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85화
122장 충격은 약한 곳부터 몰린다. (5)
서울시의 재건축 사업주 선정 백지화.
가장 황당한 것은 서해전자나 서해 건설이 아닌, 바로 라테건설이었다.
"아니, 우리는 왜? 우리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서해건설과 연합한 죄밖에 없는데, 이제 와서 함께 쫓아내다니?
"하수영 의원이 찾아왔을 때도 두말 않고 납작 엎드려서 협조했는데……."
라테건설 입장에서는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공평성을 기하기 위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한다' 라는 서울시의 대답에는 할 말이 없었다.
원칙적으로 흠 잡을 곳이 없는 대답이었으니까.
서해라테컨소시엄과 조합이 맺은 계약은 자연스럽게 취소 처분이 되었다.
손해배상 없이 계약금을 주고받은 게 있다면 원금만 돌려주고 끝내라는 행정처분이 가해졌다.
물론 조합으로서는 서명만 했을 뿐, 아직 한 푼도 받은 게 없었다.
부지 소유권 역시 아직 조합원들이 쥐고 있었다.
서해건설은 즉각 불복하겠다고 나섰지만, 서울시의 태도는 완강했다.
"지금 서해건설은 회사 재정도 그렇고, 그룹 사정도 그렇고, 정상적으로 재건축 사업시행을 기대하기에 어렵다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입니다."
행정2부시장은 바늘로 찔러도 눈하나 깜짝 않을 듯한 표정으로 차분히 설명했다.
"그러므로 법과 조례에 따른 규정을 밟아 정상적인 행정처분을 가한 것이니, 시의 의지를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불복하겠습니다."
"그것은 행정법원이 알아서 할 영역입니다. 제가 관여할 바는 아니군요."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도 아니고, 내 관할은 아니니 난 알 바 아니라는 태도.
경지에 이른 관료의 처세술이 서해 건설 임원은 속이 뒤집어질 것만 같았다.
천불이 난다는 게 바로 이런 심정일까.
서해건설은 곧바로 라테건설을 찾아가 함께 투쟁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라테건설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게…… 우리는 불복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니, 어째서요? 이건 부당한 행정처분입니다. 당연히 소송을 걸어야 합니다!"
"사실 요즘 서해그룹 사정이 워낙 시끄러워서…… 우리도 같이 손잡고 재건축 사업하기에는 여러모로 걸리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서해건설 임원은 눈이 뒤집힐 뻔했다.
아니, 라테건설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다며 방방 날뛰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겠다고?
"그럼 현진해운 재건축을 포기하겠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백지화되었으니 다시 처음부터 절치부심해서 달려들 겁니다. 사실 한 팀이라서 일괄적으로 밀려난 것뿐, 우리 잘못은 없었으니 시에서도 오히려 갸륵하게 여겨줄 겁니다."
이를 갈고 물러난 서해건설은 곧 라테건설이 왜 그렇게 태연하게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JS건설! 라테건설과 컨소시엄 구축! 현진해운 재건축 사업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다!]
"이런 치졸한 놈들을 봤나! 우리 대신 JS건설과 손잡으면 그만이니 처분 불복을 할 필요가 없었던 거였어!"
"JS건설이 뻔질나게 행정2부시장을 만나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우리와 같이 불복했다가 서울시눈 밖에 나서 재건축에서 떨어지면 손해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JS건설이 벼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곧바로 나설 줄이야……."
재건축마저 떨어진 지금, 서해건설은 이제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나 다름없었다.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며칠째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대책을 촉구했다.
그렇게 마라톤 야근이 이어지던 중, 어느 임원이 꾀죄죄한 얼굴로 불현듯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 그룹 본부에서는 아직 아무 말도 없는 겁니까?"
아직 아무것도 없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말게. 조만간 큰 불호령이 떨어질 테니까."
재건축이 백지화되었다는 보고는 당연히 곧바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때문에 정신없는 와중이라 불호령이 연기되고 있는 것 이리라. 천웅철 사장을 포함한 임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질문을 꺼낸 임원은 전혀 다른 의문을 품고 있었다.
"정말 반도체 때문에 정신없어서 우리에 대한 부회장님 지시가 미뤄지고 있는 게 맞습니까?"
"그게 아니면 뭔가?"
"현진해운 재건축에 매달릴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 조용한 것이라면……."
"……."
"……."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싸해졌다.
다들 일류대를 나와서 수십 년에 걸쳐 이 자리까지 올라온 머리 좋은 사람들이다.
대번에 그 중얼거림에 담긴 불길한 암시를 알아들었다.
천웅철 사장은 말까지 심하게 더듬거렸다.
"서, 설마…… 이제 와서 정말로 우리 건설을 팽하시려는 것은……?"
"제가 좀 알아봤는데, 윈텔과 ADM이 TSMC과 서진파운드리하고만 거래하기로 했다면, 반도체 신공장은 짓는 의미가 현저하게 줄어 듭니다. 절반 이상이 파운드리 공정수주를 받을 용도였다고 하니까요."
공장이 완공이 되어도 절반 이상은 놀리게 된다는 것.
생산라인 확대를 위해 백두반도체 인수 등, 이미 90조 원 가까이 되는 돈이 매몰됐는데 말이다.
천웅철 사장은 벌떡 일어났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부회장님을 뵙고 말씀드리겠어!"
그러나 천웅철 사장은 이현덕 부회장을 만나지 못했다.
비서실을 통해서 면담 일정을 잡으려고 했지만, 차가운 태도만 거듭확인했을 뿐이다.
이쯤 되자 서해건설 경영진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건설은 지금 그룹에서 팽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을.
'그 정도로 전자가 받은 손해가 심각한가?'
***
원래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주택을 지을 경우 추첨 분양을 통해 시중에 공급해야 한다. 시행주체가 자기 마음대로 갖거나, 소유자를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수영이 자기 돈을 들여 지었다고 해서 모든 주택을 당연히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예외, 돌파구는 어디에든 존재하는 법.
"예? 토지 용도를 변경하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그것만이 제가 유일한 단지주가 될 수 있는 1,400만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예요."
"그런데 서울시가 허가를 해줄지 모르겠습니다."
"해줄 겁니다. 저의 이 멋들어진 설계도를 보면 말이죠."
서해건설이 탈락하기 전, 이미 한번 서울시에 보여주었던 설계도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했다.
설계 컨셉은 '한강 경치를 나 혼자 독점하지 않고 시민들과 함께 적극 공유한다.'였다.
"이건…… 주상복합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테마파크 같은 느낌이로군요."
JS건설 사장은 3D 조감도를 보고 솔직하게 감탄을 늘어놓았다.
그것은 한강을 낀, 하나의 거대한 휴양시설에 가까웠다.
초기 설계의 초고층 타워가 양쪽 가장자리에서 우뚝 자리를 잡은 것은 동일했다.
다만 하부 설계가 완전히 변했다.
본래는 지상을 개방하고 여러 층으로 구성된 단일 쇼핑센터로 이뤄져 있었다. 즉 뒤에서 봤을 때 비자 모양으로 쇼핑센터와 두 개의 고층 타워 형태를 갖춘다.
그런데 하부에서 타워를 연결하는 복층 시설물의 벽을 완전히 걷어낸게 달랐다.
10층으로 구성된 하부건축물은 각층의 높이가 최소 6미터 이상으로 된, 앞뒤가 개방된 공간으로 설계돼있었다.
"이렇게 되면 공간이 탁 트여서 뒤쪽의 사람들도 벽에 가리지 않고 한 강을 볼 수 있죠. 10층으로 구성된 넓고 높은 한강 10층 야외 공원이 되는 셈입니다."
"설계만 보면 정말 멋집니다. 제가 서울시 관계자라면 두말없이 승낙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설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
"아아, 압니다. 기존 설계보다 수익성은 조금 떨어지죠."
"조금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이건 공사비도 회수 못 할 정도인데요?"
좌우에 자리 잡은 2개의 초고층타워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그냥 공중에 상시 공개하는 구조물이다.
거대한 테마파크처럼 보인다는 느낌이 괜한 감상이 아니었다.
한강뷰 초고층 아파트를 꽉꽉 눌러 담아 지어서 분양하는 것과는 수익성 면에서 비교할 수가 없다.
이건 사업주 입장에서 돈이 안 되는 설계다.
"저는 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토지대장에 제 이름만 올라가 있으면 됩니다."
"허허……."
"그리고 저는 강남구의원입니다. 제 지역구는 청담동이고요. 이런 좋은 한강뷰를 저 혼자 독차지한다면 주민들께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좋은 건 나눠야지요.""
JS건설 사장은 속으로 감탄했다.
한강뷰를 순수하게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설계 컨셉이었다.
"이런 설계안이라면 서울시에서도 두말하지 않고 승인할 겁니다."
"그런데 정말 라테건설하고 같이 하실 건가요? 어차피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는데."
"원래는 탈락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 함께 힘을 합치려 했는데, 이런 설계라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다른 어떤 시행사도 의원님의 반의 반만큼도 시민들과 한강을 공유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언론은 JS와 라테가 컨소시엄을 구축해서 재건축에 재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아직 말만 나왔을 뿐, 정식으로 도장을 찍은 것은 아니었다.
얼마든지 무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욕은 좀 먹겠지만, 회사의 이익 앞에서 그게 무슨 상관인가?
***
행정2부시장 설영서는 JS건설이 제출한 설계도를 보고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바로 이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서울 시민과 한강을 함께하는 건축물이라고요!"
지금까지 건설사가 제출한 설계안을 많이 봐왔다.
하지만 하나같이 흉물스럽게 아파트 세대를 꽉꽉 채워 넣어 돈을 벌생각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설영서는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강 인근에 뚱뚱하고 높은 초고층아파트가 잔뜩 들어서면, 그 뷰는 결국 소수의 입주민들만 누리게 되지 않는가.
"한강의 경치를 모든 서울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게 우리 시장님의 방침이시죠. 이것만큼 우리의 의도를 이해하고 구현한 설계는 없습니다."
설영서 부시장의 말은 다른 것들은 더 이상 논의할 것도 없다는 식이었다.
"그래도 검토는 해야 하니까, 빨리 다른 것들도 훑어봅시다."
당연하겠지만 다른 건설사에서 다시 제출한 설계는 모조리 나가떨어졌다.
최소 층높이 6미터 이상의 개방된 공원시설로 한강뷰를 앞뒤로 개방한다는 하수영의 설계는, 깐깐하기 그 지없는 서울시의 승인 절차를 간단하게 통과했다.
컨소시엄은 없던 걸로 하자는 JS건설의 통보를 받은 라테건설은 황당했지만, 손을 쓰기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하수영과 JS건설이 각각 시행사, 시공사로 선정이 되었고, 설계 조감도도 일반에 공개되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사업을 따먹었는지 궁금해서 찾은 경쟁 건설사들은 조감도를 보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망할, 이렇게 덤핑을 친다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저 비싼청담동 한강부지에 이따위 건물을 올려서 대체 얼마나 남는다고?"
"이렇게 지으면 어디 분양할 게 나오기는 하나? 이래가지고서야 공사비 원가의 절반도 못 건지겠네."
건설사들은 그렇게 욕을 해댔지만, 조감도를 확인한 시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좌우의 고층타워를 제외하면 탁 트인 10층 넓은 야외 공원을 통해 한강을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는 설계였으니.
"다 된 사업을 왜 백지화하나 했더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네. 이거야말로 시민들과 한강을 함께 나누는 설계지."
"난 또 비리라도 있는 줄 알았는 데,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설영서 부시장이 일 정말 잘하네."
***
유유히 재건축 사업자로 선정된 하수영은 그날 조용히 축배를 들었다.
-마스터, 현재 서해전자의 상황을 보면…….
"응, 됐어. 재건축 따냈으니 이제 알 바 아냐."
-…… 서진파운드리가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습니다. 이상 보고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