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81화
122장 충격은 약한 곳부터 몰린다 (1)
여의도에 은밀히 퍼지는 서진파운드리 소식.
증권맨들은 발바닥에 불이 붙은 심정이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보를 입수했다.
"마이크론이 50억 달러어치 선주문으로 라인 독점을 한 것은 아무래도 틀림없는 거 같습니다.
지금 서진파운드리는 시범공장만 겨우 돌아가고 있는 상태에요. 본공장은 아직 완공되려면 멀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이크론이 50억 달러부터 집어넣고 라인을 독점한 겁니다."
"마이크론이 TSMC에 위탁하기로한 그래픽 램 생산 물량을 전부 회수했습니다!
그래픽 램뿐만 아니라 다른 반도 체 제품도 서진파운드리에 맡기려고 준비 중인 모양입니다!"
여의도는 어느 때보다도 숨 돌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각자 국내 정보통뿐만 아니라 해외와 연결된 정보망을 통해 어떻게든한 줌이라도 많은 정보를 캐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마이크론은 TSMC 위탁생산 물량은 물론이고, 자사 공장 생산 물량까지 서진파운드리에 점차적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듯합니다."
"자사 공장 생산 물량까지? 설마 종합반도체 회사에서 아예 팹리스로 전환을 하겠다는 것은 아닐 테고?"
"마이크론 자사 공장의 운영 효율은 제법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제와서 굳이 팹리스로 돌아설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만큼 서진파운드리의 생산 수율이 좋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무래도……."
여의도 증권맨들은 마이크론의 입장을 생각해 봤다.
서진파운드리의 생산 효율이 너무 좋다. TSMC 위탁은 물론이고, 자기들이 직접 생산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래서 50억 달러나 밀어 넣으면서 라인을 전용하려고 한다.
"정황을 보면 이게 틀림없어. 하지만 물증이 없잖아, 물증이!"
"앗! 마이크론에서 새로운 공시를 올렸습니다! 그래픽 램 성능 향상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능 향상?"
"램 오버클럭 한계치까지 활성화한 모델을 표준 성능으로 규정해서 공급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엔도비에서도 공시 떴습니다! 마이크론의 공시 내용이 맞습니다!""
회의실 분위기는 숨 가쁘게 돌아갔다.
"그 신형 램이 서진파운드리에서 생산됐다. 뭐 이런 거지?"
"공시에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정황을 보면 99% 확실하다고밖에는……."
"내가 반도체는 잘 몰라서 그러는데 누가 깔끔하게 정리해서 설명을 해줄 사람?"
"……."
"……."
서로 눈치를 보던 와중에 한 증권맨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설명했다.
"쉽고 짧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주 좋아. 짧고, 굵게."
"일단 반도체라는 게 같은 설계, 같은 공장, 같은 공정라인에서 뽑아내도 서로 성능이 차이가 납니다."
"그렇겠지. 소총도 똑같은 라인에서 뽑아내도 막상 쏴보면 명중률이 미세하게 차이 나는데, 반도체라고 다르겠어?"
"보통은 적당한 수준을 표준치로 잡아서 성능 제한을 일괄적으로 통일합니다. 50에서 100까지 다양한 성능을 보인다면, 대충 50 정도를 표준으로 잡는 거지요. 그래야 내다버리는 거 없이 다 팔아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겠군."
"그런데 서진파운드리 시범공장에서 나온 램은 아무래도 대부분이 100에 가까운 성능을 내는 거 같습니다."
"뭐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설계도의 이론상 극한의 성능을 내는 제품만 쏟아져 나온다면,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표준 성능을 이제 50이 아니라 100으로 포장해서 팔수 있는 거지요."
"그럼 다른 경쟁사들은?"
"계속 평균적인 표준 수치에 맞춰서 팔아야지요. 다른 회사들은 뽑는 족족 최상등품만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서진파운드리는 공정라인에서 100% 최상품들만 나온다. 이거지?"
"마이크론의 공시 내용과 행보를 보면 그렇게 보입니다."
"설계도의 이론상 극한치까지 생산효율을 보이는 공정라인이라……."
"그러니 마이크론이 저렇게 나오는 거겠지요."
증권맨들의 결론은 점점 한 방향으로 모이고 있었다.
"그럼 서해전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반도체 공장에 지금까지 90조원 넘게 부은 것으로 아는데?"
"서해전자는 어차피 수주받아서 반도체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서진 파운드리와는 경쟁 상대가 아니죠. 하지만……."
"하지만?"
"마이크론이나 인텔 같은 서해전자의 경쟁사들이 서진파운드리에 외주를 주어서 나온 제품, 서해반도체 제품들이 그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서해 입장에서는 악재라는 거군."
그는 잠시 최악의 경우를 가정했다.
서해전자와 경쟁사들이 생산하는 동급 레벨의 반도체 제품군.
하지만 서진파운드리에서는 100%성능에 달하는 최상품만 나오고, 서해전자 제품은 오버클럭을 해야 겨우 따라갈까 말까 하는 수준.
과연 제대로 된 경쟁이 될까?
그렇게 해서 서해전자가 휘청거리면, 반도체 새 공장에 쏟아부은 90조 원의 손실은?
"어쨌든 간에 서해전자로서는 악재다. 모두 그리 가정하고 움직여! 어서!"
***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이미 소문은 쫙 퍼졌다.
시장은 곧바로 요동치며 반응을 보였다.
서해전자 반도체 관련주가 일제히 쫙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서해전자는 국내 증시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마였고, 주가가 어느 정도 빠지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기초체력을 갖고 있었다.
다만 경영진 입장에서는 뜬금없는 악재 때문에 주가가 흔들리는 게 거슬렸을 뿐이다.
"서진파운드리? 마이크론이 앞으로 거기에 그래픽 램 생산을 맡기기로 했다고?"
"네, 수율이 제법 좋은가 봅니다."
"그래 봐야 시범공장이지. 연구소에서 쌔끈한 제품을 뽑아내면 뭘해? 결국 대량양산 체제 가동하면 본 실력이 곧바로 들통나고 말걸."
연구소나 시범공장에서 1,000개를 뽑아내는 것과, 공장에서 밤낮으로 하루에 수십만 개씩 뽑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경영진은 마이크론이 설레발을 치는 거라 웃어넘기려고 했다.
"잘됐어. 주가 빠지면 우리가 바로 들어간다. 이 기회에 회장님 지분율좀 올려드려야지."
"네, 사장님."
그러나 서해전자 경영진의 얼굴에서 곧 웃음이 사라질 소식이 날아들었다.
"서진파운드리가 마이크론이 품질 테스트로 넘긴 1차 물량이 50만 개라고 합니다."
"뭐? 50만 개? 시범공장에서 그만큼이나 많이 뽑았다고? 그 정도면 양산체제를 거의 완성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네, 그리고 그 50만 개 전부가 램오버클럭을 한계까지 가동한 수준의 성능을, 그것도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
"그래서 마이크론이 부랴부랴 라인을 전용하려고 한 겁니다. 지금 TSMC는 뒤집어졌습니다."
TSMC는 남이 주문한 반도체를 설계해 주는 것으로 먹고사는 회사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밥그릇을 모두 빼앗기게 생겼으니, 당연히 뒤집어질 수밖에.
그에 비하면 서해전자는 종합반도 체 회사이니 TSMC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경영진은 이마에 식은땀이 솟기 시작했다.
잠깐 반짝 불타오르고 말 거라고 안일하게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다.
"가용 가능한 자원 전부 긁어모아서 서진파운드리 파봐.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네, 사장님!"
다시 하루가 지났다.
마이크론은 전날 공시에 이어서 수석연구원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에 나섰다.
"서진파운드리의 공정 시스템은 매우 놀랍습니다. 그들은 설계도가 가진 이론상 최대치의 성능을 뽑아냅니다. 불량품이 거의 없이 모든 제품의 성능과 품질이 균등합니다. 마지막으로 생산단가가 기존보다 더 쌉니다."
"어느 정도로 쌉니까?"
"그것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서진 파운드리에 램 생산을 맡기는 것이 우리 회사의 이익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럼 기존의 마이크론 공장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물론 운영을 할 겁니다. 종합반도체 회사로서 만일을 대비한 자사 공장은 갖고 있어야 하니까요."
기자들은 뉘앙스가 미묘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사 공장은 어디까지나 비상대비용, 즉 보험으로만 운영을 하겠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엔도비는 곧바로 완성품 그래픽 카드의 램 표시 성능을 상향해서 발표했다.
설계는 전혀 바뀐 게 없는데, 생산공장이 바뀐 것 하나만으로 모두 풀오버클럭을 기본 탑재한 제품으로 변신한 것이다.
하이엔드 제품에 예민한 얼리어댑터 소비자들도 그에 즉각 반응했다.
"오호, 그러니까 앞으로는 램 오버클럭이 풀 패시브로 장착돼서 나온다. 이거로군?"
"젠장. 램 오버클럭 한계치까지 잡아내서 안정시킨다고 밤낮으로 고생했던 게 바보짓이 돼버렸네."
"근데 가격은 오히려 올라갔네? 이게 뭐하는 짓이지?"
"그러게. 마이크론은 분명히 생산단가가 더 낮아서 이익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 이익을 소비자에게 나눠준다고는 안 했지. 마이크론이나 엔도비, 둘 중 한 곳이 꿀꺽했을걸?"
"둘 중 한 곳이 아니라 둘이 사이 좋게 꿀꺽했다에 나는 한 표 던진다."
성능이 올랐다고 소폭으로 상승한 가격이 문제였지만, 큰 논란은 되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이름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서진파운드리에 주목했다.
"파운드리라며? 여기 그럼 그래픽램 말고 다른 부품도 앞으로 만들어 내겠네?"
"흐음, 마이크론이 일반 램카드도 서진파운드리에 맡길 게 뻔하네. 여기 주식이나 좀 사둘까?"
"응, 비상장 회사. 꺼져."
"자본금이 100억 달러라며? 그런데 비상장이라고?"
"응, 1인 소유 유한회사. 자본금 100억 달러나 되니까 외부 투자는 일절 필요 없음. 쩌는 기술 있는데 뭐하러 지분 나눠주냐?"
***
마이크론에 이어 윈텔, ADM 등도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서 한국으로 향했다.
설계의 이론상 한계치를 뽑아내는 공정라인.
최상등품의 제품만 쏟아져 나오는 생산 시스템.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이뤄졌다.
물론 그들은 마이크론과 엔도비의 발표만 믿고 무작정 덤비지 않았다.
"생산 테스트를 맡기고 싶습니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생산위탁을 얼마나 주실 겁니까?"
"글쎄요, 그것은 이 자리에서 결정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테스트를 먼저 가져보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정서진은 자신만만하게 그들의 시험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들은 최신형 제품의 생산을 맡기지 않았다.
한물 지나간 구세대 설계의 제품을 맡김으로써, 설계 유출을 방지하려고 했다. 아무리 유출 금지 계약을 해도 신생업체를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설계 기술을 차곡차곡 축적해서 5년, 10년 뒤에는 경쟁사로 변할지도 모르니까.'
TSMC도 '고객과 경쟁하지 않겠다.', '영원히 설계를 하지 않겠다.'라는 신뢰를 얻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던가.
한편 윈텔과 ADM의 방문 소식은 서해전자의 반도체 관련주를 더욱 떨어뜨렸다.
물론 서해전자 입장에서는 당장 주가가 떨어진다고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오히려 반도체와 무관한 경영지원부는 이것을 오너 일가의 지분 확장기회로 삼으려고 했다.
정작 큰 펀치를 맞은 것은 엉뚱하게도 서해건설이었다.
"이상하다. 반도체 관련주도 하한선까지는 안 치는데, 우리는 왜 며칠 연속 하한선만 치고 있는 거지?
"박 과장, 그게 전부 서해공장 건설 때문이잖아. 그 공장에 90조 원넘게 들어갔으니까."
"그 90조 원이 서해전자 돈이지 우리 돈은 아니잖아?"
"우리 건설대금 미수금이 한 19조원쯤 쌓여 있을걸?"
"……뭐야? 그렇게 많았어?"
"같은 그룹 맏형이라고 우리가 엄청 편의 봐주면서 공장 짓고 있잖아,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