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474화 (474/1,270)

프랜차이즈 갓 474화

119장 큰돈 줄래, 작은 돈 줄래?(5)

서해생명 민영진 사장은 좋았던 기분이 깔끔하게 날아가 버렸다.

주가는 전날 대비 -15% 이상 빠져 있었다.

장 시작부터 이렇게 찍고 시작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짐이 안 좋다.

'설마 작전인가?'

하지만 이 거대한 서해생명을 상대로 누가 장난을 친다고?

민영진 사장은 얼른 기획실을 호출해서 어떻게 된 건지 닦달을 했다.

그래도 기획실은 상황을 파악하고 보고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밤사이 안 좋은 소문이 좀 돌았습니다."

"밤사이? 무슨 소문?"

"이번에 추가로 지급한 5조 원대 보험금이 결국 발목을 잡은 겁니다."

"아니, 주가가 떨어질 거면 그럼 그때 떨어졌어야지 왜 다 깔끔하게 끝난 지금에서야 떨어지는 건데?"

"그때는 그게 회사에 얼마나 손해 일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저희 해석입니다."

"끄응……."

회장님이 주가를 확인하면 곧바로 호통을 칠 텐데.

어젯밤에 회장님께 칭찬과 격려를 듣고 얻은 말끔한 기분이 깡그리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시간 지나면 금방 회복될 겁니다. 곧 호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이참에 자사주나 좀 매입을 해두지. 바로 실행해."

"예, 사장님."

민영진 사장은 일단 그렇게 수습하기로 했다.

다행히 점심이 넘어 오후가 돼서도 회장님이 따로 호출을 하거나 질책성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그룹 본부에서도 어쩔 수 없는 일시적인 하락세라고 판단을 한 듯했다.

"사장님, 우리 회사주의 시중거래량이 늘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들이 사들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우리 그룹 계열사들이?"

"아닙니다. 우리 그룹 계열사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고, 대신 개인 계좌들이 다수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너 일가 차명 계좌들이 움직이는구나.

민영진 사장은 그렇게 직감하고, 한시름 놓았다.

회장님은 이번의 주가 하락을 오히려 지분량 확대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장 마감 직전 -16%까지 내려갔던 주가는 잠시 주춤하며, 이제 슬슬 안정세를 되찾는가 싶었다.

시간외거래도 상당량 체결되어, 이제 다음 날이면 상승세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다음 날, 장이 열리자마자 전날 종가에서 다시 -5%를 찍고 시작했다.

민영진 사장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누가 작전을 거는 것도 아닌데. 뭐지?"

"사장님, 보험가입자들의 해지 요청이 오늘 갑자기 폭증했습니다."

"뭐야?"

"어제는 평소보다 해지 요청이 늘어난 터라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는 데, 오늘은 평소 대비 5배 이상입니다."

"해지 요청 건이 그렇게 늘고 있다고?"

민영진 사장은 그제야 지금의 주가 하락이 단순한 파도가 아님을 깨달았다.

"해지 요청이 갑자기 왜 늘어나! 그럴 이유가 없……."

말을 하면서도 민영진 사장은 아차싶었다.

해지 요청 건이 늘어날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보험금을 받지 못하고 진상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쓴 가입자들.

그들이 받지 못한 돈은 자그마치 3조 원 이상.

'언론으로 잘 덮었는데, 왜? 이게 기존 가입자들 이탈을 불러올 정도는 아닌데?'

보험도 매몰 비용이라는 게 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게 아까워서라도 어떻게든 보험을 유지하려고 한다.

보험료로 1,000만 원을 넣은 상태라면, 해약을 하더라도 돌려받는 것은 30%도 채 안 되니까.

단지 돈이 깎이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 와서 다른 보험사에 가입을 하려고 해도, 날려 먹은 세월만큼 손해를 보는 것이다.

게다가 보험 상품이라는 것은 최근에 나온 것일수록 가입자들에게 불리한 것들이다. 오래된 보험 상품이 보험 가입자들에게 훨씬 유리하다.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대대적으로 이탈한다고?'

***

프리덤은 5,000만 사용자와 주고받으며 수집한 모든 정보를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노하우나 지식을 제외한, 개인의 사생활 같은 정보는 일절 공유하지 않는다.

서로 한창 썸타는 A남과 B여를 상대로 동시에 연애 코칭을 하면서도, 상대 썸남썸녀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A남과 B여는 당연히 자신의 프리덤이 상대방에 관해서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A남의 프리덤 가상 인격은 B여에 대한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조언을 하기 때문이다. 반대쪽도 마찬가지.

또한 프리덤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

하수영이 서해전자를 싫어하더라도, 서해전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먼저 퍼뜨리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가 먼저 물어보는 것은 경우가 다르다.

"프리덤, 서해생명보험 요즘 왜 그렇게 시끄러운 거냐? 강남역에 몰린 사람들은 다 뭐고? 저 사람들, 정말 보험금 타내려고 떼쓰는 진상들이야?"

-아닙니다. 여론 조작에 의해 희생 당한 피해자들입니다. 서해생명보험은 그들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고의로 회피하고 있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네, 언론에서 포장한 것처럼 억지를 부리는 진상 고객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언론은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그야 서해그룹이 제일 돈을 많이 주는 광고주니까요.

절대 먼저 나서서 그들을 변호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용자가 물어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 한도에서 대답을 해준다.

그런 움직임은 한둘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강남역 보험금 시위를 알게 된 이들은 가장 먼저 프리덤한테 물어봤고, 프리덤은 진실을 대답해 주었다.

사용자들 대부분은 이제 부친이나 친구, 배우자보다 프리덤의 말을 더 신뢰한다.

'프리덤의 말을 들어서 한 번도 잘못된 적이 없어.'

'프리덤은 언제나 성실하게 내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해 준다. 아무리 귀찮은 걸 시켜도 군말 없이 바로바로 해내는 개인비서 AI다.'

'거짓말로 약자들 편을 들 이유가 전혀 없어. 프리덤이 지금 한 말은 사실일 거야.'

강남역 보험금 시위에 대한 대답을 들은 사용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간혹 일상생활에서, 혹은 인터넷공간에서 시비가 붙으면 그들은 피곤하게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이렇게 한마디만 하면 끝이었으니까.

-그럼 니 프리덤한테 물어 보던가.

-어? 정말이네? 프리덤도 너랑 똑같은 말을 하는데?

-당연히 나도 프리덤한테 들었으니까.

-이거 프리덤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아니야! 프리덤은 거짓말 같은 거 하지 않아! 얼마나 착하고 충실한 인공지능인데!

사용자들에게 있어 프리덤은 신뢰의 아이콘이었다.

조언이나 지원, 대화를 함에 있어 항상 성실하고 솔직했다.

특히 서해생명 보험 기가입자들은 적극적으로 프리덤한테 조언을 구했고, 프리덤은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타기업이 연루된 문제이기에 먼저 나서진 않는다.

하지만 사용자가 물어보면 사실대로 대답해 준다.

이 간단한 커뮤니케이션이 반복됨에 따라, 서해생명 가입자들은 극도로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지출을 줄여보려고 만만한 사람들만 쏙쏙 골라서 보험금을 지급을 일부러 미룬 거네?"

"나도 나중에 저런 사람들에 포함될지 누가 알아?"

"프리덤, 그럼 좋은 보험사가 있어? 서해생명 가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참에 갈아타야겠다."

-퓨처생명보험의 지급거절 비율이 가장 낮습니다. 상품 종류, 조건과 별개로 보험청구 자체는 가장 잘 들어주는 기업입니다. 금감원 통계기록을 참조했습니다.

"좋아, 그럼 퓨처생명으로 갈아타야겠다."

이런 식으로 가입자들은 보험을 해지하거나, 다른 회사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당연히 증권가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했다.

특히 증권맨들은 그런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대대적인 가입자 이탈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나라 프리덤 사용자 수가 5,000만 명이야. 그중 못해도 4,000만 명 이상은 프리덤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걸?"

"원래 콩으로 메주 쑤지 않아요?"

"그만큼 프리덤이 진실하고, 사용자들도 철석같이 믿는다는 이야기야."

"……."

"아무튼 이거 심상치 않아. 이런 식이면 서해생명 가입자들이 대거이탈할지도 모르겠어. 주가 엄청 빠질 테니 우리도 미리 준비해야겠다."

"즐거운 공매도 기관투자 한 번 갑시다."

"콜."

증권, 금융가에서는 서해생명의 하락에 베팅했다.

그들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적어도 파도의 방향이 어디인지는 잘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를 몰랐다.

이것은 그냥 큰 파도 정도가 아닌, 거대한 쓰나미라는 사실을.

***

-서해생명보험 주가가 연일 하한선을 찍고 있습니다! 벌써 사흘째인데요. 아마 지금쯤 서해그룹 내에서는 비상이 걸렸을 텐데요, 맞습니까?

-물론입니다. 이게 단순히 재정악화나 시장의 패닉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에요. 서해생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입자들의 이탈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현재 얼마나 이탈을 한 상태죠?

-확실하진 않으나 기존 총계약상품의 19% 이상이 해지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체 규모의 19%면 정말 어마어마하네요. 왜 이렇게 갑자기 가입자들이 해지하게 된 걸까요?

-아마 저번에 난리 났던 9조 원 보험금 이펙트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상적인 가입자들은 보험금을 수령하지 않았나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지금 강남역서해생명보험 본사 주위에서는 보험금을 받지 못한 이들이 연일 시위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정당한 수령권이 없는 사람들일 텐데요. 해지자들은 그 사람들에 자신들의 미래를 겹쳐 보는 거군요.

- 예, 그렇습니다. 부당한 블랙컨슈머들 때문에 선량한 소비자들까지 불안에 전염된 상황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강력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연일 서해생명보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 그리고 어떻게든 감싸주려는 기사보도가 포탈을 점령했다.

언론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강남역시위대에 모든 책임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보험해지 러시는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주가는 매일 하한가를 찍었고, 회사의 분위기는 최악이었으며, 서해 그룹 전략기획실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연일 다투고 있었다.

"시총이 너무 쪼그라들었습니다. 서해생명의 브랜드 가치는 이미 바닥을 뚫고 내려갔습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그룹 캐시카우로서 기대 하기에는 답이 없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을 옮기고, 회사를 처분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손해만 더 커집니다."

선제적으로 회사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쪽과.

"안 됩니다. 보험은 중요한 현금창출원입니다. 지금 보험에서 발을 빼면 나중에 재진입하기 위해서는 더 큰 매몰 비용이 필요합니다."

"맞습니다. 시총 3, 4조 원이 날아간 것은 뼈아프지만 오히려 회장님 일가의 서해생명 지분율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분명 정상화가 되고, 예전보다 더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서해생명을 버려야 한다는 쪽과 버리면 안 된다는 쪽.

그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사태에 대한 의문은 공통분모를 흐르고 있었다.

"근데 해지러시의 진짜 원인이 대체 뭡니까?"

"증권가에서는 프리덤으로 보고 있던데요."

"프리덤이 왜요? 실비아컴퍼니가 우리 회사에 억하심이라도 있답니까?"

"이용자가 프리덤의 대답을 너무 신뢰한다는 게 문제인 거 같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