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76화
120장 종합그룹 체제를 갖추다(2)
정서희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 진짜 자기 돈으로 인수했겠어요? 저번에 1:50 비율로 회사 두개 합병하면서 돈 엄청 챙겼잖아요. 아마 이번에 그 돈을 다 썼을 거예요."
"그런 일이 있었나요?"
"네, 승계작업 한다고 이현덕 부회장이 1대 주주인 회사하고 서해물산이 합병했는데, 그때 이현덕 부회장이 수조 원대 이득을 봤죠."
"아하, 이번에 그 돈을 쓴 거군요."
"네, 전자 지분을 늘릴 기회니까 옳다구나 싶었겠죠."
순환 출자 지배를 하는 이유는 결국 돈이 모자라서다.
돈만 충분하다면 가장 우량회사인 서해전자의 주식을 본인의 명의로 보유할 것이다.
서해생명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었으니 보유 중이던 전자 지분을 매각하기에도 명분이 좋고,
"덕분에 지금 서해전자는 주당 7만 원 돌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에요."
"저런, 그거 곧 망할 텐데."
"왜요? 뭔가 아시는 거 있어요?"
정서희는 관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하수영이 서진파운드리에 10조 원을 투자한 것과 연관성이 있을까?
"우리 정서진 박사님이 기가 막힌 기술을 개발하셨거든요. 그게 상용 화되면 서해전자가 좀 타격을 입을 겁니다. 주가가 좀 뼈아프게 될 거예요."
"어머, 어느 정도나요?"
"그거야 뚜껑을 열어봐야 알죠."
"왠지 수영 씨 표정 보면 반 토막이상은 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에이, 반 토막만 나겠어요?"
겨우 반 토막?
그 거대한 반도체 사업부를 완전히 정리하고, 팹리스로 다시 거듭나야 할지도 모르는 판국인데.
그 많은 반도체 생산공장에 들어간 매몰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며, 나노공정기술 축적을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쌓은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서해전자 반도체사업부는 팹리스를 하기에는 경쟁력이 턱없이 모자라다.
반도체를 찍어내지 못하는 서해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더 이상 예전의 위상을 되찾을 수 없다.
***
정서희는 하수영과 헤어지자마자 곧장 친오빠 정서진한테 연락을 취했다.
"오빠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는 거야."
한참을 더 통화를 시도하고 나서야 정서희는 가까스로 통화가 연결될 수 있었다.
"오빠, 대체 집에는 언제 들어오는 거야?"
-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지금 한 달 넘게 안 들어오고 있는 거 알지? 엄마 아빠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데."
-집에만 가면 또 반도체 회사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물고 늘어지실거 아니야. 내가 그 잔소리가 견딜 수가 없어서 지금 밖에 피신해 있는 거다.
"엄마 아빠 입장에서야 걱정되니까 그렇지. 오빠가 대체 어떻게 수영씨를 현혹해서 10조 원이나 삥 뜯었는지. 나중에 나하고의 사이까지 잘못되면 곤란하잖아."
-삥 뜯다니! 엄연히 정당한 투자를 받은 거라고!!
"이상하잖아. 오빠가 한국대 반도 체공학부 출신인 건 인정하지만, 석사도 다 못 마쳤는데 10조 원이나 투자받을 만한 기술을 혼자 개발했다는 게."
-두고 보면 안다. 곧 세상이 뒤집어질 거다. 흐흐…….
"혹시 서해전자 주식도 반 토막 나고 막 그 정도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거야?"
-서, 서해전자?
정서진의 목소리에 갑자기 찔끔하는 기색이 섞였다.
하필 서해전자라는 단어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뭔가 있다.
'혹시 서해전자만 딱 저격하는 킬포인트 아이템일까?'
서해전자는 결국 공정의 최적화, 양산화가 핵심이다.
다른 반도체 회사들보다 훨씬 가늘게, 그리고 안정적인 품질과 수율로 작업물을 뽑아낸다.
파운드리라고 하니, 역시 그런 쪽 기술인 것일까?
'서해전자가 로열티 주고 사서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획기적인 공정기술이라도 개발한 걸까?'
-야, 알지? 동생이라도 기밀이라서 말 못 하는 건 말 못 하는 거야. 그냥 나중에 두고 보면 안다.
"알았어. 나도 끝까지 캐물을 생각은 아니었어. 그냥 서해전자와 관련이 있나 없나만 알고 싶었지."
-너 혹시 서해전자 반도체 관련주갖고 있으면 언제든 정리할 준비 하고 있어. 내가 귀띔해 주면 바로 정리해.
이 정도는 내부거래에 들어가지 않기에, 정서진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나도 수영 씨한테 비슷한 이야기는 들었어. 알았어. 나중에 때 되면 말해줘."
-그래.
"근데 10조 원 중에서 오빠 지분은 몇 퍼센트나 돼? 공시의무가 없는 회사라서 내가 알 수가 없네."
-몰라도 돼.
"49%? 50%? 설마 경영권 보장한다고 51%? 오빠, 남의 돈 5.1조 원을 그렇게 날로 먹으려고 하면 안돼."
-…… 진짜 몰라도 돼.
반도체 업계가 아닌 식품 쪽이다.
보니, 정확한 지분 비율까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정서진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유 지분 0%라는 걸 알면 얼마나 또 오빠를 놀려댈 것인가.
***
서해생명보험의 정리 절차가 모두 끝났다.
이현덕 부회장은 서해생명이 보유하던 한 자릿수 서해전자 지분을 모두 사들였다.
연금공단 등 다른 주주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시세보다 조금 비싸게 사들였지만, 그는 만족했다.
서해생명이 보유하던 캐시 카우 보험상품들은 가능한 서해화재보험으로 이전했다. 또 일체의 그룹 계열사 지분도 모두 흡수해서 순환출자 구조 재편성을 마쳤다.
알짜배기가 상당히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서해생명은 한때 순자산 300조 원에 달하는 대형 보험사였다.
당연히 군침을 흘리며 탐을 내는 인수희망자들이 많았다.
인수희망자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심지어 중동에서조차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바로 프라임오일이었다.
"서해생명을 인수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JS그룹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JS그룹과는 정유, 건설, 중공업 등 다방면에 걸쳐 크고 밀접한 비즈니스 제휴를 맺고 있다.
그런 굳건한 신뢰 덕분에 서로 손을 잡고 서해생명을 인수할 수 있었다.
프라임오일이 의료재단에 쪽쪽 빨린 시간이 길다 보니, 당장 단독으로 서해생명을 인수하기에는 현금이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JS그룹이 한 손 크게 거들어주면서 공동경영체제 형태로 인수하게 된 것이다.
JS그룹 계열사와 프라임오일, 프라임컴퍼니가 보유한 서해생명지분을 모두 합치면 51%가 된다.
"금융업에 진출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것으로 제조업, 정유, 금융 등 굵직한 세 가지 사업을 모두 운영하시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프라임그룹은 이제 누가 봐도 종합 기업집단으로 나아갈 길을 갖춘 겁니다."
일개 식품회사에서 출발한 회사가 대기업 그룹 체제의 뼈대를 빈약하게나마 갖췄다.
전성렬과 정서희는 감개가 무량하기 그지없었다.
"이번에 서해그룹이 손해를 좀 크게 봤겠죠?"
"주주들이야 손해를 좀 봤지만, 오너 일가야 오히려 이득이죠. 지배구조 체제를 더 단단히 했을 뿐만 아니라 승계 작업도 유리해졌습니다."
"하긴, 이번에 서해생명이 가졌던 서해전자 지분이 오너 일가에 들어간 것만 해도."
"경기도 반도체 신공장에 100조원을 붓는다지요? 그것만 완공되면 이제 서해전자는 더욱더 날아갈 일만 남았네요. 지금 서해그룹이 서해 생명 때문에 본 손실은 잠깐일 뿐, 금방 만회가 될 겁니다."
JS그룹 총수의 친동생, 허재우 부회장의 말에 정서희는 억지로 표정 관리를 했다.
잘은 모르지만, 하수영과 친오빠정서진은 서해전자 반도체 사업이 휘청거릴 거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피해를 볼지, 그게 복구는 되는지는 아직 알수 없지만,
'그래도 수영 씨가 10조 원이나 쏟아부은 걸 보면 허투루 한 말은 아닐 거야.'
지금까지 검증된 바로 보면, 하수영의 투자는 옳았다.
그것도 언제나, 심지어 예상 밖으로 크게 옳았다.
농사지으려고 산 땅에서 수조 원짜리 금 문화재, 수십조 원 규모의 금맥이 펑펑 터져 나오는 사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서진파운드리가 범프라임그룹 계열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요."
"아, 맞을 거예요. 수영 회장님께서 투자하신 기업이니까요."
"그 회사 CEO가 제가 듣기로 아마……."
"네, 제 친오빠예요."
"허어, 남매분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수영 회장님은 정말 든든하시겠어요. 이렇게 뛰어난 남매 경영진이 좌우에서 본인을 보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프라임그룹을 떠올리는 허재우 부회장의 눈빛이 깊어졌다.
'수영그룹'과 '프라임그룹'은 엄연히 별개이지만, 사실 한 몸통으로 봐도 좋다. 프라임그룹의 오너가 하수영이니까.
농업, 부동산임대업, 축산업, 식품제조 및 유통업, 정유업.
여기에 보험업과 반도체 파운드리까지 끼어든, 명실공히 대기업 체제의 기업집단이다.
제대로 따져보지 않아서 그렇지, 이미 '수영그룹'은 실상 국내 재계 10위권에 진입하지 않았을까?
'역시 프라임오일과 손을 잡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한때 정유업계 부동의 1위였던 SC 이노베이션이 지금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쓸어내려지는 결정이었다.
***
하수영은 참 많은 역할을 갖고 있다.
그에 따라서 해야 할 일도 많다.
프라임그룹이야 전성렬과 정서희체제로 알아서 굴러간다지만, 그 외에는 둘에게 맡길 수 없는 영역이다.
농장 자동화 체제를 갖춰 놓지 않았으면 아마 과로사 방지를 위해 엘릭서를 좀 더 많이 먹었을지도 모른다.
레스토랑은 이제 지배인 셰프 체제로 잘 돌아가고 있어서, 하수영이 개입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다.
높은 급여와 좋은 지원 복지, 여기에 프리덤의 실시간 감시 시스템이 결합한 덕분에 탈 없이 잘 굴러간다.
가게에 주인이 없으면 돈이 빈다지만, 프리덤 덕분에 그럴 일도 없다.
부동산 임대업이야 건물관리인들이 알아서 하고, 요즘에는 자잘한 보고 내역들은 프리덤이 전자보고 등으로 검토해서 처리한다.
하수영이 하는 것이라고는 매도인과 계약하기, 건물 구경하러 다니기, 임차인과 노닥거리기 정도다.
해운대 누리마루를 개조한 수영펜션도 잘 굴러가서 더 이상 손 쓸 것이 없어졌다. 그냥 큰 방향만 이 따금씩 제시하고, 그에 걸맞은 돈만 내주면 된다.
양식장, 충남 김치공장, 수영농장산작물을 유통하는 프라임유통, 백화점에 골든 트러플 등 버섯 고급 식자재 납품 등, 웬만한 일은 하수영이 세세하게 신경 쓰지 않아도 매끄럽게 잘 굴러가고 있었다.
애초에 그러려고 프리덤을 만들고, 업그레이드한 것이니.
하지만 프리덤이 완전히 대체해 줄 수 없는 역할이 있었다.
바로 기초의원으로서의 역할과 업무다.
"아이고, 우리 하수영 의원님 오셨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남구의회를 들어서자마자 중진 정치인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모두 세 명인데, 바로 강남구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들이었다.
특히 지역구에 청담동이 포함된 박청단 국회의원은 하수영의 신발이라도 핥을 듯한 눈빛이었다.
"아니, 바쁘신 분들이 국회는 내팽개치고 지역구에만 있으시면 어떡합니까? 오늘 본회의 있는 날 아닌가요?"
"허허, 우리 셋 정도가 결표한다고 해서 찬반 결과가 바뀌는 법안들은 없어서 괜찮습니다."
"암요, 오늘 안건들은 우리 셋이 있든 없든 결과가 전혀 바뀌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과 사람을 직접 맞대는 정치사교 역할만큼은, 프리덤이 온전히 대행해 주지 못한다.
보통은 국회의원이 그 지역구에서 왕이나 다름없고, 시의원, 기초의원들은 심하게 말해서 졸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강남구의회에서는 다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