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79화
121장 청담의 아버지(3)
해진타운아파트,
촌스러운 이름인데 심지어 '청담'
이란 글자도 안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알겠지만, 매우 오래된 아파트다.
층고도 12층으로 비교적 낮은 데다가 '무려' 지상주차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복도식이다!
하지만 위치는 아주 좋다.
한강을 바로 접하고 있어 경관이 매우 좋은 데다가, 올림픽대로로 바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이라면 너무 오래돼서 살기가 불편하다는 것.
아파트 배관 자체가 낡아서 녹물이 걷잡을 수 없이 나오고, 단열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옛날 시설이라서 현대화 시설에 비하면 미숙한 게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531세대나 되는 거주민들은 긍정적인 마음을 꾹 품은 채 이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존버는 승리한다. 재건축의 그 날은 언젠가 반드시 온다."
"재건축의 그 날은 절대로 쉽게 오지 않는다. 재건축의 그 날은 우리 재건축추진조합의 모두가 깨지고 박살 나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 온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아파트가 솟구쳐 40층을 찔러 올리고 한강물이 뒤집혀 재건축 승인을 축하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이기 전에 와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한강을 끼고 있는 30년 이상 오래된 낡은 아파트 단지.
세대는 무려 531세대.
현대건축기술의 용적률을 생각하면, 동일평수로 치면 적어도 2,500세대 이상은 너끈히 뽑아낼 수 있다.
당연히 건설사들은 너도나도 탐을 내며 재건축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재건축 승인은 쉽지 않았다.
서울시는 재건축 허가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매번 단호한 입장으로 요청을 반려했다.
"시는 한강 주변에 시민공원 등 공유문화시설을 조성하여 시민의 품으로 돌려드릴 겁니다."
"한강 주변에 아파트나 상가빌딩등 사유시설 건설승인은 일절 허용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을 영원불변한 시의 방침입니다."
서울시는 오래전부터 한강 주변의 사설개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한강의 경치를 일부가 사유지화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것.
그 때문에 해진타운아파트는 모든 재건축 요건을 갖추었음에도 매번 불승인의 쓴물을 들이켜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해진타운아파트는 호가만 높을 뿐 시중에서 거래되지도 않았다.
서울시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데 어느 매수자가 선뜻 손을 내밀겠는가.
"평당 7천이 넘는 걸 벌컥 샀다가 재건축 승인 끝까지 안 떨어지면 어떡해?"
"지금 서울시에서는 평당 3,000만 원에 매입하겠다고 나오는 판인데. 강제수용되면 앉은 자리에서 얼마나 날리는 거야."
"재건축 승인 나오면 그때 뛰어들어도 늦지 않아."
현재 해진타운아파트에 실제로 살고 있는 소유주는 대부분 오래전부터 살아온 이들이었다.
즉 전 재산이라고는 이 아파트 한 채인 이들.
돈 많은 소유주들은 자신이 살기보다는 타인에게 세를 주고 있었다.
-우리는 절대 재건축 승인 못 내 준다.
-끝까지 거기 살든가, 아니면 팔고 나오든가 그것은 각자의 선택.
-근데 매수 희망 대기자들, 잘 들어. 그거 사봤자 재건축 승인 끝까지 안 나올 거라는 건 알지?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바위처럼 단단하게 틀어막고 있는 서울 시의 방호, 그것이 결국 뚫릴 줄이야.
-지금 재건축조합은 아주 축제 분위기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분위기예요.
"그렇겠죠. 얼마나 오랫동안 밀어붙인 건가요? 제가 알기로 조합이 설립된 게 15년은 넘었다고 들은 거 같은데."
-17년입니다.
"17년 동안 재건축 승인 하나만 보고 달려왔으니…… 감동이 장난 아니겠어요."
-그동안 조합장만 두 번이 바뀌었죠. 심지어 바뀐 이유도 전대 조합장의 고령으로 인한 사망이었습니다.
"해진타운아파트야말로 청담의 상징이라고 부를 만한 도시죠. 수십년 전 강남 재개발계획이 발표되고, 청담에 들어선 최초의 현대적 아파 트였으니까요."
-여러 가지로 우여곡절이 있는 곳이죠. 지금 청담동 며느리들은 해진타운아파트가 옛날에는 청담 최고의 아파트였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위치만 봐도 딱 하니 견적이 나오는데 말이죠. 아무나 한강 주변에 터를 잡을 수는 없는데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건설사들이 재건축 승인을 따내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피를 보고 물러났다.
"그런데 절대 승인을 내주지 않을 것 같더니, 이렇게 갑자기 승인해 준다고요?"
-대신 어려운 조건이 붙었습니다.
"역시 그렇겠죠. 조건이 뭡니까?"
-100% 완전 사유화는 절대 불가하다는 게 시의 방침입니다.
"사설 아파트 단지지만 공중에도 시설을 어느 정도 개방하라는 뜻이군요."
-맞습니다. 중요한 조건은 제가 톡으로 지금 보냈습니다.
하수영은 통화를 끊지 않고 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상 총면적의 80% 이상, 총주차시설의 50% 이상, 모든 아파트 동의 중간층 이상의 높이에서 10%이상을 공중에 개방하라……."
-유지보수에 필요한 적절한 요금을 받는 것은 상관치 않겠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냥 아파트는 안 되고, 주상복합아파트처럼 어느 정도 시설을 개방하라는 뜻이네요."
그냥 아파트일 경우에는 전체가 사유지이므로 공중시민에 대한 배려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시는 한강을 찾는 서울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기를 요구했다.
"공중수영장, 공중공원, 공중화장실, 카페나 음식점 운영을 위한 상가공간 의무적 할당…… 심지어 고층공간의 뷰도 어느 정도는 시민들한테 내놓으라, 이거네요."
-그 조건 전부 맞추려면 머리가 아플 겁니다. 뚝딱 짓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하니까요.
"아직 시공사는 정해지지 않았죠?"
-지금은 아파트를 허물어도 된다는 허가만 났을 뿐이니까요. 이제 이 조건을 맞춘 건설안 허가를 받아야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개시할 수 있을 겁니다.
"10대 건설사들은 죄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달려들겠네요."
-일부는 컨소시엄을 구축해서 뛰어들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서울시에서 이만한 건설 매물은 수십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거라 서요.
"청담동 한강뷰 대단지 아파트 건설 프로젝트가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니죠."
서울시의 오랜 방호를 뚫고 겨우 얻어낸 맛있는 과실이다.
-회장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역시 단독으로 하기에는 무리겠죠?
서진파운드리에 10조 원을 쏟아부은 걸 알고 있는 우형신은 당연히 다른 회사와 연합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제가 다른 건 다 참아도 공동명의 만큼은 못 참죠. 당연히 단독으로 할 겁니다."
-매물이 워낙 커서 자금이…….
"아아,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청담동 매물 전체가 떨이로 나오지 않는 이상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순간이나마 우형신은 하수영의 패기 넘치는 태도에 묘한 감동을 먹고 입을 다물었다.
"일단 조합장과 간부들부터 만나봐야겠습니다. 가급적 빨리 약속 잡아 주실 수 있나요?"
-네, 알겠습니다.
***
하수영은 약속을 잡고, 조합 간부들을 만나서 식사까지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합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하수영앞에서 무척 호의적이었다.
청담동에서 오래 산 중년 이상의 연령층에서 하수영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으니.
"정말 혼자서 재건축 프로젝트에 뛰어드실 예정이십니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묻는 어느 조합원의 말에 하수영은 미소를 잔뜩 머금고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건설사는 그럼 어떻게……."
"일단 JS건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능력이 되는 5대 건설사 중에서 적절하게 선별을 할 수도 있습니다."
"흐음……."
"조합원 전원이 현물출자, 즉 지주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믿고 제게 맡겨 주시죠."
현재 재건축 조합원은 전부가 땅주인들이다. 현금을 밀어 넣은 외부 조합원은 한 명도 없다.
재건축의 희망이 보이지 않다 보니 초기에 들어온 이들은 결국 포기하고 돈을 뺐고, 최근 10년 동안은 외부 조합원 영입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내 입장에선 아주 먹음직스러운 매물이지.'
"땅을 전부 팔라니……."
조합장과 간부들은 침음성을 흘리며 고민했다.
하수영은 다른 건설사들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은 상태였다.
'당신들의 땅, 그냥 나에게 전부 넘기십시오.'
즉 건물을 지어주고 출자한 땅에 해당하는 아파트 세대를 공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소유권 자체를 아예 달라는 것.
"한마디로 아예 송두리째 팔아달라, 이거군요."
"그렇습니다."
"대신 정상적인 재건축분양에서 받아야 할 아파트를 저렴하게 전세를 주신다는 거고요. 보장기한은 최소 10년."
"아아, 현시점에서 만 60세 이상의 조합원들에 한해서는 본인과 배우자가 모두가 사망하는 시점까지 보장해 드립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원래 몫으로 받아야 할 아파트 소유권을 의원님께 넘기고, 거기에 저렴하게 전세로 살게 해주겠다 이건데……. 왜 이렇게 하십니까? 이러면 의원님에게 전혀 이익이 없지 않나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번 생은 청담동 부동산 매물 수집에 꽂혀서요. 상가든 나대지는 주택이든 나오는 대로 부지런히 사 모으고 있죠."
"흐음……."
"매입 시세는 여러분들의 기대치보다 40% 이상 프리미엄을 얹어드립니다. 반면 전세대금은 1억 원으로 일괄 통일할 예정입니다."
"1억 원이라고요?"
조합원들은 놀라서 술렁거렸다.
40%의 프리미엄을 얹어서 매입해 준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겨우 1억 원에 다시 전세를 주겠다고?
그것도 10년 이상, 60세 이상은 그 배우자 모두 죽을 때까지 기한을 보장한다?
못해도 아파트 한 채당 수십억 원이다. 그걸 전세 1억으로 주겠다는 것은 그냥 거저 살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1억 전세는 사실 형식적인 겁니다. 저와 임대차 계약 관계다, 라는 것을 서류화하는 거죠."
"그, 그렇지요."
"장담하건데 다른 건설사들은 절대로 엄두도 내지 못할 근사한 시설로 재건축할 겁니다. 40% 이상 더 받아서 미리 팔고, 그리고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최소 10년 이상 살게 해드리겠다는 게 제 제안의 핵심이죠."
"……."
"……."
"대충 한 채당 100억씩 잡아봅시다. 여러분들은 앉은 자리에서 99억원을 즉시 챙기신 다음, 1억 원은 보증금으로 내고 10년 이상, 혹은 죽을 때까지 거주하실 수 있습니다.
아! 관리비도 일절 받지 않겠습니다."
"관리비도 전액 면제라."
"하하, 서비스입니다, 서비스."
다른 시공사들은 절대로 맞춰줄 수 없는 조건이다.
하수영은 이것으로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 조합장님!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요! 조금 더 여기저기 말 들어보고 결정을 하자고!"
"왜, 왜 그러시나! 자네들도 모두 찬성했잖우!"
"이거 어쩔 겁니까! 이쪽은 즉시 100억 꽂아주고 나중에 전세 1억으로 10년 이상도 살게 해준다잖아요! 관리비도 못해도 몇백은 할 텐데 그것도 안 받겠다잖아요!"
"진짜 내가 조합장님 그 급한 성질 때문에 미쳐! 아니, 이미 낙장불입됐으면 아예 다른 자리 미팅은 만들지도 말던가! 이제 배 아파서 우리 어떻게 잠을 잡니까!"
"그러게 주식은 팔았으면 그 다음에는 시세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고…… 크윽! 조합장님! 진짜 우리 돈 어떻게 할 겁니까! 예!"
갑자기 조합원들이 조합장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되자 하수영은 당황했다.
이 분위기는, 설마…….
하수영은 침울히 입을 다문 어느 조합원을 향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미 건설사와 계약 끝난 겁니까?"
"……예."
"그럼 이 자리는 대체 왜 만들 아니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그건 나중에, 나중에, 휴우."
하수영은 미간을 주무르며 시선을 날카롭게 가다듬은 후 차갑게 물었다.
"어딥니까, 그 건설사가?"
"라테건설과 서해건설 연합입니다. 아파트 공급 외에 따로 5억 원을 현찰로 바로 준다고 해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