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91화
123장 이사장님의 복지 (4)
청담동과 한강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광진구 재건축 아파트 조합과 협상에 들어갔다.
지루한 줄다리기 협상을 한 끝에 부지를 일괄적으로 매수하는 데 성공했다.
조합원들은 재건축 이후 기대상승수익을 챙기고 소유권을 넘기기로 했다.
대단지 아파트 소유권이 온전하게 넘어온 것이다.
물론 재건축법, 주택분양법, 서울시의 승인 등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행정적인 문제는 설영서 행정2부시장을 만나자 깔끔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일단 신축 아파트처럼 지어서 가족이 있는 직원들이 살 수 있게끔 할 겁니다. 이용 비용은 전세대출이자보다도 훨씬 싼 수준이 될 거고요. 어디까지나 수익이 아니라 직원복지용으로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하수영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설영서 부시장은 손뼉을 치면서 감탄했다.
"그럼 단지 입주자 전원이 실거주자들이 되는 셈이군요. 좋은 일입니다. 이런 뜻 깊은 일은 당연히 시에서도 적극 지원을 해줘야지요."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다만 적어도 10년 이상은 지금의 목적대로 운영한다고 서류상 약속을 해주셔야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투기과열지구다 보니."
"30년 이상이라고 명시해 드릴게요."
"아이고, 그 정도라면야 뭐 문제될 게 전혀 없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허가를 따내겠습니다."
"근데 허가 결정권자가 부시장님 아니었나요?"
"그래도 이 정도로 큰 안건이면 시장님 도장은 받아야 해서요."
그렇게 서울시는 아파트 부지 일괄매입 및 분양의무 없는 건축 사업을 허가해 주었다.
대신 하수영은 최소 30년 이상 직원들 주거용으로 이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애초에 주택법에서 보장하는 주거혜택 이상을 제공하는 것이기에 시장도 흔쾌히 결재 사인을 했다.
"역시 단지주 전직 퀘를 한 번 해결하니 속행 퀘스트가 줄줄이 나오는군."
물론 청담동이 아니니 콜렉션 부동산 넘버링은 부여받지 못할 테지만, 아파트가 완공이 되더라도 일반 아파트와는 달리 구분등기가 아니라 단독등기가 된다.
각 세대의 소유권이 구분되는 게 아니라, 일괄적으로 하수영 개인한테 귀속되는 1개의 부동산 물건이 되는 셈.
우형신 중개사는 그 이후에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기숙사로 쓸 만한 원룸 빌딩을 찾아다녔다.
그간 청담동 매물만 보느라고 중개거래가 적은 편이었는데, 강남구 전역 주상빌딩으로 대상이 확대되니, 우형신도 덩달아 바빠졌다.
최백민은 비닐하우스 재배를 전문으로 하는 농민이었다.
작년에 한반도를 강타했던 강우, 강풍 때문에 비닐하우스가 하루아침에 모두 날아간 아찔한 경험을 했다.
어찌 살아야 하나 크게 낙담하고 있는데, 웬일로 농협놈들이 자금 지원을 해줬다. 그것도 저리가 아닌 무상으로, 알고 보니 하수영 농민이 정부와 농협에 쌀 팔아서 번 돈(약 18조원)을 농협은행이 운용해서 얻은 이자 수익으로 피해 농가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늘이 우리나라 농가를 위해서낸 인물이야. 틀림없어."
하수영을 향한 최백민의 고마움은 더욱 깊어졌다.
안 그래도 이전에도 농업용 유류, 비료 등 여러 가지 지원을 무상으로 받아왔다.
쌀 판 돈을 굴려서 그 수익으로 농민들 도와주라고 농협은행에 전부 예치하다니.
그 돈에 정부 지원금을 얹어 최백민은 다시 비닐하우스를 올려서 농업을 시작했다.
그가 재배하는 농작물은 주로 감자, 고구마, 호박, 나물류 같은 것들이다.
사시사철 사람들의 밥상에 오르는 것들.
비닐하우스 재배이다 보니 계절에 상관없이 상시 출하한다.
"그럼 가져갑니다. 수고하세요."
"그려, 자네도 수고하시게나."
오늘도 오랫동안 거래해온 유통업체에 출하 작물을 넘긴 최백민은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에휴, 이렇게 벌어서 애들 장가는 어떻게 보낼지……."
오늘치 작물을 팔고 들어온 돈을 보니 괜히 한숨이 나온다.
"수입 농산물인지 뭔지 때문에 농민들만 힘들지. 이러다가 나라에 농사짓는 사람 죄다 없어지면 그때는 어쩌려고."
새로 파종을 하려고 준비하는데, 프리덤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주인님, '온라인 수영몰'에 농산물판매자로 등록을 하시겠습니까?」
"응? 온라인 수영몰? 그게 뭔데 그러냐?"
「프라임 그룹에서 운영하는, 사내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쇼핑몰입니다. 농산물 판매자로 등록을 하시면 이곳에서 농산물을 판매하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그럼 내가 택배로 부쳐야 하는데 나 그런 건 할 줄 모른다. 이놈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처럼 유통직원이 직접 찾아와서 수령을 해갈 겁니다. 일괄 판매가 아니라 소량을 상시적으로 판매하다 보니 잔손은 좀 더 가겠지만요.」
"어렵지 않겠냐? 난 너 만나기 전에 폰뱅킹인지 뭔지도 잘 못해서 쩔쩔맸는데."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신청하십시오. 주인님 입장에서는 판매처가 하나 더 늘어나니 좋은 일입니다.」
판매처라는 말에 최백민은 귀가 솔깃했다.
"판매처가 더 늘어나는 거라면 해야지. 근데 회사 사내 몰이면 사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많이 안될 거 같은데."
「10만 명 이상입니다. 두당 달에 몇십만 원 이상은 지출을 할 예정인 우량 소비자들입니다.」
"그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온라인 판매 같은 건 잘 몰라서. 근데 프라임 그룹은 뭐하는 곳이냐?"
「황비버섯라면으로 유명한 프라임컴퍼니가 포함된 기업집단입니다. 하수영 농민이 오너로 있는 회사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수영몰인 겁니다.」
그 말에 최백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하수영 농민회장이 하는 곳이라고? 인석아! 그걸 가장 먼저 말을 했어야지!"
그렇게 최백민은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소 걱정이 됐지만, 막상 그전에 하던 도매업체 일괄 판매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에 해당하는 농작물의 종류와 수량을 준비만 해두면 된다.
그럼 CZ물류회사에서 직원이 찾아와 농작물을 수령해 간다.
물류회사는 하루에 한 번, 오후에 찾아와서 일괄적으로 농작물을 수령했다.
처음에는 얼마나 팔릴까 걱정했는 데, 의외로 주문량이 쏠쏠하게 들어왔다.
최백민은 그저 평소처럼 농사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수영몰 판매 관련 업무는 프리덤이 모두 알아서 처리를 해줬기 때문이다.
「오늘 발주량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자 72kg, 호박 23kg, 콩나물 5kg…….」
최백민이 추가로 할 일이라고는, 점심 먹고 나서 프리덤이 불러주는 양의 농작물을 준비하는 것이 전부였다.
준비가 끝나면 CZ물류회사에서 찾아와 수령해 간다.
처음에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매출도 쏠쏠했다.
"이거 생각보다 잘 팔리는구나. 가격도 도매업체에 넘기는 것보다 훨씬 낫고."
「수영몰의 고객들은 다른 소비자들에 비해 구매력이 월등히 높습니다.」
"그런 거 같아. 역시 프라임 그룹에 다니는 직원들이라 다 월급이 빵빵한가 보구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물론 프라임 계열의 급여는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구매력이 높은 것은 급여 때문이 아니라 복지포인트의 휘발성때문이다.
직원에게 부양가족 숫자만큼 주어지는 복지포인트는 매달 말일이 되면 잔여 포인트가 모조리 소멸하고, 1일에 다시 새로이 채워지니까.
'뭣보다 가격이 참 괜찮아서 좋아.'
같은 양의 농작물을 팔아도, 도매업체에 파는 것보다 수영몰에 내다 파는 것이 훨씬 이익이 난다. 수영몰에서 가격을 잘 쳐주기 때문이다.
"내가 키운 것들 수영몰에 전부 판다면 지금보다 살림이 더 필 텐데."
아쉽게도 아직은 전체 생산량의 20% 정도만 수영몰에서 팔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내복지 수영몰이 처음 오픈했을 때, 청담수영병원 직원들은 의아했다.
"병원에서 무슨 온라인몰을 운영한다는 거야? 설마 진통제나 두통약을 싸게 판다는 것도 아닐 테고."
사내몰을 운영하는 대기업은 보통 자사가 만든 제품을 직원들 대상으로 싸게 판다. 혹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할인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병원 온라인몰이 뭘 팔겠냐 싶어서 접속을 해본 직원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농수산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쌀, 보리, 감자, 배추, 무…… 생각보다 다양한데?"
"생산지하고 유기농인지 아닌지도 전부 자세하게 표시돼 있네."
"오, 생선도 있어."
"와, 참치도 있는데? 수영몰이라서 그런지 수영참치도 여기 올라오나 봐."
국내에서 재배되는 농축수산물 먹거리는 거의 전부 다 있었다.
가장 좋아한 것은 유부녀 직원들이었다.
"150만 포인트면 적어도 2, 3주는 장 볼 비용 아낄 수 있겠어요."
"이거 어차피 안 쓰면 없어지는 거 라지? 그럼 꽉꽉 채워서 여기서 장보면 되겠네."
곡물과 야채, 소, 돼지, 닭, 참치 외에 각종 해산물까지.
미가공 식품은 전부 모아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평소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던 미혼 직원들도 온라인몰을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한 달 식비를 50만 원이나 절약할 수 있는데, 까짓거 이참에 요리 해 먹지 뭐."
직원들 거의 대부분이 온라인 수영몰을 적극 이용하기 시작했다. 매달 고정 식비를 지원받는 셈이 된 것이다.
"근데 수영몰인데 왜 황비버섯라면은 없는 거야? 이게 좀 많이 아쉽다."
"그래도 송이버섯, 황비버섯은 있잖아요. 보니까 미가공 식재료만 전문적으로 파는 몰이네. 그래서 라면 같은 것은 없나 봐요."
직원의 가족 숫자까지 고려하면 매달 500억 포인트 이상이 수영몰에서 소진된다.
그 말은 전국의 농민들한테 그만큼의 매출이 발생한다는 것.
직원들은 매달 필요한 식재료를 공짜로 얻을 수 있어서 좋고, 농민들은 추가 매출이 발생해서 좋았다.
수영몰의 등장이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다음 달은 출하량이 없다니요? 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최백민 농민을 찾은 유통업체 직원은 황당해서 반문했다.
안 그래도 오늘 출하량이 평소보다 너무 적어서 당황하는 중인데, 다음 달은 아예 오지 말란다.
"응, 그렇게 됐어. 다음 달은 팔거 없으니까 안 와도 돼."
"아니, 하우스에 저렇게나 많은 데 팔 게 없다니요?"
"저거 다 팔 데가 있는 것들이야."
"네? 설마 저희 말고 다른 곳에 거래 뚫으신 겁니까? 이거 정말 섭섭합니다."
"그럼 지금보다 가격 1.5배 이상 쳐줄 수 있나?"
"그, 그것은……."
갑자기 1.5배라는 말에 직원은 당황해서 말을 흐렸다.
가격을 올려주는 것은 자신의 권한이 아니다. 사장님이 와야 한다.
"사장님, 너무 서운합니다."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그러니 이해하게."
최백민 농민은 그래도 정이 있어 완강히 쳐내지는 않고 미안해하면서 대화를 종료했다.
농수산물 유통업체들은 곳곳에서 농민들이 출하를 중지하자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알아봤다.
그러나 수영몰의 존재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수영몰은 직원 인증이 되지 않으면 홈페이지 접속 자체가 안 되는 비공개 사이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청담동에서 산지 직거래로 농축수산물을 매달 500억 원어치씩 구매하고 있다던데요. 농민들과 직접 협상했나 봅니다."
"청담동에서? 혹시 하수영 농민회장 말하는 거냐?"
"예, 그렇답니다."
"아니, 농축수산물을 500억 원어치나 구매해서 대체 어디에다가 쓰는 거야?"
기존 농가 유통업체들은 직원들에게 들어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자기들 나름대로 해석에 들어갔다.
"이거 설마 하수영 농민회장이 유통시장 다 먹어치우려는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