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94화
124장 1타자만 살아남는다 (3)
뉴월드유통과 라테유통은 부지런히 조사한 끝에, 청담수영병원 내에 시행된 새로운 복지제도를 접했다.
병원뿐만 아니라 프라임그룹 전 계열에서 동시에 시행되는 복지 정책이었다.
"전방위적 식재료 지원이라고?"
라테유통 사장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허탈함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지난 몇 주간 마음고생을 했던 게 바보처럼 느껴졌다.
"네, 수영몰이라고 직원전용 비공개 온라인몰 운영을 개시했습니다. 직원들은 지급받은 포인트로 농축수산물을 다이렉트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그렇게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됐을 거 아닌가."
"죄송합니다, 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직원들 가정식비로 달에 500억 원을 지급하다니…… 수영농장은 정말 제정신이 아니군."
"직원 복지와 농가 지원을 위해서 추진하는 복지 정책이라고 합니다. 수영농장은 원래부터 그런 분야에 관심이 많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보고하는 임원은 속으로는 프라임계열 지원들이 부럽다는 마음을 품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무튼, 종합소매업에 진출할 건 아니지 않은가. 그냥 사내용이었어. 그럼 된 거지."
라테유통 사장은 마음을 완전히 놓은 표정으로 껄껄 웃었다.
물론 임원의 마음은 썩 좋지 않았다.
'이거 절대 마음을 놓을 게 아닌데…….'
지금으로써는 소매유통업에 진출할게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비즈니스라는 게 어디 그런가?
사내유통이지만, 매달 500억 원어 치나 되는 식자재를 다루다 보면 다른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거 생각보다 할 만한데?'
'이참에 한 번 본격적으로 종합소매업 유통 해봐?'
'경험치도 쌓았겠다, 못할 게 있나?'
'사장님, 까짓거 우리도 한 번 해보죠! 마침 라면도 우리가 꽉 잡고, 있지 않습니까!'
직원들 사이에서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자신이 경영자라면 애초에 이런 가능성을 놓치지 않고 사업을 키울 것이다.
임원은 조심스럽게 사장한테 자신의 그런 우려를 전달했다.
하지만 사장의 표정만 나빠졌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소매유통이 어디 그렇게 쉬워? 우리 라테그룹도 수십 년 동안 엄청난 돈을 꼬라박아가면서 겨우 구축한 유통망이라고!"
"……."
임원은 어이가 없었다.
언제는 라면과 스낵 가지고 장난치면 유통시장 먹힐 거라는 우려에 귀를 기울이더니.
사내 복지용이라는 보고 하나에 그런 걱정을 저렇게 깨끗이 버릴 줄이야.
'보고 싶은 것만 믿으시면 안 되는데.'
한 번 긴장이 풀어지니까, 암울한 상황에서 억지로 눈을 돌리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것이 낙하산의 한계인가 싶었지만, 임원은 그런 불경한 마음을 속으로 집어삼켰다.
뉴월드유통은 조금 달랐다.
"사내용이라고는 하지만, 본격적인종합소매업 진출을 앞둔 예비 연습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상대가 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총을 영원히 창고에만 보관한다고 누가 보장합니까? 어느 날 문득 창고에서 꺼내 와서 위협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총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이제 있는 게 밝혀졌으니, 그 총이 언제고 자신을 위협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지점 확장 계획은 당분간 전면 중지해야 합니다. 지금은 내실을 다지면서 태풍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뉴월드유통은 눈물을 머금고, 진행 중이던 마트 지점 확장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당연히 그에 따른 손실이 발생했지만,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뉴월드유통(마트의 모회사) 박태규전무는 수영농장의 무서움을 뼛속까지 기억한다.
과거 아트락 부지 때문에 하수영과 갈등을 빚을 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로열패밀리인 황태진 부회장(유통및 마트)과 황세라 사장(백화점)의 남매갈등도 점화에 한몫했고, 다행히 모든 게 잘 수습이 되었지만, 박태규 전무는 수영농장의 위세를 피부로 느꼈었다.
"또 하수영인가?"
황태진 부회장은 보고를 받고 눈을 찡그렸다.
"이거 참, 우리 입장에서는 난처하게 됐군."
원래 뉴월드마트는 아트락 부지에 종합복합센터를 지어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머쉬룸 서비스 때문에 망할 뻔한 백화점을 수렁에서 구하기 위해 부지를 다시 넘겼다.
그 대신 하수영은 복합센터 건설및 운영권을 뉴월드마트에 보장해 주었다.
뉴월드마트 입장에서는 숨을 돌린 배려였다.
"아트락 부지 복합센터 공사, 그리고 스톰벅스 생두 공급이 있었지?"
"예, 생두 전량을 수영농장에서 공급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30% 언급으로 시작한 생두는 이제 100% 수영농장에서 공급받고 있다.
다른 생두와는 맛이나 보관, 생산안정성에서 차이가 심하니 스톰벅스로서도 당연한 결정이었다.
"우리 목줄을 두 개나 쥐고 있는 경쟁사가 이제 종합소매유통까지 차지하려고 하는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얌전히 목을 내밀고 처분을 기다려야 하나?"
"우리가 먼저 협력을 요청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경쟁자한테 스스로 기어들어 가자는 건가?"
"아직 총이 창고에 잠자고 있을 때 동맹을 맺어두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그때였다.
갑자기 부회장실 문이 빠르게 열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비서실장이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부회장님! 죄송합니다! 지금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비서실장은 빠르게 양해를 구한 뒤 태블릿을 가져와서 속보를 보여 주었다.
뭔데 이렇게 급한 거지, 하고 속보를 확인하던 황태진은 그만 굳어버리고 말았다.
[하우스플러스! 지분 51% 매각! 매입자는 일개 소매마트?]
[청담수영마트! 국내 유통 점유율 2위의 하우스플러스 지분 51% 매입!]
[청담수영마트, 하우스플러스 오너되다!]
"이게 뭔가? 수영마트가 하우스플러스를 인수했다고?"
하우스플러스는 동종업계 경쟁자.
심지어 턱밑에서 바짝 칼을 들이대고 있는 2위 업체다.
그런데 수영마트가 이렇게 빨리 하우스플러스를 인수했다고?
고개를 들어보니 보고하던 박태규전무의 안색도 새카맣게 죽어 있었다.
"박 전무, 이걸 어떻게 생각하지?"
"……하우스플러스가 수영농장 측과 이미 빅딜을 모두 마친 상황인 거 같습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것 같은가?"
황태진과 박태규는 이미 같은 확신을 품고 있었다.
사내복지몰을 운영, 500억 원어치 농축수산물 구입.
그 모든 것이 처음부터 기획된 비즈니스였다고.
'수영농장은 하우스플러스와 미리 모든 딜을 마치고 움직인 게 틀림없다.'
수영농장, 범프라임그룹은 지금까지 생산자 포지션이었다.
농작물, 라면 등 가공식품을 만들기만 했을 뿐, 직접 시중에 유통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수영라면, 수영치킨 정도가 재료부터 소비자 판매까지 책임지고 하는 영역이었다.
기존 유통업체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거대한 생산력을 지닌 생산자가 이제 직접 판매까지 책임지려고 한다.
***
임형필의 청담동 빌라를 매입한 하수영은 기분이 좋았다.
"이야, 안 그래도 요즘 매물이 거의 없어서 애가 탔는데. 이렇게 또 소중한 매물이 하나 생기는구나."
온라인 등기부로 변경된 소유자 등기 내역을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은 일이다.
옆에서 장효주가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청담동 부동산만 좋아하세요?"
"가치가 높고, 현금성도 높고, 고급 동네 이미지도 강하고, 싫어할 이유가 있습니까?"
"청담만 그런 건 아니잖아요. 압구정동, 신사동, 삼성동 등등 강남 3구 다른 지역도 얼마든지 괜찮은데. 꼭 청담만 좋아라 하시니까 그렇죠."
"아닌데요? 이번에 강남3구 다른 지역 빌딩도 꽤 많이 사모았습니다."
"그건 병원 직원들 기숙사로 제공하려고 사신 거잖아요. 좋아서 사신게 아니라."
"광진구 아파트 재건축 단지도 샀는데요."
"그것도 직원 기숙사로 개조하려고 사신 거구요. 청담동 재건축 단지하고는 애지중지하는 게 전혀 비교가 안 되시던데요?"
"에이, 광진구 재건축이라고 차별을 둔 적은 없습니다."
"청담동 재건축 아트센터 조감도는 저도 봤어요. 진짜 끝내주던데요? 수익 같은 건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설계더라고요."
가칭 청담동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새로 들어설 '수영아트센터'는 수익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뽐내기만을 목적으로 한 설계가 틀림없었다.
항상 화려함과 관심에 젖은 채 살아왔던 톱스타이기에, 정효주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꿰뚫어 보았다.
"청담이 좋은 동네인 건 알지만, 다른 지역에도 좋은 매물 많은데 관심 좀 주지 그래요? 괜한 참견일까요?"
"아닙니다. 좋은 조언입니다."
"왠지 저 말고도 이런 말 하는 사람들 많았을 거 같아요. 아니, 분명히 그럴 거야."
"예리하시네요."
"근데 그 소문 진짜예요? 하우스플러스에서 원래 51%가 아니라 그 이상을 넘기려고 했었다는 거요."
"70%까지도 넘긴다고 했는데 그냥 제가 51%만 받겠다고 했습니다. 너무 많이 뺏으면 그 친구들도 경영할 의욕이 나지 않을 거 아닙니까."
3년간 배당을 포기하겠다는 것도 삭제해 주었다.
덕분에 임형필은 장인으로부터 협상을 잘했다며 크게 칭찬을 듣기도 했다.
"임형필 사장님인가? 그분 청담동 빌라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에이, 그럼 제가 딜 자체를 안 했죠. 유통에 손을 뻗을 이유가 없는데."
화제는 어느덧 한창 제작을 준비중인 '부활의 이순신 2'로 넘어갔다.
"노량해전에서 죽은 이순신 장군의 혼이 부하 장수에게 깃들어서 임진 왜란이 끝날 때까지 계속 수군의 활약을 돕는다는 내용으로 갈 거 같아요."
충무공은 죽었으니 죽지 아니한 채 영원히 우리 조선반도를 수호한다!
이것이 시즌2의 컨셉이었다.
"아마 제 배역 캐릭터가 중간에 이순신 장군의 혼이 깃든 것을 최초로 알아보게 될 거 같아요."
"상당한 감정 연기력이 필요하겠네요."
"제가 감정 연기력이 부족할 것 같아요?"
"그럴 리가요. 효주 씨는 우리나라 최고의 여배우인데, 감히 그런 의심을 품겠습니까."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홍보 겸 예능 하나 찍을 거 같아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촬영지가 부산 해운대예요. 그래서 말인데요……."
장효주는 평소의 도도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하수영의 눈치를 보았다.
"혹시 수영펜션을 예약할 수 없을까 해서요. 제작진에서 예약 문의를 넣었는데 이미 몇 달간 풀이라고 해서……."
"그럼요. 예비 객실 전부 빌려드리겠습니다."
"어, 정말요?"
"이럴 때 쓰려고 준비해 둔 예비객실이니까요. 아예 오늘부터 준비하라고 할까요?"
"아, 그럼 감사하죠."
"오늘 안으로 예약권 발급해서 실톡으로 보내드릴 테니 확인해 보세요."
"역시 드라마 투자자가 수영펜션주인이니까 일이 참 쉽게 풀리네요. 사실 저도 수영펜션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요."
"다음부터는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예비 객실은 제 주변 지인들을 위해서 남겨둔 것들이니까요."
"정말요? 그럼 사양 않고 물어볼게요."
좋아라 하는 표정을 보니, 똑같이 생긴 옛 전생의 인연이 조용히 떠올랐다.
하수영은 그 감성을 가만히 묻어둔 채 잠시 일어나서 창가로 향했다.
-마스터, 실시간 속보입니다. 중국에서 한중 무역 제재를 선언했습니다.
"중국산 농작물 수입이 줄어들겠구나. 농장에서 작물 준비 알아서 진행하거라."
-조치 내용에 따르면 황비라면 수출도 중단됩니다.
"응? 중국인들 이제 우리 라면 없이는 못 살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