출한 돈, 회사 경비 처리 안 돼요."
그 말에 황세라는 흠칫했다.
오너 일가가 회삿돈을 경비 명목으로 자기 지출에 쓰는 것은 오랜 관행이었다.
"그건 주주에 대한 횡령, 배임이니까요. 이거 지킬 수 있으세요? 아니, 지키셔야 하는데."
"프라임컴퍼니는 그런 게 없어?"
"없어요. 당장 전성렬 대표님만 해도 법인카드는 업무 관련 외에 단 1원도 쓰지 않으세요. 임원들 차량제공은 하지만 대표님은 개인 차량끌고 다니시고요."
"……."
"수영마트가 주주가 되면 그런 면에서 엄청 깐깐할 텐데, 괜찮으신 거죠?"
"상관없어. 당연한 원칙이잖아. 그런 문제는 전혀 없을 테니 안심해도 좋아."
황세라가 표정을 다잡고 말하자 정서희는 옅은 웃음을 보이며 손을 잡았다.
"우리 한 번 잘해 봐요."
"고마워."
"수영 씨는 제가 설득할게요."
***
정서희는 곧바로 하수영을 만나서 뉴월드마트 투자 이야기를 꺼냈다.
설명을 듣고 난 하수영이 말했다.
"수영마트가 뉴월드마트를 인수해서 시너지 효과를 얻자는 거군요."
"네, 마침 머쉬룸 서비스라든가 여러모로 뉴월드그룹과 협력하고 있잖아요."
"경영권은 황세라 사장에게 주는 거니까 뉴월드그룹 차원의 반발도 없을 것이다?"
"그렇죠. 하우스플러스 하나만으로는 뭔가 미흡해요. 판매처는 많을수록 좋아요."
"백기사가 되어달라는 건데, 이거 참……."
정서희는 하수영의 묘한 쓴웃음에 뭔가 마음에 걸렸다.
"내키지 않으신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이미 소매유통에 발을 한 번 담갔는데 두 번 못 담글 것도 없죠. 작물 유통하려면 어차피 필요한 도구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 보여서요."
"그런 게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게요."
정서희는 황세라에게 희소식을 알렸다.
곧이어 뉴월드백화점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같은 계열사인 뉴월드마트의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
백화점은 먼저 언론에 손을 써서 움직였다.
[왜 하우스플러스는 수영마트의 그늘로 들어갔나?]
[라면, 황비버섯, 국내산 육류의 그 모든 것!]
[지점이 단 1개뿐인 수영마트는 이 세 가지 무기를 모두 쥐고 있다.]
[수영마트가 본격적으로 종합소매(유통)에 진출한다면, 뉴월드와 라테등 경쟁 마트들은 전혀 상대가 못된다!]
[하우스플러스는 그것을 진작 알아보고 수영마트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본래는 하우스플러스가 먼저 위험을 감지하고 엎드린 것이지만, 언론은 반대로 보도했다. 실제로 세상은 그렇게 잘못 알고 있기도 했고.
[하우스플러스가 야심 차게 준비한 19억 개의 황비라면 사은 증정품은 파도의 시작일 뿐이다.]
[시시각각 떨어지는 뉴월드마트, 라테마트의 매출이 그런 미래를 알려준다.]
[소비자들도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어…….]
그런 보도가 연달아 나가자 바로 주가가 흔들렸다.
뉴월드유통 박태규 전무는 왜 이런 기사가 나갔는지 파고들었지만, 속시원한 결과를 얻진 못했다.
"수영마트, 아니, 하우스플러스에서 손을 쓴 게 틀림없습니다. 작정하고 우리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겁니다."
뉴월드백화점이 등에서 칼을 꽂은 거라고는 생각 못 하고, 수영마트가 야욕을 부리는 것으로 오인했다.
황태진 부회장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두고 보자. 우리 뉴월드마트가 어디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 알고! 반박 기사 바로 내보내! 어서!"
"예, 부회장님."
그러나 유통의 주가 폭락은 막지 못했다.
하우스플러스는 이게 기회라는 듯이 더욱 공격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했고, 뉴월드마트의 매출은 나날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는 평시의 1/10도 안 되는 손님만이 마트를 찾고 있는 실정이었다. 온라인몰 매출은 더욱 처참했다.
여기에 이어 유통의 주식을 모집하는 세력이 나타났고, 적대적 인수합병을 눈치챈 일반 투자자들이 홀딩하면서, 주가는 몇 번씩 V자를 그리며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황태진은 결국 부친을 찾아가서 머리를 숙이기까지 했으며, 호된 꾸지 람만 들었다.
"그러게 평소 회사를 잘 경영했어야지, 이제 와서 늙은 아비한테 쪼르르 달려온다고 뭐가 달라진단 말이냐!"
"아버지?"
황태진은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외부 세력, 하우스플러스가 이런 짓을 벌였다면 부친의 노여움은 그들을 향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부친은 오히려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고 있다.
"못난 놈, 등에 칼을 꽂는 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아등바등거리고 있으니, 한심하구나."
"설마…… 세라입니까?"
"지금이라도 백화점 지분은 다시 돌려줘라. 그럼 나도 이쯤에서 중재하마."
그제야 황태진은 황세라가 이런 짓을 벌였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아트락 부지를 하수영한테 넘길 때, 백화점 지분을 대가로 받은 것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짓이리라.
부친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감히 마트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백화점지분이라도 홀랑 삼키기 위해서 찌른 것이 틀림없었다.
황태진은 부친 앞에서 물러나와 황세라한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여동생은 전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리 연락을 시도해도 답장 한 번 없었다.
"누구 맘대로 될 줄 알고!"
황태진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황세라도, 부친도 지금은 모두가 미웠다.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박 전무! 방법을 찾아봐!"
호출을 받고 뛰어온 박태규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수영마트 밑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습니까?"
"수영마트로?"
"네, 어차피 굽혀야 한다면 차라리 너그러운 적 앞에 굽히는 게 부회장님께 낫습니다. 이제 와서 백화점지분을 넘긴다고 황세라 사장이 멈추진 않을 겁니다."
"……."
"회장님이 후계자에 대한 입장을 바꿀 위험도 있습니다."
"……그렇지. 맞아, 박 전무 말이 옳아요."
자신의 등을 찌른 여동생.
그런 여동생의 역정을 들어주는 부친.
그들보다는 차라리 너그러운 적군 사령관이 나으리라.
하우스플러스만 해도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고, 또 대대적인 사은품지원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박 전무, 청담동으로 갑시다! 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