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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470화 (470/1,270)

프랜차이즈 갓 470화

119장 큰돈 줄래, 작은 돈 줄래?(1)

박종우는 김말식이 투서를 한 동료 직원이었다.

그는 아내가 암에 걸린 이후 눈덩이 불어나듯이 커져가는 병원비 지출에 고생하고 있었다.

서해생명에 들어놓은 암 보험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아니, 왜 보험금을 안 준다는 거요?"

"지급 조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지급 조건이라니? 암에 걸리면 당연히 암 진단 보험금을 줘야 하는거 아니오?"

"약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 한 번 보시죠."

보험사 직원은 두꺼운 약관에 깨알같이 촘촘하게 써 있는 문장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박종우는 관련 조항을 읽었지만, 이게 왜 보험금 지급을 막는지 이해 하지는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오?"

"해당 조항을 잘 읽어보시면 보험금 지급을 위해서는 최초 진단된 악성종양의 크기가 2m 이상에 해당이 되어야…… 중략…… 아무튼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럼 암이 커질 때까지 기다렸다.

가 2㎝로 커지면 그때 가서 보험금을 주겠다는 소리인가?"

"네, 그렇습니다!"

여기서 박종우는 분이 폭발해서 보험사 직원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었다.

"야이, 개버러지 같은 새끼들아! 암을 그때까지 키워서 오면 그냥 죽으라는 거 아니야!"

"고객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소란을 피운 덕분에 결국 박종우는 결국 경비원한테 강제로 이끌려서 서해생명 건물을 나서야 했다.

그는 씩씩거리면서 서해생명 빌딩을 노려보았다.

"버러지 같은 놈들! 어떻게든 보험금 안 주려고 온갖 꼼수는 다 숨겨 놨었네!"

약관을 교묘하게 작성하고 현혹시 켜서 상품을 팔다니.

이런 거는 당연히 고발사항이 아닌가?

박종우는 일단 적금을 깨서 치료를 시작했다.

미쳤다고 보험금을 타기 위해서 암세포 크기를 키울 수는 없잖은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작업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넣어서 치료를 시작했지만, 아내는 좀처럼 호전을 보이지 않았다.

암은 점점 진행되었고, 종양의 크기는 결국 2㎝를 돌파했다.

박종우는 참담한 심정으로 서해생명을 다시 찾아갔다.

이제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쁨 따위는 없었다.

이거라도 받아내서 치료비에 보태야겠다는 바람이었다.

이번에 나온 다른 직원은 관련 서류를 꼼꼼히 살피더니 고개를 저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보험금 지급사유가 안 됩니다."

박종우는 곧바로 울컥했다.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저번에도 개소리하더니 이번에도 개소리를 하면 어쩌자는 거야!"

"이렇게 난동을 피우시면 곤란합니다. 하아, 설명드리죠. 여기에 약관에 보면 최초 진단 시점에서 악성종양의 크기가 2m 이상일 때 보험금이 지급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2㎝라고 했잖아!"

"최초 진단 시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뭐요? 그럼 보험금을 결국 한 푼도 못 주겠다 이 소리야!"

"아무튼 지급 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박종우는 어이가 없었다.

결국 돈 안 주겠다는 이야기를 길고 복잡하게 늘어놓고 있지 않은가.

박종우는 결국 보험을 해지하고 그 간 납입한 보험료를 돌려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거 말고는 돈을 받아 낼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그렇게 받아낸 해지보험료도 이미 납부한 총액의 20%밖에 안 되는 금액이었다.

"약관이 이렇습니다."

그놈의 약관, 약관, 약관!

울화통이 터진 박종우는 관련 사실들을 암 환자 카페에 부지런히 퍼뜨리고 다녔다.

-여기 보험사가 아주 나쁜 놈들이에요! 암 걸려도 보험료 절대 안 줍니다!

-제가 이러이러하게 당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보험 약관 다들 자세히 읽어보시고 대비하세요! 믿고 방심하고 있다가 저처럼 크게 당하지 마시고요!

그렇게 자신이 피해를 당한 사례를 부지런히 인터넷 카페 등에 퍼뜨리고 있을 때, 서해생명에서 마침내 전화가 왔다.

-박종우 씨 맞으시죠? 암환우모임카페 등 여기저기 우리 회사에 대한 비난글을 적어서 퍼뜨리신 분이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없는 말을 지어냈냐?"

-당장 모든 게시글을 내리고 사과 글을 올리지 않으시면 즉각 고발 조치를 이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대로 해, 마음대로!"

박종우는 길길이 날뛰었지만, 머지 않아 경찰에서 출석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업무방해, 그리고 폭행 건으로 고소가 들어왔습니다."

"폭행? 그건 또 대체 뭡니까, 형사님?"

"회사 사무실 내에서 직원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셨다던데, 사실 아닙니까? 서해생명에서는 이미 영상을 제출했습니다."

"뭐요? 내가 멱살을 잡았다고?"

박종우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제야 처음 보험금을 받으려고 찾아갔을 때, 깨알같이 숨어 있는 함정 약관 조항에 분해서 멱살을 잡았던 게 기억이 났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말 안 하다가 이런 식으로 공격이 들어올 줄이야.

"그놈들, 처음부터 보험금 줄 생각은 전혀 없었어! 멱살 잡은 것도 이렇게 써먹으려고 미리 준비해 뒀던 거야!"

"저기, 선생님. 멱살 잡은 것으로 걸고 늘어지면 폭행에 업무방해가 인정됩니다. 일단 서해생명과 좋게 이야기를 해보시죠."

서해생명 법무팀이 거들먹거리면서 나타났다.

처음 보는 변호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가득 지은 채 박종우에게 권고 했다.

"지금이라도 게시글을 전부 내리고 사죄하신 다음, 여기 각서에 서명하시면 우리 회사가 문제 삼을 일은 없을 겁니다."

각서는 향후 보험을 가지고 회사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드리는 배려입니다. 이 합의 제안을 무시하시면 회사는 끝까지 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게 하시죠, 선생님. 뭘 봐도 선생님께 그저 불리하기만 할 뿐입니다."

경찰마저도 그렇게 권했다.

결국 박종우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각서에 서명을 하고, 게시글을 모두 내리고, 또 사죄하는 글을 써서 올려야만 했다.

안 그래도 아내 간병하며 몸 고생마음고생하랴, 회사 다니면서 일하랴, 여기저기 돈 끌어모으랴, 사방으로 치이고 있었던 박종우는 이 일 때문에 홧병이 났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까지 번진 박종우는 병가를 내고 집에 앓아누웠다.

그러던 와중, 자신을 변호사라고 소개한 노인이 박종우의 집까지 찾아왔다.

"또 변호사라고?"

딸의 말에 누워 있던 박종우는 울화병이 치밀었다. 이제 변호사라면 아주 지긋지긋했다.

"아빠 회사 변호사래. 서해생명 변호사는 아닌가 봐."

"뭐? 아빠 회사 변호사?"

박종우는 부랴부랴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아들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박호진 변호사는 그런 박종우를 만류했다.

"이런, 몸도 안 좋으신 분이니 편히 누워 계십시오. 좋은 이야기를 전해드리러 온 것이니 마음 편안하게 가지시고요."

"조, 좋은 이야기라고요?"

"네,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고 누워 계세요. 조금도 나쁠 건 없습니다."

그러면서 박호진은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저는 프라임컴퍼니 소속은 아니고, 하수영 회장님 개인변호사입니다. 오늘은 하수영 회장님을 대리해서 왔습니다."

"하, 하수영 회장님 변호사시라고요?"

"네, 프라임 그룹에서 운영하는 직원의료복지 정책이 있는데, 박종우씨께서는 그걸 하나도 신청하지 않으셨더군요."

"직원의료복지요? 그런 말은 못 들었습니다. 어떤 겁니까?"

"이해합니다. 프라임컴퍼니 인사부도 잘 모르더군요. 이제 널리 통지를 했으니, 앞으로는 박종우 씨 같은 분이 생기지 않을 겁니다."

박종우의 얼굴에 희미한 기대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직원 본인,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병원비 중 연간 50만 원 이상 초과 분은 회사에서 부담합니다. 회장님이 프라임컴퍼니 경영진은 아니지만, 이것은 하수영의료재단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니 무관합니다."

박종우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보통 지원책이라면 얼마 이내에서 돈을 준다 이런 개념으로 성립하지 않나?

근데 지금 변호사는 50만 원 초과 분이라고 했다. 상한선 이야기는 아예 없었다.

"그동안 박종우 씨가 부담하신 병원비 내역을 뽑아 오시면 전액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카드로 긁으셨을 테니 증빙은 간단하실 겁니다."

"네? 전액이라고요? 병원비로 쓴 것만 1억이 훨씬 넘어가는데……."

적금과 여기저기 꾸어다 쓴 돈까지다 합쳐서 그렇다는 말이다.

"네, 전액입니다. 상한선은 없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수영병원에 입원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가까운 데 입원해야 간병하기가 편해서……."

"수영병원은 병원 자체적으로 전담간병팀을 따로 운영합니다. 보호자가 매일 오지 않아도 환자 간병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수영병원은 병원에서 의료비의 상당분을 지불하기에, 애초에 그리 큰돈이 나가지도 않았을 겁니다."

박종우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수영병원에서는 환자 가족의 가처분 소득의 일정 비율 이상은 병원에서 대납해 준다는 것을.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박종우는 벌떡 일어나서 박호진 앞에서 허리를 연신 굽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바로 전원 절차 밟으세요.

병원에 병상은 이미 마련해 놨습니다. 지금까지 지출하신 병원비는 증빙 확인되는 대로 전액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의 말씀은 하수영 회장님께하시죠. 재단 홈페이지 들어가셔서 감사글 쓰시면 됩니다."

"물론입니다! 회장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장문의 감사글 올리겠습니다!"

"앞으로 병원비 문제는 일절 없을테니, 안심하고 근무하시면서 가정돌보세요. 본인 건강도 챙기시고요."

"네! 변호사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대로 확 죽어버릴까 생각했던 박종우는 다시금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

"그리고 서해생명 쪽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네, 변호사님! 믿고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불행의 늪에 빠진 가정을 온전히 끌어올리는 것은 언제 해도 보람 있는 일이다.

박호진은 흐뭇한 마음으로 나선 뒤, 이번에는 차가운 표정을 머금고 서해생명을 찾았다.

자신의 소개를 하자 서해생명 법무팀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박호진의 동기이기도 했다.

"박 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프라임 그룹에서는 회장님 개인변호사가 일개 말단 직원 일까지 대신 나서서 변호한단 말인가?"

"우리 회장님이 직원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시거든. 복지 정책 운영하시는 거 보면 알 수 있지."

"허어, 이거 참……."

말단 직원의 보험금 청구다툼 문제에, 그 회사 회장이 자기 변호사를 보내는 일은 전무하다. 말단 직원과 전혀 사적인 친분은 없다고 했는데.

"나도 길게 이야기하고 싶진 않네."

"자네 몸값을 생각하면 6,000만 원짜리 보험금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거 자체가 더 손해지. 하지만 나도 내 입장이 있고, 법률적으로도 아무 문제는 없어."

"내가 할 이야기는 매우 심플하네. 6억 원과 12,530,781원,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뭐? 무슨 의미가 있는 숫자인가?"

법무팀장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6억 원은 보험금 6,000만 원을 열 배로 청구한 숫자일세."

"괘씸죄다, 뭐 그런 건가? 그럼 12,530,781원은?"

"그동안 납입한 총보험료에 연이율 20%를 적용한 금액에서, 해지환급금을 뺀 액수일세."

보험금을 10배로 줄 거냐, 아니면 그간 납입한 보험료(이자 포함)를 돌려줄 거냐.

법무팀장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전혀 의도가 짐작되지 않는 제안이었다.

"6억 원을 택하지 않으면 우리 회사에 대한 보복이라도 실행되는 건가?"

"그럴 일은 없네. 어느 쪽을 선택하는 우리는 그 돈만 받고 모든 것을 정리할 걸세. 차후에 어떤 식으로든 이 일로 문제 삼을 일은 없을 거네."

"……더욱 이해할 수가 없군."

"나도 마찬가지일세."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으니, 보험료만이라도 챙겨서 돌려주자 뭐 그런 의도이신가? 그쪽 회장님은?"

"그럴지도 모르지."

법무팀장은 두 번째를 선택했다.

원래라면 깔끔하게 둘 다 무시해도 된다.

하지만 박호진까지 움직인 마당에 최소한의 선처는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둘 다 무시하면 상대 회장님의 심기가 불편할 테고, 서해생명 입장에서도 썩 좋은 일은 아니니.

12,530,781원이 찍힌 수표를 챙겨서 나선 박호진은 서해생명 빌딩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안됐군, 6억으로 끝낼 수 있는 걸 소탐대실해서 손해를 더 키우다니."

"변호사님? 저라도 12,530,781원을 택했을 거 같은데요? 어느 쪽을 택하는 아무 문제도 삼지 않는다고 했잖습니까."

"돈의 신이 큰돈과 작은 돈, 둘 중에 하나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큰 돈을 주면 작은 돈의 저주는 짓눌려서 소멸하지만, 작은 돈을 주면 큰 돈의 저주가 어찌 될 것 같나?"

"네? 돈의 신, 저주라니요? 그런게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박호진은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며 대답했다.

"내가 직접 봤으니까 하는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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