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96화
125장 3타자가 될 순 없지 (2)
전국의 하우스플러스 매장마다 줄이 잔뜩 늘어섰다.
매장이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은 눈이 충혈이 된 채 안에 우르르 들어섰다.
"몇 개까지 구매할 수 있는 거죠?"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개인당 하루 10개까지입니다."
"좋아요, 일단 10개는 구매하면 되고, 증정은 별도로 합산하는 거죠?"
잔뜩 군기가 들어간 직원들은 친절하게 대답했다.
"네, 다른 물품 구매에 따르는 증정품은 별도입니다. 최고 60개까지입니다."
"고맙습니다."
최대한의 효율을 노리는 사람들은 전략을 세웠다.
매장에서 라면만 10개를 구매한 후, 다른 물품들도 10만 원 이상 구매한다. 그럼 증정품 60개가 추가되므로 라면 70개가 된다.
매장을 나온 후에는 곧바로 온라인 몰에서 100개를 주문한다. 이것들은 20개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이미 오픈한 지 꽤 됐으니 다른 지역 매장으로 가봤자 소용없겠지?"
"상관없어. 매장에 비치한 물량이 떨어져도 집으로 따로 배송을 해준대."
"그럼 다른 매장도 돌자."
극한의 사은품 추구자들은 쥐어짜낼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을 긁어내서 매장을 돌면서 평소 필요했던 물품들을 샀다.
물론 모두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사은품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매장에서 적당한 증정품을 받거나, 혹은 온라인몰에서 매일 100개씩 여러 번 구매하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야말로 공짜 황비버섯광풍.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을, 소비자들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온, 오프매장에서 라면을 직접 사기도 하고, 증정품으로 받기 위해 일부러 하우스플러스에서만 쇼핑을 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하우스플러스 매출은 껑충 뛰어올라 역대급 신기록을 기록했다.
***
뉴월드마트는 불편한 눈으로 지금의 광풍을 관람했다.
하우스플러스의 대대적인 행사 덕분에 지금 뉴월드마트는 매출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고객들이 평소보다 절반 이상 빠진 덕분에 오프라인 매장이 텅 비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프라인뿐만이 아니라 온라인몰에서도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왕이면 당연히 하우스플러스'라는 생각에 그쪽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라면 상품은 지금 거의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평소 매출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뉴월드마트를 찾는 고객들도 라면에는 일절 손도 대지 않았다.
온라인몰에서 라면 매출은 1%는커녕 0.5%에도 이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뉴월드마트에서 라면을 사는 이들은 하우스플러스의 이벤트를 모르게나, 관심이 없거나, 혹은 가입하는 게 할인받는 것보다 귀찮은 이들이었다.
19억 개의 라면 뿌리기 이벤트는 엄청난 효과를 보고 있었다.
라면을 미끼로 일반 상품 매출까지도 뺏어가고 있으니.
박태규 전무는 지금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라면 사은품을 준비한 게 수영마트라고?"
"네, 그렇습니다. 전무님."
"아니, 수영마트가 하우스플러스지분을 인수한 게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벼락처럼 움직인단 말인가?"
"역시 하우스플러스 인수는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게 틀림없습니다."
다른 임원도 좋지 않은 안색으로 그에 동조했다.
"맞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황비라면 19억 개면 도대체 얼마야?"
"소비자 가격으로 3.4조 원이 조금 넘습니다."
"수영마트가 다시 보니 천사로군. 그렇게 크게 밀어줄 거면서 지분을 겨우 51%밖에 매입하지 않았다니."
박태규 전무는 차라리 뉴월드마트지분을 수영마트에 넘기는 게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내가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닌데…….'
박태규 역시 라면, 황비버섯, 국산육류를 완전히 뺏기면 뉴월드마트가 무척 고전하리라는 미래는 예상했다.
유일한 방법은 수영마트와 손을 잡는 것이었는데, 차마 황태진 부회장에게 그것을 건의할 수는 없었다.
오너 일가한테 어떻게 '당신네 사업체를 팔아야 합니다. 그래야 살수 있습니다' 라고 건의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지분을 넘기고 유통업을 통합한다면…….'
회사가 살아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오너 일가가 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황태진 부회장은 만약에라도 그런 상상 자체를 품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이러다가 라테유통이 우리보다 선수를 치면 꼼짝없이 큰일이다.'
하우스플러스와 라테마트가 수영마트 아래로 들어가면, 뉴월드마트는 외톨이가 된다.
대형종합소매업에서는 거의 퇴출이나 마찬가지 신세일 것이다.
'그나마 라테유통이 그럴 리가 없다는 게 위안인가.'
최악의 가정이지만, 박태규는 오히려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었다.
라테그룹 오너 일가는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사업체를 넘기지 않을 테니까.
'큰일이군. 이렇게 서로 눈치 게임만 하다가 누가 먼저 움직이기라도 하면 남은 한쪽은 꼼짝없이 독박인데.'
박태규는 평소의 40%도 채 나오지 않은 전국 매출을 보고 그저 한숨만 나왔다.
"전무님, 부회장님이 부르십니다."
"……알았다. 지금 바로 올라가지."
그는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부회장실로 올라갔다.
평소 온화하게 자신을 대하던 황태진 부회장은 오늘만큼은 거칠게 퍼부으며 갈궜다.
아무래도 떨어진 매출 수치 때문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 리라.
'우리도 라면 사은품 19억 개 지원해주면 저보다는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박태규는 속으로만 그렇게 외친 채, 괴로운 갈굼의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실컷 퍼붓고 나자 황태진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박 전무, 내가 화가 나는 것은 다른 게 아니야. 하우스플러스가 수영마트와 무슨 접점이 있었어? 전혀 없지. 하지만 우리는 다르잖아. 안그래?"
"예, 부회장님."
"우리가 아트락 부지도 넘겼고 복합센터 공사도 계속 하고 있어. 나중에 센터 완공되면 운영권도 우리가 행사할 거고, 뉴월드백화점에서는 머쉬룸 서비스도 제공하고, 수영레스토랑도 입주해 있단 말이야."
누가 봐도 하우스플러스보다는 뉴월드마트가 수영농장과 깊은 비즈니스 사이다.
"그런데 왜 눈뜨고 앉아서 하우스플러스한테 이 모든 걸 다 뺏기고 있는 거지? 대체 임원이라는 작자들이 경쟁회사 동향도 파악하지 못하고, 그동안 뭘 한 건가?"
황태진은 하우스플러스가 먼저 적극적으로 지분 양도 및 사업 제휴에 나섰을 거라고 확신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능했습니다."
"이제 어떡할 건가? 방법은 생각해둔 게 있나?"
박태규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민한 끝에, 결국 번뇌를 마치고 입을 열었다.
"우리 뉴월드마트도 하우스플러스처럼 수영마트 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전혀 상상도 못 했는지, 황태진의 안색이 벌게졌다.
***
황세라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듯이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실장님 말씀으로는 종합소매업이 결국 하우스플러스로 재편될 거다. 이 말씀이신 거죠?"
"네, 시간문제일 뿐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될 겁니다."
"참 신기하네요. 반도체나 스마트폰 시장도 1인독주는 불가능할 텐데, 종합소매업에서 그게 될 줄은 몰랐어요."
라면 시장을 독점한 것까지는 이해가 된다.
황비버섯이라는 국물 요리의 끝판 왕의 가격을 1/100까지 떨어뜨렸으니까.
"국내산 육류를 독점한다는 게 가능했던 거였나요? 축산농가가 한두군데가 아닌데."
수십만 개가 넘는 축산농가를 어떻게 한 손에 틀어쥐었는지 그저 놀라웠다.
"가축을 키우는 데는 먹이값이 가장 큽니다. 그런데 수영농장은 배합사료의 가격을 파격적으로 떨어뜨리고, 축사농가들이 그 혜택을 받게 했으니……."
"다른 경쟁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있을까요?"
"절대 없습니다. 수영농장에서 배합사료 업체에 공급하는 곡물의 양은 엄청납니다. 가격도 말이 안 되고요."
"대체 수영농장은 어떻게 재배원가를 그렇게나 떨어뜨릴 수 있었던 걸까요?"
"그게 시장의 의문입니다.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그 답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서실장은 진중한 안색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수영농장의 가장 큰 수입원은 황비버섯입니다."
"알아요. 프라임컴퍼니에 팔고 받는 버섯값만 매달 수십억 원이라면서요?"
"수십억 원이 아니라 수백억 원대일 겁니다."
그 말에 황세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무슨 버섯 매출이 그렇게 높아요? 말이 돼요?"
"왜냐하면, 한 달에 팔리는 황비라면이 국내 국외 합쳐서 10억 개가 넘으니까요. 아, 중국 건 제외한 겁니다."
"그래도 매달 수백억 원이라니……."
"심지어 식량작물 재배소득이라 소득세도 없습니다. 100% 비과세입니다."
황세라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무슨 농장 하나가 웬만한 대기업보다 낫네요."
그녀는 무엇보다 소득세가 없다는 점이 가장 근사하게 보였다.
'아트락 부지를 넘겨주길 잘했어.'
원래 아트락 부지는 뉴월드마트 것이지만, 황세라는 정서희의 부탁을 받아 양도에 적 개입했다.
그 과정에서 백화점의 지분 일부를 뉴월드마트에 넘기기까지 했으니.
또한 뉴월드마트가 운영하는 스톰벅스 본사를 만나 생두 공급 계약을 중개하기도 했다.
아트락 부지 양도를 설득하기 위해서 황세라가 한 노력은 매우 컸다.
'지금 생각하니 뭔가 아까운데.'
오빠한테 넘어간 백화점의 지분이 새삼 아깝다.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조경규 비서실장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마트에는 악재이지만, 우리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한 속삭임에, 황세라는 미소를 지었다.
"말씀 계속해 보세요."
"그룹 마트 사업은 백화점 쇼핑에 비해 지속적으로 낮은 실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회장님도 그다지 흡족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 상황에 이번 일까지 터졌죠.
저라면 하우스플러스보다 더 빠르게 마트 지분을 넘기고 손을 잡았을 거예요."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손에 마트 지분은 전혀 없잖아요?"
"백화점 전 지점 지하에는 마트가 입주해 있습니다. 그걸 활용하십시오."
황세라는 조경규 비서실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백화점에 입주한 마트만 수영농장산 식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면, 비교가 되긴 하겠네요."
"네, 나아가서 백화점 자체가 뉴월드마트를 대체할 수 있게 가꾸셔야 합니다."
"이거 잘하면 마트사업 자체가 제한테 돌아올 수도 있겠어요."
마트가 백화점, 자신의 도움 없이는 정상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끔 만든다.
그럼 부친, 황희철 회장도 다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어설프게 장남의 손에 계속 쥐여주느니, 차라리 딸에게 이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속도전이네요. 그리고 인맥전이고요."
"사장님은 정서희 부사장과 친하시죠. 인맥으로 보면 부회장님보다 크게 유리합니다."
"서희가 장차 수영농장 안주인이 되실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안 그래요?"
황세라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서희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황세라 등 그녀와 친한 재벌가 여자들은 대충 그런 예상을 하고 있었다. 원래 상상은 자유인 법.
황세라는 곧바로 전화를 꺼냈다.
-아, 언니. 오랜만이에요.
"어머, 서희야. 오늘 쇼핑하지 않을래? 괜찮은 신상이 많이 들어왔는 데, 너한테 처음 보여주는 거야."
-저 요즘 쇼핑 별로 안 즐기는데. 일하는 게 더 재밌어요.
황세라는 가볍게 인상을 썼다가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마음에 드는 걸로 하나 사줄게."
-그럼 가야죠. 폐점하고 가면 될까요?
"그럼, 저녁 9시쯤에 맞춰서 와. 한가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