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471화
119장 큰돈 줄래, 작은 돈 줄래?(2)
'이 사람, 돈의 신인가?'
하수영의 자산 성장 내역을 처음부터 검토하듯이 확인한 박호진은 혀를 내둘렀다.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일푼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자산 증식을 이뤄내는 게 가능하다니.
여기가 미국이고 초천재 IT과학자가 시류에 맞춰 초대박을 터뜨리면 모를까, 여기는 한국이지 않은가.
심지어 자산이 증가하는 과정도 기술 따위하고는 일절 무관했다.
농사 하나로 이만한 부를 이뤄낼 수 있다니.
'황비버섯이야 그럴 수 있다 쳐. 황비버섯을 독점함으로써 라면 시장을 먹어치운 것까지는 납득이 된다. 하지만 그 외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아.'
농장으로 쓰던 설악산에서 수조 원대 문화재가 쏟아져 나오고, 다시 옮겨간 땅에서 갑자기 금맥이 터져 나오는 게 말이 되는가?
수영라면, 참치, 치킨 등등 손을 대는 업종마다 눈부신 성공을 거두니.
정말 돈의 신의 가호를 받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근래 들어서였다.
"우리 회장님, 돈의 신의 가호를 받는 게 아니라 그냥 돈의 신 그 자체인 것은 아닌가?"
최동주, 강남에서 오래 해먹은 공인중개사 겸 임대사업자.
그가 아트락 타운 부지 매입에서 투자자들의 돈을 조 단위로 먹고 튄것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남들이 최소 수백억씩 손해를 입는 동안, 하수영은 겨우 5억밖에 손해를 보지 않았다.
심지어 최동주는 해외에서 잘 먹고 잘살지도 못했다.
가진 재산을 몽땅 날리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한국으로 도망치듯이 들어온 것이다.
그 와중에도 하수영은 원금에다가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았다.
-제 돈 훔쳐 먹은 놈치고 잘 먹고 잘사는 놈은 한 놈도 못 봤습니다.
아직도 하수영의 그 말이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만 해도 최동주가 참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농장지에서 거듭 금이 터져 나오고, 하수영의 사업이 잘되는 걸 보면서, 점점 돈의 신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망상이 들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것은 바로 최근에 맡은 변호 사건이었다.
"이지희 씨, 우리 병원 원무과 직원분이신데 딸이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당해서 평생 후유증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가 버티고 있네요. 변호사님이 가해자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떻게 진행할까요?"
"직원분과는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가해자에게는 6억 원과 352억 원을 제시하세요."
처음 박호진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6억, 그리고 352억 원을 제시하라고요?"
"네, 어느 쪽을 택하던지는 가해자 마음이되, 둘 중 하나를 택하기만 하면, 여기서 모든 걸 끝낼 거라고 해주세요."
"이게 무슨…… 둘 다 택하지 않을 경우는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럼 제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평생 동안 법적 분쟁을 겪을 거라고 전해 주십시오. 좋게 끝나고 싶다면 둘 중 하나는 무조건 골라야 한다는 걸 주지시켜 주세요."
"그럼 당연히 누구나 6억 원을 택하지 않을까요?"
"352억 원을 택하는 게 가해가 입장에서 좋을 테지만, 그 이야기는 할 필요 없겠네요.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이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만 말씀하세요."
박호진으로서는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일단 하수영이 시키는 대로 가해자를 찾아가서 말을 전했다.
"수영병원 이사장이 정말 나섰다고요?"
"그렇습니다. 제가 그분 개인 변호사입니다."
"허참, 그 병원은 일개 직원 딸내미 교통사고 난 것까지 일일이 회장님이 나서서 대변합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신다면 회장님께서는 피해자를 대리해서 평생 법적 분쟁을 진행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가해자는 아마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으리라.
그의 입장에서 하수영과 척져서 좋을 것은 없다.
조금이라도 머리가 돌아간다면, 무엇이 최선인지는 알 것이다.
"한마디로 6억 원으로 끝내자는 거네. 그거 안 받아들일까 봐 아니면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는 거고, 맞죠?"
"전 재산이라고요?"
"352억이라면서요? 내 전재산이 대충 그 정도 됩니다. 땅이고 건물이고 현금이고 다 합쳐서. 그건 또 언제 뒷조사를 했대? 허허, 말 안들으면 어떻게 될 거라고 미리 협박하는 건가?"
"……."
순간 박호진은 소름이 돋았다.
352억이라는 숫자에 그런 의미가 있었을 줄이야.
'6억의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352억에도 그런 의미가 있었다니.'
6억.
피해자가 입은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위자료 등을 현행법상 한계까지 적용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의 최대치였다.
그래서 352억은 또 무슨 의미인가 싶었는데, 그런 뜻이 담겨 있었구나.
"좋습니다. 6억 내죠. 아무튼 이걸로 모든 걸 끝내는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피해자에게는 6억 원이 돌아갔고, 민사 합의는 그것으로 종결되었다.
형사 절차는 따로 밟겠지만, 합의도 했으니 아마 집행유예로 나올 것이다.
세상 물정과 동떨어진 판사들 눈으로 보기에 6억이면 정말 거액을 주고 합의를 본 것일 테니까.
"피해자는 발목 하나가 날아가서 평생 장애로 살아야 하는데, 352억가진 자산가는 6억으로 퉁치다니."
박호진은 입맛이 썼다.
"그걸 또 거액 합의라고 보다니.
요즘 애들은 대체 책상 밖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군. 이러니 시민들이 사법부를 믿지 않는 거지."
그렇게 피해자 가족인 병원 직원에게 박호진은 모든 것을 전달했다.
만약 피해자 가족이 직접 나섰다면 합의금 6억 원을 받아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 변호사한테 성공보수니 뭐니 해서 30% 이상 줘야 했을 테고,피해자 입장에선 그나마 가장 나은 선택지였다.
하지만 박호진은 찜찜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다행히 이 사장님께서 우리 딸아이를 병원에서 고용해 준다고 하셨어요."
"그래요?"
"네, 병원에 고용되면 월급에서 장애지원금도 나오고, 잘릴 걱정도 없고 좋지요. 너무 감사합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현실을 빨리 받아 들였다.
그것은 순응이자 체념이었다. 이정도 받아낸 것만 해도 최선이라는 순응.
"이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어차피 음주운전 하는 놈들은 정상이 아니니까 마음에 없는 사과 백날 들어도 화병만 든다고, 그냥 배상금이나 최대한 받아내는 게 낫다고요. 저도 그래서 마음 내려놨습니다."
"……."
"6억씩이나, 그것도 변호사 선임비일체 없이 빨리 받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박호진은 그렇게 안 좋은 마음을 품은 채 하수영을 찾아가서 최종 보고했다.
"음주운전으로 남의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렸으면 전 재산으로 갚는 게 마땅한 도리거늘, 역시 술 먹고 운전대 잡는 놈들은 인성이 딱 정해져 있다니까요."
하수영은 그렇게 혀를 끌끌 찼다.
박호진은 얼마 후 또 비슷한 업무를 지시받았다.
이번에도 직원 자녀였는데, 클럽에서 있는 집 자식들한테 시비가 걸려서 심하게 두들겨 맞았다고 했다.
이송 중에 심정지가 올 정도였으니, 수영병원에 들어서지 않았으면 아마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수영은 이번에도 희한한 주문을 했다.
"6억과 421억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세요."
6억은 바로 이해가 됐다.
하지만 421억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가해자의 부친은 박호진도 건너건너 아는 얼굴이었다. 바로 4선에 성공한 유력 정치인.
"제가 법원장님 얼굴을 봐서 피해자에게 20억을 드리겠습니다."
가해자 부친은 선심 쓰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하수영의 이름은 몰랐지만, 박호진이 나섰다는 것에서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건 제가 결정할 게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박호진은 하수영에게 전화로 문의 했지만, 하수영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6억과 421억,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세요.
대체 이 주문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박호진은 돌아와서 그대로 전했고, 가해자 부친은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6억에 수락했다.
'혹시?'
돌아오는 길에 퍼뜩 생각이 난 박호진은 공직자 신고재산을 조회했다.
가해자 부친과 배우자의 총자산은 1,263억 원이었다.
그리고 자녀는 셋.
만약 지금 상속이 된다면, 가해자의 상속분은 421억 원…….
그 순간 박호진은 소름이 쫙 돋았다.
그는 정신없이 원무과 직원 딸의 발목을 절단시킨 음주운전 가해자의 소식을 찾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소름이 쫙 돋았다.
"음주운전 사고로 양다리가 아작났다고?"
"네, 두 다리를 모두 절단했다고 합니다."
"혹시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낸 사고야?"
"아닙니다. 자기가 술 먹고 운전하다가 혼자 빌딩에 들이박아서 그리 됐다는데요?"
"……."
"심지어 박은 빌딩도 자기 빌딩이라 사고로 화재까지 나서 이만저만 손해를 입었나 봐요. 양무릎 아래로 절단해서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고요."
자세하게 파봤지만, 누군가가 외부에서 손을 쓴 흔적은 일절 없었다.
가해자는 정말 불운하게도 스스로를 망가뜨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클럽 폭행으로 청년 하나를 죽일 뻔했던 유력 정치인 아들 소식도 접할 수 있었다.
"수영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네, 텐프로 술집에서 술 먹다가 시비가 붙었는데, 하필 시비 건 사람이 모 재벌 회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호원한테 흠뻑 두들겨 맞았다고 하네요."
"……."
"수영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응급실이 꽉 차서 타병원 이송시키려는 것을 부모가 애걸복걸해서 겨우 들어갔답니다. 빈 병실이 VIP실밖에 없어서 거기에서 나흘 정도 입원해서 지금은 호전 보이고 있고, 오늘쯤 전원한다고 하네요."
박호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병원비가 421억 나왔나?"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
"부모도 수영병원 명성을 아는 거지요. 다른 병원 가는 사이에, 아니면 다른 병원에서 죽을까 봐 VIP병실이든 뭐든 일단 입원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병원비 보고 기겁해서 다시 나오는 거죠."
왕세경 회장은 하루 입원료로 3억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을 지불한다.
(연간 1,000억 원)
그런데 나흘 입원하고 421억 원이면, 원무과에서 정말 세게 병원비를 부른 것이다.
텐프로 시비 폭행은 하수영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정말 우연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저 두 건이 정말 우연일까?
박호진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게 돼버렸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가해자인 서해생명은 12,530,781원과 6억 원 중에서 전자를 선택했다.
"이건 애초에 돈의 신이 제안하는 함정이야. 아니, 함정은 아니고 과오를 만회할 최후의 갈림길 같은 거지."
지난 2건의 사건을 모르는 신임변호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함정이라고요? 설마 적은 배상금을 택했으니 우리 회장님이 따로 보복이라도 하시는 건……."
"절대 그런 게 아닐세. 원래 신의 계시를 어기면 가만히 있어도 벌을 받지 않나? 그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되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변호사님, 무교이시지 않습니까?"
"자네도 그냥 미신으로만 받아들이고 넘어가게. 그럼 모든 게 편해진다네."
서해생명 빌딩을 올려다보며, 박호 진은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큰돈의 저주가, 자산 300조 원짜리 회사한테는 어떻게 돌아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