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86화
122장 충격은 약한 곳부터 몰린다 (6)
토지용도 변경이 완료되면서 하수영과 JS건설이 서울시에서 받은 조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금의 설계를 지킬 것.
다른 하나는 기존의 지주 조합원들한테 동일한 전용면적의 주거 공간을 분양할 것.
이렇게 하면 현진해운아파트는 531채의 주거 공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시민들을 위한 문화 상가 시설로 재탄생하게 된다.
서울시 입장에서는 어떤 건설사도 제시하지 못하는 공공적인 설계였기에 만족했고, 하수영은 토지대장에 자기 이름만 올릴 수 있어서 만족했다.
지주 조합원들한테 분양하는 집도 되산 후 전세를 주기로 이미 약정을 맺었으니.
"축하드립니다. 기어이 현진해운아파트 부지를 손에 넣으셨군요. 전 이번만큼은 잘 안 될 줄 알았습니다."
우형신 중개사가 웃으면서 축하를 해주었다.
"서해전자에 악재가 터진 게 사장님께는 매우 다행이었습니다. 덕분에 서해건설이 탈락했으니까요. 참 하늘이 사장님을 돕나 봅니다."
"주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거든요."
"네?"
"아아, 그런 게 있습니다."
우형신은 서진파운드리가 하수영소유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원래 반도체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는 개개인이 뭐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교차 검증을 해가면서 알려고 해야만이 알 수 있는 법.
게다가 주식도 하지 않으니, 서해 전자나 서진파운드리나 그에게는 물건너 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수료로 500만 원 입금했습니다."
"아이구, 제가 한 게 뭐 있다고 수수료까지 다 주십니까."
"그래도 중개사님이 발 빠르게 정보를 물어보신 덕분에 제때 대응할 수 있었어요. 늦게 알았다가는 아마 현진해운을 제 것으로 만들기 힘들었을 겁니다."
500만 원은 중개수수료가 아닌 정보수수료였다.
약속에도 없는 돈이니 안 줘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잘해줘야 우형신도 부지런히 정보를 물어온다.
'어차피 내가 중개수수료도 못 받을 매물까지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갖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다.
"사장님, 조감도를 봤는데 참 멋진 건물이더군요.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예술품으로 보였습니다."
"수익 남는 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은 안 하시고요?"
"하하, 그런 생각도 조금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께는 분양 수익이나 임대 수익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렇죠."
소유주란에 자기 이름만 박혀 있으면 된다.
물론 우형신은 왜 그렇게 청담동부동산 수집에 열중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청담동 부동산은 환금성과 투자 가치가 매우 높다. 부동산 사업자가 청담동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다만…….
'압구정동이나 신사동, 삼성동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게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청담동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강남3구 다른 동에 투자를 해도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 텐데 그게 조금 이상하긴 했다.
"아무튼 다른 좋은 매물 나오면 또 연락 주세요."
"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청담동에 레이더 안테나 쫙 깔아두고 있습니다. 무조건 저한테 가장 먼저 연락달라고요."
"아, 그리고 설영서 부시장을 만나러 갈지도 모르는데, 혹시 그때 같이 가실래요?"
"설영서 부시장이요? 아이구, 그런 자리에 불러주신다면 저야 영광이죠."
우형신은 사양 한 번 않고 냉큼 제안을 받았다.
부동산 중개업으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서울시 도시건설 정책을 관장하는 행정2부시장을 만날 자리를 사양할 수는 없는 법.
***
현진해운 부지를 손에 넣은 하수영은 속이 후련했다.
"땅을 얻었으니 반도체 따위는 알바 아니지. 뭐, 우리 정서진 사장님이 알아서 잘 굴리시겠지."
애초에 그러라고 수익의 5%를 인센티브로 약속하면서 CEO 자리에 임명한 것이었으니까.
"너무 열심히 하면 나중에 은퇴도 못 하고 죽을 때까지 일만 할 수도 있다고 겁도 적당히 드렸으니까, 적당히 조절하면서 잘 하실 거야."
하수영은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말 그대로 반도체 사업에서 신경을 껐다.
프리덤한테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반도체 관련 뉴스나 정보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일부러 차단을 한 것은 아니고 더 이상 관심을 둘 필요가 없어졌으니 흥미도 식은 것이다.
서진파운드리를 예정보다 일찍 공개해서 서해건설을 탈락시켰고 아파 트 부지도 손에 넣었으니.
물론 영원히 관심을 끈 것은 아니고, 서해반도체가 본격적으로 큰 타격을 입으면 다시 팝콘을 뜯을 것이다.
애초에 '반도체 검'을 봉인 해제한 이유가, 서해그룹이 조용히 농사짓는데 하도 깔짝거려서였으니까.
"그나저나 설계가 뭔가 부실한 거 같은데… 여기에 조금만 더 데코레이션을 쳐볼까?"
-그럼 서울시에서 다시 승인을 받아야 할 텐데요.
"더 좋아져서 가져온 설계인데 부시장이 환영을 하면 환영했지, 싫어하진 않을 거야."
그리고 하수영은 덧붙였다.
"물론 밑의 사람들은 일거리 늘었다고 싫어하겠지만."
하수영의 머릿속은 온통 현진해운 부지에 새로 올릴 가칭 '수영아트센터'뿐이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수집한 다른 부동산과는 차원이 다른 애착이 생길수밖에 없었다.
가장 넓은 부지였고, 또 아예 모든 것을 허물고 자신의 손으로 우뚝 세울 테니까.
심지어 목 좋은 한강 바로 옆이다.
***
설영서 부시장은 기분이 묘했다.
오늘 그는 하수영을 만나기로 했다. 당연히 초면이다. 통화 같은 교류는커녕, 오가다가 스친 적도 없었다.
서울시 부시장과 강남구의원 자격으로 만나는 게 아니다.
서울시 도시건설정책 책임자, 그리고 현진해운아파트 부지 재건축 사업주 자격으로서 만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일까.'
하수영의 이름은 그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서울시 도시건설담당이다 보니, 청담동에서 가장 잘나가는 부동산 자산가를 모를 수가 없었다.
아마 한국에서 개인으로 치면 1, 2위를 다투는 부동산 자산가라고 할 수 있으리라.(1, 2위를 다툴 만한 다른 자산가가 있다는 게 더 놀랍다.)
청담동 부동산으로만 한정하면 자타공인 1위다.
'근데 왜 그렇게 청담동에만 집착하는 거지? 강남구 다른 동에도 좋은 매물이 많을 텐데.'
(농장을 제외하고) 하수영이 보유한 부동산 중 청담동이 아닌 것은 청담수영병원뿐이다. (청담수영병원은 청담동 경계선 바로 바깥 삼성동에 있음) 약속 시간이 되자 하수영이 JS건설사장 일행과 함께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재건축 사업을 낙찰받은 하수영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행정 2부시장 설영서입니다."
"도시건설정책의 대가이시라고 누누이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부동산 임대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부시장님의 행보에 귀를 기울이게 되더군요."
서로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눈 후, 정식으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평소의 설영서 부시장이라면 용건이 다 끝났으니 빠르게 자리를 파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사장님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 도록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농가에서 가장 큰손이시면서 부동산 임대 업에 종합식품제조업, 정유사업까지하신다고요."
"조금 쑥스럽네요."
"게다가 강남구에서 구의원까지 하고 있으시다니. 젊은 나이인데 정말 놀랍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거짓이거나 크게 부풀려진 건 줄 오해했습니다."
"구의원은 아무래도 지역사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싶은 마음에서 하게 됐습니다. 구의원 이상 가는 정치 활동을 할 마음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영리활동 때문에 그러시는 거겠죠?"
"네, 맞습니다. 시의원만 돼도 상당수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하는데, 저는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는 게 재미있거든요."
설영서는 차까지 가져와서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나중에는 우형신과 JS건설 측 인물들이 시간이 없다고 양해를 구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둘이 남기만을 기다렸던 설영서는 그제야 속에 감추고 있던 용건을 꺼냈다.
"혹시 다른 건축 사업에도 참가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다른 건축 사업이라고 하시면?"
"한강 인근 건축 사업입니다. 물론 제가 일방적으로 밀어드릴 순 없습니다만, 적절한 정보는 드릴 수 있습니다."
"수영아트센터 설계 컨셉이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강의 경치를 소수의 땅 주인이 독점하지 않고 시민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그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한강인근 건축 사업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영서는 탐탁지 않은 듯한 하수영의 표정을 보고 속으로 조금 의아했다.
"혹시 위치가 어디입니까?"
"흑석동입니다. 아시겠지만 흑석동은 이번에 한강 인근까지 포함해 대대적인 구역 재정비에 들어갈 예정이라……."
"제가 당장은 확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도시 단위 재정비면 입찰 들어가는 사업의 규모도 꽤 클 텐데, 지금 지갑이 간당간당하거든요."
"아, 그러십니까."
설영서는 속으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수영이 얼마나 많은 현금을 쥐고 있는지는 그도 이미 파악을 한 상태였다.
어느 정도 조사를 마치고 넌지시 참가 제안을 하는 것인데, 시작부터 저렇게 발을 빼고 있으니.
'흑석동 한강 인근 재정비 사업이면 부동산 하는 사람들은 군침을 흘리고 달려들 아이템인데, 돈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왜 내키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사실 청담동 수영아트센터는 부시장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공사비가 많이 들어갈 예정이라서요. 추가적인 한강 인근 건축사업은 여유가 조금……."
"그런가요."
"최고의 내진설계는 물론이고 친환경적인 최첨단 시설을 모조리 때려 박을 예정입니다. 무엇을 상상하시든 그 이상을 보시게 될 겁니다."
"공사비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부시장님이 생각하시는 것에서 무조건 3조 원 이상은 더 얹어서 공사할 겁니다. 아, 건축물 내부에 들어가는 시설들은 당연히 별도입니다."
무조건 3조 원 플러스?
설영서 부시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수영이 흑석동 건축 사업에 탐탁지 않아 했던 반응은 그의 머릿속에서 어느새 씻은 듯이 지워졌다.
"자, 이것들을 한 번 보시죠. 제가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면서 청담 수영아트센터에 넣으려고 체크해 둔 시설들인데요."
"오! 10층 야외 공원에 전부 개폐식 유리벽을 장착하실 겁니까? 돈도 돈이지만 유지보수에도 돈이 많이 깨질 텐데요?"
"우리나라는 요즘 덥거나 춥거나 둘 중 하나잖아요. 야외 공원이라고 해서 냉난방을 못하리라는 법이 있습니까? 그러려면 앞뒤 벽에 투명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게 해야지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다.
단지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또 효율이 떨어질 뿐.
"돈만 있으면 사막 한가운데에도 첨단 대도시를 세우는 세상입니다. 저는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뜨거운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공원에서 한강의 절경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겨울에도 마찬가지고요."
"역시 사업주를 다시 선정하기를 잘했습니다. 이 넓고 큰 10층 야외공원 전체에 개폐식 유리뚜껑을 달다니요. 그런데 고정식 유리벽으로 하면 비용이 훨씬 절감되지 않을까요?"
"기온이 적당할 때에는 열어놔서 시원한 자연 바람과 소리를 느낄 수 있게 해야지요. 유리벽을 고정시켜버리면 그게 대형 한강 카페지, 야외 공원이라고 할 수 있나요."
"정말 제 상상을 넘어서는 충격을 보여주시는군요."
설영서 부시장은 개장한 수영아트센터를 찾은 시민들의 칭송이 벌써부터 눈앞에 아른거리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