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77화
121장 청담의 아버지(1)
박청단, 온시연, 구임춘.
강남구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으로, 모두 다 같이 여당 소속이다.
원래라면 그들이 홍보용 사진 촬영말고는 구의회를 찾을 일이 좀처럼 없다.
애초에 구의원 같은 기초의원은,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열렬히 간택을 기다리는 궁녀와 마찬가지 존재다.
하지만 그 당연한 세력 구도에 하수영이라는 거대한 가물치가 뛰어들어서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그래요? 별로 중요한 안건은 아닌가 보군요."
"법안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느냐면은, 우리 셋이 없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제가 걱정할 게 뭐 있나요. 저야 일개 구의원인 걸요."
"어이구. 어느 누가 감히 하수영의원님을 일개 구의원이라고 하겠습니까? 이 좁은 강남땅에서 감히 누가 그러겠어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
기초의원 1명 vs 국회의원 3명.
하지만 그들 셋이 굽실거리는 것을 보면, 국회의원 1명과 기초의원 3명의 관계로 보일 정도다.
힘의 역학관계가 완전히 뒤집어져 있는 것이다.
"아, 박청단 의원님. 그러고 보니 이번 달에 월세 입금이 조금 늦어지 시던데, 혹시 사무실 재정이 많이 어렵습니까?"
"예? 월세가 안 들어갔습니까?"
박청단 의원은 화들짝 놀라서 안색이 뻣뻣해졌다.
다른 두 의원과 달리 그는 청담동이 포함된 지역구 의원이었고, 의원 사무실을 청담동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의원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의 주인이 바로 하수영이었다.
"네, 사흘이 지났는데 사무실 월세가 안 들어오더라고요. 뭔가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 말씀을 드릴까 했는 데, 단순히 실수로 며칠 늦어지는 걸 수도 있고 해서요."
"죄송합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박청단 의원은 곧바로 사무실을 뛰쳐나가더니, 몇 분 후 밝아진 표정으로 들어왔다.
"하수영 의원님, 제가 지금 사무실 보좌관에 전화를 해서……."
"아, 지금 막 들어온 거 확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무실 관리하는 친구가 회계결산 작업이 늦어져서 깜박했다고 합니다. 재정상에 문제가 생긴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괜히 말 꺼내서 체면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네요."
"아닙니다. 모든 게 제 불찰입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바로 말씀해주십시오. 즉시 시정하겠습니다."
다른 두 국회의원은 속으로 박청단을 비웃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도…….
"온시연 의원님, 구임춘 의원님. 요즘 가게는 잘 되어가시나요?"
"물론입니다.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이거, 현역 국회의원분들을 제 건물 세입자로 알게 될 줄은 몰랐네요. 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어요. 그쵸?"
"허허,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청담동에서 카페, 레스토랑을 각각 운영하고 있는데, 입주한 건물의 소유주가 바로 하수영이었다.
얼마 전 백두백화점에 머쉬룸 서비스 입점 조건으로 왕창 사들인 빌딩중에 두 사람의 사업체가 입주해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하수영은 현재 60호기까지 목록을 늘렸으며, 19호기는 아직도 미구매 상태다.
(19호기는 김주원이 소유한 그라디에이원 백화점) 물론 건물주와 세입자라는 관계만으로 국회의원이 기초의원한테 굽실 거리는 일은 없다.
애초에 하수영은 무소속, 자신의 힘만으로 구의원에 당선된 인물이다. 그들에게 아쉬울 게 전혀 없다.
"오늘도 입당을 권유하러 온 거라면 제가 웃으면서 거절하겠습니다.
아직은 무소속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더 많이 있다고 생각이 돼서요."
"아이고, 아닙니다. 입당 이야기는 오늘 조금도 꺼낼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렇지요, 박청단 의원님?"
"네, 맞습니다. 입당이라니요. 오늘 그런 건 언감생심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듣자 하니 이번 구의회 보궐 선거에 하수영 의원님이 관심이 있으시다고 들은 거 같아서요."
"아, 구의원 보궐선거 때문이시군요."
강남구의회 의석은 총 23석.
여당 11석, 제1야당 7석, 제2야당 3석, 무소속이 2석(하수영과 최우석).
그런데 여당 구의원 한 명이 벌금형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었고, 자연히 보궐선거가 열린 것이다.
"이번에 구의원 행정직원 한 명이 보궐선거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그게 사실인가 해서……."
하수영은 웃는 얼굴로 확인해 주었다.
"박조휘 씨요? 맞을 겁니다. 저번에 밥 먹으면서 들었는데 출마 의사를 확실하게 밝히더군요."
"정말입니까? 그 친구가 정말로 보궐선거에 나가는 겁니까?"
"네, 무소속으로 나갈 겁니다. 제가 조금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
"……."
"……."
세 국회의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지금 강남구의회는 11 vs 7 vs 3vs 2가 아니라, 11 vs 7 vs 5나 마찬가지다.
제2야당의 3석은 사실상 무소속의 친위대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과 제1야당의 당론이 갈릴 때마다, 최우석과 하수영이 중간에서 결정을 짓는다.
그런데 이제는 10 vs 7 vs 6이 될 판이다.
하수영이 적극 밀어준다면, 구의회행정직원이라고 해도 쉽게 당선이 될 테니까.
'지금 의석 하나 날아가는 게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근래 들어 기초의원들의 술렁거림이 커지고 있다는 것.
구의원은 물론이고 시의원들까지도 하수영이 본격적인 정치 세력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박조휘 후보 예정자를 시작으로 해서, 하수영이 자신만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려 한다는 관점이다.
"강남에서 정치하려면 하수영 의원님한테 붙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거대 정당에 붙어야 있어야 나중에 중앙정치로 진출을 하든 말든 할 텐데……."
"무슨 소리야. 지금 강남3구는 이미 하수영 의원님, 최우석 의원님이 꽉 잡고 있다고, 다음 총선 때 지금 여당, 야당에서 거기 3석 먹을 수 있을 거 같아?"
"다음 총선 공천받으려고 열심히 뛰어다녔던 사람들만 낙동강 오리 알 신세 된 거지."
"시의회 의석도 강남 쪽은 하수영의원 계파가 다 먹을걸?"
"근데 거기는 무소속인데 계파라고 하기에는 좀."
"아무튼 지금 강남에서 정치하려면 줄 잘 서야 돼. 두고 봐라. 이번 총선, 지방선거는 몰라도 다음 선거에서는 기존 강남구도 완전히 박살 난다."
강남구의회 23석.
서울시의회 강남구역 6석.
일단 29석은 가칭 '하수영당' 혹은 '하수영계파'가 조만간 먹어치우리라는 것이, 반쯤 예정된 것이었다.
"서초구와 송파구도 결국 함께 움직이게 될 텐데. 강남3구는 최종적으로 하수영 의원의 손에서 좌지우지하게 될 거야."
"하수영 의원, 다른 재벌하고는 전혀 달라서 정치적 출세에 대해 국민들이 거부감도 없어."
"지금 겨우 스물둘인데, 서른쯤 되면 중앙 정치판에서도 크게 한자리 차지할 게 틀림없고."
"왜 무소속으로 남아 있겠어? 굳이 기존 정당 들어가서 텃세 당하면서 정치 할 필요 없다 이거야."
"인지도가 없어, 돈이 없어?"
"강남3구 국회의원들은 지금 발등에 불 떨어진 셈이지."
***
박조휘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 누구도 그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행정직원 주제에 하수영한테 아부를 잘 떨어서 간택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강남구역 정치인들의 시선은 한결 같이 하수영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시군요. 소문을 들어서 혹시나 했는데 이미 그렇게 결심을 하신 것이라니…… 그럼 하수영 의원님이 그 친구를 적극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냥 사무실 구해주고 여러 가지 간단한 편의나 봐주는 정도입니다. 제 후원회 멤버들에게 소개도 시켜줬지요."
세 국회의원들의 표정이 아찔해졌다.
하수영후원회에 소개를 시켜줬다면 이미 다 끝난 게임 아닌가!!
"여러분들이 염려하시는 게 뭔지 압니다. 저는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싶을 뿐, 더 큰 무대에 뜻이 없습니다. 그러니 괜한 걱정은 접어두셔도 됩니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는 절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왜 다른 생각을 하겠습니까."
하수영은 웃는 얼굴로 쐐기를 박았다.
"박조휘 후보 예정자는 강남구의회를 위해 좋은 인물이라고 생각돼서 제가 출마를 권유했을 뿐입니다. 시의원 이상 나아갈 감은 아직 아니니 안심하세요."
'아직 아니라고? 아직이라고?'
'그렇다는 것은, 결국 언젠가는 세력을 크게 키운다는 뜻이렷다……!'
그날 저녁, 하수영은 퇴근길에 박청단 국회의원을 다시 마주했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하수영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수영 의원님,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국회의원 vs 기초의원.
60대 중진 국회의원 vs 20대 초선 구의원.
하지만 박청단은 자신의 정치적 대부를 대하는 것처럼 깍듯하게 굴었다.
"혹시 창당에 뜻을 두고 계시다면 언제든지 이 불초한 몸을 불러 주십시오. 그저 갖다가 원하는 대로 쓰시면 됩니다."
"창당이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다만 언제고 큰 뜻을 펼칠 때가 오시면, 지금 제가 드린 말씀을 떠올려 주십사 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다음 공천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에서도 출마 자제를 은근히 압박하고 있으니…… 하지만 강남구는 내 지역구다. 내가 4선이나 거쳐 온 곳이야!'
현재 상황상 박청단은 지금 당에서 다음 국회의원 선거 출마가 어려웠다.
하지만 당을 옮긴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막 피어나는 신생당에서 한 자리를 맡을 수 있다면, 손주뻘인 하수영앞에서 얼마든지 머리를 납작 숙일수 있었다.
***
하수영은 청담동 저택 한옥에서 최우석 부의장과 바둑을 두며,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야. 자네를 새로운 정치적 구심점으로 인식한 사람들이 이제 슬슬 몰리기 시작하는 거지."
바둑알을 힘차게 내려놓으며, 최우석은 강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자네야말로 진정한 청담의 아들이지. 청담 토박이 주민들은 부동산만 수조 원을 갖고 있는 자네를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잖은가."
후원회 노인들이 하수영을 강력히 지지하는 힘은, 결국 부동산에서 나온다.
하수영은 청담동과 영원히 모든 것을 함께하리라는 것을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재산 대부분이 청담동에 집중 돼 있으니.
거대하고 굵은 뿌리를 굳건하게 내린 젊은 거목을 향해, 주변의 생물들이 몰려드는 것처럼.
"이제 자네가 원치 않아도 자네를 어떻게든 크게 띄우려는 움직임이 커질 수밖에 없네. 거기서 조절을 잘해야 하네. 자네가 나처럼 계속 구의원으로만 남아 있고 싶으면 말이지."
"부의장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난 구의회 안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지. 하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가려는 이들은 아낌없이 격려하고, 지원하고, 밀어주었네."
바둑판을 노려보는 최우석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 덕분에 무소속임에도 불구하고 강남구의회에서 의장조차도 내 앞에서는 허리를 숙이는 거지. 지금도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달려올 국회의원들이 수두룩하다네."
바둑알을 훑던 날카로운 눈빛이 하수영을 향했다.
"그러니 한 수만 물러주게. 아니, 두 수. 아니아니, 세 수만!"
"프리덤, 바둑 두시던 부의장님 어디 가셨는지 봤냐?"
-지금 바로 앞에서 물러달라고 사정 중이십니다. 이것도 딥러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